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뱐덕 시와표현 시인선 16
강금희 지음 / 달샘 시와표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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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대했던 무엇이 있었는데, 막상 보니 없어, 쓸쓸해졌다.
아마 황사같은 마음....

- 이것은 사후의 숨결
죽은 자들의 허물어진 무덤이 몰려왔다.
길거리는 온통 누런 한 겹의 소문
태양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뭇잎들도 차례로 눈을 감고
가면들은 종종걸음을 친다. - 황사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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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전집 1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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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혼, 여름과는 큰 관계없어보이는 카뮈의 에세이들.

여름 파트가 훨씬 좋았는데, 내용면에 뭐 큰 차이점이랄게 없어서, 아무래도 타이틀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태양의 이미지가 선명한, 태양의 에세이. 요즘 춥고 공기도 안좋고 하니... 그런 풍광이 그리워져서...

일년 전쯤 반쯤 읽었을 무렵 후반부가 파본인 책임을 뒤늦게 알게 되어 산지는 또 꽤 시간이 흘렀으나 교환해준다기에 그 과정들을 거치는 와중에 드랍하게 된 책이었다.
새 책을 받고서도 지루한 감성이 남아있어 선뜻 읽어지지가 않았다. 이번에 카뮈를 좀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김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 얼마나 간사한지, 초반의 지루함이 지나고 여름의 이미지에 사로잡히고 나니 꽤 재밌어지는 것. 초반에 좋다 만 책의 경우 보다야 훨씬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말이라 다행이다.

- 세계는 아름답다. 이 세계를 떠나서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그 풍경이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위대한 진실은 바로 정신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마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햇살에 따뜻해진 돌, 혹은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서 흠씬 키가 크듯 위로 솟구치는 시프레나무, 바로 그것이 ‘이치에 맞는다’라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금그어주는 경계선이라는 사실이다. 유일한 세계란 다른 아닌 인간이 없는 자연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나를 무화한다. 그것은 나를 저 극한에까지 떠밀어간다. 세계는 분노하지 않은 채 나를 부정한다. - 67

- 오늘날의 인간에게 프로메테우스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마도 제신들에게 대들며 일어선 그 반항아는 오늘날의 인간들의 모형이며, 지금부터 수천 년 전 스키티아의 사막에서 일어났던 그 항의의 목소리는 오늘에 와서 비견할 데 없는 역사적 경련 속에서 마무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동시에 그 박해받은 자가 우리들 가운데서 계속하여 박해를 받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가 그 고독한 신호를 보내주고 있는 바 인간적 반항의 저 엄청난 절규에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을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말해준다. - 117

- 물론 어떤 낙관론은 나와 상관없다. 나는 내 또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의 북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우리의 역사는 그때 이후 끊임없이 살인, 부정 혹은 폭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진짜 염세주의는 그 많은 잔인성과 비열함보다 한술 더 뜨는 짓에 있다. 나로서는 일찍이 이 치욕과 싸우기를 그친 적이 없고 오직 잔인한 인간들 밖에는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의 허무주의 중에서 가장 암담한 것과 만났을 때도 나는 그 허무주의를 극복할 이유들만을 모색했다. 그것은 무슨 미덕의 소유자라서거나 보기 드문 영혼의 숭고함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 속에서 태어났고 수천 년 전부터 그 속에서 인간들이 고통 속에서조차 삶을 찬양하도록 배워온 그 빛에 대한 본능적 충실성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도 그는 빛을 발하고 다시금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다. 그의 세계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메마른 무의미가 아니라 수수께끼, 다시 말해서 눈이 부셔서 제대로 판독하지 못하는 어떤 의미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깡마른 세기에 아직도 살아 남아 있는, 희랍의 못났지만 악착스럽게 충실한 아들들에게는 우리 역사의 화상이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견디어내게 된다. 비록 어두운 것일지라도 우리가 성취하는 과업의 한가운데에는 오늘 들과 산들에 걸쳐 절규하는 그것과 똑같은 어떤 굴복할 줄 모르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 - 152

- 나는 다만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젊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젊지 않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 158

