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를 기다리며 위픽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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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장소, 사이비 집단, 실종과 죽음.

어쩐지 영화로 이미 본 듯한 그런 장면들이 그려진다.

영산의 주인 산주 가족이 만들어낸 영산교는 죽은 자와 재회할 수 있다는 허상을 만들어 혹세무민하는 신흥종교.

그러나 섬과 무관하게 살던 정해가 옛날 친구의 죽음 때문에 귀향한다는 설정이 설득되지 않는 포인트.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니까... 라고 이해하고 읽는 수밖에.

스릴러 한편 본 기분이 되는 적당하게 흥미로운 이야기.

부록 한 장의 소설이라고 큰 종이에 작은 글씨로 인쇄된 이벤트도 있는데.... 사실 그런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노안은 슬픈 것이고, 그 종이 한 장에 조금 되새겨진다는 점이 짜증났다. ㅋ

- 그리고 진짜를 이야기 해주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란다. 정해야, 너도 계산을 잘 해야 해. 네가 누구인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아. 너를 둘러싼 것들이 중요하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야. 그들은 진짜 삶과 진짜 사랑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지. 그런 건 없어. 술에 취한 엄마가 동화책 대신 읊어주던 이야기를 정해는 가슴에 새겼다. - 39

2024. aug.

#만조를기다리며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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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스파이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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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이, 증언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서사가 있긴 하지만...

언급되는 상황들마다 언급되었으니 필히 불행한 결말에 이르를 것이라는 근거 있는 짐작이 가능한 이야기라 내내 불안했다.

1등 국민, 2등 시민, 3등 노예 라는 계급적,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적 기준이 일단은 가장 불편한 역사적 지점이고,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의 국민들이 오히려 피해자, 희생양 인양 한다는 점, 그 어처구니 없는 '신념'에 불편해진다.

일본 내 차별 이야기를 접할 때 늘 듣는 재일 조선인 이야기와 그와 더불어 알게 된 오키나와 인 차별에 대해 막연하게 세세한 그들의 속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차별은 차별', '동류의 차별'이라고 대충 생각해오던 나 자신의 나이브함을 느끼게 된다.

재일은 오키나와에 비할 차별의 정도가 아니다 라는 깨달음.

피곤해진다. 이런 암울한 역사.
사과도 없고, 반성도 없는 그들을 보면.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책 커버의 이미지가 일본 작가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도시가 그린 <구메지마 학살2>의 부분도였다. 커버까지 유심히 살피는 일은 드문데 이 그림은 찬찬히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정말이지... 슬픔.

- 굶주린 천적들로부터 새끼 참새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단 하나, 인간뿐이다. 그런데 오늘 밤 섬 어디에도 인간은 없다. - 8

- 요미치는 자신이 일본인이자 일본 군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본토 출신 병사들과 격전지를 헤매며 자신이 오키나와인이라는 걸 절감했다. 집들과 가축들이 불타는 걸, 오키나와 주민들이 총알이나 폭탄을 맞고 참혹하게 죽어가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도 안타까워하지 않는 본토 출신 병사들에게 그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너희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너희의 부모, 친형제가 아니지만 너희와 같은 인간이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며 처참하게 죽어가는 게 너희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거야?'
'전쟁이 끝나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그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에 다시 사로잡힌다. - 92

- "아버지, 일본군은 미군을 이길 수 없어요."
"미군은 적군이야."
"본섬에서 일본군이 우리 오키나와인을 어떻게 학살하고 있는지 아버지가 모르셔서 그래요."
"일본군은 우리 오키나와를 지키려고 싸우고 있어."
"아버지, 일본군은 오키나와 땅을 지옥으로 만들었어요." - 132

- 조선인 고물상은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그는 정작 이 섬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고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걸 느낀다. 그는 이 섬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가 있다면 '조선인'이라는 것,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조세나지라(조선인 얼굴)를 하고 있는 것, 그것이 오키나와인으로 가득한 이 섬에서 용서받기 힘든 죄인 것이다. - 213

- 긴조는 일본이 전쟁에서 진 게 억울하면서도 뱀처럼 자신을 친친 감고 있던 공포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그는 안도하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도축업자 뒤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진정으로 슬퍼하며 흐느껴 우는 아내 옆에서 거짓으로 흐느껴 운다. - 237

- 친척들은 내가 올바로 시집갈 수 없는 처지여서 조선인 남자와 살고 있다고 수군거렸지만, 내가 당신과 살고 있는 것은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믿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히데오의 친부가 찌그러뜨린 내 심장을 펴줬어요. 내 심장은 발로 마구 밟은 깡통처럼 찌그러져 있었어요. 여보, 나는 당신의 아내인게 부끄럽지 않아요. - 273

- 모르던 오키나와, 모르고 싶었던 오키나와.... 2023년 3월, 처음 오키나와를 찾았다. 태평양 전쟁 말기 조선인 위안부 위안소가 140여 개나 있었던 곳(그곳에 있었던 조선인 위안부는 1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인 군부 1만여 명이 인력으로 동원된 곳. 대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키나와 땅에 묻힌, 그런데 존재했던 흔적조차 덮이고 잊힌 위안부와 군부들이 생생히 살아서 존재했던 장소들을 답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 오키나와 전쟁 당시 가장 끔찍한 집단 자결이 있었던 도카시키 섬의 생존자인 85세의 요시카와 요시카쓰 선생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며 들려주신 말씀도 적고 싶다. 참혹하게 죽은 조선인 위안부들을 자신들의 섬에 묻어주며 주민들이 하셨다는 그 말씀을 나는 소설에 담기도 했다. "하늘과 바다는 이어져 있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가." 영혼이라도 고향에 보내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 그 마음 덕에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더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무엇에 대해, 누구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 작가의 말 중

2024. aug.

