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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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책인데 최근 지인의 언급에 읽어보았다.

뭔가 상당히 고장? 난 사람의 이야기지만, 딱히 유별난 장애라고 여겨지지 않을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그린 이야기 같다.

실제로 왜 인지 모르고 행하는 수많은 관습, 습관적 제스쳐들을 주인공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감정 소모 없는 의외의 능숙한 인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사회적 인간으로 사는데 지장이 있는 일면 소시오패스같은 주인공은 가족의 염려 속에 어찌저찌 편의점 알바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능숙한 시민으로 자리잡고 살아가는데, 그 능숙한 시민 코스프레는 왜인지 주변인들의 참견들로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나이와 직업, 결혼, 자녀 유무라는 무척이나 개인적인 문제들은 불편없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히 지참해야 하는 것들일까? 규격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골치아픈 문제들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기와 이타에 대한 생각 또한 하게 된다. 
한때는 이기는 나쁘고 이타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이기만큼 이타적인 행위가 어디있으며, 이타만큼 이기적일 수 있는 것이 어디있나 하는 편으로 돌아섰달까.
길지 않은 생을 타인의 일에 참견하고 끼어드는 일이 이타라면 차라리 이기적인 나로 살아가는 것이 조금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는 길이 아니겠나.
최소한 이기적일 때와 이타적일 때를 찰떡같이 알아채는 인간으로 살아야 겠다.

여하튼 그런 밸런스를 맞추며 살던 주인공에게 시라하라는 세상 찌질한 남자가 나타나서(피해자 의식은 강한데 자신이 가해자일지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 사고회로를 갖고 있는p.110 이라는 묘사가 너무나도 시라하라는 인간을 잘 드러낸다. 심지어 사회가 자신을 강간한다고 표현하는 지점은 정확하게 그렇다) 내심 이리저리 휘둘리면 좀 짜증날텐데라고 염려했지만, 휘둘리기엔 후루쿠라는 심지굳은 최종보스격의 소시오패스라서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제 기능을 다 하는 것 외에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 결말이라면 씁쓸하다. 뭐 그런 점이 묘하게 일본 문학 같은 점같기도 하고.

사족 > 마침 이 책을 읽고 알라딘 어플에 들어갔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광고가 눈에 보이고, 마침 그 신작의 주인공 이름이 사야카라는 것은(편의점 인간의 저자 이름) 바나나의 책을 사라는 계시일까? 흠...

나는 집 밖에서는 가능한 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 흉내를 내거나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일절 그만두었다. 필요한 말 이외의 말은 하지 않고 자진해서 행동하지 않게 된 나를 보고 어른들은 안심한 것 같았다. - 20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게 민폐였고, 그 오만한 태도가 성가시게 느껴졌다. 너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처럼 상대를 삽으로 때려서 그러지 못하게 해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무심코 했다가 여동생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졌던 일이 생각나서 입을 다물었다. 어릴 적부터 친절하게 대해준 여동생을 슬프게 하는 건 내 본심이 아니니까. - 74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102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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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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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작가를 제외하면 모두 너무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런 작가들을 나에게 데려다주는 소중한 번역가 정영목님.

맨 앞의 필립 로스는 말할 필요도 없는 최애 작가중 하나인지라 너무나도 반갑게 읽었다.

번역가 만큼 작품 하나에 들이는 노고와 정성이 지극한 경우가 또 있을까(작가를 제외하고, 혹은 어떤 경우는 작가보다도 더...)
그런 번역가의 글이라니 기대한 만큼 즐거운 독서였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필립 로스와 이창래, 존 밴빌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번역을 해서 지금까지 아들을 길러온 아버지가 볼 때는 인간 소통의 제일 수단인 언어 자체가 완전하지 않다. 이런 불완전함 때문에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열리지만, 깊은 소통으로 나아가려면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하느 동시에 언어화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 257, 소통은 고통

진짜 사족을 하나 달자면, sns 에 소통해요... 라는 멘션을 제일 싫어한다. 그냥... 그렇다고 ;;ㅋ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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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Philos Feminism 1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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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나 되서야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백래시가 거세진 만큼 의미가 있는 번역이기는 하다.
다만 미국의 1970-1980년대의 백래시 사례의 나열은 지루하고 흥미가 반감된다는 점은 약과할수 없겠다.
그래서 인지 손희정 교수의 해제와 14장의 텍스트가 가장 읽을 만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7,80년대의 미국 상황은 우리의 것과 결이 다르고, 관심사에 가장 가까운 낙태법 폐지에 관한 이야기는 14장이기 때문.

