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길원택은 병원에서 나오자 마자 피식하고 헛웃음소리를 냈다.
공연의 유령이 도와주긴 누가 도와줘.
이런 말이 있긴 했다. 공연이나 영화가 더 잘나가려면 귀신 소동이 있어야 된다는 말.
산전수전 다 겪었어도 권선생도 아직까진 그런 헛소문을 믿는 사람중 하나였다. 속이기 너무 쉬워서 짜증날 지경이었다. 하긴, 그의 열정을 생각하기 때문에 길원택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겠지만.

 

"이번 두번만으로 끝나면 좋을텐데. 슬슬 귀찮아지거든."

 

병원 보도 저 뒤끝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어떻습니까. 일 제대로 된 거 맞죠?"

 

"응. 잘 했어."

 

길원택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유령]에게 말했다.

 

"앞으로 몇번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아. 나는 아무래도 전직 의사니까 가장 의심받기 좋거든."

 

"얼마든지 도와드리죠. 대신에 제 얼굴 꼭 봐주시는겁니다."

 

"같은 병원에 그 세 사람 있는 동안에 잘 부탁해. 필요한 약은 바로 넘겨줄테니까."

 

"걱정마세요."


권선생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조유나, 유선생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말씀하시는대로 시간 내에 처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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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권선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째서 이때까지 건강했던 자신이 심장병이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측근에서는 길원택 짓이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길원택은 자신이 키우다시피한 거물이었다. 좀 차가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을 공격할 정도로 근성이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이제 좀 어떠십니까?"

 

과일바구니를 들고 온 길원택에게 권선생은 더 이상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네 맘대로 다했다면서? 근데 이제와서..."

"그러니까 아무리 이뻐도 너무 데리고 놀아도 안되는겁니다. 사장님. 애 목이 완전히 갔던걸요."

 

사과를 사각사각 깎으면서 하는 말에 권선생은 얼굴이 붉어졌다.

 

"알고 있었나?"

 

"그럼요. 다행스럽게도 공연의 유령이 도와줬으니 다행인거죠."

 

"공연의 유령?"

 

"뭐, 그런게 있어요. 하여간. 너무 무리 하지 마십시오. 연세가 있잖아요."

 

"...너도 조심해라. 조금만 잘못하면 훅 가는게 이 바닥이야."

 

"전 윤선생이 아닙니다. 어제 술자리에서 술 먹다가 칼에 찔렸다던데. 전 그런 어설픈 짓은 하지도 않아요."

 

"정말이냐?"

 

얌전하게 사과를 깎던 길원택은 사과깎던 칼을 권선생에게 갖다댔다. 그리고 조용히 대꾸했다.

 

"저는 직접 안 움직입니다. 단지 움직이는 건 유령이죠. 항상 무대만이, 쇼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유령이...그걸 망치는 사람을 응징하는 거죠. 그게 유령인거고, 전 항상 그 유령 덕을 보죠...왜냐하면 유령과 전 바라는 게 항상 같거든요. 완벽.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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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갑론을박이 오갔다. 하고많은 배우들이 있는 와중에 유명세에서 한참 밀리는 윤승아가 어째서 메인을 맡느냐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쁜 사랑 하세요! 라는 팬들이 아직까지 있으니 화제성이야 없진 않겠지만. 그건 그거고, 진짜 검증된 유명세! 그 필수적인 한방이 필요했다. 더더군다나 그걸 보충하려면 대표가 도와주어야 했다. 이름으로만 사장인 길원택은 필요없는 존재였다.

 

"길대표님!"

 

그렇게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회사의 매니저가 달려왔다.

 

"권선생님이 쓰러지셨습니다! 심장병이라는데요...어떻게 할까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했다. 길원택의 살짝 일그러진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비쳤다고...

 

"본래 심장이 약하신 분이니까...그리고 병훈씨. 우리 지금 회의하고 있는 거 안 보이나? 참 마음 아프고 서글픈 일이지만 일 끝나고 나서 이야기해도 되잖아. 권선생님은 우리 일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분이니까 말이야..."

 

권선생. 실제 길그룹의 실질적인 대표. 물론 한때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사장을 길대표에게 맡기긴 했지만 실제로 대표가 권선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아..."

 

길원택이 다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제 말 뜻이 어떤 건지 아시겠죠? 이 뮤지컬은 길그룹으로서도 돈을 엄청나게 투자한 작품이라 혼선이 생기면 안되거든요. 승아씨로 합시다."

 

"하지만! 그 앤 뮤지컬의 뮤자도 모른다고요!"

