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 지음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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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와 치커리의 죽음의 서술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실패라기 보다는 죽음.
아주 소거되어버려야만 그들이 불행하지 않을 수 있어서.
둘일 때 되지 않던 일들이 하나가 되고서야 해결된다면 죽음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윤이형의 이야기에 매우 공감했다.

그리고 최은영의 <일년>은 역시 최은영 다운? 같은? 작품. 고개를 한번 빼꼼하게 내밀어야 볼 수 있는 현재가 반영된 거울.

잘 읽었다.

- 이토록 끔찍한 악의들로 가득 찬 세상에도 실은 그것이 당장 형체없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게 떠받치는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의지들이 있음을, 그러므로 그것을 알게 된 이상 자신은 다른 누군가를 탓할 권리를 영원히 빼앗겼음을 깨달았다. - 24,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 희은은 그 죽음을 객관화할 수 없었다. 그런 죽음이 실은 지상의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일어나고, 특별할 것이 없으며, 타인의 애도는 언제나 충분하지 않고, 따라서 아무리 부족하다 한들 그 하나 하나의 위로를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떠올릴 수 없었다. - 32,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 말들은 장식이다. 혹은 허상이다. 기억은 사람을 살게 해주지만 대부분 홀로그램에 가깝다. 대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어진 끝을 받아들였다. 나는 일흔 두 살이고, 그를 사랑했고, 죽였다.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사라져가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살아 그것을 견딘다. - 128, 대니

2019.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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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경관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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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

천천히 일종의 휴식 독서용으로 잘 읽고 있다.
시대적 배경이 베트남전 시기인 고전 범죄수사물이지만, 무리없이 현대적 감각으로 읽히는 수작이다.

평범한 수사관들의 캐릭터도 점점 좋아지고, 그들이 특출나게 유능하거나 영웅적이지 않다는 점이 매력이다. 아 물론 평범이라고는 하지만, 문학적 인용과 복잡한 궤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콜베리, 십오초만에 문을 박살내고 들어가 도끼 살인광을 때려눕히는 군발드 라르손,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멜란데르, 그리고 유능한 마르틴이 있긴 하다.

웃는 경관은 시체가 가득한 버스에서 사건이 시작되는데, 시작의 긴장감은 진전없는 수사과정에서 사실 이미 다 사라지고 만다. 게다가 마르틴이 가족에서 점점 고립되어가는 과정은 좀 쓸쓸하다.
그리고 그 시절에도 경찰에 대한 인식이랄까, 스스로 착한 나쁜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고뇌도...
그래서 웃는 경관이라는 소품을 자조적으로 등장시킨게 아닐까 싶다.

시리즈의 마지막권 <테러리스트>가 나올 때까지 꾸준히 읽을 책이다.

- 경찰이 필요악이기 때문이야. 누구든 불현듯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알지. 직업 범죄자들조차 그래. 제 아무리 도둑이라도 자기 집 지하실에서 뭔가 달각대는 소리가 들려서 밤중에 잠을 깨면 어떻게 할 것 같나? 당연히 경찰을 부르지.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자기 일을 방해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면 어떤 방식으로든 두려움이나 경멸을 표현하기 마련이야. - 199

2019.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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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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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작이고, 배경은 전후 서울.
혼돈, 가능성, 불확실의 시절, 언제는 그런 시절이 아닌적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시절의 이야기지만 지금의 모든 것을 무리없이 반영하는 작품이라서, 일면 놀라웠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자전적 소설이라니 나는 박완서 작가가 마음에 든것일까.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지만 회상에 자기연민이나 미화는 그다지 없고, 무엇을 판단할 때도 외부의 무엇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심지있는 캐릭터.
도발이라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진보적인 여성 캐릭터다.
한 시절의 추억은 추억일 뿐이라고 홀가분하게 돌아서는 이를 좀처럼 보기 힘든 탓에 더욱 매력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볼 만큼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박완서 작가의 그 시절 이야기는 새로웠다.
멋진 작가다.