- 부드러움이 길게 연장되는 어떤 밤들에는, 그렇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그런 밤들이 땅과 바다 위에 되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죽는 데 도움이 된다. - 185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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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오해 알베르 카뮈 전집 1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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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의 폭정이 그가 부조리한 인간이라서라고 해버리고 나면 너무 허무하지 않나? 그를 위한 변명(결국 변명도 뭣도 아니지만)은 크게 와닿지 않고 폭압에 항거하지 않는 혹은 소극적 대응만 하는 인간들도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불의라는 것을 알지만 그에 몸을 던지는 캐릭터가 설득력있을뿐.
부조리 삼부작이라니 다 읽었는데.. 엄청난 감상이 남는건 아니다. 카뮈가 천착한 어떤 것을 읽어보았고 공감할 만하다는 의미가 있다.

오히려 <오해>가 무척 흥미롭다.

마르타와 어머니.
무척이나 공감되는 악인 마르타, 절망의 세월을 살아온 자의 생존 본능이 날 것 자체로 남은 여성. 죄는 죄다.라고 인식하고 말하지만 그 죄를 짓는 것 만이 삶을 연명할 수단이 되는자. 가책을 갖느니 불의와 타락을 온 몸으로 뒤집어 쓰겠다는 태도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같은 악인이지만 마르타와 어머니는 엄연히 다른 지점 위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선해서가 아니라 더 이기적이고 어리석어서라는 것도 좋았고, 기대 이상으로 섬세하게 그려지는 마르타를 경험하니 다른 무엇보다 카뮈가 달리 보였다.
또 한명의 여성, 얀의 아내 마리아는 일단 자신을 밝히라고 줄곧 남편에게 충고하는데... 여자 말 좀 들어라 인간...이라는 말 말고 뭐라 덧붙이겠는가.

- 사실, 불행이라는 것은 결혼과도 같은 거야. 당사자는 자기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선택당한 것이거든. 그게 현실이니 도리 없는 일이지. 우리 칼리굴라는 불행해, 하지만 아마 자기 자신도 그 까닭은 분명히 알지 못할걸! 그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된거야, 그래서 도망친거지. - 24, 칼리굴라

- 그렇지만 나는, 불공평한 처사에 신음하지만, 아무도 내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지만, 나는 무릎을 꿇지 않을 거야. 천만에. 이 세상 천지에서 설 곳을 잃고 내 어머니에게도 버림받고 스스로 저지른 죄만 가득한 가운데 홀로 남았으니, 나는 결코 화해하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날거야. - 230, 오해

- 당신의 오빠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굳이 알고 싶다면 말하죠. 오해가 있었어요. 세상 일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겁니다. - 234, 오해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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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세 여성의 삶을 토대로 그려낸 조선 공산당의 역사.
1910년대의 청춘들이 처형, 암살, 병사, 고문, 유배 등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시대가 그러했으니 희망적인 장면은 전무하다 보아도 무방하고, 이 세 여성이 겪는 고초가 생생해서, 부제인 ‘20세기의 봄’은 악의적 농담처럼 보인다.
봄이 어딨어? 죄다 겨울, 겨울, 겨울인데... 손발이 시리고 허기지고 온 몸이 바스라질 것 같은 통증을 읽는 내내 느꼈다.

공산주의자들의 이야기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몹시 생략되어 있는지라, 그간 조각조각 모아지던 얄팍한 정보들이 취합되는 독서였다. 역사지만 세 여성의 매혹적인 인생이야기는 흥미와 재미를 모두 책임져 준다.

그나저나 어찌나 파벌 별로 치고 받는지, 대의를 위한 양보는 한치도 없는지, 좀스럽고, 비굴하고... 그런 종류의 혐오가 불쑥 들기도하니 그것이 달갑지 않았지만, 그런 역사의 민낯을 보는 것도 의미있다.

파란만장이란 것은 이 정도 쯤은 되야할 것 같은, 빨려들어가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다음 책은 좀 잔잔한 걸로, 따뜻한 걸로 읽어볼까 한다.

