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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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마음이 습할 때는 이 책을 읽지 않는 편이 좋다.

착오와 실수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는 사람들, 슬쩍 다가온 불행을 그저 받아들이는 일 외엔 할 수 있는게 없는 불운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헛헛해져가는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역시 술 뿐이라서.

그런 변명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나에게 ‘이보쇼‘ 나 ‘어이 거기‘가 아닌 ‘안녕 주정뱅이‘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

‘산다는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가 첫 문장인 이 책이 그냥 막 마음을 헤집어 놓아서.

결핍이 축적되어 결국 죽음으로 완성되는 두 개의 인생이 묘한 여운을 주어서.

분명 마이너스를 계속 누르는 계산을 했는데 그저 0일 뿐인 결과물이라는게 이 책에서 그려내는 인생인 것 같아서.

급속도로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는 처량한 대사가 남의 얘기 같지 않아서.

천박하게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무력한 다짐이 언젠가 나의 다짐 같아서.

그냥이 어딨냐고 말하는 나와 그래도 그냥이라고 말하는 나를 목격할 수 있어서.

견딜 수 없어서, 이해할 순 없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서.

2017.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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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5-30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ellas 님이 별 다섯개 주신 건 저는 처음 본 것 같아요.
외롭고 마음이 습할 땐 읽지 않는게 좋다고 하셨지만 ...

hellas 2017-05-30 13:18   좋아요 0 | URL
아닌데 다섯개 몇번 있었어요 ㅋㅋ ㅡㅡa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 / 열화당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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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필요한 때라서.

부담없는 볼륨이라서.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은 소멸해 버린 세대에 속한 느낌, 숱한 시간과 밤이 지혜롭게 갈고 닦아 부식시킨 후 부드럽고도 견고한 영원성의 기운을 담아 우리 앞에 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마에서 아주 뜨거운 열로 구워낸 후에도 잔여물이 남듯이, 그의 조각상들은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진 후에도 그 자리에 남을 것이다. - 30

조각상들은 단지, 마치 저 끝으로 밀려난 수평선의 밑바닥 아주 먼 곳에 있었던 것 처럼 당신들에게 다가올 뿐 아니라, 당신들이 어느 자리에 있든 간에, 스스로의 위치를 조정해 당신들이 저 아래 낮은 쪽에 있도록 한다. 조각상들은 수평선이 밀려난 아주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 있고, 당신들은 둔덕의 발치에 있는 것이다. 조각상들은 당신들을 만나러 서둘러 다가오고 당신들을 앞질러 가버린다. - 45

자코메티는 동시대 사람들이나 다가올 미래의 세대를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죽은 자들의 넋을 사로잡을 조각상을 만들고 있다. - 58

2017.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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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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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의 <호수 - 다른 사람>의 긴장감이 너무 좋아서 구입한 책.

물론 좋은 독서였으나, 불안을 책 한권 안에 빼곡하게 수집해 놓으니 기빨리는게 보통 이상이더라는.

호러같은 일상. 반복되는 불안, 강박, 그게 일상이라서 지쳐 버렸다.

남들과 똑같이 살았지만, 나 자신은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것 같았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면 자신이 없어졌고, 지금껏 이룬 모든 것들이 형편없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늘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실망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 빈약하고 허름한 트랙에서조차 떨어져나갈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불안은 순식간에 번지는 곰팡이와 같아서 쉽게 눈에 띄었고, 그러면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느끼는 것과 정말로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건, 굉장한 차이였으니까. - 괜찮은 사람 중.

그를 아무리 지켜봉도 답을 구할 수 없었듯, 이번에도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것이 늘 나의 최선이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만으로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 괜찮은 사람 중.

2017.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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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도 유희로 즐겼으니, 나도 유희로 소비합니다 랄까.

세계의 서점을 유랑하는 무리들이 있다.

견학, 시찰 뭐 그런게 아니라 유랑.

큰 목적이라기 보다는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보기에도 부럽고 좋다.

꼭 거창한 당위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유희.

물론 100% 순수한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결과물로 이런 한정판 레어템 책이 나왔으니.

개봉열독 프로젝트는 이미 세 출판사가 작당?을 하기전에 외국의 사례로 들어본적이 있었는데.

막상 이런 이벤트라니 즐겨 찾는 독자도 즐겁다. 종종 있기를.:)

궁금증 하나. 정말 아무도 스포일링을 하지 않았을까? (난 안했음>_<)

2017.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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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되돌릴 수 없는 어떤 난관을 지나쳐온 보통 사람.

매 순간 폭도처럼 머리 속을 점령하는 과거의 환영.

즐겁냐고 묻는다면 유쾌한 일은 결코 아니라고 대답할 법한 생의 기억.

구지 친절을 베풀 온당한 이유가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내리는 잔인한 선고.

극복하거나 외면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이야기 속 그들은 아무래도 끝내 극복할 수는 없을 추락.

미국의 목가. 그 환상. 아름답게 기억되는 시절의 끝에 절망과 광기.

너는 어디에서 온것일까, 나에게서는 아닐텐데라는 착각.

어디에서건 불어올 수 있는 바람 같은 불안의 씨앗.

