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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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조 씻기기도, 희지의 세계도 제목이 왠지 끌리지 않았었는데,

빨간 책방 팟캐를 듣다 황인찬 시인의 낭독을 듣고 바로 주문했다.

(2부는 아직 듣지 않았다.)

뭐랄까. 공백이 주는 무게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낭독이어서 였다.

<희지의 세계> 제일 첫 시인 `멍하면 멍`을 읽다 배시시 웃어버렸다.

왠지 좋아하는 시인이 될 것 같은 강한 직감에.

시집 한권의 모든 시가 다 마음에 들기 힘들 뿐더러,

시집 한권에서 단 하나의 시라도 마음에 쏙 들어오는 일도 흔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시집 뒷부분에 실린 시평론은 잘 읽지 않았다.

뭐라는지도 도통 모르겠는 말을 너무 진지하고 길게 나열해 놓는 것 같아서.

그런데 장이지 시인의 작품 해설, 나에겐 오랫만에 읽을 만한 해설이 아닌가 싶었다.

시도 좋고 해설도 좋고 하니 덮으면서도 기분도 좋고.

2016. Jan.

지난밤엔 너 참 인간적이구나, 그런 말을 들었는데
그래도 널 사랑해, 그렇게 말해 주었다 - 새로운 경험 중

인간으로 있는 것이 자주 겸연쩍었다
무엇인가 자꾸 내 눈 밖으로 나오려 했는데 완전히 망가진 이 여름 속에서 그랬다 - 여름 연습 중

우리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서서히 고조되거나 혹은 가라앉으며

우리에게 약간의 침울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다 갑작스레 무엇인가의 파열음이 들리게 되고, 그러면 깜짝 놀라게 되고, 둘러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 이야기는 빈 공간을 구성하고 싶어 하고,
두 사람이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채로
이 이야기는 순진하게 시작된다
거실에서, 항상 거실에서 - 실내악이 죽는 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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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shire 2016-01-03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낭독을 듣고 샀더랬지요. 시는 많이 읽진 않지만...뭔가 독특했더랬습니다. 인상적이었어요.

hellas 2016-01-03 05:27   좋아요 0 | URL
말과 말 사이에 힘을 싣는 낭독이라 묵직하더라고요 :)
 

매번 사은품으로 오는 쪼가리? 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이것은. 아주 맘에 들며 책 구매도 하고 싶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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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1-02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맏물이야기는 이미 읽었지만...:)

보물선 2016-01-02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제게는 아직 이쪼가리가 안올까요...

hellas 2016-01-02 15:52   좋아요 2 | URL
괴수전 사면서 미미단편사은품이라길래 뭔가했더니 이거였어요:)

[그장소] 2016-01-02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핫~저도 이것들을 전부 다 구매했다는 거...
쪽대본 같아서 막 가지고 다녀도 될것같아서 말이죠.^^

hellas 2016-01-02 19:34   좋아요 2 | URL
쪽대본. ㅋㅋㅋ 딱어울리네요. 쪼가리보단. :)

[그장소] 2016-01-02 19:50   좋아요 1 | URL
사은품 였다는데 ...뒷목 잡고 마포김솨장님을 냅다
뒤에서 호식이냐~!하고 갈기며 ...어 !죄송합니다..
하고 프지만 만난 적도 없는 분이라 그럴 수도 없는게 심히 안타까워요~!
와우북행사때 500원에 판매를 했었거든요~
저도 미미월드는 에도시대물은 거의다 있어서
사실 그닥 안사도 그만 였는데 흠...어떤건 기억이
새로워 읽었나 ...싶은 것도 있길래 ..마구 마구 들고
다니며 읽자..가방에 넣고 다녀도 부담없겠다 싶어
샀더랬죠..뭐 ..그런데 일단 책장에 들어가면 이것들이 ...소중해진단 ...웃긴 말씀... .ㅠㅠ;;

[그장소] 2016-01-02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쪼가리 ㅡ아...이 귀여운 말이 있었구랴...!!!
어쩐지 막 가지고 다녀도 될듯해요..이제부턴...!!!

hellas 2016-01-02 19: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마포김사장님 한번 뵙고싶네요:)

[그장소] 2016-01-02 20:00   좋아요 0 | URL
저보다 먼저 뵙게 되면 꼭 뒤에서 이단 날라차기까지 아녀도 등짝 스매싱을 날려 줘 보시고 ...호식이냐...한번만 해...주세요!
개그를 학원이라도 다니고 싶어하는 분이라
대따 좋아할 지도 모릅니다..푸하하 ~!

hellas 2016-01-02 20:01   좋아요 1 | URL
못할거 같은데.... ㅋㅋㅋㅋㅋ 어쩌죠?;ㅂ;

[그장소] 2016-01-02 20:09   좋아요 0 | URL
아님 말구 ㅡ요!^^;;; ㅎㅎㅎ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햇수로 2년간 읽은 책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으로 알고 있었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야.

역자의 말대로 확실히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속도감은 없다.

헤일셤의 시간들이 추억될 때는, 흔히 사춘기의 시절에 겪을 법한 아이들간의 미묘한 갈등과 대립, 상처를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시간이 흘러 추억속의 등장인물이 사회에 발을 내딛고, 그들의 사회가 온전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긴장감과 뭔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씁쓸한 결말을 향해 이야기가 전개 될 때도 아주 확실한 한 가지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이것 저것 뒤섞여 불편한 감정들이 살아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도 온전히 이해된다.

섬세하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배려로 이루어진 듯 보이는 방식도 왠지 소중하게 다가온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읽어 보고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이어 한 해를 여는 책으로 매우 만족 스럽다.





2016. Jan.

어쨌든 그런 가르침 중 일부는 우리의 내면 어디엔가 침투한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런 경험에 직면했을 즈음 우리의 일부는 어느 정도 그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 시절부터 어떤 목소리가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거야.`하고 속삭여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저 바깥 세상에는 마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고 해를 끼치려 하지도 않지만 우리 같은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우리의 손이 자기들의 손에 스칠까 봐 겁에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자신을 그런 이들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일별하는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등줄기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걸어 지나가며 비쳐 보던 거울에 갑자기 뭔가 다른 것, 혼돈스럽고 기괴한 뭔가가 비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 p. 58

루시 선생님의 눈길은 이제 우리 다수를 향해 있었다. "나쁜 뜻에서 그런 말을 한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런 얘기가 줄곧 들려오고 그런 얘기를 계속하는 게 허용되고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 홈통에서 더 많은 빗물이 쏟아져 선생님의 어깨에 떨어졌지만, 선생님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가 너희한테 얘기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해 주마. 전에 말한 것처럼 문제는 너희가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거야. 너희는 사태가 어떻게 될 건지 듣긴 했지만, 아무도 진짜 분명하게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감히 말하건대 사태가 이런식으로 흘러가는 데 무척 만족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능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입을 다물었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생각 속에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줄곧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한동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우리 모두는 한시름 놓았다. - 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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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15 올해의 책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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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15 년의 책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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