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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 2016년 제4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경욱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6년 1월
평점 :
재밌게 읽었다.
팬심이 작용하는지 아무래도 황정은 작가의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이 나는 제일 좋았다.
단순하고 명료해 보이는 문장 안에 담긴 쓸쓸한 감정을 황정은 작가만큼 잘 쓰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매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의무적으로 사보는 책이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하면 황정은 작가가 구매의 이유였을 것이다.
책 내용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몇년 동안 사용했던 표지 컨셉은 왜 바꾸었을까. 좋았는데...
이번 표지 실망이다. 구려졌어. ㅡ.ㅡ
2016. Feb.
독자가 떠나간다고, 떠나갔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독자가 없다면 아무도 쓸 수 없게 되겠지요. 소설은 `혼잣말`이 아니니까요. 누군가에게 건네는 눈짓이며 손짓이니까요. 독자들의 사정이야 제 아둔한 머리로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끝까지 독자로 남아서 읽겠습니다. - 김경욱 작가 수상 소감 중
횡단보도로 마중 나온 엄마를 발견한 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달려왔다. 누가 안장을 가져갔는데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변명하듯 말하는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배 쪽으로 당겨 안았다. 아이의 머리가 뜨거웠다. 까만 정수리에 달라붙은 은행나무 수꽃을 털어냈다. 안장이 있던 자리엔 세로로 솟은 파피프만 남아 있었다.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가 곤혹스러운 세계 자체로 보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느 개새끼가 가져갔을까. 안장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이 아이에게서 통째로 들어낸 것, 멋대로 떼어내 자취 없이 감춰버린 것. 이제 시작이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지...... 이렇게 시작되어서 앞으로도 이 아이는 지독한 일들을 겪게 되겠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거듭 상처를 받아가며 차츰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지...... - p. 296, 황정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수정은 고양이 대신 화분을 샀다. 엄마 말처럼 나무 화분 두개를 두었다고 새 아파트가 더 이상 삭막하지 않게 보이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내에서 초록색을 보고 있으니 착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기는 했다. 액자와 화분을 구비했지만, 수정의 친구들을 부른 집들이에서는 커피 캡슐머신이 없느냐는 말을 들었다. 남편 직장 동료들 집들이 때는 여직원이 와인을 선물하는 바람에 와인잔이 필요해졌다. 무언가 계속 사들이는데도 무언가 계속 부족했다. 뭔가 계속 채우는데도 없는 것은 계속 존재했다. 완벽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새 아파트를 누군가에게 계속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랬다가는 수정이 미처 채워놓지 못한 것을 또 발견하게 될 것 같았다. 결핍을 확인하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초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p. 125. 김이설,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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