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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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을 통해 깨닫는 삶의 지혜. 조용하게 서술되는 에세이.

- 모양이 안 멋지더라도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기만 하면 일단 나는 흐뭇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드닝에 있어서는 꽤 낙관주의자인 셈이다. 적어도 식물을 대할 때는 마음이 느슨해지고 어느 면에서는 무덤덤해진다. 정확히는 의심하지 않는 마음이 든다. 쓸 때나 읽을 때나 심지어 스스로 펼쳐나가고 있는 생각의 연쇄 속에서도 정말 그런가, 옳은가, 착시가 아닌가를 붇는데 식물들 앞에서는 그런 날카로운 반문을 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질서로 움직이는 완전한 세계가 있으니까. 나의 몫으로 남는 건 의혹이나 불신이 아니라 경탄과 그를 통한 일종의 발심이다. - 28

- 식물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좋은 마음도 그런 안도였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식물들이 피고 지는 숱한 반복을 하며 가르쳐주는 것은 뭐 그리 대단한 경탄이나 미적 수사들이 아니라 공기와 물, 빛으로 만들어낸 부드럽고 단순한 형태의 삶의 지속이었다. 그런 식물의 놀록함이 우리에게 지혜로서 머물기를, 녹록지 않은 순간에도 고개를 돌려 나무 한 그루, 잎 한 장에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용기가 새해엔ㄴ 마음속 포트에 늘 담겨 있기를 바랐다. 바로 그 전환의 용기야말로 식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빛나는 마음이라는 것을 한 해의 끝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기쁘게 깨닫고 있으니까. - 173

2023. jun.

#식물적낙관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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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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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20세기 문학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쉽게 알려주는 강의록이다.

대체로 냉전시대 첨예한 대립의 시기의 작가들이라서, 살얼음판같은 창작 환경에서 살아남은 작가들의 면면들을 볼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작가는 소련 문학의 권력자로 자리매김한 숄로호프인데, 사실 그의 대표작 <고요한 돈 강>은 사두고 아직도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살 때 우연히 만난 러시아 청년이 이 작가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드러냈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과연 국민 작가라는 사람에 대한 이른바 국뽕이 대단하구나 느낀 경험이 있었다. 고요한 돈 강 이후의 작품이 수준이하라는 평가와 작품표절의혹까지 여러가지 잡음이 있었다는데, 그럼에도 노벨문학상의 후광은 그의 문단 권력까지 무너뜨리진 못했나 보다 싶다.


-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 상당수가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동자들이 읽을 수 없었던 비공식 문학입니다. 반면 미하일 숄로호프는 공식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습니다.- 18

- 숄로호프 다음으로 소련을 대표했던 작가는 소수민족 출신인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입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작가로 국내에도 <하얀 배>, <백년보다 긴 하루> 등의 대표작이 번역돼 있습니다. 구소련은 다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소수민족 할당제 같은 게 있었어요.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러시아인만 득세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소수 민족 작가들을 배려했습니다. 한국계(고려인) 작가로는 아나톨리 김이 그런 경우 입니다. - 20

- 혁명은 도처에, 모듬 것에 존재한다. 그것은 무한하다. 마지막 숫자가 없듯이 마지막 혁명도 없다. 사회혁명은 무한수의 한나일 뿐이다. 혁명의 법칙은 사회 법칙과 전혀 다르다. 그것은 에너지 보존과 에너지 소멸(엔트로피)의 법칙이 그렇듯이 무한히 큰,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이다. 언젠가는 혁명법칙의 공식이 수립될 것이다. 1923, 자먀틴<문학, 혁명, 엔트로피 등에 관하여> - 65

- 작가로서 자신이 쓴 작품이 출간 금지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반혁명주의자, 부농의 앞잡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르 때 플라토노프는 스탈린과 고리키에게 “저는 계급의 적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은 제 고향이며, 제 미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해명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봐도 플라토노프만큼 사회주의 이념에 투철한 작가도 보기 드문데, 왜 이런 비판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건 플라토노프의 작품을 당시 소련의 공식 문학에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이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수준보다 더 왼쪽으로 치우쳤던 것이죠. - 91

