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작가 생활
존 스칼지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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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미리보기를 봤는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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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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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기록 남길 때마다 얘기하는데 리베카 솔닛은 정말 취향은 아닌데,
자꾸 읽게 된다.
뭐지? 왤까?

이번엔 조지 오웰의 가드닝에서 시작되는 사유들.

한 남자가 장미를 심었다. 로 변주되는 각 장의 이야기들은 조지 오웰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애정하므로 비판도 자유롭다.

장미가 드러내는 미적 측면과 그 이면의 어두운 진실들을 끊임없이 교차하며 이야기한다. 환경과 정치와 계급, 여성주의,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들.

솔닛의 다른 저서들 보다 훨씬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조지 오웰이 주제여서였을까.

콜롬비아의 화훼 산업이 코카인을 대체하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흠...

- 만일 전쟁과 정반대되는 것이 있다면 때로는 정원이 그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숲과 초원과 공원과 정원에서 독특한 평화를 누려왔다. - 14

- 그는 이렇게 제안한다. 나무를 심는 것, 특히 오래가는 단단한 나무를 심는 것은 돈도 수고도 별로 들이지 않고 후세에 해줄 수 있는 선물이다. 만일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당신이 선악 간에 행한 다른 어떤 일이 갖는 가시적 효과보다도 훨씬 오래갈 것이다. - 18

-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행위는 수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식물 세계 및 식물이 하는 일과의 협동을 의미하도록 내버려두자. 얼마간 더 탄소를 격리하고 산소를 생산하는 유기체들을 심고 돌보는 것,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싶다는 욕망, 장미와 유실수가 장차 여러 해 동안 꽃 피우고 유실수들은 수십 년 후, 어쩌면 한 세기 후까지도 열매 맺을 미래에 투자하려는 욕망을 의미하도록 말이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이미 산산이 부서진 것을 다시금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관계, 땅의 풍요로움을 직접 거두며 무엇인가가 어떻게 하여 존재하게 되는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은 규모는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설령 고작 도시의 고층건물 창턱에 제라늄을 가꾸는 것이라 해도, 의미에 있어서는 중요할 수 있다. - 104

-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라는 옛말이 있다. 진실에 대한 상시적인 전쟁은 국내적으로나 전 지구적으로나 모든 권위주의의 기반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권위주의는 우생학과 마찬가지로, 권력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이다. - 199

- 정원은 당신이 원하는 (그리고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무엇이고,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는 곧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항상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질문이다. - 203

- 나는 라틴계 벽화가 후아나 알리시아로부터 그점을 배웠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내가 일찍이 맡았던 최초의 강의를 수강했다. 당시 나는 20대였고, 강의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렸던 풍경 및 재현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였다. 후아나는 마친 나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고 가끔 집에 오는 길에 자기 차에 태워주곤 했는데, 강의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 또 젊은 여성이었을 때 캘리포니아에서 농장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임신 중에 상추 따는 일을 할 때는 농약을 온몸에 살포당했으며, 내가 보여주는 모든 농촌 풍경이 그때 일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가장 친절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비판이었다. - 212

- 오웰은 남의 땅과 노동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제국의 하수인 및 식민자들의 후손이었다. 그의 모친 아이더 메이블 리무쟁 블레어는 버마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프랑스인 아버지는 티크 상인이자 조선업자였다. 해안 인근의 티크 숲, 섬의 사탕수수밭, 대륙 중앙의 양귀비밭, 그런 것이 전 세계로 펼쳐져나간 노동과 착취의 풍경이었지만, 멀리 떨어져서 그 혜택을 보는 이들에게는 그런 풍경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상의 죄가 후대로 세습된다고는 믿지 않지만, 유산은 분명히 세습된다. 오웰은 제국주의 사업과 국내의 계급 사회에서 혜택을 누렸던, 그리고 때로 실제 권력을 지녔던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 229

