혼자서 복수를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와주는 사람이 우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정신없이 달렸다. 거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달려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진실일까.

이때까지 그를 달리게 해 온 그녀가 진실일까 아니면 요양원에서 투약받은 마약의 중독성일뿐일까.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야!-

 

자신을 보러 온 남자 요양사를 둘이서 합심해서 붙잡고, 쇠로된 포크를 흉기삼아 원장실까지 쳐들어간 후에야 그는 진실을 알았다.

어머니는 병률에게 속았던 것이다.

 

-뭐 왜 그렇게 새된 소리를 지르나.-

 

노인은 빙긋이 웃으면서 원장의 허리를 포크로 쿡쿡 찔렀다.

 

-우린 환자가 아니라고-

 

-당신들은 미쳤어! 미쳤다고!-

 

능글맞은 노인의 얼굴에는 이 정도는 장난이라는 표정이 드러났다. 이 노인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 그는 그 순간조차도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 그래? 마약류를 투여하고, 안정제를 있는대로 다 퍼붓고, 수면제란 수면제는 종류별로 다 먹이는 병원도 있나? 여긴 성형의사들이 있는 곳이 아니잖아. 우유주사라도 놓고 있는 건가?-

 

-당신은 한번 두 번 성공하니 재미가 들렸나본데. 당신네 자식들이 봐주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거야. 잘못하면 구속복을 입게 될 걸.-

 

-그 새끼들이 뭐라 하건 나하곤 상관없고-

 

느긋하게 노인이 대답했다.

 

-관리하고 있던 내 돈이나 내놔. 우린 지금 여길 나갈거니까. 당신을 볼모로 잡아서 말이야.-

 

-그렇게는 안돼!-

 

원장이 으르렁거렸다.

 

-흐음, 그래?-

 

노인이 다시 한번 포크로 원장의 목을 쿡쿡 찔렀다.

 

-어디 산채로 껍질 벗겨지는 고생하기 싫으면 알아서 내놔.-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원장은 떨리는 손으로 금고에 있던 돈을 꺼내서 노인에게 주었다.

벌벌 떨리는 손에 쥐어진 돈은 몇천만원이 넘어보였다. 노인은 잊지 않고 원장에게 그 돈을 직접 가방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위조지폐인지 아닌지는 노인의 관심대상은 전혀 아닌 것 같았다. 전직 경찰이었던 그는 사실 이 흥미진진한 광경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는 단 한번도 이런 식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좋아. 다 넣었군.-

 

세어보지도 않고도 아는 것처럼 노인이 말했다.

 

-그럼 내 옷도 꺼내야지. 잊지 말고 말이야. 그 아르마니니, 에르메스를 네 멋대로 처분하지 않았다면 어딘가에 있겠지.-

 

-젠장. 괴물같은 노인네.-

 

결국 노인과 그는 있는대로 다 털어서 요양원을 나왔다. 그는 정말 노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런 노인을 어떻게 요양원에 집어넣었을까. 그는 생각만 해도 기가 질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의 말에 노인이 하품을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노인은 구겨진 옷 여기저기를 손으로 매만졌다. 아르마니 양복을 폼나게 걸친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오히려 성형수술이라도 받은 것처럼 빛났다.

 

-, 그거? 요양원에 있으니 별별 책이 다 있더군. 그래서 그 중에서 제일 폼나는 대사가 나오는 책을 열심히 읽었지. 거기에 비슷한 대사가 많더라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읊조린 거야. 완전히 나올 생각이 없어서 그랬지.-

 

-......-

 

-자넨 한동안 숨어 있어야 할 거야. 그 몸으로는 복수는커녕 며칠 버티는 것도 힘들어. 자네가 먹는 약을 일일이 보진 않았는데 마약류도 있는 것 같더군. 내가 우선 눈길을 끌어서 자넬 쫓는 걸 막아줄테니까 자넨 천천히 움직여. 그동안 내 친구들이 자넬 도와줄거야. 행여나 쓸데없는 짓 하진 말아주게. 내 복수를 위해서라도 자넨 조용히 움직여야 해.-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다. 노인이 뭐라고 하건 그 총성은 그동안 쌓여있던 감정의 표출이었던 셈이다.

막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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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친구에게 가르쳐줄때도 그는 그걸 잊어버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복수의 가장 강한 무기는 돈이었다. 돈 없이, 사람없이 진행되는 복수라는 건 그는 믿지 않았다. 자식들에 의해서 돈을 빼앗기고 병원에 처음 감금되었을 때 그가 느낀 건 한없는 막막함이었다. 자식이 각기 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던 막막함이었다. 그는 돈이 있었고, 그걸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지배했다.

