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 부클래식 Boo Classics 21
케이트 쇼팬 지음, 홍덕선.강하나 옮김 / 부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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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 이라고 붙은 제목은 원제가 <각성>이고, 출판 전 제목은 <고독한 영혼>이었다.
아무래도 이 이야기의 제목은 <각성>이 어울린다.

표지도 뭐 이런... 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수긍도 된다.

인종과 혼혈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제외하면, 1800년대 말에 나온 이 소설은 매우 선구적이다.

에드나 퐁텔리에의 남편 퐁텔리에 씨는 자신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비해, 걸맞는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아내에게) 생각한다.
‘결혼이야 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슬픈 광경’이라 말하는 아내를 ‘다루는’방법으로 권위, 강압, 철저하게 단호한 태도라고 여긴다.
경제권이 없는 여성이 당연했던 시대에 기혼 여성의 심리를 매우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다.
거대한 바다에 작은 존재인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수영을 적극적으로 배우는 에드나, 거추장스러운 모성을 불편해 하는 에드나, 수천가지 감정의 격류에 온몸을 맡기는 에드나.
결국 에드나가 마련한 보잘 것 없는 작은 방은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만을 위한 은신처, 고요함과 안온함을 주는 자기만의 방.

대다수의 여성이 인생의 일부분만 알고 지내는 시절에 케이트 쇼팽은 에드나를 통해 발언한다.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들여다 보라고, 자신을 확립하라고, 그 사고의 확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계속 말하라고 말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도 전혀 생소하지 않은 생각들을 그 당시에도 이야기 하고 있었다는 점이 의미있다.
의미있고, 아직도 이 생각들을 말해야 한다는 부분에선 허무하다.

선구적인 페미니즘 문학들이 생각보다 많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그것도 슬프다.


알수 없는 어떤 한 줄기 빛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슴푸레 비쳐오기 시작했다. 길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로막기도 하는 그런 빛이.
처음에 그녀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마음속 그 빛은 그녀를 꿈꾸게 했고,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며, 눈물로 범벅이 되었던 그날 밤 자신을 짓눌렀던 바로 그 아련한 고뇌로 빠져들게 했다.
한마디로, 퐁텔리에 부인은 한 인간으로서 이 우주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자기의 내면세계와 주변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스물여덟 젊을 여자의 마음에 파장을 을으킨 이러한 ‘깨달음’은 대단히 무거운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아마도 성령이 뭇 여인들에게 내려주는 지혜보다 더 큰 것이리라.
하지만 어떤 것의 시작, 특히 세상이 처음 열릴 때는 모든 것이 분명치 않고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게 당연하다. 우리 중 몇이나 그런 혼란스런 시작에서 빠져 나왔겠는가!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그런 소란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가! - 31

저는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 있어요. 돈도 내어 줄 수 있고, 자식들을 위해 내 목숨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본연의 나 자신은 절대 버릴 수 없어요. 요즘에 와서야 비로소 이런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고, 이제 막 서서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인지 좀 더 명확하게 설명을 못하겠네요. - 103

퐁텔리에 씨는 종종 아내가 정신적으로 점점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는 아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남편은 아내가 조금씩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마치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 위해 입는 옷과 같은 허구적인 자아를 매일 하나씩 벗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 123

당신은 정말, 정말이지 어리석은 어린애였군요. 당신이 퐁텔리에 씨에게 나를 놓아 달라고 말하는, 그런 말도 안되는 것들을 꿈꾸느라 시간을 허비했다니요! 난 더 이상 퐁텔리에 씨가 처분할지 말지 하는 소유물이 아니에요. 난 내가 선택한 대로, 내 갈 길을 가는 거예요. 만약에 남편이 ‘여기 있네, 로버트. 아내를 데리고 가서 행복하게 살게. 에드나는 자네 거야.’라고 말한다면 난 당신들 모두를 비웃을 거예요. - 234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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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었다. 미스터리 스릴러이면서 정통 스타일의 탐정물이면서 성장 소설이라 할 만하다.
유사 부자의 관계인 판사와 그의 서기가 마녀재판을 하기 위해 초기 미국의 개척정착지를 배경으로 으스스한 일들이 벌어진다.
음침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읽는 내내 매우 쫄깃하다.
부와 가난, 계급과 인종에 대한 이야기도 중심에 놓여있다.
다만, 마녀로 지목된 레이첼 호워스라는 여인이 의연한 현명함을 지녔다는 점 외에 딱히 눈에 띠는 어떤 행위를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달까.