 

연출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호오, 윤연출. 연출 처음 합니까? 아이돌이 뮤지컬 하는 거야 한해 두해 있었던 일도 아니고. 정 의심스러우면 윤승아씨 데려다가 조윤아씨가 하다 막힌 부분을 해보라고 합시다. 어느 쪽이 더 잘 하나. 병훈씨! 승아 데려와."

 

"......"

 

사람들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너무 짜맞춘 것처럼 돌아갔다. 만약 길원택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그 모든 배후에 길원택이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길원택은 우아하고도 확신에 찬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압박했다.

 

"자아, 한번 시작해봅시다. 공연에는 항상 악운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럴 수록 더 잘 된다고 하더군요. 자아, 승아. 끊긴 부분부터 다시. 너도 조유나처럼 개구리소릴 내면 그 자리에서 강판이다. 잘 부르라고...하나~ 둘~ 셋~!"

 

승아가 생각보다 부드럽게 잘 이어부르자, 길원택은 처음으로 칭찬을 했다.

 

"보십쇼. 얼마나 잘 부릅니까! 이런게 바로 공연의 귀신이 도와준다고 하는 겁니다!!!이 공연은 볼 것도 없이 대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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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뮤지컬 선정이 끝났다. 조유나가 주역으로 확정되었고 길원택의 강력한 주장으로 승아는 앙상블 및 언더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뮤지컬만 해온 배우들의 차별대우와 피해의식이었다.
사실 아이돌이 특혜를 받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유나나 윤승아는 전문적인 뮤지컬 교육을 교육생시절부터 받아왔기 때문에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말해줘요~ 어떻게 이럴 수가..."

 

하지만 전문 배우에 비하면 무대끝까지 연기와 노래를 전달하는 것이 힘들다보니 연습 중 킥킥 소리가 나는 건 예사였다.
특히나 그 둘이 주역을 맡은 뮤지컬은  뮤지컬 한니발.

 

"로마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어이, 거기서 끊어. 개구리 소리같은 게 난다. 야. 조유나, 뭐 먹을 거 잘못 먹었어?  한번 더 딕션!"

 

"로마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조유나가 마지막 음을 뱉고 나서 마루바닥에 넘어졌다.

 

"야. 조유나! 다들 이리 와서 좀 봐봐. 유나야!"

 

"비켜봐요. 길선생! 길선생! 당신 전직 의사잖아. 유나 상태 좀 봐줘요."

 

유나의 상태를 살피던 길원택은 조용하게 결론을 내렸다.

 

"얼핏 봐서는 토사곽란인데, 음성만 들어봐서는 성대에도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일정이 촉박하니까 우리 그룹의 언더인 승아가 대신 해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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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장이 길원택을 부른 건 1시간 뒤였다.

 

"유선생이 입원했어. 급한 김에 유선생이 맡던 애들 좀 맡아줘. 요즘 주가 떨어진 승아보다 애네들이 낫거든. 메인으로 올리게 신경 좀 써 줘봐."

 

너때문에 윤승아 인기가 떨어졌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길원택과 윤승아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고는 해도 딱 한장면 뿐이다.
특히나 얼굴까지 다친 가수와의 연애는 깜짝 소재로는 쓸 수 있어도 아이돌을 제대로 키우는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특히나 조유나는 내가 미는 애야. 이번에 유선생이 지도를 잘 해서 대작 뮤지컬에 주인공으로 선정되다시피 했거든? 윤승아도 거기 참가했다지만 아무래도 밀리..."

 

"윤승아를 보내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사장인 내 선에서 결정된 건데."

 

"무슨 일이 있어도 승아가 그 뮤지컬에 나갈 겁니다."

 

"야! 길원택!"

 

"......"

 

"음악밖에 모르는 널 이만큼 키운 게 누군데,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

 

"윤승아를 그 뮤지컬에 보내건 말건 이미 결정된 거니까 억지 부리지 말고 유나나 잘 챙겨줘.
너도 프로니까 사감없이 레슨을 시킬 수 있는 거 아냐."

 

"알겠습니다."

 

길원택은 그렇게 말한 후 천천히 자기 레슨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중간에 조유나를 만났다.

 

"어머, 이번에 레슨 선생이 바뀌었다더니. 저, 뮤지컬 나가는 거 잘 부탁드려요."

 

"......"

 

길원택은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딱 한마디 했다.

 

"넌 못 나가."

 

"네?"

 

"못 나간다고."

 

그리고는 가타부타 더 할 말도 없다는 듯이 길원택은 나가버렸다.

 

"뭐야. 저 또라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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