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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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에서 지는 법에 이어 대리운동?을 위한 책.

오랜 세월 축구 팬으로 살아오던 저자는 문득 나도 뛰고 싶다는 열망에 아마추어 여자 축구팀에 입단하고..... 로 시작되는 유쾌한 에세이다.

여자아이들의 운동을 발야구나 피구로 한정짓는 학교체육의 쓰디쓴 현실부터 동료로서의 할아버지 축구단원의 죽음까지 전세대를 어우르는 소재들이 가득하다.
편안하고 조용한 고독과 대체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는 전형적인 솔로플레이어인 저자가 팀 스포츠를 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도 무척 재밌다.

팀 동료들의 축구 입문 계기가 저자와는 달리 어쩌다보니...라는 것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곧 그 어쩌다보니... 도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자잘한 취미들도 강렬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들은 별로 없고, 동생이 친구가 같이 하자고 꼬득여서 결국엔 모두 나가떨어지고 홀로 꾸준히 하게 된 것들이다 보니 어떤 ‘계기’라는 것이 얼마나 우연히 찾아오는지 절실하게 공감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크게 빵빵 터지는 웃음도 있고, 체육인들의 피땀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운동장이란 것도 결국 작은 세상이라는 걸 깨닫게 하기도 한다.
대리 운동의 역할도 충분하고, 열심히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지금은 피치를 떠나 있는 저자의 팀 동료들도 부상없이 승승장구하길 바라게 되었다. 화이팅들 하세요!!

일상에서 개인이 편견에 맞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건 결국 편견의 가짓수를 줄여 나가는 싸움 아닐까. “여자가 00를 한다고?”라는 문장에서 00에 들어갈 단어의 숫자를 줄이는 것 같은. 나와 우리 팀과 수많은 여자 축구팀 동료들은 저기서 ‘축구’라는 단어 하나를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272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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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발자국 문학과지성 시인선 507
조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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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물살이 만만치 않은
내 앞의 강에다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는다 - 시인의 말 중.

죽음에 초연한 시들.
내 옆에는 나이많은 고양이 둘과 아직 한참 어린 고양이 하나의 발자국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나는 오래
경계에서 살았다

나는 가해자였고
피해자였고
살아간다고 믿었을 땐
죽어가고 있었고
죽었다고 느꼈을 땐
죽지도 못했다

사막이었고 신기루였고
대못에 닿은 방전된 전류였다

이명이 나를 숨 쉬게 했다
환청이 나를 살렸다

아직도
작두날 같은 경계에 있다 - 빛에 닿은 어둠처럼 전문.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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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6-21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하고 구매했어요. 좋은 시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고요. ^^

hellas 2018-06-21 20:27   좋아요 0 | URL
저도 기뻐요:):)
 
마라톤에서 지는 법
조엘 H. 코언 지음, 김민수 옮김 / 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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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라톤을 완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영혼의 동물로 여기는 것이 해변에 너부러진 고래인 작가의 마라톤 도전기다.

심슨 가족의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저자는 아마도 매우 재밌는 사람일 것인데, 그 지점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농담이 초반부터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뭔가 웃겨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사람같았달까.

최후의 순간(마라톤 완주)까지 그런 태도는 변함이 없지만, 왠지 뉴욕마라톤에 참가하고 결국 달리고야 마는 모습에 마지막엔 감동까지 살짝 했다.

농담이 부담이 되었으나, 어쨌든 유쾌하고 웃기고 글맛이 좋은 책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읽을 책으로는 축구에 도전한? 여성의 에세이를 골랐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땀이 어린 책을 읽으며 매우 감화받기는 하지만 정작 나는 운동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반성해야 할까?

