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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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통스럽기까지한 자전에세이.

자기의 몸에 얼마나 많은 굴레를 씌울수 있는 사회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넷플릭스에서 <미스 리프레젠테이션>을 보았다.

미스 리프레젠테이션은 미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강제하고 스스로를 부인하게 만드는지 여러 분야의 셀럽들이 출연해 증언한다. 세계대전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독립의 물꼬를 튼 여성들을 가정으로 되돌려보내는 교묘하고 치밀한(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그다지 교묘랄 것도 없는 뻔한 방식이지만) 미디어의 조련법이랄까. 발언하고 연대하는 여성들을 흩트려 놓기 위한 이상적인 여성에 대한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 낸 방식를 보고 있자면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그런 이야기들과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 사고전환을 해야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차분하면서 뜨거운 인터뷰들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는 또 어떤가. ‘꾸밈 노동’이라는 말이 언제 생긴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단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향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화장을 하지 않는 것 혹은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 또는 반대로 지나친 꾸밈을 비난하기도 하는 너무나도 여성에게만 향해있는 외모에 대한 잣대는 여성 스스로에게도 벗어나기 힘든 코르셋아닌가. 꾸밈이랄것 까지 갈 것도 없다. 공중파 뉴스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니 마니 하는 말들도 하는 판에...

어쨌든 수만가지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회적 시선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다수의 책을 쓴 작가,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인 페미니스트로서의 그녀의 삶이 폭력과 자기부정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회고이고, 소수인으로서의 미국 여성의 삶, 어린 시절 겪은 폭력,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던 섭식장애,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작가의 표현) 몸에 대해 일기장을 펼쳐본 듯 내밀한 속내까지 까발린 글쓰기는 불편함과 고통을 수반한다.

애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조차도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드러내고 있기에 고통스럽고, 자기 연민과 자기 긍정과 자기 혐오를 왔다갔다 하는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어서 불편하기도 하다.

제목 <헝거>는 그런 저자의 물리적인 허기, 정신적인 허기를 잘 드러내는 단어이다.

언제나 정치적 올바름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싶다고 소망하는 나 역시, “몸”에 대해서 어떤 잣대를 가지고 있음을 반성을 하게하는 독서였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이 통렬한 고백들은 자칫 섭식장애가 되는 가이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한심한 생각도 잠깐했다고 고백하고 넘어간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현재 나는 ‘생존자’보다는 ‘피해자’를 선호한다.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희망의 여정을 걸어와 승리를 쟁취한 척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무사한 척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난 채로 여기까지 걸어왔고 그 일을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거나 내게 흉터가 남지 않은 척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 40

나는 부서졌었고 그 이후로 더 부서졌었다. 그리고 아직 치유가 되지는 않았으나 어쩌면 언젠가는 치유가 될지도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다. - 317

여기에서 당신에게 나의 강렬한 허기의 진실을 펼쳐 보였다. 마침내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무엇에 허기졌는지, 그리고 내 진실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창조하게 했는지가 있다. - 339

우리는 법의 감시와 종교적인 교리에서 자유롭게, 우리 신체에 대한 선택의 권리가 있다. 우리는 존중할 권리가 있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가 가진 다른 정체성도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여자가 아니다. 다른 신체와 성표현, 신념, 성적 특징, 계층 배경, 능력 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차이점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포용이 없이는 우리의 페미니즘은 아무것도 아니다. - 2015년 Ted talk, 록산 게이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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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의 발칙한 아내
한지수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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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책 표지가 이야기의 힘을 잃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결혼에 대한 발칙한 반란... 이라는 발랄한 문구는 그다지 어울리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어떤 리뷰를 보고 발칙한 반란이 아닐 것이라는 정보가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간첩조작사건에 휘말렸던 과거가 이끌어내는 현재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시나리오로 각색된 이야기라고 하니 소설에서 부족한 면은 그쪽에서 보완하겠다 싶다.