아이들이 싫은 소리를 하면 때렸다. 그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아이도 때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현명하게 구는 아이도 때렸다.

도대체 기준이 없어보이는 그 훈육 방식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생존감각을 기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가 노쇠해질 기미가 보이자 합심해서 그를 병원 아닌 병원에 가둬버렸다. 그가 겨우 오십을 넘어서는 그 나이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복수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안 가능하면 어떡할테냐.”

 

노인과 병률은 나란히 걸었다.

발자국을 한번 한번 디딜때마다 두 사람은 키들거리고 웃었다.

 

역시 당신이란 사람 웃기네요.”

 

그런 놈밑에서 일하는 네놈은 썩은 놈이지.”

 

병률은 총구를 노인의 허리께에 갖다대었다. 실탄이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요양원 탈출하기 놀이는 없습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성가셔요. 그분은 그렇게 생각하시고요.”

 

네멋대로 하려무나. 아들아.”

 

노인은 자리에 멈춰섰다. 그들이 산책하는 동안 주변은 형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네 동료를 그런 식으로 가둬버린 건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 보냈더라면 더 좋을 뻔했구나.”

 

당신은 위험한 노인네니까 감시원이 필요했거든요. 이렇게 뜻대로 움직여줘서 고맙군요.”

 

병률이 선량해보이는 미소로 답변했다.

 

하지만 이제 그 아들 아버지 놀이도 끝나는군요. 이번에는 진짜 병원으로 보내버릴테니까. 알아서 하시죠.”

 

넌 친구가 한명밖에 없었을텐데...”

 

한명밖에 없으면 어때서.”

 

병률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 한명밖에 없는 친구에게 복수 당하는 기분을 한번 맛보거라. 내가 낳은 자식들에게 철저하게 복수당했듯이. 네 녀석들도 그런 복수를 당할 거야.”

 

당신 그럼...일부러?”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탕!하는 소리가 났다. 노인이 병률의 총이 아닌 옷 어딘가에 숨기고 있던 총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당겼던 것이다. 피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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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큰 길로 나오자 우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성경책안에 든 총은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았지만 아직까지는 없는 듯 했다.

병원에서 그 사고를 치고 나왔는데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건만...

아니면 노인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뒤가 구린 것이 있어서 이때껏 그들을 가두어두고 있었고, 누군가 두 사람을 감금함으로써 얻는 것이 있었다...는 것.

 

적선합쇼...”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거지가 머리를 연거푸 조아렸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몇 년의 시간동안 병률에 의해서 가둬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인간미가 남아있는 건 기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미안합니다.”

 

그는 억지로 목을 긁어내는 듯한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5만원 지폐밖에 없군요.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미안합니다.”

 

본래 그는 선량한 인간이었다.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것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리고 아내만을 사랑해온.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것이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수중에는 두둑한 현금이 있었으니까. 거지에게 주는 것은 그 중 백분지 일 정도도 안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그릇에 둔 5만원에 거지는 허리를 굽실거렸다. 하지만 잠시 거지의 눈이 번득였다.

단순한 거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이내 후회했다. 기분 탓일까? 그 거지는 어쩌면 병률이나 노인이 과대망상적으로 말한 병률의 상사일지도 모른다.

직관은 말하고 있었다. 복수가 끝나고 인간의 법이 정당하게 그의 범죄를 심판할때까지 그는 계속 쫓겨다녀야 할 것이다. 큰 대상과 결탁한 그곳이 그냥 그를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노인의 희생으로 겨우 풀려나게 되었는데 단 한번에 붙잡힐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앞을 인도하듯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답을 구하듯 그녀의 손을 잡으려했다. 하지만 잡히지 않았다. 다만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아내의 손가락이 거지를 가리켰다.

그는 잠시 정신을 잃은 채 미친 듯이 성경책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뭔가 더 얻을 게 없을까 싶어서 쫓아온 거지를 향해서 총을 발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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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길준은 천천히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은 퉁명스럽게 그 거리 좁히기를 거부했으나 애초에 방을 옮겨온 건 노인이었다. 길준을 거부해야 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어차피 노인은 길준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옮겨온 것이다. 느긋하게 기다려야 했다,

 

자넨 내가 궁금하겠지. 어떻게 돈의 힘을 빌리고해서 빠져나갔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감시하는 놈들처럼 이젠 더 이상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어느날 시멘트 바닥을 못으로 긁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글쎄요.”

 

아니, 그 사람은 돈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어떻게든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저번에 자네 아내에 대해서 함부로 말한 거 미안하네.”

 

“......”

 

사실이 어쨌든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자넨 버틸 준비가 안되어있었으니까.”

 

“......”

