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리커버 특별판, 양장 합본)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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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으로 나눠 있던 모방범이 합본으로 리커버 출간되었길래 샀는데...

두둥 극사실주의 벽돌 두개 부피의 책이 왔다.

이렇게 할말이 많은가 싶은 기분이었는데,

서사의 방식을 보니 충분히 납득할만한 분량이다.

범죄자의 시점, 피해자의 시점, 유가족의 시점, 저널리스트의 시점, 경찰의 시점 ....

외에도 까메오 출현에 불과할 듯한 캐릭터에도 사연과 볼록한 환경을 만들어 놓은

그야 말로 미미 월드.

개인적으로는 범죄자의 시점이 주가 되는 2부는 짜증스럽고 지루했는데,

이것은 평소 범죄사건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드러나는 부분 같다.

구구절절 범법자, 가해자의 변명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우리는 너무 많은 변명을 들어주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성향.

결국 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고 이 긴긴 말을 한 것일까.

재미는 있었지만, 범죄자와 가해자의 가족 분량은 어쩔 수 없이 짜증이 솟구쳤고, 결말은 취향은 아니었다.

아니 뒤집어서 말하면, 그런 막연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호응해 이런유의 범죄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고 다케가미는 생각했다. 오해를 각오하고 말하자면, 범죄란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106

선생, 나는 놈들이 그런 식으로 죽어서 오히려 덕을 봤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사이 유코는 눈동자에 분노의 빛을 띠며 말했다.
구리하시와 다카이의 사고사를 천벌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 의견에는 절대로 반대입니다. 놈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걸맞는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뻔뻔스럽게도 벌도 받지 않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고 말 겁니다. 그건 정말 옳지 않아요. 정말로 천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될 겁니다. 천벌이란 그렇게 부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 1054

사건이 이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것이다. 지금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노인의 발치에는 그가 성실하게 일하며 지켜온 인생의 파편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이 사람은 그 파편을 밟고, 그것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 1108

만일 정말로 진범 X가 따로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러나지 않는 기자에게 미야케 미도리의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난 만일이란 표현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아요. 만일 미도리가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뿐이요. 그게 아닌 만일은 생각해볼 여유도 없습니다.
신이치는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유족의 심정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미야케 미도리의 아버지의 그 발언은 바로 그런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 1271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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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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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폭력, 지속적인 재난.

한국 문학 단편들을 보면 아무래도 사회적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주제들을 접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하는 작품이 없는게 아닌데도 임펙트있는 이야기가 그 방향이기 때문일까.

학교폭력, 여성혐오, 희망없는 중산층, 나락에 가까운 저소득층, 인재라고 불리우는 재난들.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이에 앞서 읽은 몇권의 단편집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 흥미가 떨어졌지만, 이는 이 책을 나중에 읽었기 때문이지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구병모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섬찟하게 좋았다.

내겐 환대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 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정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좌와 사람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우리의 내면은 늘 불안과 절망과 갈등 같은 것들이 함께 모여 있는 법인데,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 자신이 다 거짓말 같은데...... - 33

그 어떤 불편도 부작용도, 정주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 113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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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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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속을 뻔했다.

검색을 하려다 참았는데 그 이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다.

심사평을 읽다보니 안찾아본 일이 왠지 이긴 기분이 된다.

거짓과 진실의 혼재.

문학에서 마주치는 실제같은 거짓들은 간혹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속아서가 아니라 실망해서?

아무튼 약간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리뷰를 쓰자니 방금 읽고 되새김질 하며 이 작품을 생각하는 기분이 묘하다.

연애물인가? 역사물인가? 존재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 했나?

모든 요소들이 삐뚜름하게 꼿혀있는 것 같았다.

제대로 각을 맞춰 세워두었다면 매력이 반감 되었을 것만 같다.

그 모습은 뭔가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한데 그게 뭔지는 끝내 모르겠더군요.(p.57)

아마 이야기 속 이 대사가 독서 후 느끼는 내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전부를 말했는데, 왜 모르겠는 기분일까.

잔을 부딪친 뒤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빈 잔을 내려놓는데 문득 뭔가가 함께 풀썩 내려앉는 기분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졌다.(p. 105)

아마 이런 기분.

그렇지만 즐거운 독서였어. 추천한다.

당신의 등을 한참 보고 있자니 누군가의 등을 이토록 한참 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등이라는 건 보고 있으면 그저 한참 보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 72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저들에게 끝없는 빛을 주소서. 소주 두 병을 모두 비운 뒤 입당송을 좀더 들었다.
어째서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는 노래하지 않는가.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레퀴엠이니까.
하지남.
노래의 주인은 노래를 듣지 못한다. 노래를 듣는 자는 노래의 조인이 아니다. 노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 93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건 아주 멋진 일 같았다. 무엇보다 이름이란 용기를 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좋았다. 자신의 이름이 그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어딘가 뭉클했다. - 146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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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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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을 위한 제물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다.

존재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도구로서 생을 결정하게 만드는 관습법에 대해서.

