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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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돌고래가 “발견” 되었다는 기사를 본다. 파란 색에 주둥이가 긴, 녀석은 민물 돌고래라고 했다. 게다가 눈에 많이 띄었던 동물이라고 했다. 발견해 놓고 보니, 멸종 위기종이라고 했다.

거기에 늘 그렇게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긴 시간이 지날 수도 있구나 싶어졌다. 이는 반대로 거기에 없었지만, 늘 거기 있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눈맞춤하고 웃어주고 혹은 두려워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삶은 의외성이 엮어가는 두려움의 교향곡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결국 저마다의 교집합을 만들어가고, 불협화음을 조율하며 또 다시 살아낼 무엇을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히데코와 해연과 영빈, 그리고 스타카토처럼 그들의 삶에 점을 찍어 낸 사람들, 그들은 합주자이며 또한 절망의 공범이다. 미완성일수도, 뜻모를 도돌이표에 갇히기도 하겠지만, 어딘가에 있을 세뇨를 찾는다면, 웅크린 호랑이처럼 생긴 세뇨와 마주한다면, 도돌이표를 벗어낼 충분조건은 생기게 될 것이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을까?

그곳에 세뇨가 있어야만 했기 때문일게다. 이제 절망의 도돌이표는 마무리를 지어야하니까.

 

 

 

 

*브라질 아마조나스대 연구진은 22일(현지시각) 학술지 '플로스 원'을 통해 아마존 강 유역 아라과이아 강에서 새로운 민물 돌고래 종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돌고래의 이름은 발견된 지명에 따라 '이니아 아라과이엔시스(Inia araguaiaensis)'라고 붙여졌으며, 이번 연구를 지도한 으르베크 박사는 "원래 이 돌고래는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었던 동물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다른 종이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다는 점"이라고 밝혔다.(2014.1.24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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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디 러브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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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부 / 2006년 4월~9월

2부 /2012년 4월, 5월

3부 / 미시간 주 앤아버 2012년 9월

 

 

#1. 스토리

보통의 다섯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들 처럼,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기에 골몰하는 다이너와 그의 아들 로비.

사건의 시작은 그렇다. 다이너와 로비가 쇼핑몰에서 여느 모자들처럼 쇼핑을 하고, 그들의 익숙한 과제 -어디에 차를 세워두었는지를 아이가 찾아내는-를

하고 있던 중, 아이를 유괴당하게 된다. 다이너는 온몸으로 그를 막아서지만 역부족, 결국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아이를 잃는다.

아이는 '대디러브'라고 자신을 칭하는 유괴범에게 몸도 마음도 상처를 입게 된다. 유괴범이자, 사기꾼이며, 소아성애자인 체스터 캐시. 그는 로비에게 '기드온 캐시'

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6년의 시간 동안 아이를 파괴한다. 아이가 자라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미널에 홀로 두어도 아이는 떠나지 못한다.

새로 데려온 아이에게 자신의 자리가 넘겨지고, 죽임을 당할 차례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대디러브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결국 돌아온 로비.

엄마인 다이너와 아빠 위트, 그리고 로비.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과연 그들이 그렇게 되찾고 싶었더 가족일까?

 

#2. 대디 러브

책을 읽는 동안 체스터 캐시의 사이코패스적 행동들에 경악하지 않을 이는 없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관에 넣어 체벌을 한다. 아이가 느낄 공포란 가늠할 수 없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된다.

자유의지라 칭해지는 의지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결국 자신을 관에 넣은 사람이 자신을 꺼내 줄 사람이며,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살릴 사람

이라는 것에 이르르게 된다. 명분을 확보한 복종은 강력한 힘을 갖으며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또한 더더욱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디 러브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사람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에게는 공포를 갖게 되지만,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복종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게다.

복종이 익숙해진다는 건, 상대의 몸과 영혼까지 틀어쥘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던게다.

대디러브의 무서움은, 그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이 아닌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신에게 무의식적으로, 아니 거의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우습게도, 나는 요술램프의 지니가 생각났다.