-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 44

- 만일 그 시절에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뭐가 되었을까. 청춘이 생략된 인생. 그건 생각만해도 그 무의미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감사하며 탐닉하고 있는 건 추억이지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았다.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 그와 소원해진 사이에 느낀 휴식감도 절정감 못지않게 소중했다. 긴장 뒤엔 반드시 이완이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한 번 통과한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전적인 몰두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 70

-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반 이상은 추억의 무게이다. 문상은 안 가기로 했다. 결별은 그 때 그것으로 족함으로. - 307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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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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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

명성이라는 것의 중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잊힐 뻔한 망나니 환쟁이를 소재로 글을 써보겠다는 자도,
저주를 퍼부으며 버림받은 상처를 감추려던 전부인도,
옆집사는 기인 백수라고 하찮게 여기던 이웃들의 아쉬움도
모두 그 명성에 이끌려든 불나방 같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매혹 될 줄 아는 대중이라는 점일까.

정작 찰스 스트릭랜드는 명성을 경멸했을지언정 연연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예술로 채우는 일에만 정신이 팔린 미친놈 그 자체.
그가 이룬 것은 예술을 제외하면 무엇이 있는가 하는 허무한 마음이 가장 큰 감상이고.
하긴 뭐... 태어나서 뭘 꼭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싶은 맘이 들기도 하는.

스트릭랜드의 안하무인 예술혼이 무엇을 말하는지, 왜 그럴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는 마음도 있으면서, 동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겠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고는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을 것이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을 인간에 대한 가차없음, 그 불한당스러움은 아주 꼴사납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니요 선생님, 다 알겠고요.. 그런데 좀 적당히....

오래 전 좋은 기억으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모험이다.
엄청 좋아!라고 기억하는데 뭐.... 라는 심정이 되었을 때의 씁쓸한 입맛.
‘그놈의 예술’ 다 용납한다 치더라도, 여성에 대한 시대의 시각, 작가의 관점, 캐릭터의 태도는 신물이 난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베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음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명을 받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짝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69

- <아무래도 이런 격언을 믿지 않으시는 군요.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격언 말입니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돼먹지 않은 헛소리요>
<칸트가 한 말인데요>
<누가 말했든, 헛소리는 헛소리요> - 76

-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마음속에 들어선 마귀는 무자비했어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셔버리려고 해요. 스트릭랜드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진리 대신 미를 추구했지만요. 그 친구에게는 그저 한없는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 276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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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연휴 잘 보내십시오 🎶ㅎㅎ

hellas 2019-02-01 23:05   좋아요 0 | URL
즐거운 연휴:):):)
 
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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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과 아주 짧은 단편들.

저지대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빌었지만 순수하고 무구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비극에 함몰된 인간계이기 때문일지도.
정경과 일상의 행위들을 묘사하는 정도가 (나에게는) 과했다.
‘시’라는 정체성을 가진 ‘소설’이라 이해하면 받아들이기 수월할까.
독일 망명전까지 자유로운 창작이 어려웠다는 점이 이해의 방법일지도.

- 죽음은 언제나 벽뒤에 있는데도 어째서 눈에 보이지 않는지, 또는 평생을 죽음 곁에서 사는데도 어째서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눈에 보이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 36, 저지대

- 행복이 이따금 우리 머리를 물어 뜯는다. 제기랄, 행복이 우리 삶을 먹어치운다. - 126, 저지대

- 불이 꺼지고 깜깜한 어둠이 방들을 에워싼다.
두려움이 찾아온다. 두려움이 곁에 있는 한, 내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타일러보지만, 실은 단 한 순간도 그걸 믿지 않는다.
그것은 진짜 두려움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혹시라도 두려움을 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대한 두려움. - 133, 저지대

- 나는 날마다, 오늘날까지도 독재 치하에서 품위를 빼앗기는 모든 이들을 위한 문장을 말할 수 있기를 바라왔습니다. 손수건이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문장으로. 혹은 ‘손수건 있니?’라는 물음으로. 고래로 손수건에 대한 물음은, 손수건이 아니라 인간의 절박한 외로움을 가리키는게 아닐까요? - 작가의 말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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