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이여, 안녕 마카롱 에디션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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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약간 지루한 듯한 사샤의 독백 덕에 약간의 진입 턱이 있었으나, 어떤 사건, 어느 장소, 어느 때에도 그녀는 평범한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관계가 망쳐지고, 관계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는 그녀에게 제공된 안식은 호텔 방 뿐.
그녀가 걸어온 모든 길, 머문 모든 방이라고 지칭되는.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어떤 감정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 것인듯 하다.
세상의 그 무엇에도 희망을 잃은 그의 선택이 파괴적이라는 것에 어떤 반론이 있나 싶었는데, 해설에서 제시한 제2의 결론이란 것이 ‘새로 태어남’이라고 해서(아무래도 소수 의견 아닐까) 좀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받아들인 결론은 자학, 자해 더 나아가 죽음이라고 여겼는데.

잔뜩 움츠러드는 사샤의 마음처럼 쓸쓸한 기분이 드는 가을에 읽으면 더할 나위 없다. 더 우울해지니까.

- 나는 거기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린다. 내가 불쌍해서, 그리고 그 정수리가 대머리가 되어버린 노부인이 가엾어서. 이 저주받을 세계에 내재하는 모든 슬픔을 생각하며 울고, 또 모든 바보들과 투쟁에서 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운다. - 36

- 나는 잘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들은 항상 내 능력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내가 가는 길은 결코 다른 길로 연결되지 못한다. 항상 막다른 골목이다. 문들은 늘 닫혀 있다. 나는 안다.... - 41

- 내가 그들을 생각할 때 끔찍해하는 부분은 그들의 잔인성도, 그들의 교활함도 아니다. 특별히 힘든 걸 겪지 않은 때문인지 그들은 쉽게, 케케묵은 의식으로 생각하는 순진함을 지녔고 도대체 뭘 모른다는 점이다. 그들이 사는 이 망할 놈의 세상은 온통 진부하고 거짓투성이다. 그들의 모든 의식이 바로 이 깊이 없고 독창성이 결여된 진부함 속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로 인해 살아남는다. 그들은 이 진부한 가증의 삶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니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 54

- 도움을 받고 구조를 받아 숨을 수 있는 방을 가진 나. 그 이상 내가 무얼 원한단 말인가? 내가 누운 관 뚜껑의 마지막 못이 꽝 소리를 내며 박혀버렸다. 이제 나는 사랑받기 원하지 않으며, 아름답기를 원하지도 않고, 행복이나 성공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한 가지다. 나를 가만히 놔두는 것. 내가 사는 방의 문을 발로 긁지 마, 문을 열고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마, 그저 나를 가만히 놔 둬.... - 55

- 이 지랄 같은 방, 이곳은 과거의 추억으로 넘쳐난다.... 이 방은 내가 그동안 자본 모든 방이 도며, 내가 걸었던 모든 길이다. 이제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파도치듯 내 눈앞에서 행진한다. 방들, 길들, 길들, 방들..... - 133

- 나의 마음 저 밑에서 나는 무감각하다.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물은 고여서 정체되어 있고, 조용하며, 무관심하다. 다시 말하면 죽음에 근접한, 그리고 증오와 매우 흡사한 씁쓸한 평화가 있을 뿐이다. - 177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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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1
강신재 지음, 김미현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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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가 강한 느낌으로 남았지만, 의외로 해방촌 가는길, 안개, 점액질 등이 좋았다.

강신재라는 작가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해방도 겪은 노작가라는 점이 읽다보니 새삼 놀라웠다.

역시 여성이라는 소수성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게 한다라는 생각에 보탬이 되었다.

작가 스스로 대표작이라 꼽은 <파도>를 집중하기 어려워 듬성듬성 읽은 듯 하여,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 생각.

고졸한 느낌이 없지않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여성 서사는 훌륭하다.

시절 탓을 해야하나 가난 탓을 해야하나. 언제나 맞는 이야기고, 울적한 감성이고, 진취적이랄까 자기 파괴적이랄까 인생을 개척하는 방향에 대해 어느 누가 섣불리 비난할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들.

끝내 행복한 이가 없다는 점은 염세적인 작가의 시선일까.

