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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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크기와 두께가 맘에 든다. 5~600여 페이지를 즐기는 작가를 사랑한 덕에 가방끈이 항상 수명이 짧았는데, 이 책은 그런점에서 맘에 쏙 든다.

나(이름이 나왔던가? 리뷰를 쓰려고 보니 화자의 이름을 모르네..)의 할아버지는 앞날을 예언하는 분이다. 하지만 좋은 예언은 안해주시고 불길한 것에서만 예언을 해주신다. 미래를 알게되면 과연 그 일들이 예방할수 있을까 싶다. 결국 일어날 어떻게든 일어난다 싶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프스처럼 테바이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라는 신탁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받았지만 결국 그대로 되지 않았던가. 고종사촌 형에게 "달려드는 차를 피할 수는 없다"라는 예언을 하신 할아버지. 그래서 차를 사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엔 사고는 났다. 과연 예언이라는 것은 결국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코 어떤 방법으로라도 찾아오게되는 미래의 일이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내게도 예언을 해주셨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 거다. 소중한 걸 잃게 된다. 힘들거다. 용기를 잃지 마라. 도망치면 안돼."라고. 그냥 의연하게 할아버지의 예언을 흘려들었지만, 훗날 뒤돌아보니 할아버지의 예언은 틀림이 없었다. 예언은 그런 것이었다.


글세 예언이라는 것이 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아님 말고, 거봐, 내가 그랬잖아.. 이런 수준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적에는 1999년 지구가 종말할꺼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2017년에는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것이라는 예언도 있었는데, 지금은 2018년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종말도, 3차 세계대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지나고나서 예쩐에 이런 예언이 있었다라고 끼워 맞추는식의 이야기만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어디까지나 결국은 받아들일수 없는 이야기라며 과연 결론이 어떻게 날것인가를 궁금해가면서 읽었는데, 책을 읽는 가운데 나름의 결론을 찾은것 같다. 작가님의 의중이 깃든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님 말고지 뭐..


정보기관은 자신들의 업무를 점을 잇는 작업에 비유한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생겨나고, 그 선이 자신들을 스파이와 테러리스트에게 인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능한 한 모든 점을 체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시할수 있는 모두를 감시하여 신호와 잡음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이 터지기 전에는 그 점이 진짜 점인지 알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데 있다.(본문中 p.114)


할아버지의 예언은 점과 같지 않았을까. 바닥에 흩뿌려진 점들을 찬찬히 연결해 보면 선이 되고, 선들이 모이면 면이 되는 것처럼, 어떻게 연결되느냐가 나를 행운으로 인도할수도 있고, 혹은 불행으로 연결될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진짜 점인지 아니면 함정이든지 그것은 일이 터지기 전에는 알 방법도 아는 사람도 없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뒤돌아 보면 '그게 이런 말이었구나'라고 탄성을 내지를수도 있는 것이고, '거봐, 헛소리였어'라고 할수도 있을것만 같다. 어떤 예언을 듣든 혹은 어떤 점괘가 나오든간에 점과 선의 영역은 내 몫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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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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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라는 소재는 말이다.... 역시 즐겨보는 장르가 아니라서 그런지 좀 힘든감이 있었다.

미래세계라 함은 예전 영화 <백 투더 퓨쳐>를 보면서 2015년에는 정말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2015년을 지나 2018년의 막바지를 접어들고 있지만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대중화도 안되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언젠가 이뤄지면 그만 아닐까..


이 소설의 배경은 2049년 대한민국. 전인류가 초능력을 갖게되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참고로 2015년이 되었을 때 영화 <백 투더 퓨처>를 이야기하며 실제 그 모습인가라는 리포트를 본적이 있는데 앞으로 2049년이 되려면 30년후인데, 그때 이 <민트의 세계>가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21층에서 한 소녀가 죽은채 발견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현재-물론 2049년-와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되지만 아쉽게도 순서를 쫓아가면서 읽지를 못했다. 4부에 가서 비로서 사건이 이렇게 된거구나라는 것을 정리할수 있었다. 아무래도 SF라는 소재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한가지 일부 사람들만 정말 부럽게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가 난세의 영웅이 된다거나, 아님 욕망으로 인해 악당이 된다든가 하겠는데, 누구나 초능력을 다 갖게 된다면 정말이지 그 혼란은 이루 말할수 없을것 같다. 어쩌면 이 소설을 초능력의 남발- 가령 남을 생각을 지배한다던가, 새로운 기억을 주입한다던가 하는식-은 지구의 혼란만 가중되어 지금보다 더 어지럽고 탁한 세상을 만들것만 같다. 허나 작금의 세상을 보면 초능력이 없으나 미쳐 돌아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만약 내게 이 책에서처럼 초능력이 생긴다면 남의 생각을 지배해서, 확 바꿔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읽으면서는 난해하고 뒤죽박죽같아 줄거리를 잘 잡지 못했는데 다 읽고 나니 뭔가 묘하게 이해할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다시 첫장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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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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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그것이 문제이다. 우리 모두가 가진 편견. 어느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편견.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편견들..