내 젖꼭지에 대해 물어본 사람? 흠. 걔들은 잘 있는데, 왜냐하면 아침에 자동차 경주 점검 스태프 수준에 버금가는 헌신으로 기름칠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인류의 상냥함이 나와 내 동료 참가자들을 굽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응원하러 나온 낯선 사람들이 젖꼭지에 바르라며 러너들에게 바셀린을 묻힌 아이스 바 막대기들을 건네고 있었다. 마라톤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행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의 젖꼭지를 걱정하는 그 순간에 전해지는 우주적 하나됨의 느낌에는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 185

이 책의 제목이 <마라톤에서 지는 법>이긴 하지만 이 책의 나머지 부분처럼 책 제목에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마라톤에서 질 도리가 없는 것이, 마라톤을 뛰는 사람은 다 이기기 때문이다. - 207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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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받아 읽은 범죄스릴러.

결말에 다다르기 까지 매우 쫄깃한 스릴이 있는 오랫만의 범죄물이다.

일단 작가가 티비시리즈 범죄물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바로 대본으로 쓰여도 될 정도로 이미지화 하기가 쉬웠다. 그래서 더 두근두근하며 읽었는지 모르겠다.

거대 식품회사와 정치권의 커넥션, 인명사고와 비리를 감추려는 악에 대항하는 큰 힘이랄게 없는 세 남자(외토리형 경찰, 안하무인형 프리랜서 언론인, 열혈남아형 건설현장 인부)의 이야기다.
악에 대항하는 사람이 주인공 셋 뿐인 것은 아니다.
내부고발자 역할도 있고, 그의 친구, 사건에 이래저래 얽혀드는 소시민들 여럿이 어쨌든 정의 구현에 한몫씩은 한다. 그만큼 등장인물도 많고, 인물 마다의 전사를 설명하고 있어 좀 길어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점 역시 작은 선의에 대해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무척 재밌게 읽었지만, 유의미한 여성 캐릭터는 엄마뿐이라는 점은 상당한 감점요인이 되었다.(물론 다 읽고 난 후의.. 감점 요인)

그렇겠지. 하지만 네 사정은 달라져. 내 샘플은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사키 구니오’가 이어받을 거야. 그 ‘사사키 구니오’를 죽여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 ‘사사키 구니오’가 나타날 거고, 마자키가 죽었음을 알고 우리가 ‘사사키 구니오’를 이어받은 것처럼 말이야. 네가 아무리 죽여도 ‘사사키 구니오’는 죽지 않아.
슈지는 조용히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너 ‘사사키 구니오’에게서 달아날 수 없어.- 400, 하.

당신이 나카사코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 밤에 본 선로 동결 방지용 임시 열차도.
눈이 내리는 날 한밤중에 선로가 얼지 않도록 달리는 열차.
모든 역을 통과해 그저 달리기 위해서만 달리는 열차.
그걸 쫓아서 달려간 당신 기분을 어쩐지 알 것 같아.
눈부실 만큼 환한 빛을 발하며 무인 열차가 눈이 내리는 언덕을 올라가.
그 열차는 우리가 아직 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갈 거라고 했다며, 나카사코 씨가 가르쳐줬어. - 534, 하.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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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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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정영목의 에세이.

본격 번역에 관한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세상 모든 일이 번역인지도 모른다(15)는 어느 번역가의 말처럼, 전혀 생소한 언어로 그 생소한 문화에 뿌리가 있는 이야기를 모국의 언어로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번역하는 일이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번역가이기도 한 정영목 선생의 글이어서도 그렇지만, 읽다보면 번역가라는 정체성으로 체화한 윤리와 인생관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책과는 관계없는 얘기가 되겠지만, 얼마전 영화계에서는 모 번역가의 엉망진창 번역을 문제삼아 청와대 청원까지 하는 일이 있었는데, 오죽했으면 그런 청원을...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 사실이다. (물론 청와대 청원의 안녕하세요 화에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오역으로 말미암아 영화 한편이 엉망이 되는 문제도 문제지만, 개인의 무책임한 번역이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게 하는 것은 번역가의 윤리에도 어긋나는게 아닐까.
책을 읽고나니 더더욱 드는 생각이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행위, 그것도 상당히 깊은 수준에서 상대하는 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번역에는 번역가가 한 인간으로서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 77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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