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복희 곁에 오래 머물 자격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나는, 복희 식당에서 단 세 번 식사를 한 적이 있는 손님일 뿐이었다. 그 이름조차 잘못 알고 있었던, 그녀의 삶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배역……….

조심스럽게 옆으로 돌아누우며 활처럼 몸을 안으로 만 채두 팔로 배를 감쌌다. 몸 구석구석을 죄던 나사가 한꺼번에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살아 있다는 너의 신호, 세계를 향한 노크,
내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네는 작은몸의 언어,
첫 태동이었다.

복희에게그 식당은 직장이었고, 동시에 일생을 통과하여 당도한 혼자만의 거주지였다. 노동과 재산, 시간을 모두 쏟아 부은 그 식당에 복희라는 이름을 새긴 행위도 살아 있다는 발신의 의미였을까. 복희의 살아 있음, 내게는 복희지만 공식적으로는 추연희인 그녀에게는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방식이었던가. 그것으로 그녀는 고단한 삶을 보상받았을까.

정우식 기관사는 5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최창룡씨는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배반하는 강렬한 추위를 느꼈다. 어깨가 저절로 안으로 말렸고 기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 외로움을 대신 연기할 가상의 배우가 필요했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서서히 결빙되어가는 상상 속 배우에게 외로움을 투사하려 했지만, 이번엔 그런 식의 전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때로 습관은 뜻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복희는 나와 넘버 원 닮았다는 그 아이에게 고맙고도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그 말의 속성을 잘 안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자신의아이를 입양 보낸 부모들이 늘어놓는 가장 흔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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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다, 에브리, 에브리……. 럭키하고 또 럭키한 그녀가 선택한 단어들에는 체온이 있었고, 그제야 나는 내가 고향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틀 전 밤, 서울에서의 첫날,
나는 그렇게 복희를 만났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가 테이블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피가 몰리도록 있는 힘껏 냅킨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을 보게 되었다.
애쓰고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에게는 손이 신체의 말단기관이 아니라 내면의 모양을 추출하여 가시화하는 독립된 물질 같기만 했다. 그와 연인으로 만나는 동안, 실제로 나는 그의 표정이나 말투보다 손의 상태를 더 예민하게 살폈다.

아현은 오래전 애고개로 불렸다가 지명이 한자화되면서 비슷한 발음인 아현 - 아현은 언덕(阿)과 고개()를 뜻하는 한자로 조합된 단어였다. —— 으로 바뀐 경우라고했다. 한때의 왕국인 조선에서는 시체가 생기면 무조건 사대.
문 밖으로 내보냈는데 애고개, 그러니까 아현은 주로 아이들.
을 묻었던 매립지라는 설명을 나는 천천히 읽었다. 애기 무덤
들이 즐비했던 곳, 나는 서울에서 가장 슬픈 의미를 갖고 있는행정 구역에서 1년 동안 문주로 살았던 셈이다.

 게스트 하우스 밖으로 나온 순간, 복희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노파가 그 버려진 의자에 앉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는 게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생애를 다 살아 버린미래의 나 자신과 마주친 듯, 순간 나른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노파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노파가 꿈에서 깨어나면 골목과골목의 집들이 모두 먼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자,
그 골목이 현생의 무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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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의 유래는 두 가지네요. 하나는 이곳에 이태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는데 그때의 이름이 지금까지 쭉 내려왔다는 거예요. 역원 이름이 이태(梨泰)인 이유는 여기에 큰 배밭이 있어서였고요. 다른 하나는 조선이 전쟁을 겪을 때마다.
겁탈당한 여자들이 이 동네에서 아이를 낳고 모여 살았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이타인(異他人)으로 불렀다네요. 그 이타인에서 이태원이 유래됐다는 거죠."  "두 번째 설이 더 그럴싸하네. 이태원엔 미군도 있고 외국인 이랑 실향민도 많이 살고, 게이 바랑 무슬림 식당도 흔하잖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 버린 외로움과 세상을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죄를 모른다는 건, 그 순진함 때문에 언제라도 더큰 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나를 낳아 키웠지만, 동시에 철로에 버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딸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무심한 악이 철로라는 공간에는 함의되어있는 것이다. 

문이 열렸을 때, 그리고 그곳엔 당연히 낭떠러지가 아니라 계단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오르막길 아래로는 불빛이 가득했고 조명을 밝힌 남산 타워도 한눈에 들어왔다. 정전은 높은 지대의 집들에만 찾아온, 일종의 가난한 천사인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복희는 웃었다. 웃을때 복희는 더 이상 외로움과 분노를 체득한 노년의 표본 같지 는 않았지만, 대신 쓸쓸해 보였다. 끊임없이 내벽에 상처를 덧 내며 시간과 함께 공처럼 굴려 왔을 어떤 마음이 인간의 얼굴 로 빚어진다면 꼭 그녀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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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흑에서 왔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테두리에 갇힌암흑이 나의 근원인 셈이다. 

그녀가 생각난 건 그 순간이었다. 기억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생각했고, 그 생각은 곧바로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 낯선 질감의 열망은, 뜻밖에도 크고 둥글고 섬세했다.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았지만 아무도 찾아 주지 않아 정처 없이 표류하는 사람이 어느새 내 외로움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을 무대처럼만들어 상상으로 빚어진 배우에게 내게 닥친 외로움을 전가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전가된 외로움은 내 것이면서도 내것이 아니었기에 깊이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는 좋았다. 

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가정은 지속적으로 위로의 힘을 발휘할수 없다. 기대면 기댈수록 나의 문기둥은 흔들렸고 조금씩 부서졌다. 희미해지고 투명해졌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확실하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실망감을 안기기도 한다는 걸터득한 뒤부터는 괴롭거나 혼란스러울 때마다 주문을 외듯 문주와 문기둥을 연달아 되뇌는 습관도 버렸다. 위로의 유효기 간은 끝났고, 유적은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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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제가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앙리가 그의 뒤에 버티고 있다고요? 그것참 잘된 일이군요. 난 앙리를 좋아합니다.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따뜻한 손길을 가졌습니다. 그는 나를 배신할 인물이 아닙니다. 게다가 난 그에게 빚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독살당했습니다. 내 가족 중 누군가의 손에 말입니다. 내가 아프면 앙리를 부를 겁니다. 내가 죽게 된다면 나는 그를 프랑스와나바르의 왕으로 임명할 것입니다. 그는 적어도 날 위해 울어줄 것입니다."
그 순간 카트린느는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전율을 느꼈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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