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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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모습은 아마도 마들렌일까.. 복수를 결심하는 모습의 마들렌인것 같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마들렌의 어린 아들이 할아버지의 관을 향해 몸을 던진다. 마들렌의 아들 폴은 읽어나가면서 꽤 명석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채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폴은 생명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져야했고,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마들렌은 아버지의 사업보다는 아들인 폴에게 신경을 더 쓰게 된다. 화려한 복수극을 펼치는 그녀를 보면 사업에도 꽤 수완이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는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1927년 즈음이므로 여성의 사회진출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지 않았나 싶다.


마들렌이 온통 아들 폴에게 정신이 없을때, 그녀와 결혼으로 페리쿠트가에 입성과 동시 사업을 하고자 했던 귀스타브 주베르는 마들렌이 결혼을 거부하자 다른 음모를 꾸민다. 또한 삼촌인 샤를 페리쿠트도 자신에게 형의 재산은 극히 일부만이 돌아오고 거의 모든 재산이 마들렌에게 상속된것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들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마들렌. 대저택을 떠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알게 된 안타까운 사연. 바로 폴의 투신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가정교사이자 마들렌의 내연남인 앙드레 델쿠르에게 끓어오르는 배신감으로 그녀는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 표정이 바로 표지의 저 표정인것만 같다.


어쩌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다른 이들 모두 그녀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는다면 속절없이 무너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리라 생각해었던 듯하다. 그녀의 복수는 그들을 더이상 재기 불능하게 만들었기에 더더욱 이 이야기는 흥미롭고 독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흔히들 용서를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들을 하지만 난 이 말에 대해 반대한다. 용서를 하든 응징을 하든,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잊고 살아갈수가 없을 것이다. 용서를 했기에 잊었다는 사람들이 과연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일까. 범죄의 피해자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의 트라우마는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용서받기 위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으로 용서를 하자라고 하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재기 불능의 처절한 마들렌의 복수를 나는 더욱더 환영하는 바이다.


워낙 스릴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조금더 처절한 복수를 바랬지만 어쩌면 마들렌은 나보다는 조금더 인정이 있는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600여 페이지의 두께가 무색할만큼 책장은 아주 잘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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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 - 욕망은 왜 평등해야 하는가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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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 책은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고, 지금 다시 <희망 대신 욕망>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다. 저자는 골형성부전증이다. 골형성 부전증이란 특별한 원인이 없어도 쉽게 뼈가 부러지는 선천적 유전질환이다. 그야말로 소제목에 걸맞게도 '유리 같은 몸'이다. 시골에서 태어났던 저자는 열다섯살 까지 다른 사람들과 교류 없이 집과 병원만을 오가며 지냈다고 한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 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들이 참 아직도 반성할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주 오래된 프로그램에서 다운증후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5000명중의 한명 꼴로 흔하게 나타나는 유전자 이상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에서 다운증후군인 아이들을 흔하게 마주치지 못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만 내가 그 프로그램을 보던 그때도, 장애아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더 밤을 이용해 산책을 하거나 집에서만 생활을 하게 해서 잘 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재활원이라는 비좁은 곳이나 혹은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의 경우는 고등교육을 받고 현재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긴 저자도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을때, 원서 조차도 팔지 않았던 일을 겪기도 했다.

 

한두달전, 지하철에서 어떤 한여성분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탑승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입구였는지, 큰소리로 도와달라고 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무슨일을 당했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분이 매우 소란스럽게 했었다. 늦은시간 나도 퇴근을 하던 길이었고 공공장소에서 너무나도 큰소리로 모든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모두 불쾌해 하고 있던 차에 한분이 그분을 쳐다보는데, 왜 쳐다보냐면서 시비를 걸었다. 솔직히 그 때는 참 무례하고 장애를 가졌다는 자격지심에 괜한 시비를 건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어쩜 우리들의 잘못된 편견이 그분이 그런 방어적인 태도를 갖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결코 자격없는 인간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누구든 당당하게 요구할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세상은 그야말로 비장애인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대중이란 의미에서 그들이 소외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희망(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과 욕망(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이란 단어를 보면서, 장애인들은 불편한 몸때문에 이룰수 없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비판하는 제목인가 싶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짧은 견해로는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 무슨 특권인 마냥, 장애우들을 위한 시설까지도 욕심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탐욕스런 비장애인을 비판해야 하는 제목으로 보인다.