매우 긴 이야기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는 중심이 잘 잡혀있다.

관찰하는 자세는 훌륭한 영혼을 가졌다는 표지라네. 그 특질을 잘 연마하게. 하지만 응용할 때는 너무 직접적으로 하지 말고 은밀하게 하게나. - 109

가끔씩 매튜는 분노와 잔인함으로 가득 찬 이 세속적인 세상을 정말로 신이 다스리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처 입고 무능한 주님의 피조물들에게 신부가 여호와의 자비를 대여섯 시간씩 구걸하는 엄숙한 안식일의 미사에 참석하면 매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가도 부르고 상투적인 말도 늘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튜는 살면서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거의 보지 못한 반면 사탄의 흔적은 수도 없이 보았다. - 158

물론 넌 생각이 있겠지. 안 그러냐? 너는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대해 생각이 있잖느냐.
제가 모든 것들의 이유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렬하다는 말씀이라면, 그렇습니다.
모든 것들의 이유라.
우드워드가 되뇌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한 여운이 있었다.
모든 것들의 이유를 아는 것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매튜. - 297

그는 이전에는 한번도 이런 천성을 가진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혹은 이런 지성과 열정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레이첼의 아름다움과 독립심 때문에 사람들이 그녀를 마녀로 지목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괴로웠다. 매튜가 지금까지 관찰할 바로는, 사람들은 욕망의 대상을 붙잡거나 정복하지 못하면 그것을 바라는 만큼 파괴하려 애를 쓰곤 한다. - 529

매튜는 만일 사랑이 누군가를 소유하고픈 욕망이라면, 그것은 자기애의 불쌍한 실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매튜에게있어 더 위대하고 더 진실한 사랑은 새장의 문을 열어주는 것, 고통스러운 부당함의 창살을 열고, 밤의 새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었다. - 221

곧 회복될 거예요. 다들 그렇게 살아요. 그래야 하니까.
다들 그렇게 살죠.
매튜가 조롱 어린 목소리로 씁쓸하게 되뇌었다.
아, 그래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요. 절름거리는 정신과 무너진 이상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요. 그리고 해가 갈수록 무엇이 자신을 절름거리게 하고 무너뜨렸는지를 잊어버려요. 사람들은 점점 늙어가면서 그걸 그냥 당당하게 받아들이죠. 마치 절름거리고 무너지는 것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선물인 것처럼. 그러고는 한때 그들이 가졌던 희망 어린 정신과 거대한 이상을 품은 젊은 영혼들을 어린 바보로 여기는 거죠...... 모든 것은 절름거리고 무너져 내려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니까요. - 359

2018. aug-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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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성 없는 소립자들
전경린 지음 / 섬앤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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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야지 하고 골랐는데, 많은 생각을 불러들인 산문집이다.

이디스 워튼이 초반에 언급되어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아무래도 읽는 행위는 사슬같아서 읽다보면 연결되고 연결된다는 것이 매력적이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
글 중 소개된 허연 시인의 <칠월>이라는 시가 너무 좋아서 연결의 사슬로 시집 한권을 사들였다.

다 읽지 않은 채로 여럿에게 이 책을 권했다.

그러니 새로움이란 얼마나 아픈 것인가. 또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기 위해 우리는 늘 깎이고 잘리고 생채기가 나고 자기 상실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동시에 새로워지는 중인 것이다. - 작가의 말 중.

미국 여성 작가 이디스 워튼은 삼십 세 이후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이십 세기를 바라보는 작가로서 직면했던 도전의 일부였다고 말했습니다. 작가가 된 이후 나 역시 그런 도전 의식을 가졌으며, 여성의 내면적 역사에 관심을 가져왔어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시대와 여성적 삶의 구조 속에서 여성의 상황을 살며, 여성의 역할을 하고 여성으로서 대응하고 여성적 고뇌를 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죠. - 17

잔인한 봄인 줄 알면서도, 다시 움직이기 위해, 밭을 갈아엎고 욕망을 깨워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욕망이 아니고서는 이 잔인한 삶의 중력을 이기고 다시 가벼워질 방법이 없다. 욕망이란 다름 아닌 자기 안의 능동성이다. - 21

