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견 테이크아웃 15
임현 지음, 김혜리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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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과 작품 속의 이야기가 매우 설득력있다.

맹목의 무엇은 언제고 상황이 달라지면 그 반대의 무엇이 될 수도 있지.
정의라는 것 말이다. 하나로 규정지어 놓았으나 어느 경우 가변적인 것.

억울하고 들어주는 이 없는 작은 목소리에 대한 경각심을 잠시 갖게 된다.
짧지만 강하게.

-내가 보는 것을 모두가 함께 보는데 그래서 이것이 개라니요, 당신이 설명하는 것은 고양이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되묻습니다. 누군가는 화를 냅니다. 대부분에게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다릅니까. 자기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왜 맞는다고만 우기는 겁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지점에서 긍정하는데도 왜 나만 틀립니까. 우리는 이제껏 같은 말만 하는데 왜 하나는 잘못되었다고 합니까.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맞을 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왜 한 번도 그걸 의심하지 않나요. 진짜는 내가 보지 못한 어떤 것이 있을 수도 있을텐데, 그럴 수도 있지요. 내가 잘못 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왜 다들 그건 말하지 않고 내가 보는 것을 그대로 보면서 나만 틀렸다고 합니까. 왜 나만 그렇습니까. - 38

-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제들도 그런 종류의 것이지 않을까. 명백하고 더 의심할 바 없는 일들조차 실은 우리가 그냥 그렇다고 믿어 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나는 매우 자주하는 편이고, 그런 것 중 어느 것은 무언가를 쓰게 한다. - 작가 인터뷰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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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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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김연수의 작품 3개가 좋았고, 그 외엔 딱히 와닿는 작품이 없었다. 이효석 문학상이 어딘가 나와 맞지 않나 싶게.

특히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은 매우.
수리탐구영역 같은 뉘앙스의 모르는 영역에 대한 인간들의 관계에 관하여. 어느 틈엔가 벌어져 버린 그런 사이에 관하여.

단편들이 잘 읽히는 시즌이고, 이 참에 많이 읽고 싶다고 생각만 하지, 시간이 뜻대로 나질 않고 괜히 바쁨의 감각으로 살고 있다. 더 읽고 싶다.

- 낮달을 오래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린 듯 했고 문득 자신의 페인팅에서도 색과 기운을 조금씩 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세지지 말자 그런 생각. 조금 연해도 된다고, 묽어도 된다고, 빛나지 않아도, 선연하지 않아도, 쨍하지 않아도, 지워질 듯 아슬해도 괜찮다고, 겨우 간신해도...... 그런 생각 끝에 그는 마치 그 생각의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라도 한 듯 여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 10, 모르는 영역, 권여선

- 순간 다영의 굳은 얼굴이 떠올랐고, 그게 그러니까...... 한 번은...... 한 번은 해도 됩니까 묻던 다영의 말이 식당 여자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해도 됩니까, 한 번은? 그는 숨이 막힐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자갈 위에 주저앉았다. 과연 그렇다. 왜 한 번은 해도 되나? - 28, 모르는 영역, 권여선

- 거기에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가 있었다.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자신 만의 세계. 하루에 일 만톤에 가까운 네이팜탄과 칠 백톤이 넘는 폭탄이 떨어지는등 종일토록 불비가 쏟아져 평양 곳곳이 불타오르던 순간에도 기행은 적개심 가득한 문장을 통해서만 그 잔인한 세계의 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살던 집도 불타버리고, 빼곡히 꽂혀 있던 책이며 은은하게 풍기던 커피 향내 같은 것이 모두 사라지고, 아내와 어린 것들과도 헤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문자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 문자들을 쓰거나 읽을 수 있어 그는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쟁의 광기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그 언어와 문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기행은 궁금했다. 자신의 것인가, 당의 것인가? 인민들의 것인가? 아니면 수령의 것인가? - 179, 그 밤과 마음, 김연수

