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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애도에 관한 깊이랄까. 계속 내면을 파고 들어가 이 상실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일까.
그런 모든 슬픔에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일기.
그 모든 슬픔, 애도, 마음, 그 모든 것들, 인간의 비참에 침잠하는 독서였다. 마음을 마구 할퀴는 그런.
울컥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아 기운이 빠진다.
- 불멸. 이 특별하고도 회의주의적인 입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건지, 나는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 내가 아는 건, 나는 모르겠다는 사실 뿐. - 19
-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 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 47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들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 51
- 때때로, 지금처럼 갑자기, 마치 거품이 터져버리듯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확증이 있다 : 그녀는 이제 없다, 그녀는 이제 없다,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사막 같은 확증, 그 어떤 형용사도 가능하지 않은 확증 -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그래서 현기증을 일으키는 확증 (그 어떤 의미 분석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건 새로운 고통이다. - 88
-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 92
- 모든 일들은 아주 빨리 다시 시작되었다 : 원고들, 이런 저런 문의들, 또 이런저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랑을 또 인정받기를) 가차 없이 얻어내려고 한다 : 그녀가 죽자마자 세상은 나를 마비시킨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거야, 라는 원칙으로. - 157
-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165
-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마망에 대한 기억이 나와 그녀를 알았던 이들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기억되어 차갑고도 위선적인 역사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남게 된다는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나 혼자서만 “기념비”가 되고 싶지는 않다. - 204
2018. n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