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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읽은 `빛의 호위`에서도 르포 같은 느낌으로 잘 쌓은 이야기를 보여주어 매우 호감이었는데,
먼저 출간된 책이지만, 나는 뒤이어 읽은 로기완을 만났다 역시. 촘촘하니 꽉 채운 느낌의 이야기다.
분명 제목은 ~ 만났다 인데 난 왜 자꾸 ~ 만나다로 읽는지.
이야기의 후반부 까지 만나기 위해 로기완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 보려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 때문일까.
아무래도 만났다라는 완결의 의미 보다는 그의 흔적을 만나다 라는 현상의 의미로 다가왔나보다.
탈북자 신분으로 중국에서 숨어지내던 로기완은 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시신을 판 돈으로 아무런 기약도 없는 유럽의 나라 벨기에로 떠난다.
이 단순한 설명이 주는 막막함이 그냥 훅 다가왔다.
이 세상은 요지경이어서, 이 세계 어느 곳에서 어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소설에서와 같은 현실을 꽤나 자주 접할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싶고.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 관습 혹은 단순한 호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커뮤니티, 실체도 없이 우리 삶의 테두리를 제한하고 경계짓는 국적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p.10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p. 48
그러나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누군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몰랐으며 항상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느 지점에서 고조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삶 속으로 유입되어 그들의 깨어 있는 시간을 아프게 점령하는 것인지, 나는 영원히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누구의 위로나 체온도 없이 가까스로 그 시간을 지나온 후에야 조금은 지친 모습으로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러므로 나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p.124
자세한 것을 묻지도 않고 섣부른 판단도 하지 않는다. 박은 그저 묵묵히 들어준다. 내 이야기가 다 끝난 후에야 박은 조심스럽게 말 할 뿐이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 됩니다.˝ 출국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p.183
믿고 싶다. 결국엔 위로의 언어로 기억되기 위해 쓰여지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가 그들의 삶 너머의 누군가에게도 살아가는 한 방식으로서 읽힌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 작가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