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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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과 한 해의 시작이라는 건, 그저 인간이 정해 놓은 보이지 않는 기준선 같은건데.

사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겨울이고 눈이 오고 춥고 그런 날 중 하나일 뿐인데.

괜히 뭔가 한번더 생각하게 되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는 게 조금은 우스웠다.

그럼에도 올해 마지막으로 읽게 되는 책일까 싶어, 아껴두었던 한강의 책 중 하나를 꺼냈는데, 마지막 날 아침에 벌써 다 읽어 버렸어.

그럼 또 의미를 부여할 만한 올해의 마지막 책(이거나 내년의 첫 책)이 될만한 책을 골라야 한다.

희랍어 시간은 조용하다. 비록 그 안에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내면은 들끓고 있을지라도.

정적이 주인공인 단편 영화 같다는 생각을 조금 했다.

그리고 한강은 언제나 좋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 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는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 14.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 49.

2017.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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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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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자주 읽지는 않는데, 올 한해 추천받은 작품이 많았다.

올 해 마지막으로 읽게 될 책일 듯 싶어 <마지막으로 읽을 만한 멋진 책>으로 골랐는데, 재미와 속도감이 있어 의도보다 빨리 읽어버렸다.

1915년 생의 여성작가가 1960년대에 남성의 필명으로 쓴 이야기들인데, 너무나도 세련되고 음울한 색채감이 뛰어났다.

왜 페미니즘 sf라고 하는지는 읽어보면 금방 알게 되는데, 그 묘사와 서사들이 조금은 가차없어서 섬뜩한 느낌을 받게도 한다.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 <돼지 제국>, <스노우>,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 이 좋았다.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여자, 행복하고 자유로워보였어, 게다가 그 여자 무척 재미있었어.
여보, 그게 그 여자 병이야. - 120,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 중.

2017.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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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2-3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헬라스 님 내년에도 두 고양이와 함께 힘차게 달려봅시다... 건투를 빕니다아.

hellas 2017-12-30 17:33   좋아요 0 | URL
:):) 즐거운 신년되시길. 힘차게 달릴께요. 고양이는 셋입니다>_< ㅎㅎ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
셸리 킹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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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이라는 마법의 공간, 그곳의 이야기.

나는 대형서점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작은 서점이 조금 더 편안한건 어쩔 수가 없다.

요즘의 대형서점 인테리어는 좀 나아졌는데, 예전의 서점은 오래 머물면 숨을 쉬기가 어려운 증상?이 있었기 때문인데, 시선보다 높은 서가와 획일적인 공간 분리 형식이 약간의 폐소 공포를 유발했던게 아닐까 싶다. 비슷하게는 도서관 서가에서도 오래 있는게 힘들었으니까.

최근 독립서점, 작은 책방, 동네 서점들이 많이 늘었는데, 그것도 비교적 서울 중심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사는 동네에 그런 서점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도 있지만, 책을 팔아 먹고 산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양가 감정때문에 슬퍼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헌책방에서 생긴 일이다. 제목에서 명백하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구매했을텐데.

사실 재미는 별로다. 캐릭터에 주어진 성격들은 매력적인데 정작 화자인 매기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이 올 해의 마지막 책이 아니길 바라며 얼른 다른 책을 골랐다.

우리는 점점 더 타협하고 안주해 가며 자신이 현실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죠.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겁쟁이가 되어 가고 있을 뿐이에요. - 83

이 세상에는 이런 때를 대비한 카드들이 나와 있어서 우리가 직접 쓸 필요가 없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이 있고 두 사람이 지금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받을 단체나 모임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소용 없을 거야. 이건 슬픔이니까. 아프고 아프다 보면 언젠가는 아주 조금 덜 아픈 날이 올 거야. 그 날을 생각해. - 303

2017.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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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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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과 떼어놓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작가의 선정주의 소설이라고 하니 궁금했다.

스릴러라고는 하지만, 요즘 읽을 수 있는 스릴러와는 조금 다르다.

사회가 규정해 놓은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악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은, 어쩌면 희극인것 같다.

가면 뒤에서에 등장하는 진 뮤어는 코번트리가의 남자 셋과 그 이전에 몇명일지 모를 남성들을 유린?하는 캐릭터인데, 엄청난 부귀영화나 운명적인 복수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평온하고 누구에게도 위협받지 않는 사회적 위치를 원할 뿐 아닌가.

대체 진 뮤어가 어떻게 모두를 조정하는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고, 과연 이 여자의 내면이 어떨까 했는데, 사실 목표를 향해 질주를 하느라 그 진정한 속내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물건처럼 거래되지 않고, 사랑하고 싶을 때 결혼을 하겠다는 어둠속의 속삭임의 시빌 역시 뭔가 대단한 성취를 바라지 않지만, 주변의 남성들에 의해 삶이 고단해진다. 결말이 눈에 그리듯 예상되었다면 그것은 나의 상상력의 발로가 아닌 여성들이 겪어온 지난한 역사이기 때문일 것.

조금 뻔한 이야기이긴 해도, 이 이야기들이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절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평가될 만 하다고 생각한다.

2017.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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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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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실린 단편에 만족했던 마음이 끝까지 가진 못했다.

<날개> <노란육교>는 무척 좋았다.

허풍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밤새 들려주는 이야기, 그야말로 한밤중의 소설같은 이야기들.

여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가린 손을 내릴 수도 없었다. 불가능이라는 믿음은 너무 긴 세월 동안 여자를 간섭해왔다. 이제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의 망설임조차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 80, 날개 중.

2017.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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