- 노동자들은 구호를 갖고 있다. “연인들은 장미를 얻고, 우리는 가시를 얻는다”라고 말이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수천수만 송이 장미가 있는 온실, 매년 수백만 송이의 장미를 생산하며 줄기와 잎사귀와 꽃잎을이 바닥에 널리고 산더미 같은 부산물로 쓰레기통에 쌓이는 현장은 그렇지 않다. 그 장미들이 아름답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은 다른 대륙의 다른 곳을,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 272

- 오웰의 가장 의미심장한 맹점 중 하나는 젠더에 관해, 결혼과 가정이 어떻게 권위주의 체제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지, 진실을 탄압하고 강자를 보호하는 거짓을 선포하기에 이르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런 관행은 일터와 학교에서, 공적 생활에서, 그리고 사생활에서는 법과 관습과 문화에 의해 강화되는 부분들에서 복제된다. 그는 그런 불평등을 전략적으로 망각했던 세대에 속했다. - 297

2023. may.

#오웰의장미 #리베카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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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반지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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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깔 대며 웃기는건 아니고,
그저 작가와 한자리에 있게되면 끊임없이 즐거울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의 에세이다.

그걸 그냥 웃긴애. 라고 구분하기에는 좀 아깝지 않나 싶다.

끊임없이 사유한 사람이 뱉어낼 수 있는 냉소와 자학의 유머.

- 복싱을 시작하자, 길지 않은 한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을 쥐어패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그냥 다 대놓고 쥐어팰 수만 있었다면 모든 것은 차라리 깨끗하고 선명했을는지 모른다. 그간의 삶에서 채워지지 못했던 욕망 하나가 위험한 고개를 들려하고 있었다. 관장과 코치가 미트를 끼고 주먹을 받아줄 때마다 그 욕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더, 더, 더, 때리고 싶다, 또, 또, 또, 때리고 싶다. 그저 세상의 대부분을 다 쥐어패버리고 싶다.
관장은 나에게 처음 오셨는데도 참 잘한다며 길에서 많이 싸워보고 오셨나봐요, 농을 쳤다. 마스크 밖으로 드러난 두 눈을 동시에 적당히 반달 모양으로 감아주며 아무렴, 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쥐어패지 못했을 뿐이다. 다만 아무도 쥐어패주지 못했을 뿐이다.
(...)
그러다 결국 깊은 깨달음에 다다른다.
나,
복서 될 수 없다.
나,
조금도 맞고 싶지 않다.
나,
오로지 패고만 싶다.
그저 때리고 또 때리고,
그러고도 또 때리고만 싶다.
모두를 쥐어팰 수만 있다면,
한 대도 맞지 않고 그런 것이 허락되는 지금이 오늘 내게 와준다면.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만의 쨉쨉 유토피아를 꿈꾼다.- 18

-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만사가 힘들어진다.
(...)
살아 있는 상태를 잊어야 자연스럽게 살아진다. - 36

- 분명 누구에게나 위험하고 어려운 자리에 적어도 나보단 앞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그들의 옆구리를 습관처럼 찔러댔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너무나 온당하고 그럴 법한 일이었다. 어느 커뮤니티에나 있을 법한 흔하디흔한 세대와 마음의 역동이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평생토록 온당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잊는 듯했다. - 45

- 제법 다수의 남들이 하는 고생을 안 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라도 고통의 개수를 줄여냈다는 것이 무척 뿌듯했다. - 93

- 나는 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작품이나 전시에 덧붙여진 갖가지 수사와 설명을 어떻게든 무시하고 읽지 않으려 애써왔다. 세상에는 가능한 한 가장 무식한 상태에서 즐기고 싶은 작품이란 게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 어떤 세상도 맥락도, 심지어 삶까지도 없기를 바라게 만드는 작품. 그런 거짓말을 믿고 싶게 하는 작품들은 관객이 그만큼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흠모를 이어가게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이 작품을 향한 마음을 멈추지 않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 그저 칼더가 웬만한 그 시대 아트 마스터들이 했을 만한 대중적 나쁜 짓 외에 크게 뭘 안 하고 살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여전히 그에 대해 알고 싶지만 깊이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득 안고 미술관을 나섰다. - 260

- 앞으로도 계속 웃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삶의 근본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젠더이고 섹슈얼리티이자 커뮤니티이다. - 289

2023. may.

