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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평점 :
구조적 폭력, 지속적인 재난.
한국 문학 단편들을 보면 아무래도 사회적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주제들을 접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하는 작품이 없는게 아닌데도 임펙트있는 이야기가 그 방향이기 때문일까.
학교폭력, 여성혐오, 희망없는 중산층, 나락에 가까운 저소득층, 인재라고 불리우는 재난들.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이에 앞서 읽은 몇권의 단편집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 흥미가 떨어졌지만, 이는 이 책을 나중에 읽었기 때문이지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구병모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섬찟하게 좋았다.
내겐 환대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 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정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좌와 사람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우리의 내면은 늘 불안과 절망과 갈등 같은 것들이 함께 모여 있는 법인데,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 자신이 다 거짓말 같은데...... - 33
그 어떤 불편도 부작용도, 정주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 113
2018.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