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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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작가의 이야기에는 늘 타인의 마음을 신경쓰는 섬세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작가의 성품과 이어져 있다는 확신이 있어 그런 등장인물들을 볼때 마음이 좀 많이 쓰인다.

누구하나 밉지 않는 네 사람과 작은 공룡이 하는 이야기가 느릿느릿 흘러가 마음이 하아... 하고 가라앉는 책이다. 그것이 장점이고 일면 단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사랑의 신?인 주희를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사랑을 찾고 사랑이 옮겨가는 사람들을 실제 세계에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삶의 태도를 바라보면서 가장 단단한 사람이 주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사랑의 힘일수도, 아니면 그저 그런 심지있는 캐릭터가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묵묵히 자신의 삶을 보겠다는 태도, 그 지점에서 주희에게 완전히 설득당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연작 단편들이라 그냥 단편집 보다는 훨씬 취향이다. 몰입하면 금새 끝나버리는 이야기는 요즘 잘 안땡기네... 그래서 좋았다.

- 나의 시간은 대부분 사랑을 하는 데 쓰인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래왔다. 나에게 사랑은 태도이자 습관. 규칙이자 성격. 원칙이자 자랑. 그리고 내 몸집만한, 내 영혼의 크기만한 콤플렉스다. - 9, 사랑의 신

- 내가 필요 없대도 자꾸만 주어지는 사랑은 켜켜이 쌓여 누군가에게로 건너갈 수 있게 하는 다리가 된다. 나는 언제든 다리를 건너갈 결심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데 익숙하고, 이 용기는 때로, 슬프게도ㅗ 사랑을 괄시하는 데 쓰인다. - 11, 사랑의 신

-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고 했다. 조금만 더 나중에...... 나중에 모두들 보러 갈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중이 있을까.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게 되는 일은 너무 쉽다. - 90, 나 여기 있어

- 그게 내 거야. 주희는 말했다. 삶을 편집할 순 없어. 묵묵히 봐야 해.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 아프지만. 한번 아픈 곳이 계속 아플까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 된 거겠지. - 168, 이무기 애인

- 나는 성장과 노화 사이에서 아직도 어리둥절 낯설어하고 있나봐. 그런 게 그저 삶이겠지. 계속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는 게. 눈치를 보다가도 그저 쏟아진 것을 쏟아졌구나 하고 가만히 납득하게 되는 게. - 196, 공룡의 이동 경로

-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고 안쓰럽다. 누가 누구를 덜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고. 가끔 삶을 사는 방식이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덜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기우뚱거리는 것이 전부인것 같을 때가 있다. 어쩐지 소설은 그럴 때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 이 마음 저 마음 옮겨다니다보면, 그 궤적이 소설에 남으면 제법 뿌듯하고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하게 된다. - 작가의 말

2023. oct.

#공룡의이동경로 #김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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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정지돈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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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조금 이상하고 재밌는 작가.
‘그 일당’의 글들은 늘 그렇다.

- 나는 뭐든 내 위주로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야지 하루하루 견딜 수 있다. 가까스로...... - 18

- 진짜 망했을 때에야 비로소 망하지 않기 위해 희망을 불사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의 주된 원료는 망함이다. 좀더 그럴듯한 단어로 하면 파국, 몰락. 쉬운 단어로는 실패, 패배.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는 인류세? 어쨌든 문학은 일종의 불사조다. 잿더미 속에서 부활해 날아오르는 한 마리 찬란한...... - 30

- 저항은 특정한 대상이나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본성에 저항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대상이나 친구들에게 저항해야 할지도 모르고 믿어왔던 것에 저항해햐 할지도 모른다. 차별과 혐오는 예외적인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상태에 가깝다. 그러므로 저항 역시 그래야 한다. 저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져야 할 상태다. - 133

- 악취미지만 나는 싫은 것을 공유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진다. 세상에는 싫거나 어이없는 게 너무 많다. 그런 걸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성인군자인 양 구는 사람과는 대화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넌 왜 이렇게 부정적이니? 같은 말을 하면 영원히 안녕이다. - 146

