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여자들의 삶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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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로 연결된 장편.

솔직히 집중이 잘 안된 채로 읽은 책. 그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본문 중의 문장처럼.

어딘가에서, 언제나 여자들의 삶은 변화하고 있다. 물론 남자들의 삶도 변하고 있겠지.
그러나 그 의미와 층위가 전혀 다르다는 것, 그 사실을 전 세대, 전 인류가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 라는 의심이 여전히 있다.

- 나는 알고 싶었다. 앎이 선행되지 않으면 보호란 불가능 한 것이었다. 나는 죽음이 눈에 띄지 않으나 강력한 힘을 지닌 채로 어디든 틈만 나면 잠입할 기회를 노리면서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과 상황으로 만들어진 벽 뒤에 격리되어 거기 붙박여 있는 것이기를 바랐다. - 89

- 지나간 옛이야기는 이렇게 돌고 돌다 결국 죽음에 이른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 145

- 여자가 피해를 입기 쉬운 존재임을 가정하고 건네는 충고, 남자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 온갖 경험을 다 해보고 원하지 않는 것은 훌훌 털어낸 뒤 자랑스럽게 돌아올 수 있지만 여자라면 어느 정도 조심성있게 행동하고 엄숙하게 호들갑을 떨고 자기 보호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충고.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해보기 전에 이미 남자들과 똑같이 할 거라고 결심했다. - 319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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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성과재생산포럼 기획, 백영경 외 지음 / 후마니타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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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낙태죄와 만나면 논쟁의 거리가 된다.
낙태죄라고 통칭하는 임신 중단에 관한 이 책은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에도 읽어볼 필요가 있는 시의적절한 이야기다.

선고 몇일 전에야 책장에서 꺼내 읽게 되었고, 한달도 더 지난 지금 리뷰를 쓰고 있긴 하지만.... ㅡ.ㅡ

여성의 권리를 제쳐두고 출산율이라는 잣대로만 세상이 끝장나기라도 할것처럼 한탄과 걱정을 한 가득 쏟아내는 정책결정자들과 언론과 일부 세대를 보다보면 이 이야기를 어디서 부터 해야할지 조차도 암담하다.

정작 여성의 재생산권에 진짜 걸림돌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안을 제시하는 무엇을 기대하는 일이 그리 힘든 일일까. 모성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에만 기대어 인구 문제를 생각하는 고루한 틀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앞으로 임신 중단권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마무리 될까? 하는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하게 되는 것은,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정과 권한은 내가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 1988년 9월, 6년 간의 임상 시험끝에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성분명으로 프랑스에서 임신 중절 약물로 승인되자, 거센 임신 중지 반대 시위와 대중의 우려들이 속속 대두된다. 결국 이에 견디지 못한 루쎌 위클라프의 이사진들이 1988년 10월 시장 철수를 결정하지만, 프랑스 정부와 보건국이 나거 공중보건을 위해 약물을 생산해 줄 것을요구한다. 프랑스 보건부 장관 클로드 에벵은 “나는 임신 중지 논쟁이 여성에게서 의학 진보의 결과물을 빼앗아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지금부터 미페프리스톤은 단지 제약 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도덕적인 상품’ moral property for women 임을 프랑스 정부가 보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71

- ‘신의 이름으로’ 생명 존중을 말하지만, 여성의 삶과 생명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외면하는 가톨릭 교회의 태도로 인해, 정치사회적으로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일수록 여성에게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 116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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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문학동네 시인선 118
박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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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사람에 대하여, 지극한 사랑은 고양이 한정이 되어버린 사람이 생각해 본다.


- 정확한 버스 노선을 따라가는 당신 뒤에서
이해할 수 없는 꽃송이들, 눈송이들, 흰 주먹들이 떨어진다
어떻게 녹아내려야하고 멈춰야 하고
사라져야 하는가
어떻게 이별하고 잊어야하고 퇴장해야 하는지
계속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 - 미행 중

-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 시인의 말 중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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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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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으로 깊은 인상이 남은 김성중 작가의 길지 않은 장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시간, 무엇인가 명백하게 어긋난 시간’(11)이 인류에게 주어진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백년이라는 시간의 유예는 인간에게는 형벌일 뿐이다. 상상해보자면 아득하고 막연한 기분이 들게하는 설정이어서 끝맺임이 어떨지 매우 궁금해하며 읽었다.