- 성혜는 다방을 나오고부터 더욱 더 두 뺨이 달아오르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격정이 가슴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수치, 분격, 그리고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초려, 이런 것이 뒤섞이어 성혜의 가슴을 쾅쾅 짖눌렀다. - 안개, 29

- 자기는 이년 전 이 골목을 뛰어 내려가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움켜쥐고 오려고 생각했던 아무 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돌아오고 있다고 뉘우쳤다. 공기처럼 바람처럼, 무엇인가가 지나간 것이었다. 시간이 그저 흘러간 뿐이었다. - 해방촌 가는 길, 38

- 너그럽고 무던하고 낙천적이 구석이 싹 하니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는 고뇌의 실체를 보았는지 몰랐다. 그는 사람이 그것에게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깨달아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몸과 그의 얼굴 표정은 ‘절망’인 것 같았다. 기애의 마음을 날카롭게 움켜 잡고 놓지 않는 것도 그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 해방촌 가는 길, 53

-어느 편일까?
나는 나의 슬픔과 괴롬과 있는 대로의 지혜를 일 점에 응집시켜 이 순간 그의 눈 속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알 고 싶은 것이다. 그의 눈 속에 과연 내가 무엇으로 비치는가? - 젊은 느티나무, 102

- 유선은 그래도 거기를 간다.
그곳에 가면 예전에 있던 물건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 있고 사람들도 변함없이 살고들 있었다. 자기도 역시 아직 살고 있다는 느낌이 어렴풋이나마 들곤 하므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과 마저 모조리 떨어져 버린다면 불안을 이길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세계는 눈에 보이는 외형에서나마 제발 변함이 없어야 하였다. 가끔은 입밖에 내어서 지나간 일들을 말하는 것도 발 밑에 그래도 땅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겠기 까닭이었다.
유진은 무의미한 일을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 ‘의미있는 일’은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망상’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제는 되살아 날 수 없는 것이었다. - 양관, 142

- “야 이놈아, 네 생각은 어떻데? 왜 죽었을 성 싶으냐. 그 사람들이.”
“아저씨가 말하셨지 않아요? 젊고 예쁘게들 생겼더라구. 그래서 죽은 거죠.”
“딴은 참, 복잡한 사정이 다 그 속에 있다. 옳다.” - 강물이 있는 풍경, 386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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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 테이크아웃 3
김학찬 지음, 권신홍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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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권력이 아닌 보잘것 없어 보이는 권력 관계, 힘의 이동, 균형, 굴복... 그리고 그냥 저냥 사는 이야기?

재미도 감동도 그저 그런.
테이크 아웃 시리즈를 다 읽겠다는 생각은 이제 거의 투명하다시피 흐려졌다.

억울하지만, 연역법이란 겨우 이런 것에 불과하다. - 9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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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1
크리스타 볼프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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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라고 하는 것이 그녀의 몫이었다.

머리 아프게 등장하는 입에 붙지 않는 이름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걷어내고, 카산드라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집중하면 ‘고뇌하는 인간’, 윤리가 없던 시절 ‘정의로움을 말하는 자’,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질문하는 자’가 남았다.
<일리아스>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와 비교하면 그 점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영웅의 외양을 한 천둥벌거숭이와 외톨이가 된 진실의 입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경험은 약자에게 더욱 파괴적이다. 전쟁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수행할 자 외의 잉여인들은 고스란히 그 전쟁의 땔감이 되니, 전쟁을 여자의 이름을 하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 것은 자연스런 사고의 흐름이었을 것이다.
신들의 무책임한 참견, 위정자들의 무의미한 자존심 대립, 소유물에 가까운 존재인 여성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리를 물었다.

왜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가.
왜 아이네이아스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는가.
라고 물었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카산드라라는 인간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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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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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별 - 한강>
담담하게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그녀는 무채색이고, 눈사람이다.
필연적으로 녹아 사라질 존재가 되었는데, 남겨지는 이들의 안부만 잠시 생각할 뿐, 홀로 아이를 키우며 버텨온 세월이 그녀의 삶에 대한 미련도 천천히 녹여 사라지게 한게 아닐까.
쓸쓸하게 마무리되는 삶이지만, 죽음의 한 형태로 ‘기화’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어떻게 할 거에요?
어떡하지요, 라는 물음에 우리가, 라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라는 물음에는 당신이, 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 19, 작별 중

