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장 / 구운몽 ㅣ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평점 :
명준은 기대, 두려움 같은 부정적이나 긍정적이거나 한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은 채로 중립국을 향해 항해중이다. 그는 후회를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동행한 이들에게 연민이나 동류의식을 느끼지도 않는다. 사람 하나 그 자체로 스스로 중립의 고립을 받아들였다.
월북해서 대남방송을 하는 코뮤니스트 아버지 덕에 남한에선 일제시대 때부터 경찰 짓을 하던이에게 수모를 겪고, 북에서는 진실을 외면하라고, 침묵하라고 강요받는 주인공.
그에게 닻을 내려줄 핑계라면 사랑하는 여인일텐데 그런 사적감정에 자신을 맡기는 타입의 남자도 아니다. (그 덕에 매우 옛날 소설... 으으... 라는 괴로움에 빠지기도 했다)
두 체제를 넘나들고 전쟁통에 포로가 되고, 의지할 타인하나 없는 신세의 명준은 스스로 제 3국으로 자신을 옮겨달라고 요청한다.
혁명하는 나, 시국을 온 마음으로 걱정하는 나, 고뇌하는 나, 중대한 선택을 하는 나에 취해 그가 얻은게 무엇인지. 탐욕의 개인들로 타락한 곳도, 당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는 곳도 머물수 없는 그는 설 자리가 없고, 미지의 땅에서 과묵한 수위가 된 모습을 상상하는 그는 무력하다. 그 무기력이 명준을 결말로 이끌었다고 해야할까.
시대가 수상쩍고, 시대정신의 가치도 높이 평가하고, 매우 그럴 법한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주인공의 비장하기 이를데 없는 사색에 마음껏 몸을 맡기지 못하겠다.
<광장>을 명작으로 꼽는 이유와, 좋았다가 진절머리를 냈다가를 반복한 나의 독서 사이에 뭐 그리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구운몽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자의식이 사방으로 커진 캐릭터를 감당하기 버거워 대충 읽었다. 그러니 무슨 감상이 남아 있을까. 나름 2019년 첫 책으로 읽었다...라는 것에 비해 아쉬운 독서다.
- 문제라는 표현은 다만 비유적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먼저 이렇게 저 문제는 다음에 저렇게, 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인생 문제의 성격이다. - 1989년판 머리말 중
- 살아가는 동안 저편에서 가르쳐주고, 제가 깨달아간다는 것이 사람의 삶의 어려움이다. 그런데 그 삶의 짐작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깨닫기는, 혼자서 태어나기가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 일어판 서문 중
-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 1961년판 서문 중
- 그는 만년필을 손에 낀 채, 두 팔을 벌려서 책상 위에 둥글게 원을 만들어, 손끝을 맞잡아봤다. 두 팔이 만든 둥근 공간. 사람 하나가 들어가면 메워질 그 공간이, 마침내 그가 이른 마지막 광장인 듯 했다. 진리의 뜰은 이렇게 좁은 것인가? - 142
-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 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의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라면,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 조차 잃어버린 지금에. 믿음없이 절하는 것이 괴롭듯이, 믿음 없이 정치의 광장에 서는 것도 두렵다. - 183
2019. j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