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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87호 - 2016.여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계간지는 꼼꼼하게 읽으려고 할수록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는 사실을 너무 모른척 해왔다.
그래서 이번엔 오자마자 취향에 맞게 페이지를 넘나들며 읽었다.
이게 훨씬 낫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나보다.
윤이형의 멋진 이력서를 읽을 수 있었고,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이마와 모래라는 멋진 단편을 읽을 수 있었고, 은수미 의원의 짧은 기고문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걸로 됐다. 고 생각한다.
다른 글들도 슬렁슬렁하는 기분으로 읽었지만, 꼭 내 머릿속에 꾹꾹 눌러담지 않아도 된다고 혼자 정해버린다.
그런 계절이다.
고양이가 나를 좋아한다. 내 고양이가 나를 좋아한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레일라는 반드시 책상 위로 올라오는데, 나에게 꼭 붙어 식빵을 굽기도 하고 내 팔을 베고 자기도 한다.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한다(물론 레일라는 보다가 도중에 자지만). 그리고 깨어 있을 때는 내 얼굴을 한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며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 라고 눈으로 말한다. 분명히 그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알아. 통조림도 좋고 낚싯대로 장난치는 것도 근사하지만 난 이렇게 당신의 팔에 발을 얹고 있는 게 정말 좋아. 당신이 나처럼 생기지 않은 것이 조금 이상하고 당신의 행동들이 전부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당신이랑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여기서 자게 해줘. 어디 가지 말고 같이 있어줘. 난 오직 당신에게만 이렇게 할 거야.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하지 않아. 그건 내 명예와 관계되는 문제야.`
몇 달 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에는 분명히 이 말들을 들을 수 있다. 저 `좋아해`라는 말은 직접 들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건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다. 어떤 칭찬도, 어떤 근사한 영화나 멋진 문장이 주는 감동도, 저 말을 직접 듣는 행운보다는 못하다. - 윤이형의 나의 이력서, 천 번을 반성하면 어른이 될 줄 알았지 중.
`오늘 처음 알게 된 처지에 자꾸 말 걸어서 죄송합니다만, 열심히 안 쓰셔도, 잘 안 쓰셔도 돼요. 그냥 쓰시기만 하세요. 그래도 읽고, 듣고, 할게요, 독자로서.˝ 어떤 분이 이런 쪽지를 주셨다. 모르는 사람인데, 이 쪽지를 받고 한 십 분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펑펑 울었다. - 윤이형의 나의 이력서, 천 번을 반성하면 어른이 될 줄 알았지 중.
2016.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