하지만 무서울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이 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 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 43, 작별 중

내가 널 원망할 거라고 생각해왔을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윤이와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매 순간을 난 명백히 이해했어. 자신을 건설하기 위해 가깝고 어두운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사람의 용기를. 정말이야,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어. 같은 방식으로 윤이가 나를 떠났다 해도 난 서슴없이 이해했을 거야. 다만 분명히 알 수 없는 건 이것 뿐이야. 먼지 투성이 창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니, 얼음 낀 더러운 물 아랠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 46, 작별 중

<희박한 마음 - 권여선>
아무래도 묘하다. 불타는 얼음같은 발작적 분노를 터트리는 데런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같은 모습이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그런 데런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회고되는 관계라서 일면 사이코드라마 같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얼음에 불이 붙기 시작하는 찰나엔 말이지, 하고 디엔은 말했다. 그 때의 데런은 더 이상 자신이 알던 데런이 아니고 절대적인 무엇을 담지하고 있는 순수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그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저 산불처럼 무섭게 번지는 파괴 앞에서 타죽어도 마땅한 작은 벌레나 한갓 풀포기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것은 확실히 디엔에게 어마어마한 공포였으리라고 데런은 말했다. 디엔은 정말 그렇다고, 그런 일은 아무리 겪어도 너무나 두렵다고 하면서, 데런 네가 그렇게 드라이아이스처럼 하얗게 타버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 같아서, 라고 말했다. 그런 폭발이 일어났던 날들에 대한 기억, 웃던 디엔을 순식간에 겁에 질리게 했던 지워질 수 없는 날들의 기억 때문에 데런은 때로 눈알이 드라이아이스처럼 타는 것 같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 106, 희박한 마음 중

이런 꿈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디엔. 디엔은 대답이 없고 데런은 도대체 이런 꿈들은 어떤 사고, 어떤 심리에서 발아해서 어떤 경로로 뻗어나온 것일까, 그래서 결국 어쨌다는 것일까, 이것 역시 꿈일까 디엔, 묻고 또 묻는다. - 112, 희박한 마음 중

<소돔의 하룻밤 - 이승우>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러 온 천사.
천사들을 만난 롯의 소돔 탈출기인데... 그래 뭐.
인간은 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악하고, 절멸만이 답이다, 라는 답을 골라드는 수밖에.
그 와중에 롯은 진심 짜증나는 인간의 유형이고...

롯이 의도한 것은 구별하는 것이었다. 악과 악이 아닌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되는 것을 대비시키는 것이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섬세해지는 것이었다. 잠든 그들의 윤리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윤리적 감각은 무분별, 무차별의 함몰 상태를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똑바른지 휘어졌는지, 명중했는지 빗나갔는지, 선 안에 있는 선 밖에 있는지 묻고 따지는 것에서 비롯한다. 롯은 몰려온 소돔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무엇이 악한 짓인지 아닌지, 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 구별해내라. 차이를 찾아내라. - 151, 소돔의 하룻밤 중

이 심각한 경고의 말이 그들에게는 농담으로 들린다. 위기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이다. 도시와 도시에 만연한 풍조와 도시가주는 쾌락으로부터 자기들을 분리해서 사유하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어떤 위기도 두려움도 제공하지 않는다. 악취 속에서 악취를 뿜고 마시며 사는 사람은 악취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다. 그가 마시는 악취가 그가 내뱉는 악취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냄새는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가 없으므로 위기도 없다. 위기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진지한 이야기는 농담이 된다. 가장 진지한 이야기는 가장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된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돔의 이 젊은이들도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와 시대의 기류에 흡수되어 있다. 흡수되어 있는 자에게 모든 위기는 농담이다. - 167, 소돔의 하룻밤 중

<언니 - 정이현>
딱 정이현 작가답다고 느껴지는 단편.
더 후벼파지 않는 그 선위에 정확히 멈춘다. 멈춤이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아서 좋아한다.

나는 있잖아, 이 일이 참 재밌다. 그래서 어떻게든 꼭 잘해내고 싶어.
낙관도 비관도 업싱 의지에 의해 걷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188, 언니 중

<Light from Anywhere - 정지돈>

반복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미래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평생을 다 쓴 것 같은데 지금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가 반복된다면 그것을 미래라고 할 수 있나요. - 223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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