- 미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정치, 경제적 토대가 만들어져야 그 위에 사회주의적 의식, 즉 상부구조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그 토대가 미처 형성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어요. 사회주의를 시작하긴 했는데, 그 토대가 형성되지 않아 사회주의 의식도 없고 영혼도 아직 없는 겁니다. 말하자면 <코틀로반>에서처럼 ‘전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집’을 짓는 데 아직 기초공사가 되지 않아 구덩이만 파놓은 격이랄까요. 사회주의적 정신, 사회주의적 영혼이랄 게 없으니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갖게 되는 정서가 슬픔과 연민입니다. 플라토노프는 바로 그 정서에 가장 깊이 천착한 작가죠. 자먀틴이나 파스테르나크 같은 작가들은 이행하는 과정에서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돌아섰습니다. 반면 플라토노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그 대신 슬픔과 우울, 혹은 연민의 정서에 천착하게 되었습니다. - 92

- 부재하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작품이 <고요한 돈 강>입니다. 사실 숄로호프의 작품 목록에서도 거의 유일무이한 작품이죠. 그런데 숄로호프가 더는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쓸 수 없었는지, 아니면 쓸 능력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여러가지로 궁금한 작가입니다. - 208

-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 근대소설이라는 장르가 위대한 문학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사회적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작가들은 단지 글쟁이에 머물지 않고 사회 변혁의 사명을 짊어진 지식인의 책무를 수행했어요. 그런 시대가 끝났다는 게 근대 문학 종언론의 요지입니다. 그러니 아직도 작가들이 소설을 쓰는데 종언이라는 무슨 소리냐고 반박한다면 맥을 잘못 짚은 것이죠. 문학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위대한 문학’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깁니다. 상품으로서 문학은 얼마든지 번창해나갈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위대한 책무를 떠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221

- 소련에서는 부조리 문학이라는 게 따로 필요 없습니다. 현실 자체가 부조리하니까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면 바로 부조리 문학이 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 235

2023. jun.

#로쟈의러시아문학강의 #20세기고리키에서나보코프까지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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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열정이 다하고 쏜살 문고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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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 성과가 크고 작고를 떠나 모두 의미있다.

비타 색빌웨스트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 오래 살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타고난 결점 중 적어도 하나를, 즉 삶의 유한성을 극복했다는 뜻이니까. 영원한 소멸을 이십 년 정도 유보했다는 사실은 그가 너무나도 우월한 까닭에 신조차 미리 짜 놓은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이리라.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를 측정하는 저울은 이토록 보잘것없다. - 9

- 어머니는 자기만의 의지가 없었다. 한평생 자애롭고 온화했으며 전적으로 가족의 의지에 따랐다. 일종의 부속물이었다. 그들은 어머니가 자기주장을 내세울 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정말 다행이지.” 허버트는 가끔 말했다. “어머니는 잘났다고 설치는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잖아.” 아무도 어머니에게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내면이 있으리라고, 또 아무도 어머니가 문제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17

- 다른 사람들 역시 이디스와 이디스가 내놓은 제안을 고민했다. 미혼의 딸은 당연한 해법이었다. 하지만 홀랜드 집안은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고, 실로 껄끄러운 의무일수록 절대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의 삶에서 즐거움은 그다지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의무는, 항상 진지하고 가끔은 가혹하기까지 한 의무는 언제나 존재했다. - 24

- “아, 잠깐.” 레이디 슬레인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처음으로 해 보인 손짓이었다. “너무 성급하구나, 허버트. 난 동의하지 않았어.”
다들 실망한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동의하지 않는다고요, 어머니?”
“응.” 레이디 슬레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난 너희 집에서 살지 않을 거다, 허버트. 너희 집에서도 안 살아, 캐리. 네 집도 싫다. 윌리엄. 너도 마찬가지고, 찰스. 다들 친절하기는 하다만. 나는 혼자 살 거야.” - 46

