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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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 보니 어느 새 앞으로 뒤로 흘러가는 이야기.

구멍이 많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매우 촘촘한 이야기.

구전되는 설화같은 분위기.

2017.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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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박병규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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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이 가득했던 시인 자신이 회고한 삶.

워낙에 삶의 이력이 남달랐던 사람이라 수많은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내가 말을 보탤 사람이 아니라 책의 여러 부분을 남긴다.

긴 여행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지금, 그동안의 긴 여행이 헛고생이었을까? 나는 다시 한 번 새로 발견한 땅 위에 홀로 남게 되었다. 탄생의 순간처럼, 초기 시의 원천이었던 형이상학적 공포에 경악했을 때처럼, 내 작품에서 창조한 새로운 황혼을 맞이했을 때처럼 지금 나는 또다시 고뇌와 고독에 휩싸여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로 돌아갈 것이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어디를 향해 침묵하며 또 어디를 향해 소리칠 것인가?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을 제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직 내 손으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공허뿐.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것,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강렬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 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을 뿐이다. 인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도시를 바라보았으니 텅 빈 도시만 눈에 들어왔다. 비참한 모습의 공장을 둘러보았으나 지붕 밑에서, 길거리에서, 정류장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이다.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 대신에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부러진 길 한가운데서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그러자 세상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영원해졌다. 이제 우리는 대지 위에 당당히 발을 딛고 서 있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한정 소유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 어떤 시비도 찾지 않는다. 우리들이 바로 신비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끝없이 광활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바다 속과 지하 세계의 일부가 되고, 놀라운 식물 세계로 들어가고, 대낮에도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땅속 깊은 것에 숨겨진 광물을 탐색하고, 가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고 있다. 대기가 어두워진다. 가끔씩 인광과 공포로 충전된 번갯불이 환하게 빛난다. 명확한 언어, 진부안 언어와 전혀 무관한 새로은 구조물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낸다. 내 시에서 가장 신비한 재료로 만든 새로운 대륙이 솟아나고 있다. 나는 이 대륙에 정착하고, 이 대륙에 이름을 붙이고, 신비한 해안선을 만져 보고, 파도를 잠재우고, 동물들이 사는 땅을 둘러보고, 지형을 측량하는 데 어둡고 고독하고 아득한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228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평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 파블로 네루다

칠레의 숲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땅에서, 그 흙에서, 그 침묵에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다. - 16

난생처음 바다 앞에 섰을 때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바다는 커다란 일케 언덕과 마울레 언덕 사이에서 한참 격노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파도가 수미터 상공으로 치솟았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심장이 고동치고 우주가 박동하는 듯 울부짖고 있었다. - 30

아무튼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내 시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더니만 이제는 나를 공격하고, 내 눈을 빼먹으려고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분파주의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내 침묵을 받을 만한 가치는 있다. 나는 적들과 함께 다니면서 내 자신이 오염될까 두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민중의 적만이 내 적이기 때문이다. - 72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 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 83

나는 로르카 작품의 메타포가 가지는 힘에 매혹되었으며 그가 쓴 모든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로르카 또한 종종 내 최신작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반쯤 읽어 내려가면 ˝그만! 그만해! 이러다간 자네 영향을 받겠어.˝하고 소리를 질렀다. - 187

이 같은 무리들이 마드리드 밤거리에서 준동하고 있을 때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만이 세력을 조직하고 군대를 창설하여 이탈리아인들, 독일인들, 무어인들, 팔랑헤 당원들과 대적하였다. 이와 동시에 공산주의자들은 반파시즘 투쟁과 저항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힘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 209

창작에 전력투구하기로 다짐했다. 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덕분에 나는 훨씬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이제 우울한 시는 쓸 수 없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우수에 찬 주관주의나 <지상의 거처>에 담긴 고통스러운 애상은 막을 내렸다. 두 시집을 형성하는 광맥은 지하 암반에서 캐낸 것이 아니라 온갖 책갈피 속에서 찾은 것처럼 보였다.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의 노래>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 214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거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1945년 7월 15일, 나는 칠레 공산당에 가입했다. - 263

전쟁과 혁명 그리고 대규모 사회 변동을 경험한 우리 시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에 시를 경작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보통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 또는 대중 집회의 군중 속에서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이 시대와 직면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시집을 펴냈을 때만 해도 나중에 광장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강의실에서, 극장에서 그리고 정원에서 시를 낭송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칠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동포들에게 내 시를 뿌렸다. - 375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386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시한 해법도 없다. 합리와 비합리라는 양극단은 시 내부에서 부단히 다투고 있으며 한번은 이쪽이 승리하고 다음 번에는 저쪽이 승리한다. 하지만 시 자체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 - 394

진정 이 세계는 전쟁을 쓸어 낼 수 없고 피를 씻어 낼 수 없고 증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실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상의 거울에 폭력이 비치고 있으나 누가 봐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나, 피와 부서진 유리를 딛고 일어나 서로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 406

2017.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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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 시인선 35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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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얼마나 고되게 왔는가.

나는 나에게 너는 너에게
서로서로 차마 무슨 일을 했던가
시절 없이
점점 물렁물렁해져
오늘은 더 두서가 없다
더 좋은 내일이 있다는 말은 못하겠다 - 눈물에 대하여 중.

2017.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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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티룸 - 런던 생활자가 안내하는 '나만의 티룸' 63곳
김소윤 지음 / 이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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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던 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미스커뮤니케이션의 훌륭한 예시로 남겠다.

2017.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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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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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시를 품게되는 변화가 나비처럼 번졌다.
시라는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너를 향해 던지는 내 작은 마음 한 조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생각한다.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시인 네루다를 통해 몰락으로 끝나버리는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치가이고 시인인 그가 그렸던 이상들이 어쨌든 수많은 죽음으로 결론 지어지지만 그의 죽음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여기저기 던져놓은 불씨들이 계속해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에 대해.

우연히 우편 배달부가 되고, 필연적으로 시인이 되고, 헌신적인 칠레판 김벌레씨가 되고, 생활인으로서의 혁명가가 되는 마리오가 그랬고, 기꺼이 대부가 되어준 마리오와 베아트리스의 아이가 그럴 것이고, 마지막 사랑으로 옆에 남았던 마틸데가 그랬다. 멋들어진 수상소감 연설을 모여 들으며 자기 일인양 기뻐하던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각자의 시를 가지고 살아가고 살아갔을 것이다.

아픈 결말이고 슬프지만 그래도 허무하지만은 않은 그런 역사. 생각해보니 이들 하나하나가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어느날 불쑥 자신의 일상에 침입한 촌구석 우체부 청년에게 ‘아 이것 참 난감한 녀석이군...‘의 시선을 던지며 부탁을 들어줄 듯 안들어줄 듯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노년의 시인.
평생 단 한명의 스승, 누구보다도 뜨겁게 그 스승이자 시인인 네루다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온 생으로 보여주는 청년 마리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자에 대한 부러움, 내 인생을 송두리째 공유하는 동반자를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 내내 그런 부러움이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어떤 몰락이 닥쳐 올지 뻔히 아는 그런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 책 넘기는 손이 느려졌다. 느리고 뜨거운 이야기다.

2017.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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