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제가 썩는 나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514
최승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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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세태를 말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일이며 시.

- 시가 시시한 시대일수록
시시하지 않은 시를 써야 한다. - 시인의 말

- <추운 날>
자라 한마리
머리를 감추고
바위에 엎드려 있다

온 우주가 겨울이다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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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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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 딱히 관심이 없던 어슐러 르귄, 주제 사라마구의 글에 자극받다.ㅋㅋ

보통이 아닌분, 이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당연히 이분은 보통 분이 아니시기에.

고양이 파드에겐 맥없이 항복하고 마는 노작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빈틈없고 신랄하기 이를 데 없다.

즐거운 읽기.:)

- 미래 세대의 삶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 상황을 생각하면 이상한 선택지들이었다. 당면한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 우파가 집착하는 관점에서 걸러진 ‘테러리즘’이나 ‘효과적인’ 이민 정책, ‘민주주의’의 ‘수출’ 따위를 늘어놓다니. (이 ‘민주주의의 수출’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국가를 침략할 때 그들의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를 파괴하는 방식의 완곡한 표현일 것이다.) 아홉 개나 되는 보기 중에 기후 불안정이나 국제 정치, 인구 증가는 커녕 산업, 오염, 심지어 민간 기업에 의한 정부 통제나 인권 혹은 불평등, 빈곤 등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 16

- 우리 고양이에게 나의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의 공간을 점령당하느라 완전하고도 지극히 바쁘다. 그 무엇도 여가 시간이 아니다. 나는 시간을 남겨둘 수가 없다. 다음 주면 여든 하나가 된다. 내게는 남겨둘 시간이 없다. - 20

- 대놓고 정치적 불관용을 저지른 단체에게 정치적 불관용에 대한 이야기로 상을 받으면 수치스러울 것 같아서 네뷸러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직전에 후보 명단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협회가 전화를 걸어와 사실은 내 작품이 수상작이니 기권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높은 윤리적 고지를 정하고 고상한 척 하는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완벽한 아이러니를 만난 내 상은 그렇게 차점자인 아이작 아시모프, 냉전주의자들의 늙은 추장에게로 넘어갔다. - 99

- 예술은 흑과 백, 남성과 여성, 미국인과 비 미국인이라는 관념들보다 거대하다. 인간은 불필요하게 재단된 인종, 젠더, 혹은 민족이라는 틀 안에 딱 맞게 나누어지는 존재가 아님에도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경솔하게 규정짓는다. 문학이 그러한 구조를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오해다. 문학은 오히려 그러한 구조를 타파하는 경향을 가진다. 문학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영역이다. - 112

- 경쟁력의 미덕이 무엇이든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훌륭함보다 위대한 훌륭함을 가질 권리를 주장하는데 경계심을 갖도록 사회적으로 훈련돼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남성들이 당연한 권리처럼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믿는 분야에서 남성과 성공적으로 경쟁을 하는 여성은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를 위험을 무릅쓴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쟁을 펼쳤다. 그녀는 최초이자 가장 효과적이었을 처벌을 가까스로 피한다. 그녀 사후에 문학 작품 목록에서 제외된 것이다. 하지만 8-90년이 흐른 지금도 속물근성과 병약함이라는 혐의로 여전히 그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폄하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한계와 신경증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알려진 만큼이나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병증은 천재성의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울프에게 들렸던 그리스어로 지저귀는 새소리는 그녀가 병든 여자라는 걸 증명할 뿐이었다. - 115

-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허구의 맥락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현실성을 가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는 한편으로 체제 전복적인 표현이다. - 130

- 페미니즘은 이어지고 있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여성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성들끼리 혹은 남성과 함께 일하는 곳 어디에나 자리잡아야 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남성적 가치의 정의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특정 성에 배타적이기를 거부하며, 상호 의존성을 지지하며, 공격성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와해시켜야 한다. 또한 항상 자유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 162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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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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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레몬, 왜 노란 원피스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 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상실을 대변하는 색이 되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

많은 것이 동시에 떠올랐다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당신을 상상한다는 말이 다른 의미로 소름이 오소소 돋는 말일 수도 있다는 것.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불행과 불안의 느낌으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의 권여선의 이야기와는 꽤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포자기라는 것을 배제한 것 아닐까 싶게.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젊음이 암울할까?
어쩌면 그럴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여튼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이야기.

- 나지막하지만 상냥하지는 않은 목소리였다. 학생주임이나 담임이 처벌해야 할 학생을 호명하는 식의 딱딱한 말투. 그것은 단단한 적의가 되어 그의 가슴 한복판에 꼿혔다. 정확하게 실현될 참혹한 운명같다, 고 나는 생각한다. - 10

- 어떤 삶은 이유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 145

- 돌이킬 수 없는 일 앞에서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해요, 라고 다언이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럴까, 하고 나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 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 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 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래 다져진 땅 같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다언의 관념은 곱씹고 또 곱씹어 어떤 날도 들어가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노인들의 그것보다 더 무섭고 더 죽음에 가까운 듯 보였다. - 178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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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밀란 쿤데라 전집 10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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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필요가 생긴 <정체성>을 읽기에 앞서 워밍업으로 골랐다.
불호의 작가는 절대 아니지만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조금 식은? 작가여서 예열이 필요했으므로.
오랫만의 밀란 쿤데라로 잘 고른 것 같다.

잠시라는 시간으로 한정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되돌아오는 귀향의 과정과,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독립의 선언이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전방위적 독립이 아닌 점은 조금 아쉽다.

다수가 목청껏 외쳐대는 수만의 발언대, 의미없는 백색 소음의 시대.
그 안에 유일한 침묵은 “나”라는 감각이 전반에 뿌려져 있어, 새삼 사람을 고독하게 만드는 글이다.

전체적으로 공감할 수는 있지만, 일면 멈칫하게 만드는 구석도 있고.

어쨌든 다음 책을 읽을 마음이 들게 되는 이야기.


- 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람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라는 뜻이다. (...) 이렇듯 어원 상으로 볼 때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말이다. - 11

- 모든 예측들은 틀리게 마련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몇 안되는 확실성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틀렸지만 그것을 말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진실을 담고 있으며, 그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열쇠다. - 17

- 나는 이렇게 자문해본다. 오늘 날 ‘오디세이아’를 생각할 수 있는가? 귀환의 서사시는 아직도 우리 시대에 속하는가? - 58

-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노래하고 울부짖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 수 없는 세상, 모두가 날뛰고 춤추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는 세상이다. - 151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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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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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자, 책....
작가 나름의 주제가 있다는 건 알겠으나, 나를 움직일 뭔가가 많이 비어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문장인 것 같다. 그 빈칸이.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던 테드 창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 장르가 나와 맞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가 생각해 보면 아마도 미래에 대한 이유있는, 그럴만한 예견, 어떤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모든 단편이 다 재밌지는 않았다. 역사에 대한 언급도 많았지만 그 층이 두텁지 못하고 사유가 좀 깊지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작가가 그렇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법론적인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시도해보았으나... 앞으로 휴고, 네뷸러, 세계환상문학상 같은 장르는 안읽게 되지 않을까 싶은 독서다.

- 나한테는 양끝을 다 태울 양초가 없어. 커피 스푼으로 수명을 계산 할 일도 없을거야. 욕망을 잠재울 샘물도 없어, 왜냐면 죽은 거나 다름없이 얼어붙은 내 일부를 뒤에 남겨두고 왔으니까. 지금 나한테 있는 건 내 삶이야. - 132, 상태 변화 중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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