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민음의 시 247
이상협 지음 / 민음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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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인듯 대답이고, 부정인듯 긍정이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가르키고 있는 시들.


꽃은 막다르고
매번 붉고

무수한 조울의 끝장을
바람은 흔든다
새겨 둔다
잊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모자란 햇빛을 쥐어짜며
한 잎 두 잎
흔들리는 진료 기록부

치매 노인의 유서처럼 나무는
자신이 기억날 때마다 손등을 붉게 긋는다
달에서 펄럭이는 깃발처럼 몸을 뒤튼다
4월에 버릴 것은
힘이며 힘겨움이야

꽃이 죽지 않고 열매가 달린다
잎사귀 시푸른 채로 겨울이 왔다
백야의 질린 해처럼
반가운 청첩장을 받았다 - 불편한 꽃(전문)

세 시엔 읽지 않을 책을 주문한다 그걸 다 읽기로 한다 - 저절로 하루 중

귀신과 사람을 왕복하며 그들은
품에서 자라지 못한 자신을 꺼내었다 그걸
간판처럼 목에 내걸고 밀려다녔다
누적된 슬픔들이 서로를 당겼지만
각자 앓아야 하는 일이었다 - 기록 중

시작하기도 전에 슬픈 일은 많아서
네가 나를 앞질러 걷는 저녁
우리가 낳지 않은 아이들이 해변에서 모래 사람을 만든다 - 곡예사 중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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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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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누가 너를 죽이려고 하는데 넌 알고 있는줄 알았지....라는 변명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다지 웃기지 않는 촌극같은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막판에 고어물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

사실 남미문학을 대표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다,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남성우월주의 “마치스모”가 이전에 남미문학을 접할 때보다 더더욱 불편하기에...

앙헬라 비까리오의 숨겨진 연인으로 지목된 산띠아고 나사르는 변론 한번 못한채 개죽음을 당하는데 끝내 그가 결백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바야르도 산 로만은 결혼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팔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서 집을 구매한다. 타인의 삶에 연민이나 이해가 없는 그는 대체 뭐하는 놈인가 싶은데도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로 그려지고..... 아....ㅡ.ㅡ

대체 어느 부분을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처녀가 아니어서 첫날 밤 소박맞고 비밀의 연인을 밝혀 산띠아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앙헬라가 그렇게 불행한 모습이 아닌 오히려 더 그녀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분일까.
그러나 자신만이 원하는 그것은 상대에게 채 가닿지도 못하고 되돌아오게 된다는 점. (차라리 그것이 더 낫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자신을 내친 이를 위해 다시 처녀가 되어간다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설명이다.

죽음을 기대하는 집단 무의식이나, 명예를 위한 살인 같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내게는 조금 핀트가 맞지 않는 이미지로 느껴졌다.
가해와 피해가 불분명한 죽음과 삶이 있고, 죽음도 관계의 단절도 합당하다 여겨지지 않는 우연과 우연들이 모여 연대기가 되었다.

그녀는 명석하고, 오만하고, 자유 의지를 가진 여자가 되었고, 그 사람만을 위해 다시 처녀가 되어 갔으며, 자기 자신의 권위만을 인정했고, 자신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119

“얘, 산띠아고야! 무슨 일이 있었니?”
산띠아고 나사르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나를 죽여 버렸어요, 웨네 아주머니.”
그는 마지막 계단에서 넘어졌지만 즉시 일어섰다. “자기 창자에 묻은 흙을 털어 내는 조심성까지 있더라.” 웨네 프리다 이모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오전 6시 부터 열려 있던 뒷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서 부엌 바닥에 엎어졌다. - 154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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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전복의 서 읻다 프로젝트 괄호시리즈 8
에드몽 자베스 지음, 최성웅 옮김 / 읻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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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이란 문체의 운동 자체다. 죽음의 운동이다.
글은 거울이 아니다. 쓰기란, 미지의 얼굴을 맞닥뜨리는 행위다.
분별없는 바다이기에, 한차례 파도로는 죽을 수 없다. - 7

그 누가 모든 책의 독서가 제거하려은 금지의 독서를 장려할 수 있겠는가?
그에 앞서 침묵에서 침묵으로, 단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자만이 유일하리라.
그러면 스스로 부재를 분리해내려는 무한한 거리에서부터 피치 못할 방기에 이르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독서를 행하리라. - 56

그가 말했다. “나는 자리 없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연고 없이 존재한다”라고들 말하리라.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그럼에도 모든 말은 자신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 98

삶을 위한 언어가 있듯이 죽음을 위한 언어가 있음을 깨달았다는 에드몽 자베스.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한 에드몽 자베스.
질문에 질문, 긍정에 부정.....
아 잘 모르겠네....
마음이 동하면 다시 한번 읽어보기로.:)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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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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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작가의 유쾌함만을 기억하고 산 책인데,

대학내일에 기고하던 상담 칼럼인지라 연령대의 오차범위가 너무 컸다.

나이를 떠나 읽어도 상관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좀 시큰둥하게 읽어버렸다.

친절과 오지랖의 차이를 고민하는 이에게 해준 답이 마음에 남아 남겨본다.

핵심은 이겁니다. 상대가 원하는 선까지만, 도움을 줄 것. 상대가 원할 때까지만, 함께 있어줄 것. 상대가 원하는 만큼만, 대화할 것. 더 어렵네요. 상대가 도대체 ‘어디까지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어려우니까요. 맞아요. 사실은 이게 핵심이에요. 그래서 친절은 ‘눈치’가 필요한 것이에요. 친절은 내가 주고 싶은 대로 베푸는게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만큼만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내 기분이 아니라,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것. 사실 이게 친절의 8할이에요. 그래서 친절에는 깊은 배려가 필요한 겁니다. - 158, 친절과 오지랖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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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스 스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5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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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밀린 해리 홀레 시리즈 읽기.

애초에 발표 순서로 출간되지 않아서, 선후가 애매해졌지만, 그래도 읽는데 지장은 없다.

요 네스뵈의 작품 분위기랄까.

지치고 허무주의에 빠진 듯한 해리가 사건에 집착하고 결국 정의로운 결정을 하는 것은 어떤 위안을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울함이 깔려있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스타일인지도.

그 점이 좋기도 하다.

유럽의 역사같은 배경없이 무턱대고 연쇄 살인을 하는 범죄자라서 조금 쉽게 읽히기도 하고, 조금 싱겁기도 하다.

계절적 배경으로 노르웨이의 열대야가 계속 언급되는데, 훗... 니들의 열대야 정도. 여기 와보라고 라는 심정이 된다.

근처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파키스탄 놈들을 조사해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끼 손가락을 귓속에 넣어 돌리며 경관이 말했다.
홰 하필 그들을 조사해야 한다는 거지? 해리가 물었다.
마침내 경관은 해리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범죄 통계도 안 보셨습니까, 반장님? 그는 특히 마지막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당연히 봤지.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상점 주인은 그 목록의 한참 아래쪽에 있어서 말이야. 해리가 말했다.
경관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내려다 보았다.
제가 이슬람교도에 대해 좀 아는데 아마 반장님도 아실 겁니다. 그놈들에게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는 강간해달라고 사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런 여자들을 강간하는 건 의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요.
그래?
놈들의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죠.
이슬람교를 기독교와 착각한 거 같군. - 105

마침 위의 내용이 시의 적절하고 왠지 팩트폭격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그를 답습하기만 하는 게으름, 무지 등등은 충분히 생각하고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다. 이제와서... 라는 늦은 감이 있지만.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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