#나는왜이렇게웃긴가 #이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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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하고 순박한 마음의 소유자 핍에게 주어진 평생의 꼭두각시 놀음이랄까.
상류 사회로의 편입에 대한 욕망. 단 하나 원했던 사랑의 패배.
그런 것들이 통속의 통속으로 버무려진 이야기.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남의 인생에 난입해 난도질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 타인에게 관대하고 깊은 사랑을 줄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 이야기다.

핍이 조금더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었다면 행복과 불행의 무게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양면을 오롯이 살아내게 하려면 그런 캐릭터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킨스의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생을 그리는 탁월함은 부정할 수 없다.

매부인 조와 비디, 매그위치와 허버트가 핍에게 주어진 위대한 유산 아닌지.

- 뜻밖에 면죄부가 주어진 내 좀도둑질 행위에 대해 내 마음 상태는 그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망ㅁ의 밑바닥에 선한 양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에 더 이상 떨지 않아도 되었을 때, 내가 조 부인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 같은 여린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든가 하는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나는 매부 조만은 사랑했다. - 그건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그 어린 시절에 선량한 그가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도록 허락해 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 관해서는 내 속마음이 그렇게 쉽게 편해지지 못했다. 나는 조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많이 생각했다. - 78

-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이다, 핍. 그런데 이보게, 이건 내가 자네한테 아주 진지하게 말하고 싶은 거라네. 난 불쌍한 우리 어머니에게서, 고되게 노예처럼 일만 하면서 정직한 마음에 상처만 입고 평생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너무나 뼈저리게 보았단다. 그래서 여자에게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잘못을 저지르는 걸 끔찍이 두려워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잘못을 해서 내가 좀 불편하게 사는 것이 둘 중에 그래도 낫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핍, 괴로움을 당하는 게 나 혼자라면 얼마나 좋겠니. 이보게, 자네가 ‘따끔이’한테 얻어 맞는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모든 걸 내가 대신 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지. 하지만 그런 건 오르락내리락 평평한 인생사의 기복처럼 어쩔 수 없는 거란다, 핍. 그래서 난 네가 그런 부족한 점들을 잘 참고 넘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 94

- 난 지쳤단다. 미스 해비셤은 말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해. 그런데 세상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었지. 자, 놀아 보거라. - 110

- 우리 누나의 양육방식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누구한테 양육을 받든지 간에 아이들이 존재하는 조그만 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만큼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인식되고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사가 그저 조그만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존재이고 아이의 세계도 작다. 그리고 그런 작은 세계에서 아이의 흔들목마는 비율로 칠 때, 우락부락한 아일랜드 사냥개만큼이나 커다랗고 높이 솟은 존재로 보이는 법이다. 유아기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부당한 처사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과 거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말을 할 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누나가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억압으로 나를 부당하게 대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나를 손수 길러 준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를 마구 패대기치며 기를 권리를 누나에게 부여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나는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당한 그 모든 처벌과 구박, 밥굶기와 잠 못 자기, 그리고 참회를 강요하는 그 밖의 여러 고행들을 통해 나는 이 확신을 키워 나갔으므로, 내가 정신적으로 소심하고 매우 예민하게 된 주된 원인은 바로 혼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이 확신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 탓에 있다고 믿는다. - 118

-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모든 것들을 깊이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천한 막노동꾼 소년이라는 점과, 내 손이 거칠다는 것, 내 구두가 두껍고 흉하다는 것, 네이브를 잭이라고 부르는 천박한 습관을 내가 지니고 있다는 것, 내가 어제까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무지하다는 것과, 전체적으로 볼 때 내가 비천하고 불량한 존재라는 사실 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122

- 자, 그러니 핍, 이제 진정한 친구로서 내가 너에게 해 주는 말을 잘 듣거라. 진정한 친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만약 똑바른 길을 가는 걸로 비범하게 될 수 없다면, 비뚤어진 길로 가는 걸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그러므로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거라, 핍. 그리고 잘살다가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라. - 134

