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즐거움과 지루함, 충만함과외로움이 마치 격자무늬처럼 그의 삶을 질서 있게 채우고 있었고, 그는 그게 묘하게 균형적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내 불행을 가져가고, 그리고 또 무언가를 가져가요.
그게 룰이에요. 그게 불행 수집가와 교환하는 방식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그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웃기고도 무서운 부분인데,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바람 때문에 그녀의 머리칼이 헝클어졌다. 그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들이 불행과 더불어 무얼 내게서 가져가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는 어둠에 잡아먹힌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빛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는 자신이 지금 살아가는 삶이 나쁜 삶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마침내 천천히, 그가 눈을 뜬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 중이라고생각한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는 하염없이 그것을 기다린다. 

"위험하진 않소?"
"위험이 따르지 않는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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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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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을 처음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으로 만났다. 제목부터 빌어먹게 아팠다. 시뻘건 시집을 오래도 보았다. 표지가 나달나달해지도록 보았다. 시뻘건 표지에 쓰인 '차가운' 심장이라는 말이 잠시 우스웠다.

한동안은 '너 없이 걸었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을 지나 멈춘 곳.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발굴지의 먼지를 아무리 떨어내도 그녀는 찾아지지 않고 모래 먼지만 날렸다. 어쩌다 눈물을 흘린 건 모래 때문이라고 탓하기 좋았다. 역시 허수경의 사막은 울어도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읽는 허수경의 유고 시집

가기 전에 쓰는 시들. 시에 빗금을 긋고 글이라고 다시 쓴 제목을 고집스레 가기 전에 쓰는 시들이라고 읽는다.

밑줄을 그으며 한참을 읽고 '모서리가 부서진 눈송이'같은 그녀를 만난다.

비슷비슷한 모습들이라고 퉁치기에는 구석구석 인이 박힌 그녀의 외로움과 예술을 향한 온 몸 던짐이 얼마나 큰 댓가를 치르는 일인지를 낱낱히 고백하고 있다.

그녀의 삶의 진술이자 쉼표이자 이 땅을 걸은 일일 보고서 같은 글을 읽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사람의 심정은 얼마나 처연할까. 끝끝내 고독을 선택한 용기는 어느 사막에서 발굴한 보물일까.

녹을 줄 알고 떨어지는 눈송이는 어떤 심경일까. 끝끝내 하강을 결정한 용기는 어느 별모서리에서 뿌려진 비약(秘藥)일까.

책을 덮으며 허기가 졌다.

문득 날아가던 새와 눈이 마주쳤던 것을 기억해냈다. 왜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나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전율에 화가 났다. 모서리가 부서진 눈송이가 아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상실은 종종 허기로 오독되어지기도 한다.

배가 고픈건 아마도 그리움 때문일것이다.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이제 누구든 찾아 나설 수 있는 유적이 되어버린 그녀는 발목을 붙드는 모래 속에서, 높은 별 밭에서, 깊은 그리움 속에서 우리가 찾아내게 될 것이다.

 

'허수경' 이라고 발음하고 나면, 낯선 얼굴 하나가 희뿜하게 웃는 잔상이 떠오른다.

단 한번도 본 일 없는 시인이지만 그녀의 시가 만들어 낸 나만의 '허수경'은 늘 그렇게 희뿜하게 웃는다.

단 한번도 찡그린 일 없이 ..

그녀를 이제 묻는다. 언제든 꺼낼테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나의 유적이고 보물이 되어있을것 같다.

 

-이 지구 어디에 묘지가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 모든 일상의 삶터는 묘지이다. 사막이 우리의 일상이고 열대림이, 광야가, 대도시가, 태양계가, 우주가 우리의 일상인 것처럼. 팽창하는 모든 것은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고립된 인간은 팽창을 거듭한다.

평생 시를 쓰는 일에 종사하면서 얻은 것은 병이고 잃은 것은 나다. 이 말을 어떤 직업에다 대고 해도 맞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일은 일이다.

아직 길을 내지 못한 많은 언어가 내 속에는 있다. 그것뿐이다. 다만 나는 나이테를 완성하는 나무처럼 무의지를 배워야 한다. 수많은 인간의 길에 난 언어들을 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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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신채호는 훗날 묘청의 난을 1천 년 내 제1대 사건‘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것은 고구려 계승 세력 대 신라 계승 세력, 자주당 대 사 대당, 진취적 개혁론 대 기득권 옹호론의 최후 결전이었다. 

