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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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시대의 야만, 시대의 소음에 대처하는 예술가의 방법이라면.

그저 참고, 두려워 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시대의 야만. 물리칠수 없는 거대한 소음이었을까.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정치적 각도에서 바라본 픽션.

지나간 과거의 타국의 정치에 큰 관심이 없어서 인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이전 시대에도 그랬듯 다 대의명분이 있었다. 그는 그따위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남들이 그런 것을 놓고 떠들든 말든,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루하루를 마치는 것이었다. 그는 생존의 기술자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기술자들. - 12

최근 들어 그가 자기 안에서 젊음의 파괴할 수 없는 불멸성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그뿐만 아니라 - 젊음의 타락하지 않는 결백성도. 그리고 그 너머에서, 그 밑에서, 그가 지닌 어떤 재능이든, 그가 만든 어떤 음악이든 그것들의 올바름과 진실함에 대한 확신도. 그 모든 것이 약해지는 게 아니었다. 이제 그냥 전혀 무관해졌다. - 75

그는 앞으로는 당의 지시를 따라 인민을 위한 듣기 좋은 음악을 작곡하겠다고 약속했다. 장황한 공식 발표문을 읽어 내려가던 중에, 그는 읽다가 말고 고개를 들어 홀을 둘러보고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진심으로 작곡을 한다면, 제가 참된 감정을 느낀다면, 제 음악이 인민에 ‘반하는‘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며, 뭐라 해도 저 자신은...... 조금이나마 어떤 식으로는...... 인민의 ...... 대표라고 생각합니다.˝ - 115

일프와 페트로프는 이렇게 썼다. ˝소비에트 권력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이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 - 131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 135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우리 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 181

2017.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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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끝줄 소년 지만지 희곡선집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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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앙되고 고조되고 활활 타오르다 재가 되어 버렸다.

연극 얘길 먼저 듣고 시간이 안돼 보지는 못했는데

새로 생긴 도서관에 들렀다가 대출해서 읽었다.

무대 위에 올라간 이야기가 상상되었다.

그리고 왠지 클라우디오 말고 헤르만에 이입이 되는것은 그저 세월 탓일까 생각했다.

지나치게 많이 관망해온 사람들, 지금 관망하는 방식을 배우도 있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맨 끝줄을 택한 사람들 이야기 - 작가의 말 중.

만약 네가 의도한 게 사람들이 등장인물을 비웃는 거, 그게 다라면 그건 목표가 너무 낮은 거야. 작가가 해야 할 첫 번째 질문은 나는 누구를 위해 쓰는가야. 넌 누구를 위해 쓰니? 어떤 사람에게서 최악의 모습을 꺼내 보여주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웃게 만드는 건 아주 쉽지. 한 사람을 정해 놓고 그 사람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면을 보는 건 아주 쉬워. 어려운 건 그 사람을 가까이서, 아무런 편견없이, 미리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거야. 그 사람의 논리, 상처, 작은 소망들, 절망을 찾아내는 거지. 인간의 고통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거야. 그것만이 진정한 예술가의 경지야. - 26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
가르치는 거.
뭘 가르친다는 거야?
문학. 그리고 문학을 통해서, 다른 것들도.
문학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 -27

너를 보니까 헤르만이 떠오른다. 너는 책 읽고 글 쓰는걸 좋아하지. 너도 엄청 불행해질 거야. - 110

2017.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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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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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이 출간되면 왠지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얼른 구매하게 된다.

에이미와 이저벨, 올리브 키터리지 후 세번째 출간 작품인데.

조금 결이 다르달까, 좀 더 내면으로 침잠 한 것 같달까.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소환하는 조각들이 펼쳐지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어두운 색채여서, 내 감정의 레벨과 맞추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감정의 눈높이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면, 조금은 어수선한 독서가 될 수도 있다.

아름다운 문장과 사색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덧 다 읽게 된다. 볼륨이 얇아 아쉬웠다.


나는 나 자신을 진지하게 여길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지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이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 혼자 남몰래 -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 34

나는 애써 울음을 참느라 한동안 간호사실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치통이 옆에서 나를 감싸안아주었고, 그렇게 해준 그녀를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 가끔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블랑시 뒤부아의 이런 대사를 썼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 98

불쌍한 인간.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작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불쌍한 인간 - 그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우린 모두 불쌍한 인간이다. - 104

˝이쪽이 루시.˝ 그녀가 거의 농담처럼 덧붙였다. ˝루시는 출신이랄 게 없어.˝ 나는 그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지만, 정말로 지금도 그런 기분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출신이 없지는 않다고. - 174

아무도 너희를 돌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지 않는다. 해서도 안 된다.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를 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남편만 떠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이들을 떠난 것이기도 했고, 집을 떠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내 것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움직였다. - 211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 216

2017.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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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9-25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읽으셨군요. 빠르십니다. 저는 아직 사지도 못했는데... Orz

hellas 2017-09-25 17:09   좋아요 0 | URL
아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라 보이자마자 샀어요:) 그나저나 전 어제 동네에서 문연지 1년여가 되었다는데 전혀 모르고 있던 독립서점을 하나 발견해서 너무 기분이 좋은거 있죠. 우리동네에도 그런 서점이 있으리라곤 1도 상상을 못했어서...ㅋㅋㅋㅋ 다락방님께 자랑하면 왠지 이해해 주실거 같아서 자랑해요!!ㅋㅋㅋ

다락방 2017-09-25 17:23   좋아요 0 | URL
아니, 이건 갑자기 무슨 자랑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틈새를 이용한 깨알자랑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희 동네엔 그런 서점이 없는데... 지금 이 댓글 읽는 순간, 아, 회사 그만두고 내가 그런 서점을 차릴까...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7-09-25 17:43   좋아요 0 | URL
매우 작고 조용한 서점응 매우 작고 조용해보이는 여자분이 운영하고 계셨죠. 낭독회 영상회도 하는데 아마 다섯명이면 꽉차는 가게예요:) 다락방님 서점주인 어울려요;)
 
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 - 김치녀에서 맘충까지 일상이 돼버린 여성 차별과 혐오를 고발한다
서민 지음 / 다시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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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뭘 어쨌다고

당연한 이야기 퍼레이드라 첨언할게 없다.

페미니즘 도서의 붐은 반갑지만, 동어반복에 조금 지치기도 한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발언이라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

한국남자(줄이면 큰일남)의 상징을 징징거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어쩌면 무의식의 자기보호일 수 있겠다. 비록 비아냥의 발언이라도.

더 나쁜게 있다고 나쁜 것이 용인 될 수 없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2017.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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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9-21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이 저랑 같아요, 헬님.

hellas 2017-09-21 21:41   좋아요 0 | URL
좀 뭔가 색다르고 뭔가 배울수 있는 페미니즘 서적이 필요해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신간을 봐도 크게 동요되지 않고 그러네요. 그동안 전무하다싶게 책이 없다 요즘엔 좀 출간되나 싶었으나 양에 비해 질적으로 목마르네요 ㅡㅡ
 
나는 별 아저씨 문학과지성 시인선 3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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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말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섬>에서 말하지만.

그 섬에, 사람들 사이에 구지 가야 하나 싶다.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 밖에 없다.

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고...

그래서 왠지 쓸쓸해졌다.

2017.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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