열두살때 부모님이 스타에게 가르쳐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교육과 두번째는 경찰이 불러 세웠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것이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에게 후자에 관한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하지만 표지에서 보듯 스타는 흑인이다. 백인사회에서 살아가는 유색인종에게는(흑인뿐 아니라 아시아) 어쩌면 꼭 필요한 교육일수도 있겠다. 그것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빚어낸 안타까운 편견일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옛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때 당시 우리학년에 이과는 3반이었다. 문과와는 다른 층을 쓰기에 세반이 더욱 돈독하기도 했는데, 이과학생들만의 시험도 치르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당시 무슨 사건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치만 담임선생님께 교무실로 불려갔던 부반장이 얼굴을 맞아서 울면서 들어왔던 일이 발생했다.우리는 매우 흥분했고, 이과 3반이 보는 시험에서 당시 담임선생님의 과목이었던 영어는 풀지 않기로 했다. 당시 감독으로 들어오셨던 수학선생님도 우리반 문제를 아셨는데, 영어를 풀지 않는 것을 보고 무척 화를 내고 시험을 무효화 하신걸로 기억난다. 무슨일이었는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도 잘 기억은 안나지만 우리끼리 토론할때 문득 한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흥분하는 건 부반장이 선생님께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맞은 학생이 그저 반에서 문제아였다면 우리가 이렇게 행동했을까라고.. 문득 그 사건이 떠올랐다. 부반장이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기에 부당하게 맞았다고 생각한 편견. 반대로 문제아학생이었다면 맞을짓을 했었겠지 하고 선생님 편을 들었을까. 인종까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잘못된 편견들이 너무나도 많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스타의 친구 칼릴은 빈민가에 살고, 갱단은 아니었지만 부득이하게 마약판매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는 총을 소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등이 깨졌다고 세운 경찰에게 애초부터 고분고분 대답을 했다면 신분증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에게도 백인경찰은 항상 우리를 범죄자 취급을 하는 그런 인물들이라는 편견이 있지 않았을까. 1-15로 일컬어지는 경관도 칼릴이 왜 세웠냐 물었을때 단번에 미등이 깨졌다는 말을 했었다면, 그들에게 갖는 편견만 갖지 않았더라면 총을 쏘지 않았을까.


모든 일의 시작을 배제하고라도 그 뒤의 적절한 행동이 따랐더라면 일을 더 이상 커지지 않았을거라고 본다. 과오를 인정하고 그에 대응하는 진정한 사죄를 했다면 일은 더 커지지 않았을 텐데, 일에 대한 변명과 또 사건을 이용하여 이득을 편취하려는 이들 때문에 자꾸만 일들은 꼬여가기만 하는것 같다.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편견이 사라질지도.. 편견이 자리잡기 전에 속으로만 말고, 곧바로 푼다면...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본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내버려 두고 그 사람은 너무 말을 많이 한 나머지 선을 넘지만 자신이 그런 줄 모르고, 듣는 우리도 그냥 받아들인다.(본문 中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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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66센티미터의 행복 - 나의 하루하루가 소중해지는 100가지 풍경
호리카와 나미 지음, 오승민 옮김 / M31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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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연 반경 66센티미터가 무얼까 생각했는데.. "내 손이 닿는 범위는 반경 66센티미터"란다. 나는 좀 팔이 긴편이라 얼핏재보니 67센티미터가 조금 넘는것 같다. 또 그걸 확인하겠다고 재는 상황도 웃기긴 하다. 작고 가볍고 냉큼 읽을수 있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그 내용이랄까 전하는 메세지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 동화책 <파랑새>처럼 파랑새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던 새가 파랑새라는 결국엔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것 같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을 구하려 미처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주어진 것에서만 만족하고 그자리에 머물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라고 본다. 아무래도 아이가 있다보니 요즘 벌어지고 있는 S여고 사태를 그냥 간과할수만은 없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좋은 대학나오고 성공하는 걸 마다하겠는가만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욕심을 내다보니 가족의 삶이 얼룩지지 않았나 싶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학교가 있는 동네로 미루어보아 형편이 힘든것도 아닐터인데 너무 지나치게 큰 욕심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한다.


