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수도원 펭귄클래식 8
제인 오스틴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읽은 일련의 책들에서 언급되어 있어 이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인 오스틴이 묘사하는 캐서린은 강압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지도 않고, 현실감있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다.
당시로선 꽤나 자기 주장이 강하고, 스스로 주변을 정리할 수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아마도 가장 마음에 들었고, 노생거 수도원을 언급한 책들의 의견도 대체로 그런 편에 속한다.

젊은 숙녀가 여주인공이 되려고 할 때면 사방 사십 리 내 가족들이 아무리 심통을 부린다고 해도 그녀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 24

한 소설의 여주인공이 다른 소설의 여주인공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과연 누구로부터 그녀가 옹호와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내 주인공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 51

어쨌거나 난 뒤따라갈 거예요. 그들이 어디쯤 있든 상관없어요. 단지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것을 설득당하지 않고 안 할 수 있다면, 다시는 그런 일에 걸려들지 않을 거에요. - 138

작가 스스로 염두에 둔 바와 같이 세상물정에 밝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는 한이 있더라도 캐서린은 작가의 소망대로 현명한 여성이 된다.
얕은 꾀에 빠져 곤경에 처했을 때, 수동적으로 슬퍼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도 그런 현명함의 일종일 것.

다만 시대적 배경의 한계랄까, 이토록 현명한 여성이지만, 결국 헤쳐나갈 운명이란 것은 결국 좋은(=부유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여성 스스로 삶을 결정지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이 현대의 독자들에게 결국 너도 그런 신데렐라 컴플렉스의 여주인공일 뿐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게 하는 것.
악역을 맡은 이자벨라와 존 소프는 투명하게 속물적인 존재로 보여지지만, 신분과 부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욕망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할 수 밖에 없을가하는 의문도 따라온다.

역사책은 억지로 읽기는 하지만 지루하거나 아니면 짜증스러워요. 페이지마다 교황과 왕들의 다툼, 전쟁이나 역병들이 가득하잖아요. 남자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옳고 착한 반면 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역사책은 너무 지루해요. 역사책은 어쩜 그토록 따분한지 종종 정말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148

역사에 관한 캐서린의 (더불어 제인 오스틴의 ) 관점을 서술한 부분을 보면, 여성이 지워져 있는 반쪽짜리 역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의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흑역사에 가까운 실수를 한 후에도 문제의 핵심을 정리하고 앞으로는 이성적으로 이치에 맞게 판단하고 행동하리라 결심하는 모습은 현대의 여성 캐릭터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부분이다.
긍정적, 자유로움, 발전적인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2018.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난 맥버니...... 존 맥버니 상병.
만나서 반가워요.
몇 살이니, 어밀리아?
열세 살이에요. 9월이면 열네 살이 돼요.
키스는 해봤을 나이로구나.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 나이이고.
아저씨를 어떻게 미워하겠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 12

그러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를 학교에 들인 것부터 조짐이 좋지 않은 것.
물론 부상당한 병사라는 특수성이 작용했을 것이고, 어밀리아의 수집벽?의 일종으로 도움을 받아 존 맥버니 상병은 여자들 여남은 명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외딴 여학교에 들어선다.

전시라는 상황과 집안의 사정으로 기숙학교로 보내진 한창 나이의 소녀들은 외부에서 온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에 대해 넘치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존 상병은 그 상황을 너무나도 능숙하게 이용하게 된다. 마사 판즈워즈는 여성으로서 여느 남성과 견주어도 출중한 능력을 지닌 선생이지만, 그녀 역시 쉽게 존 상병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관심을 기울인다.

곤경에 처한 자로서 타인의 호의와 돌봄에 감사한 마음만 가졌어도 좋았을 것을, 몸이 회복되어가기가 무섭게 호의를 이용하여 학생과 선생들을 홀리는 - 그저 유혹의 정도라면 나았을까? 뭔가 유폐되어 있는 존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모습이랄까, 은근한 이간질이랄까... - 존의 모습에서 기회주의자의 모습과 남성으로서의 우월감이 내비춰져 영 볼썽사납다...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존과 학생들, 존과 선생의 지루한 플러팅이 거의 300여 페이지나 계속 되는 점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플러팅이라고 여겨지는 각각의 대화 안에 남북전쟁, 인종, 권력과 자본에 대한 여러 의미들이 들어있다고는 해도 지루한 것은 이미 지루한 것이다.

그렇지만, 윤리를 져버리게 하는 요인이 존인지, 상황을 용인한 선생인지, 나이브하게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미성숙한 소녀들인지 그것은 선후관계가 불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미 두번의 영화화가 되었고, 큰 상도 받은 것 같지만, 보통은 원작이 주는 더 큰 즐거움을 이 책에서는 그다지 느끼지 못하겠다.