처음 동행인 없이 외출을 했던 저자에게 조용히 천원짜리를 쥐어주던 노인. 그 노인에게 그를 격려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그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던 행동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나도 저 노인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았던가. 많이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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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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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부풀리고 증식해 나가는 이야기의 생명력"이라..이 말이 정말로 딱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나는 엄우흠 작가님을 이 책에서 처음 만났는데 전작들인 <감색 운동화 한 켤레>, <푸른 광장에서 놀다>도 매우 궁금해졌다. 이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경수의 가족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 1장 영혼이 없는 떡볶이」를 읽을 때는 혹시 단편집이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슬쩍 뒷편을 넘겨봤는데, 하나로 연결된 소설이 맞다. 그런데 읽어나가면서 퍼즐이 맞춰지듯 이야기가 설명이 되서 묘한 재미가 있다. 경수의 아버지는 전직 경찰관으로 경찰은 그만두고나서 여러 자영업을 했었다. 어린 경수는 부모님과 가게에서 뛰어놀며 지냈는데, 어린이 입맛에 별로 맞지 않는 분식이었다. 어린 여학생들에게 그야말로 영혼이 없는 떡볶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고, 그로 인해 분을 참지 못했던 경수 아버지와 고성이 오고갔다. 그로 인해 벽에 낙서라든지, 어린 경수의 가방에 쪽지등이 발견되어 분식집을 접을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읽을때는 요즘 청소년들이 이러나,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해코지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뒤에 자세한 정황을 알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그저 단순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다. 읽어나가면서 혹시 그때 그 사람이던가 하면서 찾아보면 여지없이 그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나무가 가지를 뻗어나가듯이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으로 살이 붙고 붙어서 짜임새있고 치밀한 이야기가 된다. 사소한 낙서가 나비효과처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 큰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저 가벼운 날갯짓을 했을 뿐인 나비에게 무슨 큰 잘못이 있겠는가.(p.544) 사소한 일이 실마리가 되서 더 큰 이야기로 더 큰 인연으로 엮어져 나가게 되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비록 그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 해가되고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사람사는 인생사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간혹 앞쪽에서 언급되었던 이야기가 다시 회수되지 못하고 의문점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점에서 이 <마리의 돼지의 낙타>는 매우 친절한 소설이라고 할수 있다. 앞에서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이나, 갑자기 등장한 인물들도 책장을 덮을 즈음에서는 모두가 해소가 된다. 살짝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가 되긴 하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물흐르듯 전체적인 이야기에 동화되어 나도 그곳 '무동'에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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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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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기에는 표지에 레몬이 약간 몽환적으로 보이더니, 형광등 아래서 사진을 찍고나니 레몬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예쁘게 보이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그 또한 담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2002년 언니가 살해 당한거 외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없다. 경찰 조사를 받는 이는 있는데, 과연 그가 범인이 맞는 것인지... 드디어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노란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노란 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레몬, 이라고 나는 의미 없이 중얼거렸다. 복수의 주문처럼 레몬, 레몬, 레몬이라고... 복수를 결심한 다언이, 과연 그 복수는 어떠한 것인지 언급은 없다. 아니,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고 슬쩍 그 뜻을 내비친 것을 독자들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고 어렵지는 않다. 읽다보면 그냥 깨달아진다. 이 책을 보면서 마치 시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속에 함축된 의미를 독자들은 알게 된다. 그야말로 절제미가 아주 뛰어나다고 할수 있겠다.