- 찰리 : 아무래도 나 달아날까봐.
루시 : 너 문제로부터 달아나는 타입이었니, 찰리 브라운.
찰리 : 아니. 천만에! 난 머물러 싸울거야! 나의 모든 힘과 재능을 발휘해 내 행위가 정당했음을 증명할 거라고!
루시 : 너 그냥 달아나는 게 좋겠다!
그렇다. 찰스 슐츠가 맞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과 재능을 발휘해 달아나야 한다. - 253

2023. jul.

#당신을위한것이나당신의것은아닌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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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8
강화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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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 작가의 핀시리즈.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은 좀 다르지만, 편혜영 작가처럼 불안과 분란, 미묘한 대립을 잘 다루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여성중심의 가족 3인의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이 무척 현실적이다. 독자마다 이입할 대상은 다르겠지만, 화자인 장녀의 피해자성이 유독 도드라지기 때문에 어쩌면 다른 캐릭터에겐 부당할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작은 딸)
홀대하지만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큰 딸, 자랑스럽게도 성공적(으로 보이는)인 삶을 살지만 왠지 어려운 작은 딸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차별적인 태도로 대하는 엄마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라는 정도의 이해가 가능하고,
왠지 자신에게 더 큰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다가온 가족 부양이라는 무게에 자매를 이해할 수 없어하는 작은 딸의 입장이라는 것도 역시 있을 것이다 라는 정도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 모든 홀대를 견디고 몸빵 부양을 하는 것은 큰 딸이고, 부당한 대접임을 알고도 속으로 삭이기만 하는 것도 큰 딸.... 이라는 면이 그의 입장을 가장 잘 받아들이게 된달까.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화자 큰 딸이, 일상의 작은 변화, 운동을 통해 자기효능성을 되찾는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다.
운동 좋지. 주변을 환기하기에도 궁극적인 건강에도...
나도 운동을 좀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이(생각만) 또 한번 들었다. ㅋ

- 그녀 성격이 그랬다. 뭐랄까, 그네를 탈 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애초 관심도 없고, 설사 그네 위에 올라간다 해도 (어떤 두려움 때문에) 올라갈 수 있는 만큼만 올라갈 것.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것. (바라지 않았던 것처럼 구는 것.) - 40

- 어떤 면에서는 글쎄, 영애 씨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 79

- 조금 덜 억울하고, 덜 슬픈 것. 그것만으로도 아침이 훨씬 상쾌했다. - 102

- 지수는 가족을 사랑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정하건데) 그들을 진심으로 미워했다. 지수는 이 마음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 114

2023. sep.

#풀업 #강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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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 스트리트 베라 스탠호프 시리즈
앤 클리브스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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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으로 사생활을 비밀로 유지하던 노년의 여성의 죽음을 파헤치는 베라.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악의와 뭐 그런 것들의 총합으로 결국 사건이 생기는 것.
큰 반전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베라 스탠호프의 일중독 성향과 오지랖이 뛰어난 수사능력의 바탕이 된다는 것은 잘 알겠지만, 캐릭터가 매력적인가는 시리즈를 더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 “피해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베라가 수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참견하는 것ㅇ르 좋아했고, 타인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파헤치고 다니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내 사생활이 없어서겠지,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23

- 베라는 여관에서 마가렛의 결혼사진도 가져왔다. 가끔 수사팀의 젊은 경찰들은 나이 든 팀원들을 다른 종자로 간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어쨌든 죽음에 더 가까운 사람들, 그러니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 아이나 10대들과 달리.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겠지만, 베라는 이 젊고 아름다운 미인의 사진이 그들을 그런 사고방식에서 끌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한때는 그녀도 당신들처럼 젊었어. - 74

- 조는 추위를 막기 위해 옷깃을 세우고 나타났다. 그는 언제나 깔끔한 매무새였다. 새벽 4시에 불러도 방금 다린 셔츠와 정장 차림이었다.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 뒷바라지 외에 할 일이 없는 아내 덕분? - 112

- 베라는 클클 웃으며 제인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 다 하는 일은 같았다. 점잖은 시민들이 다행히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거리에서 불쾌한 광경을 몰아내는 일이다. - 198

- 베라 스탠호프는 일어서서 문으로 향했다. “자책하지 말아요. 당신이 그 사람들을 죽인 건 아닙니다.“
그러나 케이트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사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 384

2023. jul.

