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프랑수아 아르마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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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에게 묻는다. 무인도에 간다면 가지고 갈 책 세권은?
이라는 책.

세권은 너무 적지만, 일단 성경과 셰익스피어전집은 제외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럼에도 너무 많은 작가들이 그 두 책을 원한다. 그리고 질문의 전제의 비인간적임을 구지 언급하며 세권 이상 고르는 작가가 부지기수다. 하여간 고집쟁이들 ㅋㅋㅋㅋ

대충 떠올려도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성경이다. 그리고 돈키호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수상록,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천일야화, 율리시스, 모비딕, 윌리엄 포크너, 발자크 등등등

그 외에도 정말 읽어보고 싶던 책이나 정말 재밌게 읽은 책들을 작가들의 언급을 통해 확인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인정욕구인가?

읽다보면 나도 그 책들이 너무나도 읽고 싶어지는 것. 가장 많이 언급된 것들 중 읽은 것은 안나 카레니나 뿐. 멀었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무한대의 시간을 상정하고 고른 책들이라 대체적으로 볼륨이 있는데, 나라도 무인도에 고립이라면 아마 저 책들을 고르지 않을까 싶다.

종교적인 어떤 의지와 기대도 없으나, 성경, 불경 등은 언제고 꼭 접해보고 싶은 책이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시도한 적이 있으나 안 읽는 책 처분 할때 1,2 권을 처분하고 언제고 마음에 드는 판본이 나오면 다시 사야지 하고 있음)

그러나 높은 확률로 무인도에 고립될 일이 없을 것이고, 아마도 그렇다면 언제고 읽을 것이다라는 각오만 다질 뿐 읽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으니까.

그래도 돈키호테, 수상록, 전쟁과 평화 등등은 책장에서 대기 중이다.

이런 설문을 한국 작가들에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재밌을 것도 같고, 판에 박힌 말들을 할 것도 같고.
아니면 무인도 말고(무인도는 선정기준에서 볼륨의 무게를 이기기 힘들어 보이므로) 기상악화로 인한 항공편 결항으로 별로 할 것 없는 시골 소도시에 일주일 고립시 읽고 싶은 책이라던가....

인생은 기나긴 병상에 불과했으나, 영혼은 지상의 온갖 장애를 뛰어넘어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던 작가의 사유들을 조금씩 맛보는 것보다 고독한 난파 생활에 더 위안이 될 만한게 있을까? - 37, 존 밴빌

어쩜... 책 골라달라는데도 존 밴빌 스럽게 말하다니...라고 느껴져서 남겨보는 구절. ㅋㅋㅋ

그 섬은 몇 주 머무를 수 있도록 설비가 잘 갖춰진 별장이 있는 관광지 무인도인가, 아니면 어떤 폭군이 우리를 없애버리려다 못해 완전히 유폐시킨 징벌적인 섬인가? 오랫동안 있어야 한다면, 대작인 데다 굉장히 복잡하며 가능하다면 읽는 김에 언어 공부도 할 수 있도록 두 개 국어로 된 책이 필요하다. - 52, 미셸 뷔토르

아무 백과사전이나 세 권, 아예 세 권짜리 백과사전이면 더 좋다. 시보다는 그게 낫다. 기억하고 있다면 시집을 굳이 가져갈 필요가 없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시들이기 때문이다. - 54, 안토니오 카발레로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해변에서 야자나무 아래 앉아 세월을 보내면서도, 이토록 적은 분량 안에 담길 수 있는 모든 인생과 아름다움과 고통과 미스터리를 여전히 겪을 수 있다면 위안이 될 것이다. - 63, 마이클 커닝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돈키호테>, 프루스트 전집,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을 가져가겠다. 규칙 위반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그러니까 내가 왜 그렇게 유배되어야 하는지, 그 섬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어야 하는지, 우리 가족은 내 행방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중이니...... - 79, 루이스 어드리크