별로 새롭지 않다는 의미에서 고전적이라고 할 만한 공격(8) 에 대해 이미 수많은 선례가 있다는 것과, 백래시의 주체들이 가진 한결같은 실패와 실패가 예견되는 상황들에 대해 서술해 놓았다. 그쪽 인사들은 어째 한결 같이 그런??? 인물들인지도 좀 생각해 봐야하겠다.

좀 충격이었던 부분은 11장 반격의 수뇌부 네오콘에서 네오펨까지 중에 담긴 내용이었는데,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우리의 의지에 반해서>를 쓴 수전 브라운 밀러와, 얼마전 읽은 <비행공포>의 에리카 종의 변절? 이었다. 페미니즘 퇴행의 먹잇감을 자꾸 내놓았다는 측면에서... 그랬는데, 비행공포는 읽으면서도 약간 묘한 지점들이 있었다지만, 우리의 의지에 반해서는 좋은 책이라는 추천을 받았기에 그런 퇴행의 작가라는 점이 충격이었달까.

어쨌든 두껍고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은 책인데, 그럼에도 앞서 경험한 반페미니즘의 백래시가 그리 큰일?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있다 하겠다.

backlash : 사회 변화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로, 주로 성적,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기재로 작용한다.

팔루디는 여성의 ‘진보’를 위험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여성이 크게 활보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적개심”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증상들, 무엇보다 이 증상들이 급성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백래시’라는 이름을 붙이며, 가부장제하의 여성 억압이라는 현상과 백래시를 구분한다. 그렇게 보면 백래시는 “기반암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은 여성 혐오만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현대 여성들의 각별한 노력” 때문에 촉발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과 그 성과가 밸래시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무기력을 증명한다기보다는 페미니즘의 파워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 힘이 셀수록 반격은 더 촘촘하게 문화에 스며든다. - 10, 해제

1973년 낙태 합법화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지속적으로 낙태 반대 작전이 펼쳐졌다. 이 시기 미국 남자들은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울음”을 터뜨렸지만, 기실 그것은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인 지위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한탄하는 것이었다. 팔루디는 “호전적인 낙태 반대 운동의 대변인들은 대중 앞에선 페미니스트들을 ‘영아 살해자’라고 불렀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창녀’나 ‘레즈비언’으로 불렀다”고 지적하면서, 기실 낙태를 둘러싸고 선고된 페미니스트의 죄목은 ‘살인’이 아니라 ‘성적인 독립’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2016년, 미국 백인 (특히) 남성들의 극우화를 배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가장 먼저 언급한 ‘변화’중 하나는 낙태죄 부활 여부를 각 주 정부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발언의 실행 여부와 무관하게 이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공격하는 것이 보수 우익을 선동하기에 얼마나 ‘좋은 자원’인지 잘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 16, 해제

페미니스트의 싸움은 짧게 끝나지 않는다. 선언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실천이 기어코 변화로 이어지는 기쁨은 찰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에 모두를 거는 열정보다는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기술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제는 고전이 된 <백래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그것일 터다. - 17,해제

10년간 이어진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여성들이 자신들에게는 동일한 임금과 동일한 고용 기회가 필요하다고,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이 필요하다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낙태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출산효가를 보장해 주는 연방법이 필요하다고, 적당한 수준의 보육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지금까지 이 중 어떤 것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전투에서 여성이 정확히 어떻게 ‘승리’했다는 것인가? - 39, 1장 그건 페미니즘 탓이야.

반페미니즘적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 공격이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 진 베이커 밀러 박사는 “반격은 여성들이 실제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보통 성취가 작을 때,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난다”고 밝혔다. “그건 마치 큰 변화를 앞두고 위협을 느낄 때 반격의 선두 주자들이 변화의 공포를 이용하는 것 같다.” - 45, 1장 그건 페미니즘 탓이야.