- 사실 가족 모두가 레이디 슬레인을 - 그녀의 상냥함과 이타심, 공적 활동까지도 - 오해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내도 여전히 타인을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케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이디스만 신이 나서 속으로 방방 뛰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미치지 않았고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조용히 캐리와 허버트의 간섭을 저지함으로써 그들을 궤멸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즐거웠다. 부드럽게 양손을 맞잡고 속삭였다. “잘한다, 어머니! 계속해요!” 일말의 분별력으로 함성을 자제할 뿐이었다. (...) 이디스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다정하고 세심하게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내심 자기만의 세상을 품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것을 관찰하고, 눈치채고, 비판하고, 묻어 뒀을까? - 51

- 아,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이다지도 난리를 피우는구나! 그러나 누가 탓할 수 있겠어? 가만 생각해 보면 여자들은 한평생 오직 결혼에 대해서만 - 그리고 결혼에 수반된 일에 관해서만 - 난리를 피울 수 있잖아?다른 사람의 결혼식이더라도 대리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이미 충분한 거야. 결국 여자는 이렇게 쓰이려고 길러지고, 입혀지고, 치장되고, 굥ㄱ받고 - 이렇게 일방적인 세뇌를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보호받고, 무지를 강요받고, 겨우 단서만 제공받고, 분리되고, 억압당하는 거잖아? 그러다가 일말의 기회라도 생기면 그 즉시, 웬 남자를 섬기러 떠나는 거지. 아니면 자기 딸을 보내든가. - 118

- 그녀는 자신이 헨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설령 헨리를 사랑했더라도 자기만의 삶을 통째로 포기할만한 사유는 아니었다. 헨리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아무도 헨리더러 자신의 삶을 포기하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헨리는 데버라를 획득하듯, 그렇게 자기 삶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처럼 보였다. - 119

2023. jun.

#모든열정이다하고 #비타색빌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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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8-23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지금 읽고 있어요~~
전 흄세로요
근데 문장들이 어쩜 이리 아름답고 멋진지...
정말 비타의 다른 책도 얼른 번역출간되면 좋겠어요^^

hellas 2023-08-23 18:30   좋아요 0 | URL
큰 통쾌함은 아니지만 히죽히죽 통쾌하고 ㅋㅋㅋㅋ 표지도 너무 딱인거 같아요. 흄세 책도 나온거 봤어요:)
 
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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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연인이었던 몰리는 왜 이런 찌질남들과 사랑을 했을까 싶다.

조지, 클라이브, 가머니, 버넌은 그냥 성공한 찌질남. 몰리의 죽음 이후 그들의 묘한 견제와 뒤늦은 앙갚음이 주된 내용이다.

지저분한 싸움의 승자로 남은 남편도 남은 생이 평안할지는 모르겠다.
도덕적인 우위를 놓고 가식을 떨던 남자들의 몰락이 기대이상 우스꽝스럽고 최악에 이르러서, 말그대로 남부끄러운 블랙코미디 일뿐이다.

성공한 남자들의 이면은 상대에 대한 찌질한 질투와 어떻게든 승자의 위치가 되려는 음침함과 유아적 자기연민뿐인 것이다.

작가 스스로 희비극이라고 했던 만큼, 그 정도의 우당탕탕 대소동 같은 이야기.