오랜 시간을 램프에 갇혀있던 요정은, 누구든 이 램프에서 나를 꺼내 주면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 곳에 있을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오래도록

방치되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로..그 후로도 오랫동안 램프 속에 남겨졌던 요정은 생각한다 누구라도 여기서 꺼내주면 그에게 복종하겠노라고..

로비는 작은 관 속에 갖혀 그런 느낌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체스터 캐시가 궁금했다.

다이너의 반응이나, 로비의, 아니 아직까지는 기드온의 행적이나 심리상태를 따라가기 보다, 체스터 캐시의 생각과 그의 역사, 혹은 그에 대한 서사가 궁금했다.

그러나, 단편적인 내용 말고는..미루어 짐작할만한 내용 말고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필요한 악함의 '축' 이상의 서사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권선징악'을 이야기하고, 선하고 유한 이야기에 눈물 짓는 이면에는 악한 상대에 대한

경멸과 그만큼의 "경외"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다만 드러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지..

쉽게 말해서 악당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갈등"의 축이 필요하다. 그가 무자비할 수록, 악의 강도가 세질수록 우리가 느끼는 소위 '카타르시스'는

비례하여 커지게 된다. 악당이 갑자기 개과천선 하는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게다. 악당답지 않아..

 

# 3. 로비 또는 기드온

돌아온 아이는 로비였을까? 기드온이었을까?

로비였다면, 6년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까?

기드온이였다면, 그들은 가족일 수 있을까?

이 잔혹한 이야기가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다만 인간이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이었다면 조금 더 신랄하고 첨예할 수도 있었을게다.(미드에서 보여지는 연쇄

살인마들의 행적은 비할 바 없이 처참하지 않은가)

루시퍼 이펙트에서 다루고 있는 폭력성에 길들여지는 인간의 모습과 유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다 보면, 그들 속에서 그 역할에 맞는 자아가 발현되고,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인지하지 못했던 폭력성이 발현된다는 것.

기드온은, 캐시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사랑스런 아들로서의 역할, 지배자로서의 아버지의 역할.

왜곡된 관계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그것으로 그들의 관계는 성립되고, 그것으로 그들의 정체성은 확고해져 간다.

물론 대디러브에게 다 자란 아이는 소모품이 되어 죽임을 당하겠지만, 그에겐 그가 아비 노릇을,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는 또 다른 불특정 다수의 아이들이 준비되어

져 있다.

그 둘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마의 역할 다이너, 아빠의 역할 위트콤, ..그것이 기드온과 대디러브에게 끼칠 영향은 없었다. 독립된 상황, 엄마가 아파하고, 아빠가 괴로워 하는 건, 어쩌면 그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의 과제였을지도 모른다.

 

돌아온 기드온, 아니 로비는 채식을 한다. 엄마인 다이너 처럼..

책의 마지막 장면이 소름끼쳤던 건, 바로 이런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다이너는 심장이 멎었다. 그녀는 보았다.

남자는 로비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친근하게 질문들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는 위협적으로 굴지 않았다.

로비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는 것 같았다. 로비느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음식이 담긴

종이점시를 무릎에 놓고 허기진 듯 먹고 있었다.

...(중략)

로비는 고개를 힐끗 들었다가 그녀를 보았다. 로비는 햄버거 아니면 치즈버거를 먹고 있었다. 입술이 번질거렸다.

로비는 턱에 묻은 케첩을 손등으로 얼른 문질렀다.

 야구모자를 쓴 남자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카페를 빠져나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로비는 구깃구깃한 냅킨으로 입을 닦으면서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작고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셨어요, 엄마."]

 

$ 4.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다이너가 떠올렸던 단어.

Apophasis(否定意的)

나는 이 이야기를 부정의적이야기라고 결론 내리고 싶어졌다.

무엇을 어떻게 정의하든, 파헤쳐진 이야기에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면 그뿐이다.

심장을 원할수도, 간이나 허파를 원할수도 있으니말이다.

중요한건, 그러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를 잔인할만큼 세세하게 분해하고 들쳐볼 필요가 있다.

선호부위를 갖기 보다는 필요한 부위를 찾아내기 위해서말이다.

