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머리 민음의 시 319
박참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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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의 목소리, 다채로운 시도.

이게 뭔가 하다가 오호... 빠꾸없이 내면을 직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배포가 큰 시인을 만난 것 같다.

<새시대> <창작수업>... 시집 전체가 읽을수록 좋다.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은 시인 박참새.

- 너는 혼자가 아니지만 절대로 같이일 수는 없으며,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은 있지만 그것을 경험한 적은 없다. 너는 이 사건들의 모든 총체이며, 과거이자 기억인 이 시간들은 너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 건축 중

- 여기서는 태어나고 저기서는 죽는 동시성의 모순. 하지만 나는 언제나 살아 있었는걸요. 인간들은 이걸 모릅니다. 내가 늘 꿈틀대고 있었다는 사실. - 청강 중

- 모두가 나를 두고 떠났다. 가장 약한 사람, 가장 아픈 사람, 가장 빠른 사람, 가장 가난한 사람, 가장 가장스러운 사람, 들, 떼, 무리, 집단, 정당...... 모두가 나 이곳을 떠났다. 저곳도 나 이곳을 떠났다. 멸망하는 태양의 딸꾹질 한 손으로 하는 운명의 서커스 백지로 돌아가는 말 세상 단 하나의 잉크. 나는 하루도 허투루 살 수 없었다. 나에겐 매일이 재건이어야 했다. 자멸하기엔 내가 너무 늦었다. 너무 모르고 너무 혼자였다. 나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았다. 이곳은 이곳을 절대 떠날 수 없다. 말이 말을 배반할 수는 없다. - 꿀벌이 완전히 사라지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단 4년뿐이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인간이성애  중

- 그 누구도 속되게 말하진 않지만
내가 나를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 내가 무너질 날 중

- 세상에서 제일 약한, 모양도 색도 제멋대로인, 내가 줍지도 않은, 그저 주어진 것에 불과한 이 낙엽 하나 동봉한다. 아마 너에게 가는 도중에 다 부서지겠지. 엉망이 될거야. 거칠고 맹렬한 입자가 될 거야.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 편지 생일 중

2024. feb.

#정신머리 #박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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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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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사실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 중요한 문제) 것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

타인의 불행을 그저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해버리면 우리의 삶은 단순하고 가뿐할지도 모르지만, 그 불행과 불운을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있지는 않은지 한번 더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선의의 노력을 굳이 위선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갑갑한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펄롱은 조용히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그저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그들이 불운하지 않은 인생이길 기대하는 소시민이지만 우연히 접한 한 수녀원의 적절치 못한 관행과 그 안의 젊은 여성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아내인 아일린도 심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펄롱의 그런 유약한( 정 많은) 모습을 철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수녀원 시설의 강제 노역에 관련된 사실을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다.

- "화요일 날 시노트가 술에 취해서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걸 봤어."
"불쌍한 사람. 뭐가 그렇게 괴로울까." 펄롱이 말했다. 
"술 때문에 괴로운 거야. 눈곱만큼이라도 자기 애들 생각을 한다면 그러고 돌아다니진 않겠지. 딱 끊고 정신 차렸겠지."
"그러고 싶어도 못 그럴 수도 있어."
"그렇겠지." 아일린이 손을 뻗고 한숨을 쉬며 불을 껐다.
"어디든 운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까." - 21

- 그날 밤 침대에 누웠을 때 펄롱은 수녀원에서 본 것을 아일린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다가 어쩌다 말을 하게 됐는데, 아일린은 몸을 일으켜 꼿꼿하게 앉더니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거기 있는 여자애들도 누구나 그렇듯 몸을 덥히려면 땔감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수녀들은 줄 돈을 늘 제 때 주지 않냐, 항상 외상을 달라고 하고 돈을 갚으라고 쪼기 전에는 절대 안 주고 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 않냐고 했다.
긴 연설이었다.
"뭐 아는 거 있어?" 펄롱이 물었다.
"아니 없어, 내가 한 얘기 말고는." 아일린이 대답했다.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 딸들? 이 얘기가 우리 딸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펄롱이 물었다.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 54

- 일요일이 너무나 공허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왜 펄롱은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 마치고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쉬고 즐기고 저녁 배부르게 먹고 불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잠들 수 없는걸까? - 93

- "이제 거의 다 왔어." 펄롱이 기운을 돋웠다. "조금만 가면 집이야."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119

2024. apr.

#이처럼사소한것들 #클레어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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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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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작가의 활동 시대가 시대인 만큼 좀 고루한 배경과 통속적인 인물들이지만
그 와중에도 전형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모습들이 눈에 띤다.

주인공인 루시 게이하트의 눈부신 재능과 주변까지 밝혀주는 환한 기운은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그 시절의 주인공다운 이기적인 모습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에 못지 않은 관습에 얽매인 자존감 높은 남자 해리와 함께 이 둘이 함께이건 아니건 자존감 덩어리인 커플이구나 싶다.

그래서인지, 동생을 응원하고 뒷바라지하는 언니 폴린의 입장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재능은 모자랄지언정, 실질적으로 가족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에 대한 생각.
어서 둥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큰 동생을 바라보는 남겨지는 사람에 대한 생각.
응접실 고양이와 부엌 고양이의 입장 차이.