#오키나와스파이 #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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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시의적절 7
황인찬 지음 / 난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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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출판사의 시리즈. 시의 적절하게 시인의 이야기를 매달 출간하고 있다.

흥미로운 기획이라 살펴보니 8월까지의 시인 리스트에 읽어본 시인이 셋? 넷?

한 달간의 일기처럼 시와 에세이가 있다.

어떤 날은 흥미롭고, 어떤 날은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일기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오은 시인의 5월도 읽어볼까 싶다.

- 시를 통해 시의적절함을 헤아리는 일은 어쩌면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ㅏ. 시라는 것은 때가 어긋났기에 가능해지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 부적절함 덕분에 할 수 있는 생각이 또한 있겠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대착오적인 것, 때에 어울리지 않는 것, 그리하여 어딘가 어색하고 낯선 것, 그것은 비단 시만의 성격이 아니라 우리 삶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점에 기대어 이 책을 엮어보았습니다. - 10

- <여름의 빛>
무심코 내려다본 운동장
축구하는 애들
그늘에 앉은 애들
혼자 운동장 구석을 걷는 아이가 하나
계속 보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여름의 빛이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고
선생님의 목소리와
운동자의 소리가 섞여 사라졌고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그날 처음으로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애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은
종이 울려서
다들 일어나기 시작했다

- 선택하는 일보다는 포기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게 더 쉬우니까. 다치지 않으니까. 욕망을 갖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미워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별로 자랑할 만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자기기만이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태도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포기할수록 나는 더욱 부끄러운 인간이 되었다. - 48

- 끝없이 계속 떠오르는 그것들에 구조를 부여하고, 서사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대개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형해화하여서, 시나 소설 따위를 자꾸 써내려갔다. 나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낼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그 쾌감 속에서 가끔은 구원받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48

- 내가 시쓰기를 계속하며 알게 된 것은 문학은 구원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구원은 문학의 밖에 있거나 어디에도 없으며,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구원을 향해 나아갈 결심을 하도록 아주 조금 돕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학이 그릴 수 있는 이야기란 결국 당연한 이야기거나 당연해야 할 이야기일 따름이니까. - 95

2024. aug.

#잠시작게고백하는사람 #황인찬 #7월 #시의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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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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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장편. 김애란 작가가 돌아왔다.
코멘터리 북을 보니 개인적인 건강 문제도 좀 있었나 보다, 같이 나이 들고 있다는 감각의 작가라서 마음에 걸렸다. 건강 잘 챙기세요 작가님.:)

이야기는 조금 평범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특유의 잔잔한 위로와 안정감이 존재한다.
세 주인공이 결국엔 평안함에 이르렀으면,
불안하고 흔들리는 그런 시간들을 지나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알게 되었으면,
그러니 크게 상심 말고 행복한 순간들을 조금 더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미성년 학생이라 그들의 가족에 더 심적으로 기울었다는 점이 평이한 이야기라고 느끼는 요인인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시 장편이 읽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

장편을 자주 만나고 싶다.

- 가정 시간에 인간의 발달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 "인간은 기기 시작할 무렵 비로소 깊이에 공포를 갖는다"는 말을 듣고 놀란 기억이 났다. 채운은 깊이나 높이에 대한 공포처럼 단순한 감각도 날 때부터 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인간은 앉는 법과 서는 법, 물 삼키는 법까지 일일이 배워야 하는 존재였다. 어느 건 배워도 안 지키고, 알고도 실천 못하는. - 23

- 지우가 잠시 숨을 가눈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난이란......
지우는 문득 교실 안이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지우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조금 의연해진 투로 다음 문장을 읽어나갔다.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 85

- 소리는 가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 꿈과 깨끗이 작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그저 다음 단계로 간 것뿐"이라며, '작별한 건 맞지만 깨끗이 헤어진 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게 사는데 그건 꼭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면서.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재능은 있되 그게 압도적인 재능은 아님을 깨달아서였다. - 129

- '반면에,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채운은 앞으로 자기 삶에 이어질 접속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한 사건과 다음 사건 사이에 놓일 말로 적절치 않아 보였다.- 172

-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 작가의 말


2024. aug.

#이중하나는거짓말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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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녀 (워터프루프북)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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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북클럽 에디션의 책.

메리 셸리도 어쩔 수 없이 옛날 사람인지라.. 지금의 감수성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지만...

<변신>에서의 망나니 우쭈쭈 같은 건 못봐주겠달까.
'어이쿠 악마한테 당할 뻔' 이지랄 하는거 보면... 으아악 싶어짐.

<비이지 않는 소녀> 에서도 여성을 적대시 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심리적인 거리감은 생기지만 그러나 어지간한 모든 분야를 통틀어 사회적 행위에서 배제된 여성이 잉여의 시간에 쏟는 노력이 어디로 향하겠는가를 생각하면 그시절이라면... 이라는 이해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여성일 수록 가족 안의 아름답고, 어질고 행복해 보이는 피사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어쨌든 통속은 재밌으니,
그 시대를 풍자하는 역할로, 말 그대로의 엔터테인먼트로 좋았을 것 같다.


- 비통한 아픔으로
아려 오는 이 마음이
내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게 하였고
나는 자유가 되었다.
그 후로 시시때때로
그 아픔이 돌아오고
내 끔찍한 이야기가 말하여질 때까지
이 내 심장은 타오른다.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

2024. aug.

#보이지않는소녀 #메리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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