다만,

惡에 매혹될 수도 있다는 것에 주의하기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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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디고 아이들이..이곳의 출판물이었군요. 서점에서 우연히 빼들고 한참을 서서 읽다 사들고 온 책이었는데..옹골찬 책들을 만드는 곳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연히 연이 닿아지는 행운이 좀 더 많아지길..그래서 찾아 읽게 되는 곳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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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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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박물관도 아니고 "도서관"이다. 이 얼마나 획기적이란 말인가?
소리를 빌릴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모여 있다는 것. 그럴듯하게 악보를 뛰어다니는 소리들이 아니라 본래의 소리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
정말 멋진 곳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매우 유쾌하다. 그래서 화가 났다.
"나는 왜 이토록 유쾌하지 못했는가!" 하면서 말이다.
 
 
여덟개의 이야기가 기차처럼 줄줄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은 내내 즐겁다.
책의 마지막에 들어있는 일러스트라고 해야하나? 쨌든 삽화일 이것에 "악귀들의 도서관"이라고 적은 의도된 것이 분명한 오타에 폭소가 나왔다. 저 표정은 또 무어란 말인가.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기 위한 매뉴얼>
 
1.이 책을 읽는 동안은 빈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끼고 읽기를 권합니다.
귀를 모두 막고 책을 읽다보면 책 속의 소리들이 들릴 것입니다. 책장을 넘기기에 적당한 타이밍과 리듬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귀를 막았을 때 보이는 소리의 흐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엇박자D의 무성영화처럼 그저 철로가 이어지다 끊어지다 하는 장면의 연속만으로도 우리는 환청같은 기차소리를 듣게 되는 소리체험(?)을 하게 될테니까 말입니다.
 
2. 악기 도서관에 회원으로 꼭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소리는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시타르의 현 하나를 조용히 뜯었을 때 나는 소리래요(p135)"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테니까요.
꼭 시타르의 소리를 빌려보시길 바랍니다.
 
3.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고는 하지 마십시오.
책을 읽다보면 "오오~~ 이거 좋은데?"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고는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또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 누군가의 그림은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된다"(p105)는 말에 동감하거든요.
소리도 마찬가지에요. 새로운 소리란 없을겁니다. 우리가 귀기울여 듣지 못한 소리들이 <발견>되어지는 것 뿐일겁니다. 호주머니 속에 오래 묵은 먼지도 재채기를 하더라구요. 진짜냐구요? 눈감고 들어보세요.
 
4.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지 마세요.
엇박자 D의 노래처럼 다른 책들이 서서히 박자를 잃고 음정을 잃어버릴 수 있을테니까요.
 
5. 이 책을 읽고 따라하고 싶은 것들이 많겠지만 그러지 마세요.
책을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타고 비트박스를 하고 흥얼거리기도 할것이고 다리를 덜덜 떨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나거든요.
게다가 매번 떨어지는 면접을 보는 두 친구의 유쾌한 반전도 간절히 따라해보고 싶어질겁니다. 유쾌하거든요.
 어딘가에서 멋진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쿨하거든요.
하지만 그러지 마세요.
그건 남의 소리를 빌리는 것일테니까요.
적어도 이 책을 읽었다면 자신의 소리를 만들고 그 샘플을 악기들의 도서관에 기증할 정도는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6. 자신의 소리를 찾았을 때 예쁘게 올려놓을 "사랑" 하나쯤 준비해두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소리를 같이 들어줄 친구, 자신의 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사랑, 그런 친구와 사랑과 사람으로 우리들의 삶은 멋진 소리들로 가득 들어찰 것입니다.
불협화음처럼 보여도 제각각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소리는 아름답습니다.
<사람>이라는 커다란 테마 안에서 기분 좋게 합주될 것 이니까요.
 
 
개관 :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폐관 : 600개의 비닐레코드의 선택이 끝날 때
 
 
* 주의 : 음주가무를 지향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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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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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익숙한 내게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흥미로웠다. 야만적? 바바리안 같은?