 개경의 권문세족부터 지방의 향리들까지, 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진오랜 지배층은 조선이 건국되자 양반 사대부로 변신한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행세하는 가문들은 그대로였다. 그들은 더욱 엄격하고 정교해진 유교 통치를 들고 나왔다. 이전 시대와 도덕적으로 차별화하면서도항구적인 지배를 그럴싸하게 옹호할 길을 성리학에서 찾은 것이다. 그것은 정욕을 억누르고 절의를 좇는다는 미명 아래 남녀의 진실한 사랑을 음란한 풍속으로 낙인찍고, 여성에게 정절이라는 족쇄를 채워 구속하는 통치 체제이기도 했다.

남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박씨는 어우동으로 흑화하기 시작했다. ‘어우동(於于同)‘이라는 이름은 ‘어울려서 통한다‘ 또는 함께 어울린다‘로 풀이할 수 있다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 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이 이름은 그녀가 사용한 별명이었다. 어우동은 ‘이혼녀 아닌 이혼녀‘가 된 뒤 기생, 내금위 무관의 첩, 과부로 행세하며 남자들과 만났다고 한다. 법적으로 여전히 종친의 아내인 자기 신분을숨긴 것이다. 간통죄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어우동의 처형(1480)은 성종이 부부 싸움 끝에 폐비 윤씨를 쫓아내고(1479) 사약을 내려 죽이는(1482) 와중에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내가주목하는 포인트다. 우연 치고는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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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군대는 농민의 군대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오줌통도 지고 김도 매고 씨도 뿌리겠습니다." 151945년 12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식에서 약산이 한 말이다. 김원봉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었다.

 성종은 유교 정치 실현을 위해 여동생들을 모질게 대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그 성현의 가르침에 따라 집안부터 손본 것이다. 그러나 헌애왕후는 유교 정치의 억압과 구속을 독하게 버텨냈다. 고려 창업자 왕건의 손녀답게!!

서희의 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친 성종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사회 질서를 다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고려의진정한 힘은 고구려의 후예라는 정체성에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이는국난을 극복하면서 국가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인식이었다. 중국식 유교 정치에 치우쳐 있던 성종은 이후 헌애왕후와 화해하고 패서 호족들을 예우했다. 또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하고 서희의 강동 6주 개척에 힘을 실어줬다.

왕건은 지역마다 군림하는 호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본관과 성씨를 배정하고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고을별로 힘 있는 일족들이 성씨를받고 향리가 되었다. 성씨의 기준은 아버지의 핏줄이었다. 이제 이 땅에서 행세하려면 부계 혈연관계로 결집한 가문‘이라는 게 필요했다. 

 세상에 순수한 혈통은 없다.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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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해지고자 하는 집요한욕망이라기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에 가까울것이다

내가 행복해지면 당신이 그만큼 불행해지는 그런 행복을 도대체 행복이라 할수 있을까. 그런 소원이라면 어떤 간절함을 가질 수 있을까. 달빛이 넌지시 되물을 것 같다.

우리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니 숨어 있을지도 모를, 없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이나 우정을,
혹은 그것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썼다. 취한 말들은 하면할수록 닳아버렸다. 진심을 말하고자 술을 마셨지만, 술을 마시자진심은 사라져버렸다. 누군가 억울하다 해도 내 것을 내던지며 싸울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 배고프다 해도 내 것을 내주며 도울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잠시 의기투합하여 생을 긍정해 보려 했고,
센티멘털리즘이 뿌려진 달달한 위로를 맛보려 했다. 네 말대로 우리는 그냥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취해서 눈밭에 쓰러진 노새처럼, 뭘 견뎌야 하는지도 왜 견뎌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2016))

물리학과는 거리가 먼 전혀 엉뚱한 생각이지만, 지진을리큐느 순간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된 느낌이었다. 거리에 나가 눈앞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자 비로소 내가 죽지 않고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거리로떠쳐나갔을 때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살아 있다.
고 느낄 수 있었을까? 이성복 시인의 시구를 빌리자면, "당신이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지 않았을까. 그저 존재할 가능성에 불과한 나를 정말로 존재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와 함께 이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세상은 나를 존재하게하는 그들과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나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닐까. (2015) -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화가 나면 마을저 멀리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향해 하염없이 걷는다고 한다그러다가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막대기 하나를 박아 놓고 돌아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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