2018.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의 애슐리 테이크아웃 1
정세랑 지음, 한예롤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볍게 시작해서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결말을 맞이했다.

내내 시큰둥한 듯 타성에 젖어 있는 아웃사이더 같은 애슐리가 겁쟁이라 미안하다고 말하는 지점에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본토와 섬이라는 관계와, 순혈과 혼혈이라는 것과, 내면과 외면이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

이야기의 모든 과정에서 애슐리는 정말 묘사한 대로의 사람이었을까. 마지막의 변화가 세월이 이끌어 낸 것이 아니라, 긴긴 세월 한방의 일격을 노린 사람의 행동개시였다면...

이 이야기는 이후가 훨씬 궁금하다. 아무래도 작가한테 낚인듯...+_+ 어서 다음 이야기를 내놓으시라.....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도 한예롤씨의 인터뷰도 좋았다.


너도 가지 않을래?
아빠가 물어 준 건 기뻤지만, 아빠도 내 대답을 알고 물었을 것이다. 내가 없어도 그 가족은 완결되고, 본토에는 내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거리감을 유지해야만 했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 거리감을. - 22

애쉬는 모르죠? 저 바깥 사람들은 애쉬의 얼굴에서 차별과 화해, 오리엔탈리즘과 세계 시민의식,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해방, 비극과 희망을 읽어요. 당신이 딱이에요.
남의 얼굴에서 이상한 걸 많이도 읽네, 나는 어이가 없었다. - 50

2018. jun.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8-06-03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시작이야, 하면서 끝나는 이야기. 본토/섬 구분은 여러가지 고민을 하게 만들었고요...

hellas 2018-06-03 10:14   좋아요 1 | URL
며칠전에 정세랑 작가님이 하반기 좀 더 긴 이야기 가지고 오신댔는데 혹시? 하는 기대를 ㅋㅋ 전 이 책 너무 좋았어요:):)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
김원석.남궁인.오흥권 외 지음 / 청년의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 알람에 남궁인이라는 이름만 보고 내용도 살펴보지 않고 주문했다.

그것이 실수....

의사들의 수필문학상 작품집인건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고 나서였다.

가끔 터무니 없이 성급하게 일처리를 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물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 이야기들은 충분히 읽을만 하지만, 생생한 이미지가 떠올라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산 책은 꼼꼼히 읽는다는 장점도 나에겐 있지. ㅋ

가족들의 지병으로 병원을 정기적으로 자주 다니는 나는 가끔 의사들의 자질에 대해 생각을 안해 볼 수가 없는데, 이 책에 기고를 한 의사들은 (글 뿐일지 모르지만) 참 올바른 사람들.
환자를 차트로 대하지 않으려 고민하고, 실수에 솔직하고, 인간적인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 정말 많아져야, 아니 이렇지 않은 사람들은 의료행위에 몸을 담아서는 안되지 않을까.

그는 (중략) 목표였던 6개월을 다 살아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것은 배뿐만 아닌 전신에서 통증을 느끼는 인생이었고, 그뿐이었다. 이 시간이라도 얻어 냈으니 그 통증이 축복인지, 아니면 또 다른 불행인지는 아무도 이야기해 줄 수 없었다. - 115, 죽음에 관하여, 남궁인

죽음을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이건 혹은 본인이건 간에. 아무도 그런 일을 입에 가볍게 올려서는 안 된다. 고뇌와 고통과 그를 넘어서는 우연이 혼재하는 극적이고 거대한 세계. 그 일부만을 핥으며 공감했다거나, 응당 죽음이 왔어야 했다고 지껄이는 짓거리는, 전부, 미친 짓이다. 스물네 개의 갈비뼈와 폐부가 전부 으스러진 죽음에 관하여, 그리고 전신이 악성 종괴로 죄어드는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그 처참한 시체만이 눈앞에 있을 뿐, 아무것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죽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도. - 120, 죽음에 관하여, 남궁인

2018.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산은 그렇게 태어난다 우리는
젖은 채 태어나고 젖으려고 사는 것들
답 없는 질문처럼 꼭 그렇게 - 우산의 고향 중

밤이 되면 누구나 혼자 눕는다 이 익숙한 일을 해내기 위해 아침이면 길고 가는선이 놓이고 하지만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윽고 모든 것이 깜깜해지면 - 오늘의 바깥 중

구원은 도처에 있었느나 아무도 줍지 않았다 많은 문장으로 일기를 썼고 그보다 더 많은 문장을 지워갔다 여전히 그만둘 수 없었다 이토록 질긴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들여다보지 않았으므로 - 그해 겨울 중

이 시집읽던 새벽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너무 좋았다.
다만 2부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가로막힌 듯한 기분.

2018.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