 

 

 

 

 

 

내 이름은 앨리시어, 여장 부랑자로 사거리에 서 있다. (p7)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년 앨리시어. 그는 부랑자이다. 그것도 여장 부랑자이다. 어쩌다 부랑자가 되었을까?

그것도 여장을 하고서 말이다.

 

 

     
 

..... 엘리시어의 체취를 맡을 것이다. 그대는 얼굴을 찡그린다. 불쾌해지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이 불쾌함이 사랑스럽다. 그대의 무방비한 점막에 앨리시어는 도꼬마리처럼 달라붙는다.  갈고리 같은 작은 가시로 진하게 들러붙는다. 앨리시어는

그렇게 하려고 존재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추하고 더럽고 역겨워서 밀어낼수록

신나게 유쾌하게 존나게 들러붙는다. 누구도 앨리시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앞으로도 앨리시어는 그렇게 한다. ....그대가 앨리시어 덕분에 불쾌하고 지루하더라도 앨리시어는 계속할 것이다. 그대의 재미와 안녕. 평안함에 앨리시어는 관심이 없다. 계속 그렇게 한다. (p8)

 
     

 

앨리시어는 고모리에서 나고 자랐다. 동생과 새엄마와 그의 늙은 아버지와 개들..그리고 가여운 친구 고미와 함께..

옛날 옛적 굶주리던 마을 사람들이 먹어선 안될 것을 먹었다는 무덤 세 개가 있는 곳.

앨리시어의 일상이 그려진다.

글을 읽어 내리며 나는 자꾸만 말도로르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 가학적이고 폭력적이던 글이 말이다.

작가 역시 상처를 통째로 드러내며 이야기 한다. 때론 반복적으로 때론 적나라하게 때론 "이걸 어떻게 포장하냐구? 

이 상처를 보고도 그런말이 나와?" 다그치듯 직설적인 표현을 노래처럼 불러댄다.

 

 

 

"자 쉴탕 Sultan이여, 방바닥을 더럽히는 이 피를 그대의 혀로 내게서 없애다오. 붕대를 매는 것은 끝났다. 피가 마른 나의 이마는 소금물로 씻겨졌다. 나는 나의 얼굴에다 작은 끈을 십자로 엮어 묶었다. 결과는 끝없이 계속되지 않는다. 즉 피로 가득 물든 네 개의 속옷과 두 개의 손수건이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누구도 말도로르 Maldror가 그의 동맥 속에 그렇게 많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 위에서는 단지 시체 같은 반사광만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되었다. 이마도 이것은 그의 몸을 채울 수 있는 거의 모든 피였으며, 더 이상 그의 몸 속에는 피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충분하다. 됐어, 탐욕스런 개야. 바닥을 그냥 그대로 놔 두어라. 너는 배가 가득 찼다. 계속 마셔서는 안 된다. 곧 토할 것이기에. 너는 적당히 포식하였다. 너의 누추한 집으로 가서 자거라. 네가 행복 속에서 헤엄친다고 생각하라. 왜냐하면 엄숙하게 눈에 보이도록 만족스럽게, 네가 너의 목구멍 속으로 내려보낸 혈구 덕분에, 삼 일 동안을 너는 배고픔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 레망 L'eman이여, 비를 들어라. 나 역시 비를...... 들려 한다. 그러나 그럴 힘이 없구나. 너는 내가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눈물 상자에다 너의 눈물을 담아라. 그렇지 않으면, 이미 지나간 시간인 밤에, 나로서는 이미 잃어버린 고통이 만들어 내는 커다란 발자국을 네가 냉정하게 응시할 용기가 없다고 나는 믿을 것이다. 너는 샘물로 두 개의 물통을 찾으러 갈 것이다. 마루가 닦여지면, 너는 이 속옷들을 옆방에 놓을 것이다. 세탁녀가 항상 와야 하는 그대로, 오늘 저녁 돌아오면, 너는 그것들을 그녀에게 맡기리라. 그러나 한 시간 전부터 비가 많이 오고 있고 아직도 계속 내리고 있으므로, 그녀가 그녀의 집에서 나오리라고 생각되지 않는구나 - 말도로르의 노래 2 중에서. "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앨리시어와 동생, 그리고 고미는 방치된다.