해리가 청혼이랍시고 루시의 귀여운 모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할 때 그야말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비극을 마주하고 혼란스럽던 루시를 거절당했다는 분한 옹졸한 마음으로 외면하는 해리..
그리고 이어지는 더 커다란 비극.
해리의 회한으로 서술되는 뒷부분은 그다지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이란.... 정말이지.. 이런 류의 스토리를 좋아했던 것 같단 말이지.....


-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카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했다. 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바깥세상이 어둡고 끔찍한 곳인 것만 같았다.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았다. - 36

- "자 루시......" 해리의 목소리에 깃든 애정과 위엄에 루시는 이어질 말이 두려워졌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 됐지? 우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야. 네 귀여운 모험도 이 정도면 충분하고. 넌 세상을 전부 보고 싶겠지. 나와 함께라면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거야. 시간 낭비할 이유 없잖아?" - 117



2024. may.

#루시게이하트 #윌라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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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 위의 개
클로디 윈징게르 지음, 김미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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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자와 같은 생활을 하는 작가에게 찾아온 학대당하던 떠돌이 개 예스. 

존중받지 못한 생명, 자연에 대한 사색들이 가득하다.

여성주의 생태학에 대해서 생각할 계기가 되어준다.

한 평생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동지, 파트너의 존재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는 글.

그들은 마치 추방된 무리, 미친 사람들, 현실을 깡그리 무시하는 존재들 같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 자기 방에서 내려온 그리그는 회색 머리칼에 닷새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하고 목에는 붉은 반다나를 두른,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다. 그는 항상 무덤덤한 사람, 매사에 무관심하고 어떤 일에도 놀라거나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실패와 아울러 노쇠한 몸을 이미 받아들여 이제는 실제 세상보다 책들의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담배와 소설과 밤의 냄새를 풍기며 늘 그렇듯이 방해받아 언짢다는 듯 투덜거리며 다가왔을 때, 개는 내 발 아래에 몸을 피했다가 이제는 드러누워 젖꼭지들이 점점이 박힌 배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지나가는 문장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 나는 동의할 것이다. 그렇게 개는 '예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 14

- 세상을 뜻하는 단어는 숲이다. (The word for world is forest.)
여성을 뜻하는 단어는 황무지다. (The word for woman is wilderness.)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정원이 필요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부아바니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 24

- 세계가 느닷없이 우리 앞에 비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의 무의식이 활짝 열린 하늘로 터져 나온 것처럼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최악의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일은 일어났다. 우리는 돌연 인간 및 동식물의 사체 더미를 상시적으로 마주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이런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전 지구적 공포의 시대. 누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수 있겠는가?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말기를. - 44

- 나는 이 세상의 인간을 찬성한다. 다시 한번 모순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가당착에 빠진다. 모순은 세상의 법칙이며, 그로부터 그 두 단어를 탐험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인간에 찬성한다. 인간을 다루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지구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니까. 긍정적인 영웅이라니 그건 안 될 소리다. 절대, 절대 등장시켜선 안된다. 그런 건 사람들이 읽다가 집어치울 것이다. 멋진 악당이 낫다. 그가 처형당할까? 궁지에서 빠져나올까? 출구를 찾을까?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무엇보다도, 특히 결말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결말을 아는 인간은 없다. 그를, 인간을 의지하지 말 것.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못된다. 인간을 경계하라. 이것들은 전부 내가 종종 생각하는 주제다. - 182

- 타고난 성품이 강인한 소녀들은 맹렬히 물어뜯긴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가장 뛰어난 이들조차 여성 혐오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는다. 나는 기억한다. 플랑튀, 사랑스러운 플랑튀, 천재 플랑튀가 그리그와 내가 무너져가는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전을 아직 시청하던 시절 밤 인사를 하면서 그레타 툰베리를 히스테리 환자로 취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비열한 우리 지도자들에 맞서 분노를 표출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모두가 웃었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항의한다.
나는 다음의 글을 금언처럼 기록해 두었다. 글쓰기는 저항으로부터 탄생하며, 일종의 참여 또는 항의가 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한 바였다.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혹은 투쟁하는 날이 있고, 쓰러지는 날도 있다는 것. 작가는 어떻게 투쟁하는가? 그리고, 구별 지어지는 '여성' 작가는 어떻게 투쟁하는가? 그녀들의 무기는 '남성' 작가들의 무기와 다른가? 나는 그들의 책에 대해 말하고 싶은가? - 229

- 그리그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려고 들었다. 동시에 내가 그 짓을 완전히 포기하기를 바랐다. 그는 우월한 태도로 말했다. 여보, 그곳에 가서 그 혼란 속에서 한몫하려는 건 그만둬.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애쓰지마.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있을 거야. 더러운 역사로. - 295


2024. apr.

#내식탁위의개 #클로디윈징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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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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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던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면.

4권 말미에 등장하는 환이의 독백, '허무'에 수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그저 살아남는 일, 꾸역꾸역....

- 그들도 다른 노비들과 마찬가지로 나라 형편이나 시국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우국하기에는 그들의 일상이 국사와 너무 멀기도 했었다. 다만 눈에 비친 조준구가 친일파였기 때문에 일본이 망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 53

- 지금 동방의 작은 등불 같은 조선의 백성들은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새벽잠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무거운 오수에서 눈을 뜬 혼미한 얼굴이며 한밤중 뇌성벽력에 잠이 깬 경악의 얼굴이며 주야를 헤아리지 못하고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지도 못하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개명의 물결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꽤 여러 해 동안을. - 59

2024. may.

#토지 #1부4권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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