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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평점 :
수필에 딱히 관심이 없던 어슐러 르귄, 주제 사라마구의 글에 자극받다.ㅋㅋ
보통이 아닌분, 이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당연히 이분은 보통 분이 아니시기에.
고양이 파드에겐 맥없이 항복하고 마는 노작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빈틈없고 신랄하기 이를 데 없다.
즐거운 읽기.:)
- 미래 세대의 삶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 상황을 생각하면 이상한 선택지들이었다. 당면한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 우파가 집착하는 관점에서 걸러진 ‘테러리즘’이나 ‘효과적인’ 이민 정책, ‘민주주의’의 ‘수출’ 따위를 늘어놓다니. (이 ‘민주주의의 수출’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국가를 침략할 때 그들의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를 파괴하는 방식의 완곡한 표현일 것이다.) 아홉 개나 되는 보기 중에 기후 불안정이나 국제 정치, 인구 증가는 커녕 산업, 오염, 심지어 민간 기업에 의한 정부 통제나 인권 혹은 불평등, 빈곤 등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 16
- 우리 고양이에게 나의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의 공간을 점령당하느라 완전하고도 지극히 바쁘다. 그 무엇도 여가 시간이 아니다. 나는 시간을 남겨둘 수가 없다. 다음 주면 여든 하나가 된다. 내게는 남겨둘 시간이 없다. - 20
- 대놓고 정치적 불관용을 저지른 단체에게 정치적 불관용에 대한 이야기로 상을 받으면 수치스러울 것 같아서 네뷸러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직전에 후보 명단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협회가 전화를 걸어와 사실은 내 작품이 수상작이니 기권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높은 윤리적 고지를 정하고 고상한 척 하는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완벽한 아이러니를 만난 내 상은 그렇게 차점자인 아이작 아시모프, 냉전주의자들의 늙은 추장에게로 넘어갔다. - 99
- 예술은 흑과 백, 남성과 여성, 미국인과 비 미국인이라는 관념들보다 거대하다. 인간은 불필요하게 재단된 인종, 젠더, 혹은 민족이라는 틀 안에 딱 맞게 나누어지는 존재가 아님에도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경솔하게 규정짓는다. 문학이 그러한 구조를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오해다. 문학은 오히려 그러한 구조를 타파하는 경향을 가진다. 문학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영역이다. - 112
- 경쟁력의 미덕이 무엇이든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훌륭함보다 위대한 훌륭함을 가질 권리를 주장하는데 경계심을 갖도록 사회적으로 훈련돼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남성들이 당연한 권리처럼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믿는 분야에서 남성과 성공적으로 경쟁을 하는 여성은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를 위험을 무릅쓴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쟁을 펼쳤다. 그녀는 최초이자 가장 효과적이었을 처벌을 가까스로 피한다. 그녀 사후에 문학 작품 목록에서 제외된 것이다. 하지만 8-90년이 흐른 지금도 속물근성과 병약함이라는 혐의로 여전히 그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폄하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한계와 신경증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알려진 만큼이나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병증은 천재성의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울프에게 들렸던 그리스어로 지저귀는 새소리는 그녀가 병든 여자라는 걸 증명할 뿐이었다. - 115
-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허구의 맥락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현실성을 가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는 한편으로 체제 전복적인 표현이다. - 130
- 페미니즘은 이어지고 있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여성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성들끼리 혹은 남성과 함께 일하는 곳 어디에나 자리잡아야 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남성적 가치의 정의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특정 성에 배타적이기를 거부하며, 상호 의존성을 지지하며, 공격성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와해시켜야 한다. 또한 항상 자유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 162
2019.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