상상력과 재현되는 이미지에는 만족했지만, 결말을 만족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를 이입하여 생각해봐도 커다란 구멍같은 결말이 보일 뿐이다.

다른 얘기...
판타지나 미래 배경의 이야기에는 낙원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에는 언제나 ‘장악’이라는 핵심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습관에서 엇나가려는 지점과 그저 수용하려는 지점에 대한 원인과 결과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도 필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등장하는데, 그 곳이 조금 더 궁금했다.

-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종말이 온 거야.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던 나 혼자 내버려두고 온 세상이 사라져버린 것이지. 그가 말해주었다. 부도덕하고 폭력으로 가득찬 이 세계는 버릴 수밖에 없다고,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집은 치우기보다 이사를 가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인간은 텅 빈 집에 창궐하는 개미나 바퀴벌레 같은 존재가 돼버렸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니 안타깝구나. - 14

- 백년의 인간들은 스스로 신이 되기에 바빠 옆에서 진짜 신이 걸어다니는 걸을 알지 못했다. 무관심하고 무력한 신들이 도처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이슬라처럼. - 15

- 습관과 광기 중 어느 것이 백년의 인간을 차지하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 37

- 수면과 수평을 이룰 수 있다면 나머지 세상도 어떻게든 잘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같은 것. - 56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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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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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앨리스 먼로의 <거지소녀>는 생각할 지점이 많은 이야기다.
한 여성의 성장과 좌절, 행복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지리멸렬한 감정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결국 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지 왜) 찾아야 할지도 생각하게 한다.

그 와중에 가장 끈질기게 사념의 가닥들을 끄집어 내는 것은 ‘가난’이었다.
왜 이 이야기가 내내 잿빛이었는지, 왜 내내 손등이 벌겋게 틀겄만 같은 냉기와 건조함을 느꼈는지, 가족과 연결되는 또 다른 가족들이 등장함에도 한 움큼의 온기도 없이 느껴졌는지는 아무래도 그 이유에서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단편적이기고 하지만, 로즈의 기억으로 소환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지적인 열망이 가득했으나 가난으로 좌절한 모습이다. 자신과 닮은 딸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못마땅하기도 한 양가 감정은 아무래도 빈곤을 이길 수 없다는 체념때문일 것이다. 그리 내세울 것 없는 도시에서도 반쪽, 가난한 지역에서 잡다한 물건들을 수리하며 살아가는 큰 희망이 없는 삶에 대한 납득. 모르긴 해도 이미 자신도 그 한계를 넘어보려는 시도는 한번 쯤 해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길의 허망함을 알았을 것이다.
모두가 빈자인 시절이지만 그 조차 예리하게 감각하는 자에겐 삶은 그저 불행일 뿐일지도 모른다.

앨리스 먼로가 그리는 로즈는 그런 가난의 감각을 대물림한 여성이다. 단순히 가난했어, 라고 추억하듯 말할 수 있는게 아닌, 가난을 처절하게 배워온 자의 모습말이다.

물론 로즈의 인생이 내내 절박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했고, 가정도 꾸렸고, 화목하다고 볼 순 없지만 가족과의 끈도 놓친 적이 없고, 자신이 원하는 일도 차근차근 해나갔다.
그럼에도 그녀의 인생을 바라보는 내내 쓸쓸한 감정이 느껴진 것은 왜 였을까.
로즈의 삶은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도대체 네가 뭐냐고...... 묻는것 같았다.

정말 많은 것들을 떠올리는 독서였는데, 다 옮기진 않았다. 너무 파편화 된 생각들은 잘 메모해 두었다.
적어도 지금은 앨리스 먼로 작품 중 가장 좋다.


-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다른 감정들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딸에 대해 통제하기 힘든 짜증과 우려뿐만 아니라 자부심 또한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는 딸이 다르기를 원치않는다는 것. 본 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란다는 것이 진실, 최종적인 진실이었다. 적어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랬다. - 91

-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내, 애인, 하고 생각했다.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말들. 그 말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기적이었다, 실수였다. 그것은 그녀가 꿈꿔온 것이었다. 그녀가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 148

- 이 무슨 사기란 말인가, 로즈는 생각했다. 모두에게 이 무슨 사기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결합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 246

- 그녀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을. - 359

2019.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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