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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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심코 이 책을 골랐다. 아니, 애초에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땐 그야말로 감동이 넘쳐흘렀다고나 할까...

마음아프지만 잊어서는 안될 또다른 역사이기도 했기때문이다.

 

1942년 7월 16일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검거사건"

독일도 그리고 독일군인도 아닌 나치 치하의 프랑스 정부가 유대계 프랑스인을 기습 검거해 사이클 경기장에 가둬두었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낸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은 식량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감금되었다가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을 뿔뿔히 흩어져 수용소로 이송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열살 사라는, 물론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부모님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때, 동생인 네살 미셸은 벽장속에 몰래 숨기고 얼른 돌아와 꺼내주고 약속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오래 시간이 흐르게 될줄 어린 사라는 그때 미처 몰랐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줄리아는 60주년을 맞이하는 '벨디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는 기사를 맡으며 이 일을 조사하게 된다. 사라의 이야기와 줄리아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나오게 되고, 차츰 차츰 그들의 이야기가 '벨디브 사건'만이 아니라 서로와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가혹했던 사라의 수용소 생활. 과연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자행되었는지 생각하게 되면 너무나도 끔찍하다. 그곳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죽었겠지만 생존한 사람들이나, 그렇게 줄지어 이동하는 유대인들을 보았던 사람들은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지 않았을까.. 사라를 구해주게 되었던 어느 노부부처럼 미셸도 그렇게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조바심에 글을 읽어나갔지만 결국엔 동생을 구해주지 못한 부분에서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 이후로 사라의 삶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라뿐만이 아니라 이 사건에 관계가 있던 많은 사람들은 어느정도 관계가 있든 없든간에 이 사건으로 인해 여러모로 삶이 바뀌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 '태백산맥'을 떠올렸다.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도 '양민학살'이 나오게 된다. 그 부분을 읽게 될때도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안절부절 못하는 나자신을 느꼈었다. '사라의 열쇠'는 우리네 역사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똑같은 감정을 느낀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또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그들은 잘못한게 없었다. 과연 그들의 죽음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운명이었다고만 탓할수 있을까?

 

이기심때문이 아닐까... 이기심 때문에 본질은 왜곡되고 전세계가 고통스러워할 아픔을 만들어 내고 있는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아주 오래전 "이산가족 찾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함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 아주 어렸을 그 때도 그저 막연하게 가족과 헤어지는 두려움을 알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다. 전쟁은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고, 삶을 잃게 한다. 비단 전쟁뿐만이 아니라, 잘못된 이기심에 상처입고 삶까지 바뀌게 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상처들은 과연 치유될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끔씩 예전일을 곱씹어 보는 그런 못된 버릇이 나에게 있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을 그런 아픈 기억은 그리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닐지 싶다. 열살 어린 나이에 겪었을 사라의 아픔은 그녀가 살면서 결국은 등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갔을 사라가 안쓰럽다. 그녀에게 손내미는 사람들의 손을 잡았더라면 사라의 삶이 덜 고되었을까? 나를 미루어 생각해볼때도 그다지 사라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것 같지만서도... 내가 사라앞에 있었더라면 그래도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녀에게 위안은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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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세트 - 전3권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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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신청해서 한번 거부당했었다. 그때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아마도 로맨스 소설이라 그랬던 것 같지만.. 전혀 문제될것 같지 않은데 참 보는 관점이 다양한가보다.

 

이 소설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나라의 부마의 나라였던 충렬왕과 충선왕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충선왕은 충렬왕과 원나라의 공주사이에서 태어났다. 역사적으로 충선왕은 부패하고 빈곤한 고려의 개혁에 힘쓴 총명한 군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또한 대단한 가계에 걸맞는 야심을 품은 왕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사적인 일면은 어둡고 기괴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아십게도 내가 고려의 왕은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 소설으 그런 충선왕의 어렸을적 세자시절부터 그의 친구인 왕린, 왕산과의 얽힌 이야기이다. 물론 세자인 원은 실제 인물이지만 린과 산은 가상의 인물이다. 그의 어딘가 모를 지독한 방황과 같은 분노가 그의 사랑과 우정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상상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가 완전한 고려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는 자괴감이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에 만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처럼 900여년전 한민족을 고수했던 우리나라의 그것도 왕실에서 몽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려에도 속하지 못한 이유에서의 방황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갑작스레 소년 셋이 모였다. 원은 한 나라의 세자, 린은 그를 지키는 호위무사, 산은 남장을 한 여인.