- 아침이 되어 재를 치우느라고 난로 아래쪽의 재받이통을 꺼내니 타버린 종잇조각들이 있었따. 혹시나 해서 손끝으로 집어 들어 살펴보니 글자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비비니 종이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먼지처럼 흘러내렸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기행은 무척 기뻤다. 자신이 쓴 글자들이 강철이나 바위 같은 것이 아니어서 사그라드는 불씨에도 쉽게 타버려 ㅓㄴ지처럼 사라지는 것들이어서. - 191, 그 밤과 마음, 김연수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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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는 달 - 환색에도력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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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의 에도물은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전래동화, 기담 형식의 이야기지만, 소시민의 삶과 그들의 윤리가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있다.
요괴, 원령이 등장해도 오싹한 공포가 아닌 애틋한 마음이 드는 이야기들.

현대물도 좋지만, 에도물을 읽을 때 훨씬 즐겁다.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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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부서진
조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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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 염세적이고, 음울한 이야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긋는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뭔가 상당히 뒤틀려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만하면 좋을 지점에서 네번쯤 더 뒤로 밀어내는 불편함.

책 제목 그대로다 모두가 부서진다.

판단은 유보.

- “아는 사람이었니?”
마리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가 뭐라고 했니?”
마리안느는 선로에 핀 꽃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수를 열어 대답했다.
“사랑 때문에, 라고 했어요.” - 48, 마르첼리노, 마리안느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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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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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물고기, “곤”

자신이 발견하고 이름 붙여준 아름다운 생명에게 경외감과 거부감, 질투와 선망을 동시에 하는 강하와 남들과 무척 다른 곤이 살아온 이야기다.
그 안에는 할아버지, 강하의 엄마 이녕도 있다.

아름답고 착하고 환상적인 동화지만, 현실에 맞닿아 있는 부분이 너무 아리게 다가와 잔혹하다고 여러번 느끼며 읽었다.
결국 그들이 행복했는가를 계속 생각하다보니, 이것은 그저 환상 비극이 아닐까.라는 생각.
어쩌면 아름답기 위해 불행의 시간을 감내하고 인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읽은 이야기고, 끝까지 그 자체로 완결되어서 더욱 공감각적인 동화가 되었다.


- 곤은 자신이 언제부터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살아왔는지를 헤아리지 않았다. 비좁은 세상을 포화 상태로 채우는 수 많은 일들을 꼭 당일 속보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없고 속도를 내면화하여 자기가 곧 속도 그 자체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아다지오와 같은 삶. 그 어떤 행동도 현재를 투영하거나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어떤 경우라도 과거가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도 속하지 않는 삶이었다. - 49

- 사실 그들에게 붙은,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임의의 이름같은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 있었고, 살아 있는 건 언제 어디서라도 그걸 부르는 자에 의해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었으며, 곤에게 의미있는건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오래도록 또는 눈부시게 살아 숨 쉬는지였다. - 68

- 칼끈이 천천히 쇄골에 내려와 닿는 사느란 감각에 곤은 오히려 정신이 맑아진 데다 반감마저 솟아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너랑 달라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으며 징그럽거나 무섭거나 최소한 낯설다는 말 대신, 예쁘다고 해줬다고,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게 이상하지 않으세요?라고 머뭇거리며 물었을 때, 처음부터 숨기고 있던 노력이 허무할 만큼 그녀는 산뜻하게, 비록 범속한 위로에 불과하더라도 너는 너일 뿐이라는 말로 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주었다고. 그런 걸 보면 그 동안 네가 끊임없이 상기시켰던 타인의 기준이나 눈길이나 호기심이나 그로 인한 위험요소 같은 것들이, 실은 별것 아닌 우려에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조바심을 친 지레짐작이었으리라고. 그것에 이루 말할 길 없는, 어쩌면 분노에 가까운 서운함마저 느낀다고. - 162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 185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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