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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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아웃 시리즈. 최은영 작가의 <몫>.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거나, 아는척 잘난척, 뭐라도 되는척 하지 않는 작가이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딱 떨어지게 어울리는 단편이다.

주요 3 인물은 매우 비어있는 캐릭터라고 느껴졌다. 부실하다는 의미가 아닌 의도적으로 색채를 지운 듯 생략되있는 부분이 그랬다.
사회가 돌아보기 불편해 하는 것들에 대해 분노라는 감정이 동력이 되어 삶을 던지는 여성의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는 하지만, 지켜보는 일 자체가 버겁다.
생략된 그들의 삶의 틈새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그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물 한 살의 당신은 화가 났다. 여자가 맞아서라도 가족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가족주의에, 살려달라고 공권력의 보호를 청했던 수많은 여자들이 결국 살해당해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당신은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깨어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는 배출될 수 없는 독처럼 하루하루 당신 몸에 쌓였다. 당신은 당신의 분노가 무엇하나 바꾸지 못하고, 그저 당신 자신의 행복을 깨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들을 대할 때, 심지어 당신 자신을 대할 때 당신은 예전보다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됐다. 짜증을 쉽게 냈고, 작은 일에도 화를 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서 자기 분노 속에 갇혔을 뿐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다. 그건 당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 본문 중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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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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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la casa de papel, 종이로 지은집?인가보다.

책을 열정적으로 읽고, 분석하고, 모으고, 또 찾아다니는 그야말로 책 덕후인데, 어느 순간 적정선을 넘어 집착이 되어버리는 이야기.
소유한다라는 것의 가장 부정적 극한의 지점이 소유하고 파괴한다가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지점까지 가지않게 스스로의 소유욕을 잘 달래고 어루만져 아름다울수 있는 지점에 멈춰있게 하는 것이 이성적인 사람이 할일.

우루과이 정부가 장서를 사들여 분실, 손상하는 일이 잦았다. -52

책을 물리적으로 망가뜨리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가지 역사 속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전 브라질 박물관 전소라는 비극도 떠오르고.
그저 모아둔 유물과 유산들을 지켜낼 수조차 없었던 정부의 무능함이 혼돈의 남미? 여서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알게 모르게 선진을 자처하는 여러나라들에서도 무지와 방관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 것이다.

철저하게 독자의 입장을 견지하던 애서가 브라우어씨이기 때문에 가능한 파국일까? 델가도씨는 그 ‘위험한 책’들에게서 안전한 애서가일까? 이미 조용한 파국을 맞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모습에서 알콜 중독자들이 중독자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한 인상을 받았다.

장서들의 힘에 사로잡혀 책 분류의 카오스 속에 살고 식사도 취침도 같이 하는 행동까지 보이는 부라우어는 결국 시멘트 속에 책들을 부어넣고 집을 짓는다.... 라니, 망상과 비극의 완벽한 콜라보다.

그래서 결국 또 한번 집을 파괴하고 책의 집에서 벗어난 그는 어디로 향했을까?

구지 그것이 궁금해서라기 보단 이런 의문으로 끝나는 이야기라서 남기는 질문이다.

책 한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 17

이렇게 손쓸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그는 한동안 도서목록을 새로 정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찾는 책들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일은 자주 벌어졌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찾을 수 없는 책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 53

우리는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우리를 영원히 파괴시켜버릴 수 있는 지극히 실재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입에 올리기를 피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모면할 수 있다는 헛된 상상을 합니다. - 66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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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읽어본다
장으뜸.강윤정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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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시점엔 두 저자를 몰랐고, 아는 저자 순으로 읽어본다 시리즈를 읽다보니 가장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 사이 나 혼자 저자분들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있다.
sns에서 이리 저리 얽혀 있고 뭐 그랬다는 별 거 아닌 사실들인데, 그래서인가 또 나는 괜한 일방적 친밀감을 느끼며 그들의 독서를 훔쳐보았다.