초반의 의문의 결혼사기?에 휘말린 듯한 부분을 빼면 좀 어둡고 진지한 이야기인데,

사실 그 의문의 결혼, 결연시라는 사이트에서의 만남과 헤어짐, 이런 것들이 캐릭터를 더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전제로 한 이야기가 화사하고 행복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나는 그들이 오기 전보다 훨씬 더 외로어졌어요. 내 눈치를 보면서 노력하는 그 세 사람의 유대가 어린 나를 더 고립시키고 못되게 만들어갔나 봅니다. 결국, 두 자매는 캐나다에 있다는 계모의 동생 집으로 보내졌어요. 두 자매가 짐을 싸던 날 내 진심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원한 건 그들이 떠나는 게 아니라는 걸. 자매 중 언니는 떠나기 전날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동생은 그냥 울었어요. 자기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면서...... 계모가 그 딸을 달래면서 하는 말이 들려왔어요. “나 살자고,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게 잘못이다.” 그때부터였어요. 내가 목 놓아 울기 시작한 건. - 81

삶의 지도는,
죽음이라는 반전으로 명확해지더군요. - 135

헤밍웨이 애인이었던 갤혼은 이렇게 말했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 사람 인생의 각주가 되기는 싫다”고. 그런데 나는 그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그 사람 인생의 각주는 물론이고 쉼표나 느낌표, 때로 부질없는 물음표로라도 그에게 속하고 싶다. - 142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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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밤이, 밤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
박상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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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하듯이
그녀는 오늘도 잘 웃지 않는다 - 9. 겨울 중.

나는 오늘의 내가 걱정이고, 내일의 내가 걱정이다. 그래도 하늘은 맑다. - 그의 카페 중.

흠.... 하고 읽어 내려가다 저 두 부분에서 훗하고 웃었다.

현대문학의 pin 시리즈 첫번째.

감각적인데 마음에 꽉 들어차는 뭔가가 없는 기분이 좀 들었다.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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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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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도 딱 좋아할 만한 스타일의 작가인데, 왠지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읽을 때마다 받게 된다.

언제쯤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까... 좋아할 만한데 ‘아! 좋다!’라는 생각이 안드는게 이상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고는 윙 하고 철컥하는 소리가 나더니 제니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안에는 찬 공기, 스테인리스스틸, 도자기, 그리고 오렌지주스 한 잔뿐이었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겉에는 저런 아름다움과 인격이 있는데, 그 안은 차가운 무라니. - 18, 제니 중.

약간 이런 기분일까. 삶을 꿰뚫어보는 시각과 뛰어난 위트가 있는데, 아직 나에게 와 닿지 않은 커트 보니것의 정신?

어쨌든 좋아질 때까지 계속 읽어보려고 마음을 먹는다.

<스로틀에 손을 얹고>가 가장 좋았다.

여자들도 몇 가지는 누릴 자격이 있지. 어머니가 말했다.
투표권도 있고 술집도 마음대로 드나들잖아요. 얼이 말했다. 이젠 또 뭘 원하나요, 남자 투포환 대회 참가 자격?
당연히 지켜야 할 예의. 어머니가 말했다. - 100, 스로틀에 손을 얹고.

I would just as soon have skipped it all. - 310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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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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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언제나 좋았다.

요즘 단편집을 여럿 읽어서 수록작품 중 반 이상은 이미 읽은 터라, 그 점이 좀 아쉬웠달까.

임성순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이 가장 좋았다.

아마도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도 익숙한 얘기들.

대상작인 박민정의 <세실, 주희>도 물론 좋다.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이런 불꽃을 쏘아올릴 수 있다면 삶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이곳에 내가 발굴한 작가의 그림을 걸고 싶었다. 불꽃은 되지 못하겠지만, 불꽃을 쏘아 올리는 발사대 같은 것이라도 되고 싶었다. 나는 그림 앞 벤치에 앉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걸까? -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2018.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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