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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라고 물음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다. 가 답이다.
딱 그런 분위기의 여행에세이.
고등학생 시절 처음 알게되서 지금까지 쭉 그 마음이 진해졌다 옅어졌다 하긴 했지만, 꾸준한 독자의 자리를 지킨 몇 안되는 작가라서 신간이 나오면 언제나 주저없이 구매한다.
특히나 여행 에세이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이번에도 역시 소리내서 빵터진 대목이 있었고, 그 덕에 내 고양이 중 한마리인 루키와도 하루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하루키의 이름을 따서 루키라고 이름붙인 아이다)
일곱개 나라의 여러 도시들을 대체적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돌아본 여행기라 덩달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 여행이라 그런건지 중간중간 작가의 사진이 꽤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것도 재미 요소라면 요소.
새 소설도 얼른 또 나왔으면 좋겠고, 여기저기 슬슬 다니면서 쓴 여행기도 또 나왔으면 좋겠는데...
양립이 어려운 이 스케쥴을 영차영차 부지런히(달리기 매니아답게) 소화해서 신간을 내주었으면 한다. ㅋㅋ:)
어쨌든 강에 도착해서 롱펠로 다리 언저리의 산책길을 달리기 시작하면, 나는 낯익은 장소로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 든다. 이 `편안한 느낌`을 좀더 긴 문장으로, 한자를 곁들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 여기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 근본적으로는 별 의미도 없이 - 그러나 사실은 좋든 싫든 단편적인 에고를 지니고- 살아가려 하고 또한 살아가는 비합리적이고 미소하며 잡다한 수많은 존재 중 하나구나˝라는 실감이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일일이 말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아주 간단히 말해, 그냥 `편안한 기분`이다. - 13, 보스턴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인구당 레스토랑 수가 가장 많은 도시예요˝라고 이곳 사람은 말한다. ˝또 인구당 독서량이 가장 많고,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할 순 없지만,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가장 적은 도시죠. 하하하.˝
어떤가? 당신은 이 도시가 마음에 들 것 같은가? (큰 소리로 말할 순 없을지 몰라도) 나는 마음에 쏙 들었다. - 74, 포틀랜드
그건 그렇고, 세계 어디를 가나 출판사 사람을 만나서 ˝요즘 경기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하아, 장사가 너무 잘돼서 큰일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어본 예가 없다. 보통 다들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게 말이죠, 책이 잘 안 팔려서......˝하는 푸념을 쏟아낼 뿐이다. 핀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력 발전이나 지구온난화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닐지언정 해가 갈수록 책이 안 팔리는 현상 또한 세계적인 고민거리인 것 같다. 흠, 우리의 지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 147, 핀란드
그 샤먼 겸 가믈란 연주자가 호텔을 떠나는 나의 손목에, 마치 노래를 부르듯이 긴 주문을 읊으며, 가느다란 흰색 천을 팔찌처럼 감아주었다. (중략) 샤먼은 마지막으로 내게 ˝이것은 무사한 여행을 기원하는 징표이니 사흘 동안은 풀면 안 되네˝라고 말했다. 풀려고 해도 풀 수 없어서 (어떻게 묶은 걸까?) 사흘 후 도쿄에서 가위로 자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는 줄곧 도망나온 동물처럼 손목에 끈을 묶고 도쿄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끈을 볼 때마다 라오스를 떠올렸다. - 173, 라오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 182, 라오스
2016.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