 

한번 더 화를 내면 아예 못 나갈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나는 아직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네. 내 머리는 멀쩡하고 자네 몸은 아직도 제법 쓸만하지. 건강하단 이야기야. 나도 물론 노인치고는 건강한 편이지만 말이지.”

 

“...제가 필요하단 말씀이군요.”

 

...자네 경우에는 돈이 통하진 않을 것 같고...이거 어떤가. 내가 자네 일을 좀 도와주는거야.”

 

“...어떤건지 아십니까.”

 

복수지. 자넬 가둔 사람에 대한, 그리고 아내의 유령이 눈에 보이게 한.”

 

“......”

 

여자를 너무 믿지 마. 여자는 너무 위험하니까.”

 

여자...”

 

총을 빵하고 쏘고 싶지? 아내를 건드린, 그리고 아내를 죽인 그 놈한테. 근데 총기 소지는 안되니까 총부터 구해야 되지 않겠나. 그리고...또 그 위의 다른 놈에게도 복수해야지. 자네는 내 복수까지 해주는 거야,”

 

여자는 무슨 말입니까?”

 

자네 부인. 자넨 돌아가는 일이 판단이 안되는 것 같지만.”

 

?”

 

그러니까 여자를 믿지 말라고 미리 이야기하는거야. 자넨 아내를 사랑하는 애처가라기보다는 모든 여자를 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호색과는 개념이 좀 다르지만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좀 바보같지.”

 

순간적으로 또다시 욱해서 노인의 목덜미를 잡아챘지만, 길준은 이내 노인을 풀어주었다.

호락호락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고, 우선 나가야했다.

이젠 그는 아내에 대해서 어떤 모욕을 가해도 참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복수였다. 어머니가 자신을 가뒀다고는 하지만, 그 뒤에는 병률이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모습이...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노인이 복수해달라는 말을 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길준은 노인이 자신처럼 세상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상인이라기엔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냉정한 계산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였다.

노인은 계속 어떤 건물의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들려주었는데, 이야기만 들어서는 동화같기도 하고, 추리소설같기도 했다.

 

도대체 그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긴 뭡니까?”

 

뭐긴.”

 

노인은 천천히 복기를 했다.

 

그 남자는 레테르가 덜 떨어진 새옷을 입고, 길함동에 있는 성당으로 가는 거야. 가면 거기에는 젊은 신부가 기다렸다가 성경을 건네주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미로 말이야.

그리고 그 성경을 펼치면 복수가 시작되지.“

 

“...동화같은 이야기군요.”

 

나갈 수 있을 때 이야기겠지만 내가 돈을 먹인 감시원이 그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꼭 그 인간들 아니라도 나갈 수 있어. 단지 내가 체력이 달린다는 게 문제지. 자넨 여기 들어와서 나가본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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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썽을 피우고 그러세요. 나이도 드신 분들이...”

 

관리사가 와서 두 사람의 눈에 든 멍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팔을 걷으라고 말했다.

 

왜 주사를 맞아야 하노?나는 멀쩡한데.”

 

그 사람의 말에 관리사가 피식 웃었다.

 

항상 멀쩡하다고 그러시잖아요. 그걸 누가 믿는다고.”

 

니네들이 그렇다고 의사는 아니잖야. 내가 나가는 걸 막는다면 너희들도 콩밥을 먹어야 할걸.”

 

그의 협박에 관리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불쌍한 영감님. 벌써 몇 번째 그 말 반복하는지는 아시나요? 그래봤자 안되잖아요. 아무리 멀쩡하면 뭘해요. 영감님 자식들이 퇴원에 동의하지 않는데...”

 

“.....”

그 사람은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 드러누워버렸다.

 

, 원장님이 그러시던데요. 한번만 더 말썽을 피우시면 독방으로 보내드릴 거랍니다. 선생님 약도 돌려주시지 않을거래요. 왜 심장약 있잖아요...선생님이 매수하신 감시원들은 다 내보냈어요. 그러니까 아시겠죠? 최대한 아주 최대한 조용히 계셔야 한다는 거.”

 

호로새끼!”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한 후 이불을 뒤집어썼다. 관리사는 안됐다는 듯이 보더니 이내 길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도 여기 계실려면 조용히 계셔야지요. 저분 자극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답니다. 저분은 원래 저렇게 생겨먹었는걸요. 20년이 넘게 갇혀 있으면서 혼자서 별의 별 망상을 다 하죠. 그래도 재산은 많은지 20년 넘게 가족들에 의해서 갇혀 있으니...”

 

길준은 처음으로 그 남자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안정제를 맞고 난 후 천천히 그 남자에게 질문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단순한 졸부도 아니고, 정신 병자도 아니며, 그저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닌 ,가족에 의해서 버림 받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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