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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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분열적이어서 슬프다.
시공을 뒤흔들며 여기저기로 원치않음에도 옮겨지는 빌리의 정신이.
그 혼돈 속에 사는 삶이.

뭐 그런거지.. 라고 자조적으로 말을 맺을 때마다 헛헛함이 밀려왔다.

세계대전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대체로 심드렁한 반응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우리 나라가 피해당사자 국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참상과 아픔과 상실들에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커트 보니것의 책을 여러권 읽었고, 그 때마다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5도살장은 그 중에선 가장 잘 읽혔다.


-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어쨌든, 전쟁 이야기는 아주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 13

- 그렇게 그렇게 끝없이 계속된다.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럴 때면 대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드레스덴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번은 영화 제작자 해리슨 스타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그거 반전 책이오?”
“네.” 내가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반전 책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 내가 하는 말이 뭔지 아쇼?”
“아니요. 대체 무슨 말을 하나요, 해리슨 스타?”
“이렇게 말한다고 ‘대신 반빙하 책을 서보지 그러오?’”
물론 그가 한 말의 의미는 전쟁은 늘 있는 것이고, 전쟁을 막는 일은 빙하를 막는 일과 같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설사 전쟁이 빙하처럼 계속 오지는 않는다 해도, 평범하고 오래된 죽음은 계속 있을 것이다. - 16

- 나는 또 아들들에게 학살 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일하지 말고, 우리에게 그런 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멸하라고 말해왔다. - 34

- 우리 트랄파마도어인은 그것을 하나씩 차례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꺼번에 읽습니다. 그 모든 메시지들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다만 저자는 모두 신중하게 골맀지요. 그래서 모두 한꺼번에 보면 아름답고 놀랍고 깊은 삶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시작도 없고, 중간도 없고 끝도 없고, 서스펜스도 없고, 교훈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책에서 사랑하는 것은 모두가 한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경이로운 순간들의 바다입니다. - 116

- 있잔나 - 우리는 여기에서 전쟁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네. 우리처럼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고 상상했지. 전쟁은 아기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거야. 새로 면도한 저 얼굴들을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네. ‘맙소사, 맙소사-’ 나는 혼잣말을 했지. ‘이건 소년 십자군이로구나.’“ - 137

- 많은 새로운 것이 미국에서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 선례가 없는 것은 위엄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 165

2023. mar.

#제5도살장 #커트보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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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07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커트 보니것 첫 책으로 픽해서 들여놨어요^^
젤 잘 읽히셨다니 저도 곧 읽어야겠습니다~~~

hellas 2023-03-07 18:09   좋아요 1 | URL
빌리의 착란을 같이 경험한 기분이 들어요. 재밌게 읽으시길:)
 
나이트 스쿨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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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질질 끄는.. 대체 그래서 팔려는게 뭔데! 싶은데 뭔지 뻔한데도 숨기고숨기는게 웃김.

독일 인구의 3퍼센트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절의 전쟁통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이야기.

조금 지루했다.

- 그는 예전에 독일 경찰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 헌병과 경찰 모두 쉽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독일인들은 나치로부터 자신들의 조국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심부름꾼이 딸린 초대형 군사 기지를 구입했다고 생각한다. - 115

2023. mar.

#나이트스쿨 #리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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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거짓말 오늘의 젊은 작가 11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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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점철된 관계라는 점이 이상스럽게 짜증을 유발한다.
나한테 뻥치는 것도 아닌데. 구라라고 처음부터 알려줬는데도.

-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니라 치는 거라고 알려 준 건 아버지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뺑소니를 친다거나 사기를 친다거나. 그러니까 거짓말을 친다는 건 두루두루 나쁜 짓이었다. 사람을 친다는 의미로 봐도 뒤로 치고 들어간다는 의미로 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 9

- 거짓말과 진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둘은 언제고 돌변해서 입장을 바꾼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짓이었던 게 순식간에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영원한 척 굴다가 누가 언제쯤 다른 가면을 쓸지는 아무도 모른다. - 23

- 예전엔 거짓말이면 누구든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될 수 없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 165

2023. mar.

#거의모든거짓말 #전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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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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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가 가득한 단편들.

요즘 많은 글들이 그렇듯, 잔잔하고, 갑갑한 마음이 드러나는.

- 자매는 내내 겨울을 살다 갑자기 봄의 한가운데로 내쳐진 것 같은 당혹감을 느꼈다. 이렇게 화사해도 좋은가 싶게 꽃들이 낭자했다. 검고 무거운 옷을 입고 꽃 그늘 아래 앉은 자신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소포 같았다. 그래도 봄이 좋긴 좋구나. 이 와중에도 꽃을 보니 웃음이 나오잖아. 첫째가 말했다. - 오늘의 할 일, 9

- 다시는 태어나지 마요. 그게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말이었다. 노스님이 준비해준 아버지의 종이옷을 태우면서, 봄의 대기로 하얀 재를 풀풀 날리면서 그녀는 오늘 자신의 유년을 영영 떠나보냈다. 더불어 어느 추운 겨울날 눈이 얼음장으로 꽁꽁 얼어붙은 골목길에 어린양 한마리를 놔두고 혼자 도망쳐버린 기억도 영영 하늘로 날려버렸다. 아버지, 내 죄까지 가져가고 다시는 태어나지 마요. - 오늘의 할 일, 29

- 수라 언니의 말 가운데 내 관심을 끈 대목은 미애와 달랐고, 그 말은 그후로도 꽤 오랫동안 수라 언니에 대한 내 인상을 좌우했다. 나는 우리 딸이 크게 불행하지 않게만 살았으면 좋겠어. 저 사람은 어떤 큰 불행을 겪었기에 저런 소원을 갖게 되었을까? 그러나 이 고립의 밤에 혼자 소파에 누워 그날의 대화를 찬찬히 되짚어보니 언니가 방점을 찍은 단어는 다른 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불행하지 않게만’ 살았으면 하고 바란 게 아니라 크게 불행하지 않게만 ’살았으면‘하고 바랐던 게 아닐까 하고.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114

2022. sep.

#그고양이의이름은길다 #이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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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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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보지 못한 영화가 많아서 지인에게 이야기 했더니, 그 책의 영화 리스트를 대부분 보는 게 더 이상한거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 ㅋㅋㅋ
그만큼 마이너한 감성이라는 얘기일까 싶었다. ㅋ

편당 그리 길지 않은 리뷰와 감상으로 재밌게 금방 읽을 수 있다.

‘내 인생의 영화들’ 목록은 아님을 밝히고 있으며, 좋은 면을 보려 노력한 글이라 점을 감독이 밝힌 만큼, 보지 않은 영화가 많은건 당연한 일인지도.

- 사람들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영화의 윤리학자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훈계나 일삼는 고리타분한 도덕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내 생각에는 세상에 윤리적이지 않은 영화란 없는데, 그건 <투캅스>나 <13일의 금요일>조차 그렇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전면에 드러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대개의 상업 영화들은 자기가 윤리 문제와 상관없는 척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상업영화로서는 결격 사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대중은 윤리에 관계된 훈시를 몹시도 원한다. 어떤 교훈도 얻을 수 없는 영화는 어떤 재미도 주지 못하는 영화일 것이다. - 36

2023. feb.

#박찬욱의오마주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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