처음에 린이 산을 원을 위해하는 세력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지만 원과 린은 서서히 산을 흠모하게 된다. 그리고 산이 린을 좋아하면서 세사람의 우정은 금이가게 된다. 린과 산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보길 바라는 원. 그리고 모든 권력을 가진 왕인 원. 그로 인해 많은 세월동안 원뿐만 아니라 산과 린도 아픔을 갖고 벗을 그리워하게된다. 만약에 나였다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을 사람은 다시는 기억하지를 않기를 빌텐데 그래도, 린이나 산은 원을 그리워하며 그가 고려의 왕으로서 올바른 군주가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돕는다.

 

3권분량이 비교적 많은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과연 몇부작일지.. 고려뿐 아니라 넓은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거대한 스케일의 이 이야기를 과연 드라마로 잘 옮겨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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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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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자살로 인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려던 범죄 심리학자 "이라 자민"

8개월전에 사망한 약혼녀를 데리고 오라는 조건을 내걸고 인질극을 벌인 "얀 마이"

 

그들은 밀폐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질범과 협상가로 만나게 된다. 전화를 받자마자 "101.5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어요, 인질 1명을 풀어주세요"라는 구호를 외쳐야만 인질을 살릴수 있다. 만약 다른 말을 하게 되면 한명씩 인질은 죽게된다. 두사람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방송을 통해 계속 생중계가 되고 하나둘씩 얀의 약혼녀가 죽지 않았다는 의심이 하나씩 살아나게 되는데...

 

그녀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으로 인해 완전히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갑자기 증발해버린 것이다. 외국드라마든지 소설에서 보면 가끔 이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된다. 내가 아는바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이런 것이 존재할까? 중요한 사건의 결정적 증인이고 그것때문에 생명의 위험이 생기는 것을 우려해 완전히 신분세탁을 통해 다른 삶을 갈아가게 되는것.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작기때문에 쉽사리 신분을 세탁하고서 새로운 곳에 가서 살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이 제도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수 있는 아주 중요한 증인에게는 필요한 것일것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깨끗이 살아진다는 면에서는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얀 역시 하루아침에 약혼녀의 죽음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달 받기전에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약혼녀의 전화를 받게된다. 갑자기 약혼녀를 잃게 되고 직업도 잃게 되어버린 얀의 심정은 또 어떨것인지.. 어쩌면 이 제도는 증인에게는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수 있는 제도인 한편 모든 자신의 삶의 영역을 포기해야만 하는 '양날의 검'과 같은 제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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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련화
손승휘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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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부터 항상 그녀는 우리에게 '유관순 언니'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그녀보다 더 나이가 많아져 버렸다. 이제는 어쩜 계속 유관순 언니라고 부르는게 멋쩍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탓이리라...

 

어렸을적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 외에는 별다른 감회는 없었던것 같았다. 헌데, 아이가 크면서 역사를 알게 해준다며 박물관을 다니다 보니 내게도 부쩍 와닿는 것이 많았었다. 안중근 의사 박물관에 갔었을 때도 그저 그분의 손가락은 숱한 고문에 의한 것인줄만 알았지 손가락을 끊어 절대로 조국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인줄은 몰랐다. 그때 가슴 한켠에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순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주변에서 볼수 있던 그런 17세의 어린 소녀였다. 그런데, 관순에게선 어찌 그런 힘이 나올수 있었을까? 여리디 여렸던 소녀가 그녀는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그토록 일본이 말살시키려고 했던 우리 민족정신이 사그라들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던 부분을 읽었다. 3년전인가 딸과 서대문형무소에 간적이 있었다. 소설에서 관순이 서술했던 대못이 거꾸로 박혀 있던 작은 고문상자, 온종일 꼼짝달싹 할수 없던 벽관, 그리고 수용소... 서대문 형무소에서 직접 보았기때문에 그 대목을 읽을때는 더욱더 마음이 아팠던것 같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는 매우 무서워했다. 그리고 왜 이런 무서운 곳을 그대로 내버려 두느냐구 물었었다. 아픈 역사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또 우리의 역사라고 했다. 서대문형무소를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아픈 기억을 잊을것만 같다. 아픈 역사를 바라보면서 그날의 유관순을 잊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나라였으니까..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물러나면서 지하감옥을 폐쇄했었다고 들었다. 바로 그 지하감옥이 유관순이 수감생활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다시 복원하고 유리를 덮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수 있다. 그 때도 그녀의 숨결을 느낄수 있었는데 소설과 함께 그날을 생각하니 더욱더 마음 한켠이 아련해진다.