- 1920년, 그 해는 누굴 만나도 상해나 모스크바 얘기였다. 볼셰비키 혁명을 둘러싼 매혹적인 소문들이 흘러 다녔고 상해는 어느 결에 사람들 마음에 망명수도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열여덟 나이에 강연을 다니며 여성계몽운동도 해봤지만 정숙의 야심은 그 이상이었다. 정숙은 세상의 모든 언어로 말하고 싶었고 이 세상 모든 항구에 정박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맹수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민족을 구할 사상과 이론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 21

- 차별없이 평등하자면서 이게 뭐야? 조선 공산당이나 공산 청년회나 간부 중에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 멀쩡히 같이 토론하다가도 밥 먹을 때 되면 여자들하네 밥해오라 그러고 말이야. 상투 틀고 곰방대 빠는 양반들이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지. 공산주의 하자는 젊은 남자들이 그러는 데는 정말 배신감이 느껴진다니까. - 134

- 왕년에 조선공산당을 만든다고 뛰어다니던 마르크시스트들은 지금 감옥에 있거나 고문과 독방생활로 정신줄을 놓았거나 아니면 천황의 신민으로 소속을 바꾸거나 했다. 조선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운명은 여기까지 인가. 가령 파리 코뮌처럼 유토피아의 이상이 피바다 속에 침몰하는 그런 장렬한 패배도 없이 비밀회합하고 암호 편지 주고받다가 끝나버리는 것인가. - 314

- 내 나이 스무살엔 조국해방을 완수할 때까지 행복이니 하는 단어는 내 사전에 없다, 했었소.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니 귀 밑에 희끗희끗 새치가 올라오고 있지 않겠소. 이제 중년이 된 것이오. 지금 웃지 않으면 웃을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오. 요새는 유쾌하고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소. 지금 내 가장 큰 소망은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오. - 336

- “부녀복무단을 만들자는 얘기도 있소. 여러가지 뒷바라지 할 부인네들이 필요하니까 말이오.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정숙은 식탁 귀퉁이에 턱을 괸채로 중얼거렸다.
“나는 가끔 이 남자들하고 혁명을 하는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다들 <자본론>대신 <사서삼경>을 읽는 모양이야.” - 378

- 내 나이 벌써 육십여섯이구나. 오래도 살았네. 애비가 세상에 난 것이 갑신년 정변 이듬해 였으니 조선 땅에서 개화의 역사하고 같이 나이를 먹은 거야. 내 생전에 나라가 풍전등화 아닌 적 없었고 더구나 식민통치까지 갔으니 명색이 동경서 근대 법체계를 공부했다는 자한테 이 현실이란 건 잠시 넋 놓고 쉴 틈도 허락지 않더란 말이지. 눈에 보이느니 모순투성이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일들 뿐이었으니. 권태롭고 나태한 인생보다는 살 만하지 않았나 싶다마는 돌이켜보면 내가 한 일들 중에 태반은 안해도 좋은 일 아니었나 싶구나. 지금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르는게 사람의 일이라. - 277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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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4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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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모순과 아이러니의 시인, 이명의 작가.

1900년대 초라는 시대에 대한 감각이 대한 제국 기준인지라 아무래도 그 시절의 페소아라는 시인이 대단해 보임은 어쩔 수가 없다.

그에게는 왜 그 많은 이명들이 필요했을까.
시대와 맞물린 분열적인 어떤 정신이었을까.

언제고 곱씹어 다시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시집.


-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그래, 이것들이 내 감각들이 혼자서 배운 것들이다.
사물들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존재를 지닌다.
사물들의 유일한 숨은 의미는 사물들이다. - 양떼를 지키는 사람 중

-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이것이 내가 매일 하는 발견.
저마다 있는 그대로의 그것,
이것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란 어렵다,
이것만으로 얼마나 충분한지도.
완전해지려면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때로는 바람이 지나가는 걸 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걸 듣는것 만으로도 태어난 가치가 있구나.
(...)
한번은 누가 나를 유물론자 시인이라고 불렀다,
나는 감탄했다, 한 번도 나를
무언가로 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나는 시인도 아니다, 단지 볼 뿐. -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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