66센티미터 나의 반경은 어찌보면 작아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으면 122센티미터로 커지게 된다. 행동의 반경이 넓어지면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반경이 2배가 되었다고 행복도 딱 2배가 된다는것 오해다. 이론적으로 면적은 제곱이 되니 아는 사람과 손잡으면 반경은 4배, 9배, 16배... 기하급수적으로 커질수 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 마음 맞는 사람과 손잡으니 그 행복은 더 크지 않을까. 우선 지저분하지만 내 주위를 살펴봐야겠다. 내 손 닿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 당장 내 주변만 해도 읽어야할 책들이 있고, 씨앗을 심어서 기른 허브 바질이 있고, 끄적끄적 되기 좋아하는 내 메모장이 있고, 숨바꼭질 하듯 딸아이가 적어놓은 귀여운 낙서들이 존재한다.


나의 하루하루가 소중해지는 풍경. 욕심을 버리고, 차곡차곡 쌓아서 함께 하면 더 큰 행복을 가질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해. 왜나하면 행복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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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비탄의 문 1~2 세트 - 전2권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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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신 미미여사.. 그분을 <모방범>에서 처음 만났다. 약간 무서우면서도 꽤 긴 이야기를 순식간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화차>.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워낙 책과 영화는 동일시 하지 않아서 두가지를 섭렵하기는 힘들지만 가끔 좋아서라기 보다 그냥 보는 경우도 있긴하다. <화차>나 <모방범>은 사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솔로몬의 위증>때는 조금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긴 했다. 조금 가지를 쳐내면 안되는 이야기인가.. 하면서.. 어쩜 그것은 작가님의 친절함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어떤 경우는 이 숨겨진 의도는 뭔가.. 크게 고민하다가 결국엔 찾지 못해 포기해버리 거나 읽고나서도 뭔가 깔끔하지 않은.. 그런 느낌보다 오히려 친절함이 더 나을듯도 싶다.


이 <비탄의 문>은 약간 판타지가 가미된 책이라고 할수 있다. 갑자기 실종되는 사람들, 그리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 게다가 움직이는 가고일을 닮은 조각상까지..

판타지는 솔직히 조금 내게 약한 면이 있긴 하지만 살인사건이나 실종과 같은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있기에 이 소설에 푹 빠졌다. 대학생 고타로는 실종된 선배의 행적을 좇던 중 신주쿠의 버려진 빌딩에 숨어들고 옥상의 조각상이 움직인다는 괴소문을 확인하러 온 전직 형사 쓰즈키를 맞닥뜨리게 된다. 움직이는 조각상 가라는 등에 멘 낫에 인간들의 갈망을 모은다. 고타로는 한 사건을 계기로 가라와 거래를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전에 본 실종자들의 가족이야기가 떠올랐다. 좀 오래된 다큐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가족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갑자기 가족이 사라져 버렸다.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어떤 것일까. 고타로에게 보험처럼 마지막 행적을 남기고 사라진 모리나가. 그의 소망을 '전사 가라'와 거래한 후 가라의 낫에 흡수된다. 모리나가는 아무런 말도 없어진 자신을 찾을 가족을 생각해봤을까.. 소설내용중 별로 주목받지 않은 부수적 이야기지만 아들의 흔적을 찾는 모리나가의 아버지의 모습이 난 참 애처로왔다. '전사 가라'도 비탄의 문 너머로 사라진 아들을 되찾으려 그 곳을 통과하기 위해서 열심히 인간들의 갈망을 모아 무기의 힘을 기른다.


이 소설의 모든 시작은 '욕망'인것 같다. 그 욕망에 악의가 담겨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인것 같다. 악의가 담긴 욕망은 자신 스스로도 서서히 괴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악의가 담기지 않은 욕망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되어줄수도 있다. 때론 자신의 선의가 악의로 바뀌는 시점도 존재하게 되는것 같은데, 과연 나는 그런 차이를 구분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미 여사님의 이야기에는 사회의 문제를 생각할수 있는 요소가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어서 참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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