그림책, 그래픽노블은 잘 안읽어서 그것들을 제외하고는 겹치는 부분이 많은 독서.

더불어 몇권의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일종의 ‘득템’.

이 시리즈는 이렇게 끝난 걸까? 새로운 저자들을 섭외하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적극적으로 출판사에 문의해본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참 유익한 시리즈다. 타인의 독서 은근히 궁금하니까.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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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옐로 문학동네 시인선 106
장이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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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확률의 세계로만 존재” 한다는 시의 운명론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시인.

무척 좋았다.

여담이지만 2014년인가 2015년인가 백담사에서 신경림 선생님으리 뵌 적이 있다. 저 ‘준열한 꾸짖음’에 대해 내가 항의 비슷한 것을 해보았다. 선생님은 기억을 못 하신다고 하셨다. 당신께 원한을 품고 시인이 된 이들이 많다고 덧붙여 주셔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 120

하늘은 또
알타이어족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 없는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노란빛이 되어
내 방의 창문을 물들이고
나는 다시 뾰족하게 성을 내는 아이가 되겠지
벼락이거나, 장대비겠지 - 레몬옐로 중

노랑이가 거뭉이를 낳고 거뭉이가 얼룩이를 낳고 얼룩이가 연탄이와 검은 꼬리를 낳고
노랑이와 거뭉이와 얼룩이가 사라져간
고양이들의 황홀한 역사를
오후의 빛은 전부 기억하는 걸까 - 오후의 빛 중

단추를 잃어버린 것은 너만은 아닐거야.
우린 모두 빛을 잃고 시들어가는 인생들.
밤은 자기 자신의 세계관 쪽으로 점점 부풀어가고
우리들 마음의 살에도 언젠가 비늘이 생기는 때가 오겠지. - 밤의 세계관 중

사람이라면 이렇게 외로울리 없다고
내 친구는 위서처럼 서러운 말을 했다 - 키메라, 유령 중

2018.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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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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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이다. 공감하려는 마음, 같이 슬퍼 하려는 마음이 제목 그 자체로 드러난다.
이 뜨거운 글을 쓰는 사람이 슬픔의 공부를 더 의미있게 하게끔 하는 사건은 분명 세월호일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매일 매일 생각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니...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다 이 예민한 감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평론가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나. 꽤 오래전인것 같다.

문화와 소설, 시, 정치, 사회에 대한 글들이 묶여 있는 이 산문집은 무척 친근한 감성을 전달한다. 이심전심.
그러나 나는 저자보다 뜨겁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온전하게 공유하기 위한 공부라는 것을 더 진지하게 해야겠다. 외면하는 일이 없게...

이미 읽은 책들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공감이 더욱 쉬운 글이었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 28

아름답고 위대한 많은 것들이 덧없이 사라진다. 건물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진다. 전통과 명성이 사라지고, 신념과 우정이 사라진다. 나이를 먹고 보니, 라고 건방을 떨 나이도 아닌데 나는 이 세상 많은 것들의 덧없음을 점점 더 자주 느낀다. 그리고 그 덧없음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그걸 눈치 챈 어떤 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환멸은 인생 감정 공부의 마지막 단계지. 자네는 이참에 좀 더 성숙해질 모양이군” 그런가. 그렇다면 이 ‘성숙한 환멸’은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 64

작가는 어째서 ‘post coitum’을 지우고 ‘animal triste’만 남겨놓았나. 우리가 특정한 순간에만 슬픈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체로 슬프기 때문이 아닌가. 인간은 본래 슬픈 짐승이고 우리는 모두 슬픔의 식민지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저항하는 일이, 요즘의 내게는 예전만큼 쉽지가 않다. - 70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 173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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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9-29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73페이지 인용문 참 좋으네요.

hellas 2018-09-29 20:26   좋아요 0 | URL
네 책읽는 일을 응원하는 힘나는 문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