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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ㅣ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호철 옮김 / 열림원 / 2014년 10월
평점 :
저물어 가는 것, 망할 바엔 좀 더 화려하게 망하고 싶은 마음.
다자이 오사무가 그리는 귀족의 몰락이다.
왜인지 이런 사양이 깊게 다가온다.
노동을 등한시 여기지 않는 화자는 이혼 후 귀족다운 우아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여성이다. 약물중독인 동생은 동남아시아 어딘가로 징집되어 생사도 알지 못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전해도 아무일도 없었지만, 집안은 기울어가고 있다.
노심초사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나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어머니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약물중독자 남동생만을 의지한다.
비애의 강물 바닥을 긁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것이 더 행복이 아닌가, 비극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사람과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아름답고 슬픈 생애를 마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는 어머니가 끝이라고 단정하고 동경한다.
나는 귀족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는 그 심정이 뭘까, 회한일까 수치일까 자부심일까.
극적인 우울이 전체적인 이야기의 정서지만, 그안에 아름다움이 묘하게 깔려있어, 다자이 오사무의 데카당이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 아무것도, 전혀 숨기지 않고 쓰고 싶다. 이 산장의 평온은 모두가 거짓의 표면, 그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이것이 우리 모녀가 신에게서 얻은 짧은 휴식의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이 평화 속에는 무엇인지 불길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어머니는 행복을 가장하면서 나날이 쇠약해지시고, 또 나는 가슴속에 독사를 배어 어머니를 희생시키며 살찌고, 아무리 억누르고 억눌러도 살찌기만 한다. 아, 이것이 다만 계절의 탓이었으면 좋겠다. 뱀 알을 태운다는 부질없는 짓을 한 것도 그러한 나의 초조한 마음의 일부가 나타난 것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다만 어머님의 슬픔을 깊게만 하고, 어머니를 쇠약하게만 하고 있었다. ‘사랑’이라고 쓰느까, 그 뒤가 써지지 않는다. - 31
데카당? 그러나 이런 태도가 아니고서는 살아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소리를 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죽어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고맙다. 시원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좀처럼 ‘죽어라!’라고는 말 안 하는 법이다. 치사하다. 조심스러운 위선자들이여.
정의? 소위 계급 투쟁의 본질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인간의 도리? 농담 마라. 나는 알고 있다.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서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것이다. 죽이는 것이다. ‘죽어라!’라고 하는 선언이 아니면 무엇이냐? 속이지 말란 말이야. 그러나 우리의 계급에도 쓸 만한 놈은 없다. 백치, 유령, 수전노, 미친개, 대포쟁이인가 하외다. 구름 위에서 오줌이나. ‘죽어라!’라는 말을 해주기조차 아깝기만 하다. - 69
아아, 인간의 생활이란 너무나 참혹해서 태어나지 않는 게 좋았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이 현실. 그리하여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허망하게 무엇인가를 기다립니다. 참혹함이 지나쳤습니다. 태어나기를 잘했다고, 아, 목숨을, 인간을, 세상을 기뻐해보고 싶습니다. - 103
나는 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겠어요. 살아 있고 싶은 사람만이 살면 되지. 인간에게는 살 권리가 있는 것과 똑같이 죽을 권리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이런 사고방식은 조금도 새로운 것도 아무것도 아닌, 너무나도 당연한, 그야말로 원초적인 것이지요. 사람들은 공연히 무서워해서 노골적으로 입에 내서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 157
2018.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