새 어머니의 폭력성을 나타내는 작가의 말은 생생하다. 너무도 생생해서 이 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는 동의를 하게 된다.

 

"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바꾼다.

 씨발됨이다. 지속되고 가속되는 동안 맥락도 증발되는, 그건 그냥 씨발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씨발적인 상태다.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이 그 씨발됨에 노출된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도 고모리의 이웃들도 그것을 안다.

알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하고 모르고 싶기 때문에 결국은 모른다."(p40)

 

씨발됨!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숨쉬듯 뱉어대는 익숙한 이 말이, 그저 천박함의 표현이거나, 쎄보이려 하는 것이거나

또래에게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 즉 씨발됨을 표출하는 세상과 기성세대들

에게 퍼부어지는 소리는 아니겠는가..

 

앨리시어와 동생의 대화는 커다란 노래다.

둘이 주고받는 듀엣. 어느 한쪽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것은 그대로 그들의 노래이고 꿈이다.

네꼬의 이야기, 갤럭시 이야기, 복숭아술이 유명한 마을이 이야기..

 

앨리시어는 그녀의 폭력과 맞서고자 한다.

 

" 그녀 역시 같은 것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고 앨리시어는 생각한다.같은 것을 느끼는 거고, 그것은 곧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 다는 뜻이 될것이다.

 앨리시어에게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어떤 것, 말하자면 씨발. 그녀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걸 앨리시어는  그때 알아차린다.

그녀에게 앨리시어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어떤 것, 말하자면 씨발. 감각하고 반응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 상상하기가 싫은 것,

그녀는 곧 얼굴을 찡그리며 공격해올 것이다. 그때 앨리시어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p125)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 내일은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는 다를 것이다. 세계의 귀퉁이가 약간 뒤집혔고 점차로 더 뒤집힐 것이다. 앨리시어는 이제 그것을 안다.

밤이 마저 지나가기를 기다릴 작정으로 누웠다가 도로 일어난다. 이 방엔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방이 낯설다. 혼자뿐이다.

 이 방에 혼자 있다.

동생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p149-150)

 

사고 현장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동생. 그 죽음은 폭력에 의한 것일 수도, 앨리시어를 찾아나선 길에 만난 사고일 수도 있다.

앨리시어는 그곳에서 걸어나온다. 마치 알을 깨고 나와 아프락삭스에게 날아가듯이..

 

     
 

그대는 얼굴을 찡그린다. 불쾌해지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이 불쾌함이 사랑스럽다.그대의 무방비한 점막에 앨리시어는 달라붙는다. 앨리시어는 그렇게 하려고 존재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대가 먹고 잠드는 이 거리에 이제 앨리시어도 있는 것이다. ......앨리시어의 냄새, 앨리시어의 복장, 앨리시어의 궤적 모두, 언제고 지나갈 것이라고 말할까.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 애리시어도 그의 이야기도 결국은 다른 모든것들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할까. 

 

앨리시어도 그대처럼 이거리 어딘가에서 꿈을 꾼다. (p160)

 
     

 서문처럼 시작되었던 앨리시어의 존재이유와 같은 형태로 결말이 지어진다. 그러나 사뭇 다르다.

불쾌한 앨리시어의 이야기는 나처럼 꿈꾸는 이거리 어느 존재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내가 보려하지 않고, 알려하지 않아서 알아지지

않았던 이야기. 모르고 싶어했기에 몰라졌던 이야기. 그 한가운데 그 어미의 모습으로 거리를 떠도는 여장 부랑자 앨리시어가 있다.

 

162쪽의 길지 않은 장편.

입체적인 서사시를 하나 읽어낸 것 같은, 화면이 멋졌던 단편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래도록 잔영이 남는다.

 

미처 풀지 못했던 문제를 풀듯, 지난 번에도 틀리고 이번에도 틀렸던 문제의 오답정리를 하듯 책을 짚어가며 읽는다.

흥얼흥얼 거리며 읽는다.

야만적인 앨리스씨..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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