언니를 잃고 엄마와 다언이는 매우 힘들었다. 어린날 아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에 세상에는 엄마와 다언이 뿐이었다. 잠을 자다가 먹기만 하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는건 너무나도 힘들었다. 엄마는 원래 언니의 이름은 혜은이었는데, 경상도 출신의 아빠가 늘상 해언아 해언아 불러대는 통에 언니의 이름은 혜은이가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언니를 잃고 나서 언니의 이름에 집착을 했다. 혜은이가 아니라서 사고를 당했다고, 언니의 이름에 집착하더니 내 얼굴에서 자꾸만 언니의 얼굴을 찾는다. 그래서 성형을 했다. 한참을 흘러 언니가 사고를 당한 곳에 가볼수 있었다. 남겨진 피해자의 가족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고 있었다. 우리는 늘상 가해자의 인권만 생각을 한다. 그들의 가족을 위해 얼굴공개를 하지 않고, 그러면서 우리는 남겨진 피해자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언은 눈물을 흘린다. 우는게 누구인지 모르면서, 앞으로 누구로 살게 될지 모르면서 울었다. 누군가 봄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듯이, 나는 내 삶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수는 없을까....(생략)...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일수는 없을까.(본문 中)


아직 잘 이 구절에 대해선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워낙에 함축이 되어 있는 시를 잘 못읽어서 그런가. 이 책을 읽으면서 중반부터 마치 이 이야기는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요즘 들어 조금 후에 그 시가 뜻하는 바가 문득문득 떠올라 다시 읽고 있는데, 시와 같은 이 소설도 생각날때 마다 다시 읽어봐야 할것 같다. 그럼 이 속에 숨겨져 있는 뜻을 더 잘 알게 되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다언이가 다시 일어서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비록 엄마와, 어린 혜은, 그리도 아무도 모를 죄책감과 기나닌 고독이 그녀의 곁을 지키더라도, 그녀가 잃어버린 삶을 부디 찾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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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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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 마흔이 넘어야 읽는거라는... 아마도 인생의 어느정도 살고나면 그 내용이 이해가 가려나? 스무살 집어든 <파우스트>는 너무나도 어려워 마흔이 넘어서나 읽는 책이라는 말에 헌책방에 팔아버렸는데, 20여년이 흐른후 다시 <파우스트>를 읽으며 요즘 기술로 남의 머리를 해킹하는 기술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라고 한다. 빼앗긴 청춘의 이름을 파우스터, 남의 인생을 빼앗아 욕망을 채우는 노인을 파우스트라고 하며 시작된 이소설은 500여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지만, 나처럼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두께가 문제 되지 않을 만큼 가독성을 지닌 아주 흥미롭다. 또한 이제껏 반전만큼은 허를 찌르던 반시연 작가의 <무저갱> 만큼이나 굉장한 반전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촉망받는 야구선수 박준석. 그는 곧 메이저리그에 서게될만큼 기대를 모으는 특급 좌완 투수이다.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눈을 뜬 후 낯선 여자가 당신 머리속에 누군가 거머리를 심어놓았다. 당신을 조정하고 있다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당신이 사랑하던 여자 은지수는 나의 아버지의 파우스터였으며, 그녀가 사고로 죽은 뒤 아버지도 자살을 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말하는 여자 최경. 도대체 무슨말인지 준석은 이해할수가 없었다.


아주 옛날 게임인데, 요즘도 그런 비슷한 게임이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중에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것이 있다. 교육시키고 아르바이트 시키고 취미 생활을 시키면서 프린세스를 만들려고 무진장 시간을 들이는... 간혹 한가지 일을 열심히 시키다가 되라는 공주는 되지 않고 다른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건 가상의 공간에서 캐릭터를 키우는 것이지만 이것은 머리에 이식한 칩으로 온전히 그 사람을 느끼며 그 상황을 즐기는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여건을 마련해주는 그러면서 조정하는 그런 경우이다. 그야말로 돈이 엄청많은 탐욕스런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인생을 착취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지만, 이것이 소설의 허구적인 이야기니 망정이지 진짜 현실세계에서 이런일이 벌어진다고 하면 정말로 끔찍스러울 것 같다.


가끔 오늘은 일이 술술 풀리네, 행운의 날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나면 그 행운마저도 누군가에 의해서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해보게 된다. 시작을 할때는 자못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완전 재밌는 이야기로 막 빠져들게 됨을 느끼게 된다. 자~ 책장을 넘겨보시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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