물론, 물론 그렇다. 독서에서 정말 현실적인 괴로움과 열정, 즐거움을 느꼈고, 독소로 인해 삶과 시야가 한층 확장하는 것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근본적으로 진정한 소설은 결국 단 한 권 존재한다는 말은 자명하며, 나아가 클리셰이기까지 하다. 그 소설이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프루스트는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창조했으며 그 세계와 더불어 지금껏 제작된 가장 위대한 모든 형태가 혼합된 예술 작품을 창조했다. 우리는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도, 조각조각 읽을 수도, 작은 파편들로 읽을 수도 있다. 독서 방식이 어떠하든 이 작품은 가장 산만한 독자에게도 그 경이들을 드러내며, 평생을 무인도에서 보내는 동안 내게 양분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 96, 로버트 굴릭

나는 설문조사에는 절대 답하지 않는다. - 108, 미셸 우엘벡

하지만 내겐 이 책들을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무인도에서 나는 빠져 죽기 위해 헤엄치는 법을 잊어버리려 애쓰기에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 없는 곳도 싫고 섬도 싫다. - 113, 레지스 조프레

몽테뉴의 <수상록>, 쇼펜하우어의 <의자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런 식으로 나는 몽테뉴와 더불어 재구성되고 쇼펜하우어와 더불어 해체될 수 있을 것이다. 무한하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 206, 윌 셀프

<돈키호테>, <신곡>, <복음서>를 가져가겠다. 아니, 나의 친애하는 페소아의 책은 사양이다. 그 셀 수 없는 이본들 때문에 뱃길이 막히고 섬이 너무 붐빌 테니까. - 222, 안토니오 타부키

타부키가 페소아를 고르지 않다니.....라는 충격에 남겨 보는 구절. ㅋㅋㅋㅋ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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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안송이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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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괜찮아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

그녀가 지금은 훨씬 괜찮아져 있기를 바란다.

인생의 어떤 일을 지나가도록 만들기 위한 저자의 글쓰기를 책으로 엮었는데, 이런 몹시 개인적인 일기를 읽게 될 줄 예상을 못했기 때문인지 딱히 어떤 감상이라기 보다는 어찌저찌 알게 된 지인의 고민을 들은 기분이 되었다.

원하는 분위기의 글은 아니었으나, 여러모로 나는 괜찮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 한참 더 멀었나 싶은 기분이다가도, 이 정도면 뭐...라고 생각하다가도.
어쨌든 나는 아직도 괜찮지는 않은 기분이다.

관계 구축 방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니 저자와 견해가 같았다. 먹는것을 나누는것 그게 나의 관계 구축 방식인 듯.

영화로도 나왔던 소설 <디 아워스>에서 클라리사는 아름다웠던 어느 날을 회상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때 아 이게 행복의 시작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시작이 아니었어. 행복이었어. 순간이었다고.” 나는 지금 그 순간에 있다. 행복하다. - 102

‘이런 계속 투덜거렸네, 그게 폴란드인들이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란다. 이해해주렴.’ 그럼요 투덜거리는 거라면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헨릭에게 러시아의 관계 구축 방식은 뭐냐고 물으니, ‘함께 고통받는 것’이라고 했다. 헨릭은 한국 방식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 생각에는 같이 음식을 나누는게 아닐까 싶다. - 318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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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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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 책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읽었는데,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이어, 며칠 전 부고를 듣게 되었다.

어른다운 어른이면서도 위트있는 분, 좋은 글 남겨주신 분.

부디 평안하시기를...

책장에 남아 있던 아직 안 읽은 책을 꺼내 읽는다. 하필 시에 대한 이야기 시의 무정함에 대한 이야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여서 마음이 아렸다.