여성의 우울증에 대한 모든 문헌을 검토하고 유전학에서부터 월경 전 증후군, 피임약 등 다양한 요인들을 테스트해 본 저명한 정신 건강 연구자 제럴드 클러먼과 미르나 와이즈먼은 여성 우울증에는 두 가지 큰 원인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그것은 바로 낮은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었다. - 97, 2장 남자 품귀 현상과 불모의 자궁

대단히 미미한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기이할 정도로 과장된 남성들의 대응에 당혹스러워하는 많은 사회학자 중 한 명인 윌리엄 구드는 “남성들은 존중, 혜택, 기회를 아무리 조금만 잃어도 큰 위협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 129, 3장 반격의 과거와 현재

미디어는 낙태를 둘러싼 투쟁을 도덕적이고 생물학적인 논쟁(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으로 규정하곤 했다. 낙태에 불편해하는 많은 이들에게 분명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테리와 그 추종자들이 여성의 출산의 자유를 둘러싼 전투에서 보여 준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반감은 철학이나 과학보다는 울화를 자양분 삼아 활활 타올랐다. 이런 남성들은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을 위해 울음’을 터뜨린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위치 변화를 겪으며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변화를 독립적인 직장 여성들이 등장한 탓으로 돌리곤 했다. - 591, 14장 여성의 몸을 침략하다

윌크의 설명서에서는 운동 참여자들에게 태아를 지칭할 때는 반드시 “이 작은 녀석 같은...... 인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거처”같은 표현을 사용하라고 지시한다. <소리없는 비명>(이 영화에서 진짜 소리없는 등장인물은 엄마다)을 만든 버나드 네이선슨 박사는 <낙태 보고서>에서 태아를 “작은 수중 탐사자”, “살과 근육, 뼈와 피로 된 완고한 벽 뒤에 갇혀서””자궁 내에 유배된” 어린이라고 묘사한다. 낙태 반대 집단은 최소한 임신부에게는 점유된 집이라는 이미지를 투영하지만, 낙태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폭파된 포탄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조셉 셰이들러는 “그녀의 몸은 아기의 비극적인 죽음이 일어난 흉가”라고 말한다. - 615, 14장 여성의 몸을 침략하다

베티 릭스는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에서 겪은 끔찍한 고난에 대해 “나는 돌 벽에 막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1980년대의 다른 많은 여성들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격의 벽에 부딪히다가 온몸에 멍이 들고 실의에 빠지더라도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집스럽게 벽과 맞섰다. - 657, 에필로그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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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쏜살 문고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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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외투, 광인일기.
고골의 세편의 단편이다.
묘한 기시감을 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다.

외투의 주인공인 아까끼 아까끼비예치의 비극은 그가 영악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눈 파는 법 없이 주어진 일에 열심일 뿐인 이 9급관리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내핍한 생활을 더욱더 궁색하게 만들고, 결국 원혼이 되는 이야기라니, 비극 중에 비극이다.
그의 죽음도 느닷없이 한줄로 등장해서 당혹스럽게 한다.
그런데 나는 왜 히죽거리면서 읽었을까.

고골은 이상한 존재였다. 하지만 천재는 늘 이상하다. 고상한 독자들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현명한 친구로 간주되는 것은 건강한 이류뿐이다. - 5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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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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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고 해서 다음 책 전에 가볍게 읽어야지 했던 책.

개인적 경험과 여러부분이 겹쳐져서 가볍지 못하고 짠하고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게 읽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이란 늙는 존재지만, 평화롭지 못하게 노쇠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입장이란...
아무래도 한국인과 미국인의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 다르겠지 싶었으나, 유대인 가족이라는 놓칠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가족들과 별반 다를바 없이 서로에게 집착하고 집착한다.
바탕색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겠지.
팔십대 중반에 생을 달리한 필립 로스의 아버지, 올 해 팔십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필립 로스를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먹먹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 조차 작가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랄지... 언뜻 스치는 기억도 가슴아프고 울고싶은 것들이 많을 법한 추억을 활자로 한자한자 써내려가는 마음이랄지.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도 뭘 좀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뜻대로 될 일인가는 오롯이 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게 문제랄까.
그래도 최소한의 후회를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다짐(은... 개뿔... 아니지.. 그래도 다짐...)한다.


