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 광고는 어떻게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는가
진 킬본 지음, 한진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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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 드러나는 위험요소들에 대해 오랜시간 집요하게 연구한 글.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를”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광고에 관심이 없다, 나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섣불리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초지일관 이야기하는 저자에 매우 공감한다.

광고에 문제적으로 등장하는 이들이 제 1세계 헤테로 중산층 백인이어서 특히 그 점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히는 저자는 그 문제 역시 소외, 삭제라는 점에 주목한다.
게다가 점차 광고주들이 중시하는 타겟층은 더 이상 중산층도 아니고, 도시 거주자 미혼 청년층이라는 점이 그러한 점을 부각한다.

재미로 바라보던 광고가 사고와 감정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극명한 사실, 미디어를 비판적 시각으로 볼 필요성을 주지시키는 글.

이런 것들, 전혀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이 사회가 실천하려면 얼마의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할까?
그 점에 희망적이다가도 문득 회의적이 되는 나부터도 시각을 좀 달리 해볼 필요가 있다.

- 냉소주의는 비판과 다르다. 비판보다 훨씬 쉬운 것이다. 사실 냉소주의는 일종의 순짐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비판정신은 기르고 냉소주의는 극복해야 한다. - 79

- “아름다움을 지닌 물건과 한 방에 있으면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했지만, 그 말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상품은 물건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것들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것들은 우리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112

- 대부분의 광고가 조사를 바탕으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고 여성들의 자긍심에 악영향을 미칠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뿐 아니라,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철저히 길들여진 광고주 개인의 무의식적 태도와 신념도 ‘반영’된다. 잡지와 광고가 체중에 대한 걱정을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광고에는 여성들의 능력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와 갈등이 반영되어 있다. 여성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으면 현재의 남성 지배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므로, 많은 남성들이(분명히 여성들도)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164

-권력이 불평등할 때, 한 쪽 집단이 억눌리고 차별받을 때, 사회제도적 차별이나 역사적 차별이 있을 때, 양측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그 무게와 의미가 다르다. 애너 퀸들런이 ‘인종주의 역차별’에 대한 글에서 말했듯, “힘 있는 다수의 증오와 힘없는 소수의 증오는 그 무게와 효과가 확연히 다르다” 남성이 여성을 대상화 할 때, 그들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대상화되고 그로 인해 경제적 차별에서 폭력까지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환경에 일조하는 것이다. - 315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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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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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토닥토닥, 섬으로 유배를 온 자들의 위로.

사실 그들의 불행?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고 어쩌면 대책없는 낙관만 그려냈을지도 모르겠다.
응당 존재해야 할 악역은 동화처럼 제거되기도 하고...

그러나 작가의 의도대로 채 다듬지 못한 유고라는 점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담아내는 착한 세계가 이 모든 것들을 수긍하게 한다.

아무래도 그들의 낙관에 젖어들어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인생은 그런거니까.

조용히 추천한다.

-처음엔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골랐지만 언제부턴가 그냥 열권씩 들고 왔다. 자신이 책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아니라 무심하게 집어든 책에서 더 많은 길을 발견한 후부터는. - 63

- 책을 읽는다는 게, 우리 생의 일회성을 비웃어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고 생각하긴 해. 이 섬에 살면서 매사추세츠주의 호숫가를, 19세기 런던의 뒷골목을 거닐어 볼 수 있다는 것, 하룻밤 새 벌레가 되어버린 남자의 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 이천년 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이건 거의 기적이 아니겠니? - 81

- 어쩔 수 없어 얘길하게 됐지만, 하고 보니 이 얘기를 누군가 한 사람에게는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 135

- 이삐 할미는 비손을 하며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도 않고 울었다. 말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낡았다기 보단 늙은 한복을 입고 울고 있는 할미는 당신의 힘든 삶을 우는 것처럼 보였다. 짚불이 사그라든 후에도 나무배는 물결에 흔들리며 떠 있었다. 이 생과 저 생 사이에서. - 193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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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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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안녕한가.

벌어지는 모든 사건에서 반 보정도 떨어져 있는 주인공들이지만 완벽하게 타인의 사건이라 말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공정한가.
짜증스럽고 위선적인 관계라도 삶에서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그 앞에 얼마나 도덕적인 얼굴로 설 수 있겠느냐고 묻고 또 묻는 짧지만 불편한 가치의 글이다.

- 세영은 생각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거의 없었다. 다 잃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 135

-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구하는 밤이 언젠가 올 것이다. 짐작보다 더 빨리. 등 뒤에서 적막한 저녁의 구름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148

-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끝나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오랫동안 그것을 생각했다. ‘것이다’는 단정인가, 추측인가, 예상인가, 결심인가. 이 소설은 어쩌면 그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 작가의 말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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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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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애도에 관한 깊이랄까. 계속 내면을 파고 들어가 이 상실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일까.

그런 모든 슬픔에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일기.

그 모든 슬픔, 애도, 마음, 그 모든 것들, 인간의 비참에 침잠하는 독서였다. 마음을 마구 할퀴는 그런.

울컥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아 기운이 빠진다.

- 불멸. 이 특별하고도 회의주의적인 입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건지, 나는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 내가 아는 건, 나는 모르겠다는 사실 뿐. - 19

-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 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 47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들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 51

- 때때로, 지금처럼 갑자기, 마치 거품이 터져버리듯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확증이 있다 : 그녀는 이제 없다, 그녀는 이제 없다,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사막 같은 확증, 그 어떤 형용사도 가능하지 않은 확증 -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그래서 현기증을 일으키는 확증 (그 어떤 의미 분석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건 새로운 고통이다. - 88

-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 92

- 모든 일들은 아주 빨리 다시 시작되었다 : 원고들, 이런 저런 문의들, 또 이런저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랑을 또 인정받기를) 가차 없이 얻어내려고 한다 : 그녀가 죽자마자 세상은 나를 마비시킨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거야, 라는 원칙으로. - 157

-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165

-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마망에 대한 기억이 나와 그녀를 알았던 이들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기억되어 차갑고도 위선적인 역사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남게 된다는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나 혼자서만 “기념비”가 되고 싶지는 않다. - 204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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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미니북)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한글판) 31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장한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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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철학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체호프의 단편들.

가장 강렬한 엔딩은 <어느 관리의 죽음>이 독보적이지 않을까. <6호 병동>도 좋았다.

간결하게 전달되는 희,비극이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인 이야기보다 강력하게 다가온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감이 있지만 막상 손에 넣을 수 없는 매력적인 상대가 생기자 그 어느 때보다 사랑에 집착하는 구로프와 사랑에 맹종하는 여인 안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뭐가 이리 맥빠지는 결말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생이 원래 그렇게 애매모호하고 어중간한 지점에서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

실려있는 단편들 모두 좋다. 그리고 제목은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 새벽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얄타가 보이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아래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속이 텅 빈 듯한 파도 소리는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영원한 잠, 평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래에서는 파도소리가, 이곳에 아직 얄타도 오레안다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도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고,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지금처럼 똑같이 무심하고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 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 19,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 혼자서 소파 위에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진정한 행복은 고독없이는 불가능하다. 타락한 천사가 하느님을 배반한 것도 다른 천사들이 모르는 고독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 123, 6호 병동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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