거대한 공허와 압도적인 허기, 그런것이 자라나는 독서였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다시 읽어봐야 할까 그건 모르겠지만, 휴먼스테인은 곧 읽게 될 것 같다.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내가 아는 한, 매우 단순하고 매우 평범했으며, 따라서 딱 미국인의 기질에 맞게 훌륭했다. - 56

어떤 사람들은 평생 아주 착했다는 이유로 형이 단순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시모어는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 단순해 보인다고 해서 절대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야. 그래도 형한테 자신에 대한 의문이 다가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 만일 자신에 대한 의문이 인생에서 너무 일찍 찾아오는 것보다 나쁜게 있다면 그건 그게 너무 늦게 찾아오는 거야. 형의 인생은 폭탄에 의해 박살나버렸어. 그 폭발의 진짜 피해자는 시모어야. - 111

이건 실크 작업이라고 부르는데, 이 자체로도 이야기가 길죠. 하지만 먼저 이야기할 건 이겁니다......이건 피케 기계라고 부르죠. 피케라고 부르는 아주 가는 실을 박는 건데, 다른 바느질보다 훨씬 솜씨가 좋아야 해요...... 이건 관택 기계라고 부르고 이건 스트레처라고 부르고 당신은 아가씨라고 부르고 나는아빠라고 부르고 이건 살아 있다고 부르고 저건 죽어간다고 부르고 이건 광기라고 부르고 이건 애도라고 부르고 이건 지옥, 순수한 지옥이라고 부르고, 여기서 견딜 수 있으려면 여기에 강하게 묶여 있어야 하고. 이것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계속 나아가려고 노력한다고 부르고, 이것은 대가를 완전히 치르지만 도대체 뭐에 치르는 것이냐고 부르고 이것은 죽고 싶고 그 아이를 찾고 싶고 그 아이를 죽이고 싶고 지금 어디 있는지 몰라도 그 아이가 겪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 아이를 구하고 싶다고 부르고, 이런 고삐 풀린 분출, 이것은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라고 부르지만 효과가 없다. 나는 반은 미쳤다. 그 폭탄의 박살내는 힘은 너무 강력하다...... - 202

콘론 부인은 말했다.
레보브 씨 부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비극의 희생자예요.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비록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족으로서 살아남을 거라는 점이에요.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으로 살아남을 거예요. 우리는 기억을 온전히 유지한 채 살아남을 거고, 우리 기억이 우리를 지탱해 줄 거예요. 두 분이 이런 아무런 의미없는 일을 이해하기 쉽지 않듯이, 우리도 쉽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는 프레드가 여기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가족이예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을 거예요.
그녀는 분명하게 또 힘을 주어 스위드의 가족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스위드는 그뒤로 몇 주 동안, 그녀의 친절, 그녀의 동정심이 처음에 믿고 싶었던 것만큼 그렇게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는 그녀를 두 번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 325

딸이 일하는 장소를 보니 아이가 미국 역사의 경로를 바꾸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건물의 녹슨 비상계단은 누가 디디면 저절로 무너져내릴 것처럼 보였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도로로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능은 화재가 날 경우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쓸모없이 매달려 삶에 내재하는 크나큰 외로움을 증언하는 것으로 바뀐 것 같았다. 스위드가 보기에 다른 의미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외로움을 증언하는 것이 그 건물의 가장 중요한 의미였다. 그래, 우리는 외롭다. 몹시 외롭다. 그리고 늘 우리 앞에는, 지금보다 더 짙은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처리할 방법은 없다. 외로움을 뜻밖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막상 경험할 때는 깜짝깜짝 놀라게 되지만. 자신을 뒤집어보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는 안이 안에 있어 외로운 대신 안이 밖으로 나온 채로 외롭게 되는 것일 뿐이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메리, 네 어리석은 아버지보다도 더 어리석은 메리, 심지어 건물을 폭파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건물이 있어도 외롭고, 건물이 없어도 외롭단다. 외로움에 대해서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어. 역사상 어떤 폭파 운동도 거기에는 흠 하나 내지 못했지. 인간이 만든 폭약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도 그것을 건드리지는 못한단다. 내 멍청한 아이야, 공산주의에 경외감을 품지 말고, 보통의, 일상적인 외로움에 경외감을 품어라. 노동절이 오면 밖으로 나가 네 친구들과 함께 외로움의 더 큰 영광을 향해, 슈퍼파워 가운데서도 슈퍼파워를 향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힘을 향해 행진해라. 거기에 돈을 놓고, 내기를 하고, 그것을 숭배해라. 말을 더듬는 아이, 분노에 찬 아이, 멍청한 아이야. 카를 마르크스에게, 호찌민과 마오쩌둥에게 복종하여 고개를 숙이지 말고, 위대한 신 외로움에게 고개를 숙여라! - 338

광기와 도발. 인식 가능한 것은 없다. 그럴듯한 것도 없다. 앞뒤가 맞는 맥락도 없다. 그는 이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고난을 수용하는 능력조차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멋진 생각이 그를 사로잡는다. 고난을 수용하는 능력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 210

그래, 그들의 요새는 금이 갔다. 여기 멀리 떨어진, 안전한 올드림록에서도. 이렇게 한번 벌어진 이상, 다시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맞서고 있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 288

2017.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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