- 몰리가 거울에 비친 제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을 때 조지는 드디어 그녀를 차지했다. 그는 물리의 외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지만, 마침내 그녀는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 16

- 몰리의 죽음이 그에게 기품을 부여했다. 근엄함은 조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애정에 굶주려 있고 음침한 인간이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길 못내 바라면서도 타인이 호의와 친절을 베풀면 자연스레 받아들이질 못했다. 재벌이 지고 사는 짐이라고 할까. - 20

- 버넌의 설명은 늘 간단했다. 1급 개새끼, 색정광. 하지만 이런 놈은 몰리 주변에 널렸으르 텐데. 지금 그 자리에 오른 걸 보면, 심지어 차기 총리직을 향해 도전하는 걸 보면 가머니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을 것이다. - 25

- 툭 터놓고 말해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통해 클라이브 자신이 얻은게 뭐란 말인가? 베풀기만 했지 돌려받은 게 있을까? 두 사람을 연결하는 건 무엇이었나? 그들은 몰리를 공유했고 수년 동안 우정을 쌓아왔지만, 속 빈 강정이었다. 적어도 클라이브 입장에서는 그랬다. 너그러이 보자면, 이 불균형은 버넌의 수동적이고 일에 몰두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젯밤 이후로 클라이브는 이런 성향도 보다 큰 문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버넌은 원칙이 결여된 사람이었다. - 82

-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우리는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 있다. - 88

- 세상엔 교향곡보다 중요한 것도 있지. 바로 사람이야.
판매부수는 사람이라는 것보다 중요하고, 버넌?
경찰서로 가!
엿먹어.
너나 엿먹어. - 140

- 가머니는 고꾸라졌고, 거짓말쟁이 아내가 기자회견에서 그의 외도를 부인함으로써 그는 마누라 손아귀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버넌은 갔다. 그리고 클라이브도. 몰리의 예 애인들과 치른 전쟁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성과가 그리 나쁘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몰리의 추도식을 고려해볼만한 적기인지도 모른다. - 201



2023. jun.

#암스테르담 #이언매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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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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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환멸이 이렇게나 커다란 작가가 언제나 인간에 대해 커다란 연민을 가진 글을 쓴다는 것이 신기하다.

글이 잘 써지는 때는 거의 없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글쓰는 힘?을 좀 보태주고 더 자주 읽을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텐션 북이 같이 묶여 나와서 읽는 즐거움이 커졌다.

- 독자 여러분에게
이번 소설집의 제목은 <하늘높이 아름답게>의 마지막 문장인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지요’에서 왔습니다. 살면서 보니, 어느 시절을 살아내게 해준 힘이 다음 시절을 살아낼 힘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만더라고요. 다음 시절을 나려면 그 전에 키웠던 힘을 줄이거나 심지어 없애거나 다른 힘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힘은 딱 그 시절에만 필요했던 것인데 계속 그 힘으로만 살려고 하다 추해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죠.
우리가 한 생을 살아내려면 한 힘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각각의 시절에 맞는 각각의 힘들, 다양한 여러 힘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원래는 자연의 단일한 흐름일 뿐인데 우리가 그것을 나려면 각각의 다른 힘이 필요하니까,
봄엔 쟁기질을 하는 힘, 여름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가꾸는 힘, 가을에는 수확하는 힘, 겨운엔 버티는 힘 등이 필요해서 인간이 자연의 흐름을 분절해 각각의 계절로 다르게 네이밍 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니까 자연의 ‘각각의 계절’은 인생의 ’각각의 시절‘ 같은 의미입니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새로운 계절에 맞는 새로운 힘을 길어내시길 바랍니다. 2023. 권여선

-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 실버들 천만사 중

-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하늘 높이 아름답게 중

- 사람은 절대 그렇게 무구하지 않다. - 무구 중

- 나는 어지간한 고통에는 어리광이 없는 대신 소소한 통증에는 뒤집힌 풍뎅이처럼 격렬하게 바르작 거렸다. 턱없이 무거운 머리를 가느다란 목으로 지탱하는 듯한 그런 기형적인 삶의 고갯짓이 자아내는 경련적인 유머가 때때로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사된 건 아니었을까. - 기억의 왈츠 중

2023. may.

#각각의계절 #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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