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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조금 많이 과장을 해보자면,
모든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싶은 책이다.
문장의 아름다움이 도를 넘는달까.
아껴읽고 싶어도 순식간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흡인력있는 이야기에
왜인지 캐릭터들의 이미지는 온통 안갯속 흐릿한 형체로만 남는 느낌이다.
그래서 불만이라는 것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이 책에 매료 된 것이다.
난 이야기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희미하게 기억하는 편이고
그래서 어렵고 긴 외국 이름같은건 사실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처럼 정, 김, 최, 염, A라고 지칭하면 잘 기억하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단순하면 또 단순한 대로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내 이름 기억체계(이런 것도 체계라 부를수 있다면) 탓에 더 모호한 이미지로 남게 되는지도 모를일이다.
곧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촉촉한 새벽을 가르며 읽어서,
친구의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는 시선들, 그 마음들이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봄 맞이 멜랑콜리란 이런 것인지...
화자 각각의 시선과 기억들은
시간에 균열이 생겨 전후좌우가 어지럽혀진 채로 재조립된 듯,
유사하지만 어긋나 있다.
그 서술이 엄청 매력적이면서, 예상하기 어려운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경계의 계절에 무척 어울리는 책이다.
2016. Mar.
머릿속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든다. 그 방에 불안이나 외로움 또는 우울 같은 감정들을 넣는다. 외출할 때는 그 방의 문을 단단히 잠근다. 외출이니까. 외출에는 적당한 햇빛과 소음, 목적지 같은 것만 있으면 되니까. - p. 9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떨어진다. 행인들이 우산을 펴 드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자세로, 다른 표정으로, 다른 각도로, 우산을 펴 든다. 풍경이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 p. 10
나는 내 삶이 어떤 낙관적인 기분 속에서 흘러가기를 희망한다. 내가 속해 있는 세계가 뽀족한 공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평행 우주의 다른 세계로 스며들고 싶었다. 그런 우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것 이라는 비관 때문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지푸라기나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하지만 문장 속에서도 나는 자주 비관에 멱살이 잡혀 질질 끌려다니곤 했다. 나에게 비관이라는 것은 어떤 정서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물리적인 힘의 이름에 가깝다. 내 멱살을 휘어잡고 패대기치는. - p. 17
누구였던가? 애도란 산 자들의 것이라고 말한 이가. 죽음이 뚫어놓은 구멍을 메우기 위한 산 자들의 의식이라고 말한 이가. 그렇다. 그것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수행하는 인간의 제도에 불과하다. 나는 애도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구멍 속으로 나 자신을 들이밀고 싶은 인간이다. 그 구멍이 나를 잡아먹을 때까지. 그 구멍이 나를 완전히 수긍할 때까지. -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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