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산다는 것 낭만픽션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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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센 리큐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다도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명인도 권력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권력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공생과 반목.

그리고 도래인에 대한 부분.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본국에서나 이국에서나 그다지 자료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

복원으로의 시도가 아닌 작가의 주관적 해석이라고, 역사소설로 읽어달라는 당부가 있는 글이다.
고분시대, 중세시대, 에도시대까지 왠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일본 전통 예술인에 대한 글이라 꽤 재밌었다.
다만, 나의 첫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이 이 책이었다는 점이 읽고나니 좀 의외였달까.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춤 출 수 없다. 그는 화로 위로 손을 쳐들고 뼈마디 불거진 메마른 손가락을 보았다. 안달이 날 만큼 속상하지만 늙는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늙는 것을 패배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 58, 제아미

‘벼락출세한 자 답군.’
리큐는 히데요시를 외면하며 속으로 뇌까렸다. 히데요시에 대한 리큐의 평가는 결국 이것이었다. 리큐가 완성한 예술 세계는 대체로 히데요시 취향의 반대편에 있었다. - 91, 센 리큐

도래인의 기술이 조정이나 여러 호족의 발전에 기여했음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느냐 하는 문제는 알기 어렵다. 이무라는 도래인을 다룬 어떤 책을 읽고 많이 배웠지만, 그 점에 관해서는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바다를 건너온 이국인이므로 실의에 찬 방랑자에 가까울 거라고 성급하게 해석했다. 호족에게 선진 기술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신분이나 지위는 매우 낮아 호족이라는 지배계급의 종속물이었다고 생각했다. 6세기 초에 가람 건축을 위해 초청한 와박사, 노반박사, 화공 같은 장인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종속물에게는 의지가 없다. 그들은 주인의 명령대로 일했다. 그러나 지배자가 종속물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자라면 종속물도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정신세계라는 말은 이상한 표현이지만, 이무라의 생각은 불교를 배척하는 모노노베, 오토모씨보다 옹호하는 소가 씨에게 도래인들도 더 마음을 열었을 거라는 의미다. - 298, 조불사 도리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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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사신 테이크아웃 2
배명훈 지음, 노상호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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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을 맞이하는 지구인의 자세.
계시를 받고자 의미모를 춤을 추는 가련한 여인을 사신으로 모신다.
신의 말을 해석하려는 헛된 노력은 단 한사람만을 구원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인지.
알길이 없다.

모호하지만 일부분은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단편이다.

상징과 표현으로 구획되어지는 의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련함이라는 글자, 천지가 천하에게 보낸 한 자짜리 국서.
그런데 어째서 저 글자를 사신으로 읽을 생각을 했을까. - 25

본 내용물은 실재를 단순 반영하는 상징물이 아님. 실재를 재현하는 표현물임. - 38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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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Dear 그림책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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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는 남자, 글이 주는 감흥은 기대 보단 뭐...
그림도 딱히 취향의 것은 아니었으나 미묘한 감상을 남긴다.

세번째인가 참여한 북펀드인데, 관심작가가 아니라면 정보량이 적은 펀딩은 앞으로 좀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살피는데 드는 시간을 제외하면 텍스트를 소화하는덴 3분도 채 안 걸린다.

그나저나 영혼을 잃은 남자라지만, 책을 보다보면 우리나라에는 흔한 번아웃 정도로만 보인다면, 우리는 극한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가.

오전 내내 자기한테 아무말도 걸지 않은 남자는 사무치게 외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 속에 이미 어떤 사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 본문 중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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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사슴까지 창비시선 424
김중일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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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베어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읽고 있을 때, <애도 일기>가 자꾸 등장했고, 시인은 죽은이가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새롭지만 낯익은 우주들에 대해 말했다.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아주 잠깐씩 위안이 되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위안.

내 어깨에 기대어 오분이나 잤는지 너는, 물빛 선연한 꿈을 꿨다는데 거짓말처럼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 어깨에 기대어 한 숨 자고 난 너는, 몇년간이나 파도처럼 밀려왔던 차가운 꿈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 어깨에서 봄까지 중.

내 얼굴 위로 벌과 나비와
마땅한 이름 없는 날벌레처럼
눈 코 입 귀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사람의 시간으로는 평생을
앉았다가 날아갑니다. - 우리의 얼굴 중.

햇볕을 쬐며 잠시 숨 고르며 앉아 있으면, 내 무릎과 어깨를 밟고 누가 올라간다.
어디로 올라가는지 언제 다시 내려올 건지 묻지 않기로 한다.
나는 낙엽을 밟고는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 한다. - 평일의 대공원1 중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다 중력 때문이다, 나는 공중을 끌어안으며
처음으로 소리내어 말한다. - 루틴 중.

어서 빨리 날개를 들지 않으면 지상을 거꾸러지겠지만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영원히 새로 태어났으면 합니다.
땅을 딛고 사는 건 현생에 단 한번이면 족합니다. - 새가 되게 해주소서, 저녁 기도 중

나는 지금, 옥상 바람에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이 꾸는 꿈.
지금 나는, 무수한 내 머리카락 같은 날들을 함께 한 네가 꾸는 꿈.
내 손을 잡은 네 두 팔, 열 손가락이 꾸는 꿈.
내게 오는 네 두 다리, 무수한 발걸음이 꾸는 꿈.
꿈이 깨면 내가 사라지는 꿈.
나는 네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꿈. - 나무는 나뭇잎이 꾸는 꿈, 나는 네가 꾸는 꿈 중.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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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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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소년, 작은 왕국. 세개의 단편.

순수한 것들이 뿜어내는 파괴와 퇴폐의 욕망이려나.
사실 이것들이 엄청난 금기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행위의 주체들이 되는 미성년은 확실하게 그런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인데.

문신에서 내면의 또 다른 혹은 더욱 강한 자기를 드러내는 소녀.
지배당하고 지배하는 것의 의미를 놀이라는 가면 뒤에서 욕망하는 소년, 소녀들.
그것이 집단 안에서 영향력을 형성하는 작은 왕국.

모두 있을 법하다. 다만 정보와 문화적인 태도랄까 그런 것이 한정되어 있을 때 좀 더 현실성이 더해지지 않나 싶다.

성인의 서사가 아니라는 점은 일견 범죄적이지만 매혹하는 면은 분명히 있다.

문 앞까지 바래다준 세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바깥으로 나왔더니, 거리에는 어느덧 푸르스름한 저녁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었고 해안가에는 가로등 불빛이 반짝였다. 문득 무섭고도 이상한 나라에서 갑자기 인간 세상으로 튕겨져 나온 기분이 들었다. - 41, 소년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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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11-1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색상이 참 곱네요. 세설을 읽고 한눈에 반해 다른 작품에도 도전했지만 적응을 못하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중고로 도로 다 팔아버렸습니다.) 이야기를 워낙 재밌게 잘쓰시는 분이라 제 욕심같아선 세설같은 작품을 한 두어편 더 써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안 그러시고 다 쫌 얼굴이 붉혀지는 소재.. 하핫 ^^;;

hellas 2018-11-13 15:37   좋아요 1 | URL
저도 컨디션에 따라 매우 불호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작가예요. 요즘 왠지 확 꽂혔달까. 지금이 딱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읽을 때인가 싶게. 쏜살 시리즈가 참 예쁘게 나온 덕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