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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ㅣ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평점 :
기만은 사랑이 아니다.
정체불명의 시선이 따라붙는다면 느껴지는 감정은 설렘이 아닌 불쾌와 공포다.
대화를 해라 관계를 위해서는, 말도 안되는 편지 쓰지 말고.
한껏 이것은 쿨한 농담이지, 라는 기분으로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아’라고 말했다면, 스스로 그 문장에 상처입지 말았어야 한다.
과거 꽤 좋아하는 작가였으나, 이제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건드리면 건드리는 족족 지뢰가 터지는 작가 군에 속해 버리게 된 밀란 쿤데라.
현대성과 섹슈얼리티를 문학이라는 상에 보기좋은 통찰을 곁들여 차려내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제 나는 작가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감상 이외에 곁다리의 감상이 더 커져 버린 아집의 결정체가 된것일까.
현대성안에 쪼그라든 누추한 백인 남성의 감성과 판타지로 그럴듯하게 만든 쓰레기통을 소중히 끌어안고 잠들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누구고, 너는 나에게 무엇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이고, 너와 나가 아닌 타인의 결합으로 우리는 뭐가 되냐? 라고 말하는데 그게 그렇게 와닿지 않는 것이다.
연민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들을 창조해 놓고 왜 ....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존재감이라는 것이 내포된 ‘정체성’에 심각한 외상을 입을 샹탈과 그녀를 위무하려는 사랑스러운 연하남 장마르크라고 미화해서 보자.
그래서 그들의 오해가 걷어지고,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진 것일까.
그저 이러기도 저러기도 애매해진 관계에 유예를 선고했을 뿐인가.
’정체성’에 방점을 두고 생각하면 타인의 시선과 인정이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한데도,
나는 샹탈이 더 주체적이지 못하고, 결국 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자신에겐 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짜증이 난 것이다.
관계에 있어 불필요한 비밀은 어리석고,
그렇다고 해서 바닥까지 까 뒤집어 보여주는 것은 어리숙하다.
그 관계로 내가 다시 세워지는 것이라면 신뢰와 예의가 필요하다.
아.... 장마르크의 시덥잖은 위로, 연극이 예의가 없는 것이었나보다.
.... 예의 중요.
’현실이 비현실로, 사실이 몽상으로 변했던 정확한 순간은 언제일까? 그 경계선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경계선이 있을까?’
라고 독자에게 괜히 질문 던지지 마라.
현실, 비현실, 실재, 꿈.... 이러면서 ‘으아!!!’하고 진절머리를 내고 말았으니.
2019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