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남성, 남성성, 그리고 사랑
벨 훅스 지음, 이순영 옮김, 김고연주 / 책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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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게 쭉쭉 읽어 나갈 수 있는 페미니즘 이론.

요는 “같이 갑시다”인데, 그저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 아닌가 싶은 마음이 우선 들고,

지침을 핑계로 “버리고 간다”라고 말해버리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어쨌든 남성이 지고 있는 짐들은 “제국주의, 백인 우월 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른바 맨박스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논해보자... 라는 것.

“하나의 완전한 성으로서 남성들에게 전혀 가망이 없다고 느끼는 여성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사실이 나는 몹시 두렵다”(페미니스트 사상가, 바버라 데밍)는 상황에서 어떻게 나아져야 하는지 고심한 끝에 이런 저런 원인과 결과를 이끌어 냈는데, 결국 남성들 자신이 “제.백.자.가”(제국주의 백인우월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한다는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고, 페미니스트가 뭘 어째야 하나 싶은 그런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이런 사회학적 고찰을 모두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지만...

결국 이 책은 여성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니었다라고 체념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사람들 대부분이 부인하고 싶어 하는 가부장제의 진실이다. 특히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여성 사상가들이 남성 폭력이라는 이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이야기할때 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남성들이 폭력적이지 않다고 열을 내며 주장한다. 그들은 많은 남자아이들과 성인 남성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이 남성임을 증명하기 위해 심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폭력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도록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램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테렌스 리얼은 이처럼 어린 시절에 가부장적 사고에 세뇌당하는 것을 남자아이들의 ‘평상시 외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처음 성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폭력이 남성의 어린 시절 사회화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들과 그들 가족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보고 나서, 나는 폭력은 남성의 어린 시절 사회화 그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남자아이들을 남자가 되게 하는’ 방법은 상처를 통해서다. 어느 연구에서는 우리가 남자아이들을 지나치게 일찍부터 어머니에게서 단절시킨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느끼거나 그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며 다른 이들에게 세심하게 마음을 쓰지 못하게 한다. ‘남자가 된다’라는 바로 이 말은 모든 걸 받아들이고 계속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의 단절은 전통적인 남성성의 결과가 아니다. 단절 그 자체가 남성성이다.” - 116

모든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순수한 형태에서 가부장제가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조장한다는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의 주장은 정확했다.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놓고 가부장적 남성성을 따르는 남성은 그 문화에서 여성적이고 부드럽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증오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삶과 믿음, 행동을 지배하도록 의식적으로 선택하진 않았다. 그들은 가부장 문화에서 태어나고 또 그 시스템을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었지만, 자신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소소한 방식으로 그 시스템에 반항해왔으며 가부장적 사고와 실천을 완전하게 따르는 것에도 저항했다. 그들은 가부장제가 개인의 욕구에 방해가 될 때면 분명하게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도전하고 그것을 바꾸고 결국 끝낼 운동으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았다. - 190

대중매체는 남자아이들과 남성들에게 가부장적 사고와 실천에 관한 법칙들을 가르치면서 끊임없이 그들을 세뇌하는 역할을 한다. 가부장제에 도전하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페미니즘의 주장이 남성들에게 그처럼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그 이론이 주로 책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페미니스트 책을 사거나 읽지 않는다. -217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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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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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시인 김소연의 사전.

한 글자로 응축된 말들.

시인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여백이 주는 안정감이 좋은 책이다.

덜 : 가장 좋은 상태. - 98

명 : 기계는 너무나도 쉽게 단종되고 인간은 너무나도 오래 산다. - 145

시 : 1. 이미 아름다웠던 것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될 수 없고,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이 기어이 아름다움이 되게 하는 일.
2. 성긴 말로 건져지지 않는 진실과 말로 하면 바스라져버릴 비밀들을 문장으로 건사하는 일.
3. 언어를 배반하는 언어가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
- 242

재 : 얼마나 덩치가 크든 얼마나 무겁든 얼마나 대단하든 얼마나 소중하든, 그 무엇이든 다 타고 나면 한 줌. - 302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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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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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어리석은 인간이 죽음에 가까워지며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못생긴 손을 펼쳐 내보여야 하는 순간처럼 당혹스럽게 서술된다.

이반 일리치는 어느날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에 모욕감을 느끼고 수치스러워하고 죽음과 한발짝 떨어져 있는 이들을 질시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삶을 돌아보며 반추하고,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결과가 아님에도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된다.

이 과정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울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일, 죽음이라는 잔혹한 과정을 이토록 가까이 들여다 보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꽤나 소모적인 일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가 그렇게 생각하듯, 죽음은 아직 나와는 멀리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

아직 아니라는 그 어리석은 생각은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임종 두어 시간 전에야 빛을 보게 되는 것이 죽음이라면 나는 훨씬 이른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르다고 여긴 그 때가 늦은 때 일수도 있겠지만.

용서를 구하는 대신 용기를 내라고 한 마지막 말이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던지는 냉소적인 응원은 아니었을까?


++ 서문에서 언급된 아내에게 준 생일 선물이 이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끔찍하고 서툴고 악의적인 톨스토이를 생각나게 한다. 못된 영감탱이.....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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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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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펜화, 사진, 글이 실려 있는 책.

배송 오자마자 잠깐 살펴 본다는 것이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여행을 딱히 원하지 않는 상태지만,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스물스물 무언가 욕구가 올라오는 기분.

책을 고르면서도 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골랐지만,

조용한 사색을 따라가는 기분도 좋았다.

구체적인 어느 장소에 대한 욕구가 없다보니 오히려 이런 범세계적인 여행 일기?가 좋은 모양이다.


스페인 여행에서 어느 도시가 가장 좋았냐는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다 마드리드를 꼽았다. 호안 미로의 작품이 지천이던 바르셀로나나 남부 스페인 바다를 파란 쟁반의 은구슬같이 품은 말라가가 근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마드리드를 선택한 이유는 그곳에서 많이 웃었기 때문이다. - 84

결코 만날 일 없는 것들이 만나면서 생겨나는 소란, 여행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것 아닌가. - 166

2018.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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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6
유디트 헤르만 지음, 이용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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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서술되는 생의 한 점.

알리스가 치뤄내는 다섯번의 죽음은 생각보다 큰 여파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타인에게는 담담한 것 같이 보이고, 무감각해 보일지 모르지만

알리스의 내면에선 과연 얼마나 큰 진동이 일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소한 장면, 스쳐가는 인파에도 동요하는 내면의 오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쌓여가는 감정의 높이가 완성되는 그 과정이 참 아름답다.


너를 보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몰라. 너는 모를 거야. 정말 모를거야. 알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안다면. 안나가 대꾸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알리스가 말했다. - 52

노인이 말했다. 비타 브루타.
알리스는 노인이 한 말을 되풀이 했다. 루마니아 남자가 대답했다. 그는 노인이 한 말을 되풀이했다. 끔씩한 삶이래. 그가 그렇게 말했어. - 76

말테 삼촌이 왜 목숨을 끊었는지 알리스는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누구도 알리스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 물으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광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몰라.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우울증, 마음의 상처, 한계를 넘어선 불쾌감? 삶이 피곤해진 거지. 살기 지쳤던 거야.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115

두 사람음 그럼에도 서로를 바라보았다. 악수를 했다. 손을 맞잡으니 용기가 났다. 그것이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 - 124

2018.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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