- 조는 길까지 나를 배웅해 주러 나와서는 나한테 도움이 될 작별의 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길길이 날뛰기도 하다가, 핍, 길길이 날뛰지 않기도 하다가, 핍 -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이란다!” - 214

- “네가 나를 비난하든 칭찬하든......” 불쌍한 비디는 대답했다. “너는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여기에서 내 능력이 미치는 모든 것을 언제나 열심히 할 거라는 점은 믿어도 될 거야. 네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떠나든지 간에, 너에 대한 내 기억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 거야. 다만 신사라고 해서 남을 부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면서 비디는 고개를 돌렸다. - 277

- 너는 그걸 받아야만 해! 우린 우리한테 주어진 지시에 복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어, 너와 나는 말이야. 우린 우리 자신의 의지를 따를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야, 너와 나는 말이야. - 30

- 그겨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는 미소 띤 얼굴로 잘 가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녀 역시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대로 선 채 그 집을 바라보며, 그녀와 함께 그 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결코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언제나 비참하기만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41

-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비록 그 때문에 비참한 심정이 되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내 종속된 처지를 새삼 통렬하게 의식하고 심지어 비하감까지도 통렬하게 느꼈지만,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에스텔러가 남자들에 대한 미스 해비셤의 원한을 풀어 줄 도구로 의도되어 있다는 것과 에스텔러가 일정기간 동안 그런 의도를 만족시켜 주기 전까지는 나한테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왜 내가 그녀의 상대로 미리 정해져 있는지를. 남자를 매혹하고 고문하고 해를 끼치도록 그녀를 세상에 내보낼 때 미스 해비셤은 그녀가 모든 구애자들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그래서 그녀를 차지하려는 경쟁에 뛰어든 모든 남자들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악의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비록 상을 탈 승자로 예정되어 있지만 나 역시 교묘하고 뒤틀린 술책에 의해 그동안은 고통당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 98

- “어머니께서는 아셔야만 해요.” 에스텔러가 말했다. “저는 어머니께서 만들어 낸 존재라는 것을 말이에요. 칭찬이든 비난이든, 성공이든 실패든, 전부 다 어머니 몫이에요. 말하자면 내 모든 것이 어머니의 몫인 거예요.”
“오, 저것 좀 봐, 저것 좀!” 미스 해비셤은 사무치는 분노로 소리쳤다. “저것 좀 봐, 자기를 키워 준 이 난롯가에서 저렇게 무정하고 배은망덕하게 굴다니! 이 가련한 가슴이 처음 상처 받고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자기를 품 안에 받아들여 이 난롯가에서 여러 해 동안 그토록 깊은 애정을 쏟아부어 주었건만 저렇게 굴다니!“
”적어도 저는 그 계약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에스털러는 말했다. ”그 계약이 맺어졌을 때, 제가 비록 걷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닌 무엇ㅇ르 바라는 거지요? 어머닌 저에게 매우 잘해 주셨고, 저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빚지고 있어요. 그러니 자, 무엇을 바라는 거지요?“
”사랑을 바란다.“ 미스 해비셤은 대답했다.
”그건 이미 받고 계시잖아요.“
”아니야, 받지 못했어. “ 미스 해비셤이 말했다.
(...)
”저렇게 거만할 수가, 저렇게 말이야!” 미스 해비셤은 두 손으로 자신의 허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신음하듯 말했다.
“저에게 거만하라고 가르친 사람이 누구죠?” 에스텔러는 대답했다. ”제가 그 가르침을 잘 배워 실천했을 때 저를 칭찬한 사람이 누구죠?“
”저렇게 무정하다니, 저렇게 말이야!“ 미스 해비셤은 아까와 같은 동작을 또 하며 신음하듯 말했다.
”저에게 무정하라고 가르친 사람이 누구죠?“ 에스텔러는 대답했다. ”제가 그 가르침을 잘 배워 실천했을 때 저를 칭찬한 사람이 누구죠?“
”그렇다고 나에게까지 거만하고 무정하게 군단 말이냐!“ 미스 해비셤은 두 팔을 내뻗으며 완전히 비명에 가깝게 외쳤다. ”에스텔러, 에스텔러, 에스텔러, 그렇다고 나에게까지 거만하고 무정하게 군단 말이냐!“
에스텔러는 한순간 일종의 조용하지만 놀란 표정으로 미스 해비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밖에는 동요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 순간이 지나갔을 때 그녀는 다시 난롯불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어머니께서 왜 이토록 비이성적으로 행동하시는지 알 수 없어요.“- 101