혼자서 울고 싶을 때는 울었는데, 잇따라 찍은 아버지 뇌 사진을 봉투에서 꺼낼 때만큼 울고 싶은 마음이 복받친 적은 없었다. - 그 뇌를 침공하고 있는 종양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다름 아닌 그의 뇌, 나의 아버지의 뇌, 아버지가 그 솔직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 단호한 방식으로 말을 하게 하고, 그 감정적인 방식으로 추론하게 하고, 그 충동적인 방식으로 결정하게 한 뇌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끝없는 걱정들을 만들어내면서 팔십 년 이상 그 고집스러운 자기 규율을 지탱한 신체 조직이고, 사춘기 때 아들인 나를 그렇게 좌절하게 만든 모든 것의 원천이고, 아버지가 막강한 힘을 휘두르며 우리의 목적을 결정하던 시절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던 물건인데, 이제 그것은 “주로 우측 소뇌교 뇌각과 뇌교조로 이루어진 구역 안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덩어리” 때문에 쪼그라들고 밀려나고 파괴되고 있었다. - 16

묘지가 적어도 나같은 사람에게 증명하는 것은 죽은 자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버렸다는 사실뿐이다. 그들은 가버렸지만, 우리는, 아직, 가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이며,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도, 이해는 쉽다. - 23

여덟에서 열 시간, 그런 다음에 닷새에서 엿새. 그런 다음에 아버지에게 뭐가 남아 있을까? 궁핍한 유년과 변변찮은 교육 뒤에, 신발 가게와 냉동식품 사업 실패 뒤에, 메트로폴리탄생명의 유대인 할당 정책에도 불구하고 관리자 역할을 맡으려고 안간힘을 쓴 뒤에, 사랑하는 그 많은 사람들 -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형제 모리스, 찰리, 밀턴, 1940년대에는 어린 조카딸 지넷과 어린 조카 데이비드와 사랑하던 처제 에셀- 의 때 이른 죽음 뒤에, 아버지가 앙심을 품지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극복하며 견디어낸 그 모든 일 뒤에, 여덟에서 열 시간의 뇌수술은 정말이지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인가?
답은 그렇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천 퍼센트 그렇다이다 - 이건 정말이지 너무하는 것이었다.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이다. - 135

그럼에도 아버지는, 굳이 말하자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던 시기만큼 의기소침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새로운 시련과 마주해야 했고, 시련과 마주하는 것은 절망을 용납하지 않는 일이었다. 대신 도전과 체념이 섞인 태도를 요구했고, 아버지는 그동안 그런 태도로 노년의 수모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 178

그쪽 아버지는 용감한 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쪽 아버지도요. 내가 말했다. 늙는 건 소풍이 아니에요, 그렇죠? - 198

“내가 거기 있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고, 입이 마비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말은 말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거기 있었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이번에는 격노하여 되풀이했다.
병원에서 내 곁에 있었어야 했다는 뜻이었다. - 276

그 모든 것, 모든 것을 보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는 최대한 아버지한테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아버지의 움푹 파이고 망가진 얼굴에 내 입술을 갖다 대고 간신히 힘을 내 마침내 속살일 수 있었다. “아버지, 보내드릴 수 밖에 없겠어요.” 아버지는 몇 시간째 의식을 잃고 있어 내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충격을 받고 놀라고 울면서 다시, 또다시, 나 자신이 그 말을 믿을 때까지 아버지한테 그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 278

아침에 나는 아버지가 이 책, 내 직업의 꼴사나움에 어울리게, 아버지가 아프고 죽어가던 내내 내가 써오던 이 책을 가리킨 것임을 깨달았다. 꿈은 나에게 내 책이나 내 인생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꿈에서는 내가 영원히 그의 어린 아들로서 살것이라고, 어린 아들의 양심을 갖고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아버지로서 계속 살아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심판하듯이. 어떤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283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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