너의 정서에 맞게 결정하렴. 네 인생의 흐름에 맞게, 모든 관계는 예속을 가져오거든. 네가 얻는 만큼 그것에 대해 기여해야 하는 거야. 네가 가진 타인에 대한 용량은 얼마일까. 타인에 대한 너의 의존도는? 타인과의 적정한 간격은? 타인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탐닉이지. 타인이라는 존재도 알코올이나 도넛만큼 달콤하고 위협적이고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큰 받아야 하는 갈등을 가져오는 민감한 사안이거든. 더 많은 관계를 갖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중요한 건 삶에 대해 갖는 자기만의 독특한 체계가 아닐까. 난 삶의 형태에 관해 우리가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도. - 65

시간은 찬란하던 기쁨의 빛도 사위게 한다. 삶이 낯선 여자의 생애처럼 점점 객관화되는 기분이다. 그 상실감은 나를 평화롭게 한다. 이젠 좀체 흥분할 일 같은 건 없을 것만 같다. - 96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곳이 저곳인지 알지 못하고 내가 당신인 것을 알지 못하고, 어제가 내일인 것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모래 구멍 집에서 사력을 다해 달아났던 사내는 다시 그 구멍속으로 돌아온다. 삶이란 게 늘 미봉책일 뿐 이렇게도 방법이 없다. - 190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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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패티 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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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드를 통해 구입한 책이다.
출판 시장의 성장과 다양화를 위해 적극 지지 할 만한 방식이라 여겨진다. 종종 관심있는 책에 펀딩을 하는 것도 재밌겠다. 아마도 초기에 참여해서인지 책에 이름도 작게 실렸다. (자랑입니다)

앞 뒤로 에세이가 있고 중간에 소설이 하나 있는 형식이다.
뮤지션이자 작가이자, 시각예술가, 공연예술가인 저자. 다재다능이라는 말에 내가 느끼고 있는 어떤 감정이 있는데, 아마도 다재하나 다능한지는 잘 모르겠다?는 점.

헌신이라는 소설은 좋다할 수 없는 어떤 점이 있기에- 어린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부분이다.- 기대 이하가 되어 버렸다.


침묵. 지나치는 자동차들. 덜컹거리는 지하철. 새벽을 부르짖는 새들. 집에 가고 싶어, 나는. 칭얼거린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집에 와 있다. - 49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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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4
차오위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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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의 희곡.

중국의 근대라는 시절을 생각하다보니, 현대의 중국과 경제력, 세계 속의 위치등을 제외하면 과연 무엇이 달라진걸까 싶다.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다. 온갖 불행과 부정이 작품안에 존재하지만, 그런 막장이라는 것은 문학이 피해갈 수 없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뭐 이런... 이라는 생각에 앞서 이미 서양의 고전들도, 아니 현대의 문학들도 온갖 막장 소재를 다루고 있으니까.

자본가 집안과 노동자 집안에 얽힌 가문의 비밀과 사랑 죽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하나의 피를 물려받은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그 안에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을 보여주는 이가 자본가의 아내 조우판이다. 구식 중국여인이고, 시문을 좋아하지만 야성적인 욕망이 들끓는 사람. 아마도 작가가 가장 공들여 만든 인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줄리엣인 루쓰펑, 그의 속물적이고 봉건적이며 가부장적 아버지, 슬픔의 역사를 가슴에 품은 어머니, 혁명적 노동자의 현신이 오빠. 로미오 조우핑, 역시 속물적이고 봉건적이며 가부장적 자본가 아버지, 역시 슬픔을 품은 어머니, 순수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동생 조우충.

작가 스스로 평하길 근본적 기쁨과 원시적 생명감을 다뤘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고 읽는다면 편리하게 이 작품을 흡수 할 수 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을 이런 저런 트랩에 넣어 뒤흔드는 이야기라고.
다만 서막과 미성을 넣은 구성은 딱히 신선함 없는 과거의 유물같았다.

이 작품은 나에게나 생경했지 이미 1940년대에 국내에서 공연되었고, 걸출한 연출가들의 손을 거쳤다니, 꽤나 역사안에 확실한 위치가 있는 작품이라 느꼈다. 그리고 작품 해설안에 그 이윤택도 언급이 되어 있어, 새삼 그가 가졌던 “권력”의 힘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동떨어진 얘기지만 이윤택은 꼭 죄만큼 값을 치루길 바란다.)

어쨌든 재밌게 읽은 중국 근대 희곡은, 지나가고 있는 이 여름 태풍 후 몰려온 ‘뇌우’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다.

얘야, 이 어미한테 딸이라곤 너 하나뿐이다. 내 딸은 이 엠처럼 살아선 안 돼. 사람 마음이란 믿을 수가 없는거야. 사람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너무 나약해서 쉽게 변한다는 거지. - 189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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