- ”밝게 빛나는 촛불 주위에는......“ 에스텔러는 그를 한 번 흘끗 보며 대답했다. ”나방과 온갖 종류의 혐오스러운 벌레들이 꼬여 드는 법이야. 촛불이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겠니?“ - 112

- 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난 네놈들이 절대 따라가지 못할 훌륭한 신사를 기르고 있단 말이다, 이놈들아!’ 그놈들 가운데 한 놈이 다른 놈에게 ‘저자는 몇 년 전에 죄수였다오. 그리고 지금도, 비록 운이 좋아 부자가 됐지만, 역시 무식한 상놈일 뿐이라오.’라고 말했을 때,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느냐? 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비록 내가 신사가 아니고 배운 것도 전혀 없지만 난 유식한 신사를 소유한 몸이시다. 네놈들은 모두 가축과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너희 중에 그 누가 잘 길러 낸 런던 신사를 소유하고 있단 말이냐, 이놈들아?’ 이런 식으로 난 계속해서 참고 살아갔단다. - 131

- ”오!“ 그녀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스 해비셤, 저에게 상처 주기 위해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거냐는 말씀이라면 그건 제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거의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떤 상황이었든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녀는, 결혼했겠지요?“
”그래.“
그건 불필요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황폐한 이 집에 새로이 더해진 황폐함은 이미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 268

- 사랑하는 비디, 일찍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을 나는 그 어떤 것도 잊지 않았어. 그리고 일찍이 내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했던 것 역시 거의 잊이 낳았어. 하지만 내가 한때 가련한 환상이라고 불렀던 그것은 모두 사라졌어. 비디. 그래, 모두 사라졌어!”. - 422

2022. nov.

#위대한유산 #찰스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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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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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 글의 일부는 이미 어디선가 본 듯도 싶고 해서 굳이 읽어야 하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평점이 이상해서 보니 읽은 것 같지도 않은 별점 일점 테러를 보게되었다.

여성주의 책들이나 사회문제에 관련한 책들에서 워낙 딴지같은 별점 테러를 이미 여러번 봐왔지만, 이 책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 걸 보니, 이래서 아는 이야기라도 굳이 사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너절한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글에 대해 귀중한 시간을 쪼개가며 반박따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독자 중 하나라도 그런 글에 경도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박경리 작가의 글들이다.

그리고 아직도 끝내지 못한 토지 완독을 하긴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도.

- 한 사람 책임지는 자 없고 벌받은 자 없는 그들에게 푼돈 얻어낸, 청풍당상의 그야말로 더렵혀지지 않았던 양반들, 차라리 그것은 희극이다. 혹자는 말하리라. 그 푼돈도 우리 발전의 밑천이 되었노라고. 그러나 자로는 잴 수 없고 저울로도 달 수 없는 가치도 있다. 그 가치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아무리 즉물적 세태라 해도 우리는 그 이상의 가치를 꿈꾸며 산다. 물질도 있어야 하고 계산도 해야 하지만 삶의 존귀함도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 문화의 본질, 인간다운 연유도 거기 있으니 말이다. - 17

- 식민지 시대 11년간을 서울에서 살았고 진짜 콜론(신민자)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다나카 씨는 그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를 토로하고 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 그 시대의 독립정신에 대해서는 감탄과 외경의 염까지 느꼈다고 했는데, 일본 특유의 그런 감상은 상당히 메스껍다.
그는 말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 시절의 민족정신은 고귀하고 긴장되고 아름다웠다고. 한데 지금은 뭐냐, 그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시절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것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은 “천만의 말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 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 하는 것이며, 다나카 씨 같은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하는 것이다. - 157

2023. may.

#일본산고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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