 

소설을 다 읽고 생각해보았다. 만약 지금 관순이 처했던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그녀처럼 만세운동을 할수 있었을까? 관순은 어떤 특별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소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나는 도저히 그러지 못할것 같다. 아마도 난 관순만큼 평범하지도 못한 사람이라서 용기가 없는걸까?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해도 나는 그녀같을수 없을것같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렸던 관순에게 너무나도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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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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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청소년을 위한 책인것 같다. 성장소설이라고나 할까?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읽고부터 청소년 성장소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꼭 청소년 소설이라고 청소년만 읽으라는 법없고, 어린이 동화라고 해서 어린이만 읽으라는 법은 없는것 같다. 김려령 작가의 '가시고백'을 읽다가 책속에 꽂혀있는 속지에서 < 그냥, 컬링 >이라는 책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표지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그래서 또 병(?)적으로 블루픽션상 수상작을 찾아보게 되었다. 근데, 역시나 재미있어서 다행인거 같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은성, 보라는 소년원에 가기전 한번의 선처를 위한 프로그램이기도 한 '실크로드'를 걷게 된다. 유럽에서도 소년범죄 아이들을 단순히 소년원에 보내는 것 말고 이런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시킨후 재범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주 언니의 보호아래 70일에 걸친 실크로드 대장정을 시작한다. 우선 허구속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좋은 프로그램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우리사회에서도 날로 지능적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청소년 범죄가 성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회봉사라는 시간외에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뭔가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1200km를 걷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테지만 말이다. 작년 제주도를 여행했을때 일부러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했었다. 딸아이는 18km 정도 되는 길을 걸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난이도가 낮은 길을 택했었는데.. 꼬여서 제일 어려운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해안가를 끼고 걸어서 경치는 대단했다. 여러번 못가겠다고 징징댈줄 알았는데 꾸준히 그 길을 다 걸을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올레길을 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저 어리다고만 생각하는 아이들에겐 정말 알수 없는 힘이 있는것 같다. '1200km나 되는 길을 어떻게 걸을까?'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아이들은 해낼것이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나약하지 않나싶다. 뭐든 쉽고, 잘못되도 몰라라 외면하고,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모르고, 포기도 빠르고... 어쩌면 어른들이 그런 아이들을 만들어내는것만 같아, 씁쓸한 느낌을 버릴수가 없다. 이 이야기속 은성이는 미혼모인 엄마를 두고 있다. 아빠가 없기에 그것이 자신을 놀림의 대상으로 만드는게 싫었다. 그래서 더 강해보이려고,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을 때렸다. 보라는 왕따가 되기 싫어서 도둑질을 했는데 결국에는 도둑질때문에 왕따가 되었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으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해진 일정에서 벗어나 유목민을 만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이다 보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도 않고, 텔레비젼이나 인터넷같은 문명생활을 접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은성, 보라 본인들보다 그들은 더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발달된 사회가 우리를 더 외톨이로 만들고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은성이와 보라는 일정에서 조금 늦춰졌지만 그래도 완주를 하게된다. 그리고는 더이상 두려울게 없다고 생각한다. 80일에 걸친 그 여정이 그녀들을 더욱더 성숙하게 만든것만 같다. 이래서 어쩜 성장소설을 좋아하는것만 같다. 읽으면서 흐뭇한 감정을 느낄수 있기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함께 '국토대장정'이라도 떠나봐야겠다. 애기때부터 자동차만 익숙했던 딸아이를 차츰 거친 자연으로 몰아내야겠다. 그렇게 걷다보면 우리딸도 한층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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