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세헤라자데의 천일 간 이야기처럼 이야기에서 비롯되는 이야기, 어디엔가 모티브가 있을 법한 이야기들.9개의 이야기들이 전하는 각양각색의 원석들 같은 이야기가 흥미롭다.그 중 <다크 레이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다만 독서 컨디션에 조금 좌우되는 집중도. 그것만 극복하면...- "아, 어쩌죠. 갑자기 다 나가 버렸어요. 다들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 말은 콘스턴스 당신은 대비하지 못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사실이 그렇기는 했다. 평생에 걸쳐 반복된 실패. 콘스턴스는 결코 대비라는 걸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매사에 대비하고 산다고 치면 대체 어떻게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지? 일몰에 대비하다니. 월출에 대비하다니. 얼음 폭풍에 대비하다니. 그래 버리면 너무 밋밋한 삶이 되지 않겠나. - 21, 알핀랜드 중2024. nov.#스톤매트리스 #마거릿애트우드
인실이라는 강인한 여성의 삶이 좀 평온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발자취를 찾아 읽게 된다.올곧기 어려운 시절에 정의롭고 올곧은 여성으로, 적국의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비운의 인물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안중근, 윤봉길 독립운동가들의 시기.안중근 의사가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는 이야길 들었다.평화주의자, 박애주의자였다니... 그 시대가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을까 싶다.- 사회 자체가 거대한 에고이즘의 덩어리라는 말은 맞는 말이네. 전폭적인 긍정으로 감상주의에 흐르는 것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야. 더더구나 민족주의를 휘두르고 나가는 사람들에겐... 사회주의자들도 마찬가지야. 민중에게 절망하는 것도 그러하나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어리석어. 실체를 뚫어보지 않고 하는 일은 결국 붕괴된다. - 38- 한말, 일본이 조선을 먹어들어올 무렵, 의병 봉기에 이어 오늘 현재까지 괴히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만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부여대, 이주해갔고 항쟁의 터전으로 부상된 곳, 조선민족에게는 서사시적 무대이며 아득한 예적부터 민족의 혈흔이 점철된 그곳 간도의 땅을 선우일이 말한 대로 중국에게 결정적으로 넘겨준 것은 일본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두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사살했던 그해, 1909년 청일간의 간도협약을 맺음으로써 그 땅은 청국으로 넘어갔다. 말하자면 일본은 두 걸음 전진하기 위하여 한 걸음 후퇴한 것이다. 간도를 중국 땅으로 확정 지으면서 일본이 얻어낸 것은 일본 영사관 내지 영사관 분관을 설치하는 일이었고 장차 청국의 길장철도를 연길 남쪽까지 연장하여 회력의 조선 철도와 연락하게 하는 것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영사관 설치는 조선 독립군을 색출 탄압하는 합법적 본거지가 될 것이며 철도의 연결은 병력과 군수품의 신속한 이송을 위한 장차의 포석이었던 것이다. - 502024. nov.#토지 #4부4권 #박경리 #나남
외로움에 사무친 인간의 연속되는 최악의 선택.한 사람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자원인 가족에서 경험하지 못한 안정감을 사회에서 찾으려면 종교라는 대체재가 거의 유일한 것일까?직장이든 친구든 결국 인간은 홀로 서야 하는 존재이니, 심리적인 공허함을 종교에서 찾는 게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도.종교에 딱히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다.그리고 위안이 되는 애착을 결국 찾지 못하고,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결국 타인에게도 줄 수 없는 인간으로 드러날 수 없다는 점이 비극.김성중의 이야기는 기묘한 불유쾌함을 환기시키는 경우가 많고, 그게 특유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그 불편한 느낌이 무척 시각적이라는 부분까지.- 그러나 죄에 비해 벌을 적게 받으면 다른 값을 치러야 하는 법이다. 무신론자들의 신, 양심이란 벌 떼가 귓가에서 윙윙대기 때문이다. - 9- 어떤 아이가 사랑이 없는 곳에서 자라야 한다면, 그 아이에게 아무도 모르는 내면이 있고 거기에 자신이 통과한 세계를 옮겨 놓는다면 10대의 내 일기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모든 문장에 날이 서 있었다. 