억압의 저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삶은 없다. 또 다른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물질이 이 까다로운 생명을 왜 얻어야 했으며, 그 생명에 마음과 정신이 왜 깃들었겠는가. 예술가의, 특히 시인의 공들인 작업은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의 사치는 저 세상에서 살게 될 삶의 맛보기다. 그 괴팍하고 처절한 작업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이 분주한 달음박질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기를 두려워하는 지쳐빠진 마음이다. - 30

시간이 흘러가며 잠시 만들어 놓았던 것에 그는 끊임없이 이름을 붙인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이 그 모든 이름을 휩쓸어갈 것이다. - 69

산문은 이 세계를 쓸고 닦고 수선한다. 그렇게 이 세계를 모시고 저 세계로 간다. 그것은 시의 방법이 아니다. 시가 보기에 쓸고 닦아야 할 삶이 이 세상에는 없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 271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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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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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반려와 함께 독립군에 가담하고, 남편이 죽어 삶의 터전을 등지고,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며 부조리에 저항하는 강주룡의 일대기는 우리 역사 안에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인데 그럼에도 읽는 내내 뱃속이 일렁거렸다.

정해진 결말을 향하는 강주룡을 보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나, 이 책에서 다시 태어나 생명을 얻은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감동을 준다.

거센 변화의 물결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을 때도 그녀의 마음속 불꽃을 알아보는 동지들이 있어 기뻤달까.

고공농성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마음이 무겁고 무거웠다.

모든 것이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게 보인다. 작고 우습다. 무엇에 그토록 성이 났었는가도 잊힐 만큼 만사만물이 멀게 느껴진다.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면 나 또한 그렇게 작아지겠지. 다시 사소한 것에 화가 나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그 좋은 서방 생각도 나지 않는다. 주룡은 그것이 외로움인 줄도 모르고 외로움을 곱씹는다. 오래 골몰할 수는 없는 생각이다. - 33

왜 울고 그러시오. 내가 잘못했습니다. 울지 마십시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달헌을 등지고 옷고름으로 눈을 가린 채 주룡은 답한다.
운다고 우습게 보지 마시라요. 내 말로 달헌 씨 이길 수가 없어서 분해서 우는 거이지 다른 뜻 없습네다.
우습지 않습니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당신 아주 탁월한 사람입니다.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본때를 보여주시오. 나 따위 것 우습게 여겨버리시오. 알겠소?
여전히 달헌을 등진 채로 주룡은 고개를 끄덕인다. - 210

해가 동쪽으로 기울어 주룡은 광목천을 타고 을밀대 누대에서 내려온다. 달헌은 감은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 광경을 본다.
거기서부터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달빛이 흰 광목을 훑는다. 그 빛나는 줄을 잡고 지붕 위로 올라가려는 주룡은 마치 선녀 같다. 달헌은 그 아름다운 광경을 감히 해칠까 봐 잠시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을 건덴다. 올라가지 말아요. 거기 올라가면 죽게 됩니다.
주룡은 답한다. 알고 있다고.
달헌은 제 머릿속에서조차 말을 듣지 않는 그 여자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빛나는 광목을 주룡은 단단히 붙든다. 사실은 두려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면서.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어서 활활 불타고 있으면서.
지분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사람이 있다. - 242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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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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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와 분위기가 겹치는 단편집.

조금은 불투명하고, 고민스럽지만, 따뜻하고 조용한 그런 분위기.

작가가 지나온 유년의 기억들이 담겨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래서 약간 숫기없는 청년의 이미지인지도...
그들이 온전히 자신의 자리를 찾기를 바라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다들 그렇게 혼자 서 있는 게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차라리 그게 좋아. 그렇게 서 있는 거지. 몇 시간이고 앞을 보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지나야 삶이라는 걸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요즘 해. 지나가기를 바라는 시간이 많았어. - 154, 모래로 지은 집 중

화학에 대해 풀어 설명하면서 내가 왜 처음 화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변형될 뿐, 산화되어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물질은 아주 작은 부분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 과학적 사실은 어린 나에게 세상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다정하게 다가왔었다. - 161, 모래로 지은 집 중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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