누군가가 정해 놓은 것일텐데, 현대의 법률과 도덕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이 말하는 지식을 전하는 작가인 베시안이 애초에 왜 신혼여행으로 북부산악지대를 고르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일종의 과시욕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와 미래를 약속한 아내의 마음을 제물로 산악지대에 바치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해의 순간에 방향을 복수로 되돌린 친척 할아버지는 평소 무척 과묵하고 눈에 띄는 법이 없는 노인이었다고 했다. 그 노인의 세계에서는 화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까, 왜 하필 그 결정적인 순간에 수다스러워 지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피 관리인은 다인의 존재에 왜 그렇게 경악스러운 태도를 보였을까. 아름다움에 미혹되어 장황한 말을 늘어놓은 것은 미숙한 자신 때문일텐데, 그녀가 마녀이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모습은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가.

역자의 말에서 관습법 “피에는 피”라는 법칙이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며, 이러한 서술들이 자아 비판의 전통 때문이라고 작품을 옹호한다. 아마 그보다 더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어떠한 것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너는 장례식에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장례 식사에도 참석해야 해...... 그렇지만 저는 그자크스란 말이에요. 바로 제가 그를 죽였단 말이에요. 제가 왜 그곳에 가야 해요? 네가 그곳에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네가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이나 혹은 장례 직후의 삭사에 빠져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름아닌 바로 너다. 왜냐면 무엇볻도 사람들이 너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왜 제가 그런 일을 해야 해요? 그조르그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서슬 퍼런 눈길에 부딪히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중략) 전날, 그가 희생자를 기다리며 매복하고 있는 동안 냉정하기는 했으나 미움 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듯이, 그들의 눈길 속에도 증오는 들어 있지 않았으며 다만 삼월의 그날처럼 차가웠을 뿐이었다. - 20

그조르그는 좁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의 한 자락을 흘끗 쳐다보았다. 창밖에는 오직 그만이 느낄, 알프스 산맥의 불안한 빛과 절반은 미소를 띠고 절반은 여전히 얼어붙은 삼월이 펼쳐져 있었다. 곧 사월이 오리라. 아니, 오직 사월의 첫 보름만이 찾아 오리라. 그조르그는 가슴의 왼쪽 한편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월은 이미 그에게 시퍼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랬다. 그에게 사월은 늘 그런 느낌을 안겨우었다. 사월은 뭔가 마무리되지 않는 달이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사월의 사랑은...... 그의 마무리되지 못할 사월은...... 어쨌든 더 잘됐지 뭐. 그는 무엇이 더 낫다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형을 위해 복수를 한 것이 잘됐다는 것인지, 일 년 중 이 시기에 피를 회수한 것이 그렇다는 것인지. - 26

그는 아버지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네 형의 피를 회수하지 않는 한, 너는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살 수 없다. 그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살 권리가 없다니! 오직 사람을 죽인 연후에야, 그리하여 이번에는 그 자신이 죽음의 위협을 받을 때에라야 그의 삶이 이러질 거라니! - 41

그러나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다. 그는 눈길을 고정시킨 채 무덤을 응시했다. 나...... 남은...... 남은 것이라고는 저것뿐이라니.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내 삶에서 남은 것이 저것뿐이라니.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의 삶이 남길 것은 바로 저것뿐이로구나. - 236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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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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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혜석의 여행 일지.

지금 돌아보면 촌스럽고 정보 나열에 불과한 그 시절의 여행기지만

조금 감상적으로 읽게 되는 것은 저자가 나혜석이기 때문이다.

화가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을 찾아 나가던 모습의 한 귀퉁이를 볼 수 있는 일지.

때문인지 남은 문장들은 여행과는 그다지 관계 없는 것들이 많았다.

+ 나혜석의 그림은 보아서 좋긴 한데 어두운 흑백으로 된 인쇄는 차라리 없는게 나을까 싶기도 하다.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나. 둘째, 남녀 사이는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 7

부녀의 의복은 자기 손으로도 해 입지만, 그보다도 상점에 가서 많이 사서 입는다. 겨울에는 여름옷에 외투만 걸치면 그만이다. 여름이면 다림질,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조선 여성이 불쌍하다. - 22

이왕 전하와 각국 대신의 연회석상에도 참가해 보고, 혁명가도 찾아보고, 여성 참정권론자도 만나보았다. 프랑스 가정의 가족도 되어보았다. 그 기분은 여성이요, 학생이요, 처녀로서였다. 실상 조선 여성으로서는 누리지 못할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장애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 87

나혜석 : 깃발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나요?
s : 여성의 독립을 위해 싸우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 였습니다.
나 : 물론 많이 잡혔겠지요?
s : 잡히고 말고요. 모조리 잡혀 들어가서 금식 동맹을 하고 야단났었지요.
나 : 회원의 표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s : 있지요. ‘여성에게 투표를’이라고 쓴 배지를 모자에 달고, 띠를 두르지요. 이것이 그때 두른 것입니다.
부인은 노란색 글자가 쓰여 있는 다 낡은 남빛 띠를 보여주었다.
나 : 이것 나 주십시오.
s : 무엇하시게요?
나: 내가 조선 여권운동의 시조가 될지 압니까? -169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나가자......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 227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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