#하버스트리트 #앤클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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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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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신작.(이지만 오래전 글을 개작한)

꿈, 그림자, 다른 세계, 시스템을 위해 희생되는 존재.. 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키워드들이 망라되어 있는 느낌이다.

끝나지 않는 역병.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작가 하루키에게 그 역병은 인간의 욕심일지, 아집일지..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17의 나이에 많난 일생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하루키의 소설다운데,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야 싶은 주인공의 나른하고 의지없어 보이는 독백,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묘사, 무해하고 다른 세계의 존재들 같은 무성의 등장인물들이 그렇다.

그런 점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유는 뭘까.

마음 한 편으론 이 이야기가 이 정도 두꺼운 책의 분량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ㅋ

- 너는 여러 가지를 숨기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에, 이 세계에서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사람이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까? - 44

- 쓸쓸한 외톨이로 보낸 여름이었다. 나는 어두운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쯤이면 지구의 중심에 닿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내려간다. 주위 공기의 밀도와 중력이 점점 바뀌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고작해야 공기 아닌가. 고작해야 중력 아닌가. 그렇게 나는 더욱 고독해진다. - 172

- 무얼 하든 마음의 평온은 얻을 수 없었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기가 불가능했다. 두꺼운 구름 속에서 넋을 놓고 마냥 앞으로 걸어가듯 종잡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 전부 너를 잃어버린 탓이다.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 190

-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의미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나는 그 세계에서 더더욱 고독해질 테지.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깊은 어둠에 직면할 거야. 내가 그 세계에서 행복해지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물론 이 도시도 완전한 장소라고는 할 수 없어. 네가 지적했듯 이 도시는 수많은 모순을 안고 성립되어 있어.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아귀를 맞추기 위해 여러가지 복잡한 조작이 이뤄지고 있고. 그리고 영원이라는 건 긴 시간이야. 그 사이 한 개체로서의 내 의식이 점점 엷어지고, 나라는 존재가 이 도시에 삼켜질지도 몰라. 하지만 설령 그렇다해도 괜찮아. 이곳에서 나는 적어도 고독하진 앟ㄴ아. 이 도시에서 내가 당장 무엇을 하면 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걸 알고 있으니까. - 215

- 그는 정말로 내 그림자일까? 나는 진짜 나일까? 그림자의 말처럼. 무엇이 가설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점점 구별하기 힘들어진다. - 217

- 그렇다, 나는 이 지상에 정지한 쇠공일 뿐이다. 매우 묵직하고 구심적인 쇠공이다. 나의 사념은 그 안에 단단히 갇혀 있다. 겉보기는 볼품없지만 중량만은 충분히 갖추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힘껏 밀어주지 않으면 어디도 갈 수 없다.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다. 나는 몇 번이고 나의 그림자를 향해 묻는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면 좋을까. 그러나 그림자는 대꾸해주지 않는다. - 230

- 훗날 고야스 씨는 자신이 왜 일상적으로 스커트를 입는지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첫째로는, 이렇게 스커트를 입고 있으면, 네, 왠지 내가 아름다운 시의 몇 행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랍니다.” - 268

-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나는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상당히 근사한 표현이다. - 292

- <시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 358

-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걸까?
나는 무언가가 시작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이 상태가 끝없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변화는 - 그게 어떤 종류건 - 더이상 멈출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예감이 들었다. - 711

-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 작가 후기 중

2023. sep.

#도시와그불확실한벽 #무라카미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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