분노와 서글픔, 자기 영역을 갖지 못한 야생동물의 조심스러운 보폭과 경계심이 느껴졌다. '자기영역'이란 한 존재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장소와도 같은 것이다. - 12- 환상적인 사람들, 정확히는 '환상 속에 고립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제가 매혹되는 타입인데요. 이들은 '환상을 발명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가난이나 폭력처럼 메울 수 없는 결여뿐만 아니라 부족한 애정이나 인정을 자기 힘으로 채울 수 없을 때, 어떤 이들은 자기만의 환상을 만들어 몰두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인간에게 경이를 느끼는 지점이 이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텅 비어 있지 않아요. 빈자리를 폭력이든 중독이든 뭐로든 채워 넣습니다. 메울 수 없는 공허함을 가진 사람에게 '캠프'의 '교수'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어떤 '환상'을 제시해 주면 채택하기가 쉬워지는 거지요.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삼았지만 제가 정말 들여다보고 싶던 것은 그런 사람 안에 뚫려 있는 터널 같은 마음이에요. - 작가 인터뷰 중2025. jan.#두더지인간 #김성중 #위픽시리즈
미스터리 단편들.음험한 인간상들이 펼쳐지는데, 이 사람은 나쁘다라는 감각보다는 뭐 이런 기분 나쁜 인간이 있나... 싶은 감각이다.오래전에 사둔 책이고(어느 책이 안 그럴까 싶....) 단편집인지 몰랐다.첫 편의 경찰 이야기가 그래서인지(장편은 초반 설정을 세밀하게 봐둬야 하기 때문에) 흥미로웠다.그런데 단편이었네? 흠... 하면서 다음 편, 다음 편으로 넘어간 점이 좀 김빠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전반적인 일본 무드랄까. 그런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는데, 그건 이야기 자체도, 캐릭터들도 음울하기 때문인 듯 하다.어쨌거나 책표지의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정점...이라는 광고 문구는 너무 과장이다.2025. jan.#야경 #요네자와호노부
반인륜적 전쟁이 크게 두 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국가 간의 극한의 경제적 이익 추구로 인한 반목이 어느 때보다 노골적인 시대에 이 이야기만 한 판타지가 있을지.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이익을 뒤로 하는 집단이라니.일단 워낙의 베스트셀러인데다 영화까지 성공한 소설인데, 사두고 이제야 읽었다.기술적인 묘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함에도 지루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점이랄까.공들여 읽지 않아도 대략 흐름만 인지하고 넘어가면 되는 부담감 없는 과학적 사실들.홀로 생존 난이도가 극악인 곳에 떨궈진 낙관적이고 건강한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인 주인공은.비관 없이 하루하루를 충분히 살아가는데, 그 점이 독자인 나를 매우 고무적으로 만드는 부분이다. ㅋㅋ- "어떤 기분일까?"그는 잠시 생각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저 먼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자기가 온전히 혼자이고 우리 모두가 자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그는 벤카트를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지금 마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일지 기록 : 61화성일째>아쿠아맨은 어떻게 고래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까? 고래도 포유류가 아닌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 98- 집에 돌아온 후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토록 멋진 나의 모든 계획이 열역학 때문에 좌절되다니. 빌어먹을 엔트로피! - 109- 덕트 테이프는 거의 진공에 가까운 대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덕트 테이프는 어디서든 사용이 가능하다. 덕트 테이프는 마법이며 숭배해야 마땅하다. - 331- 나를 살리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그렇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수 세기 동안 꿈꾼 행성 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어서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헌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덕분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멋지지 않은가? - 5492024. nov.#마션 #앤디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