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별세하신 움베르토 에코 옹..많이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름을 빌려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기도 해서 인지 매우 친척할배같은 느낌을 혼자 간직해왔다.적을 만들다는 14개의 다양한 주제의 칼럼을 담고 있는 칼럼집.주제의 폭이 너무 다양해서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지만,(몇몇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꽤나 수고를 들여야 할 정도 였다. 너무 비관심사라서..)에코만의 훗!하고 입꼬리를 슬쩍 한쪽만 올린듯한 유머가 풍부하게 담겨있다.특히, 다양한 레퍼런스에는 언제나 두손두발을 들게 된다.글쓰기에 있어 인용이라는 스킬이 얼마나 잘 다루어지는지에 따라 글이 뿜어내는 우아함, 가치가 어떻게 살아나는지 에코의 글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더 이상 새로운 에코의 에세이를 볼 수 없다는 것이..어쩐지 한 시대의 종말같은 기분. 안그래도 노작가들의 타계소식이 (기분탓인지) 자주 들려오고...편히 쉬시길. RIP.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 체계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그것에 맞서는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을 거의 자연적인 현상의 측면에서 규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 적을 만들어 내서 악마로 만드는 과정이다. - p. 13, 적을 만들다 중소음은 은폐와 같다. 소음을 통한 검열의 이데올로기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침묵해야 할 것이 있으면 더 많이 떠들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둘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든가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등의 소식으로 가득한 텔레비전 뉴스는 이 기술을 모범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예전에 뒤로 밀려났던 사소한 기사들이 이제는 한 시간 뉴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얼론이 정작 입을 떼야 하는 다른 뉴스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소음의 미학은 말해야 하는 사건이 무색해질 정도로 더 큰 소리를 내서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 p. 185, 검열과 침묵 중2016. Mar.
느르릉. 요즘 부쩍 느릉한 녀석들. 나이탓인지 자꾸 신경쓰인다. 건강해랏!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