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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평점 :
이름, 이름붙이는 것, 그것을 제대로 말하는 것, 그 중요함을 이야기 한다.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되어있듯이, 여러 설화의 유형들 중에서도 ‘주인공이 초자연적이거나 위협적인 원조자의 진짜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를 물리치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정확하게, 에두르지 않고, 저격하듯 그것을 가리키고 이야기해야 모두가 손끝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는 법이니까.
실체가 그것인 양 정의가 그것인양 꾸며내 세상에 만연한 허구들은 깨뜨려야 한다.
진실인 척 위장하고 있는 이야기들로 인해 숨겨진 이야기들이 폄훼되기 때문이다.
비탄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또 우리는 눈을 멀게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미국 내 상황에 대한 글들이 무척 많지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여러 케이스가 공감을 일으킨다.
이 책은 리베카 솔닛이 여성문제에만 국한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결국은 인류의 정치적 올바름, 인간의 선한 본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얘기고, 그에 앞서 인류의 반의 문제를 조금 더 숙고하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정말이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 그래서 여성에 대한 끔찍한 수준의 가정폭력과 성폭력은 서로 아무런 관계없이 뿔뿔히 흩어진 이야기, 사소하고 보도되지 않는 낱낱의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여성들이 만성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만성적으로 거짓말하고 망상에 시달린다고 말할 수 있다. 후자라고 말하면 현 상태가 안전하게 지켜지지만 전잘고 말하면 와해되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일이 가끔은 건설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 13
- 일단 우리가 이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면,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우선 순위와 가치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잔학함에 대한 저항은 그 잔학함을 숨기는 언어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격려encourage는 말 그대로 용기 courage를 불어넣는다는 뜻이고, 분열 disintegration은 말 그 대로 통합 integration을 잃는다는 뜻이다. 언어를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쓰는 것은 의미의 분열에 대항하는 방법이자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격려하고 우리에게 희망과 전망을 불어넣는 대화를 독려하는 방법이다. 모든 것을 그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하려고 애쓴 일이다. - 15
- 우리에게 좋은 남자라고 불리고 싶은 듯한 많은 남자들은 이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들은 자신은 이런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거듭 말한다. 하지만 무지는 일종의 용인이다. 우리 사회가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 사회인 척하는 것이든, 여성 혐오 따위는 진작 극복한 옛일에 불과한 사회인 척하는 것이든 마찬가지다. 무지는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죽는지, 왜 그러는지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요즘처럼 이야기들이 터져나온 것이 처음도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잊는 것이다. - 28
- 각각의 행동은 어느 한 남자의 혐오나 부당한 권리의식에서, 혹은 둘 다에서 생겨났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들은 결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그런 행동들이 누적되면, 여성이 사적, 공적, 직업적 영역에서 움직이고 말할 공간을 축소시키는 효과, 여성이 힘을 얻을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많은 남자들은 직접 공격을 자행하지는 않겠지만, 마침내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기 시작했듯이 그런 남자들도 이 상황으로부터 혜택을 입는다. 이 상황이 그들의 경쟁자를 일부 제거해주고, 늘 평평하다고 말하는 운동장에 실은 마리아나 해구만큼 깊은 함정을 파놓았기 때문이다. - 31
- (아렌트가 말한) 이른바 ‘악의 평범성’은 남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모르는 것, 자기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것, 혹은 세상과, 도덕적 세상과 대화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떠올릴 줄 모르는 것을 뜻한다. - 47
- 좀 너무 많지 않나 싶은 수의 백인 남자들은 자신이 객관성을 독점하고 있다고 믿은 나머지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는 여성혐오가 전혀 없다고 장담하고, 심지어 자신은 주관성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는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견은 아예 의견이 아니니까. - 78
- 순진한 냉소주의의 대안은 무엇일까? 무엇이든 발생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없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앞으로 벌어질 일은 보통 축복과 저주의 혼합일테고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서 펼쳐지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역사적 기억은 이런 태도를 지지해준다. 간접적 결과, 예상치 못한 격변과 승리, 누적되는 효과, 긴 시간표를 언급하는 이야기들도 이런 태도를 지지해준다. - 123
2019.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