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분이 오신다 ㅣ 안전가옥 쇼-트 16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1월
평점 :
픽스업(Fix-up)이란 이야기들속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커다란 서사, 긴 이야기를 만들게 되는 구성을 씁합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의 세계관 공유하는 단편들이 유기적으로 묶여 장편의 모양새를 갖춘 소설'을 의미합니다.(p.152)
이 소설은 작가의 전작인 < 푸르게 빛나는 >과 공통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 푸르게 빛나는 >의 표지도 푸르게 빛나는 밤하늘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멋드러지게 있는 반면, < 그 분이 오신다 >는 그 아파트가 파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 분이 오신다」의 그 이상한 존재 때문에 이 아파트에 사건이 벌어지는 듯하다. 편집자는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 푸르게 빛나는 >의 「열린문」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사실 그 단편을 읽을 때는 이야기가 너무 일찍 끝나버려서, "뭐지?"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단편에 약한 나를 탓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는 이 아파트.. 어쩌면 < 푸르게 빛나는 >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읽게 되면 이해가 빠를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상으로는 이 책 < 그 분이 오신다 >가 뒷이야기인 것은 맞다. 어쩌면 < 푸르게 빛나는 >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점이 이 < 그 분이 오신다 >를 읽으면서 해소되는 것 같다.
이 책에는 「런」과 「그 분이 오신다」, 2편의 이야기가 있다. 「런」에서는 늦은밤 귀갓길에 친구와 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지우. 사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갈 때는 주변 이야기가 잘 안들리는 경우가 있다. 나는 좀 소리를 작게 하고 듣는 편인데, 가끔 못 들을 때가 있다. 누군가는 밤길에서 음악을 크게 들으면, 혹시나 몰래 접근하는 사람을 알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위험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 말도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지우는 밤길에 좀 빠른 지름길인 공원을 가로지르며 가다가 좀비 모습을 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영화를 찍고 있다는 그들.. 잠시 휴식중이라며 길을 비켜준다. 휴대폰이 끊어져 있자, 놀란 친구는 무슨일이냐며 문자폭탄을 보냈고, 에어팟 한개를 잃어버렸다며 지우는 찾으러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러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마지막을 읽을 때, 이 모든 것이 영화의 한 내용인가보다라며 넘어갔었는데,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이 이야기들이 공통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어쩜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 분이 오신다」는 이 모든 이야기들에서 보여준 기묘한 점을 다 설명해주는 이야기인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그 근본을 해결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도.. 하지만 해결을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그 분'의 뜻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제가 생에서 마주해야만 했던 공포에는 답이 없었는데, 다른 장르에서는 마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개인의 의지와 용기와 뛰어난 지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물리칠 수 없는 재앙 앞에 우리의 나약함이 날 것으로 드러나 짓이겨지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회에선 함부로 나약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의 보잘것 없음이, 하찮음이, 무력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손바닥만 한 지옥을, 이유 없이 끔찍하기만 한 도피처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p.147)"고 밝히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고,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 분이 오신다」에서도 종찬은 공포에 떨면서 혼잣말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니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아니, 돕기 위해 신고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은 독자에게 보여지고 있지 않는다. 다만 짐작일 뿐이다. 종찬은 무력해진다. 그리고 그분이 오신다, 그 분이 당도하신다라며 이내 자신에게 당도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어떤 공포의 순간이 오면 모두가 이렇게 무력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종찬처럼 막다른 곳이라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벤져스 속 영웅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이들의 마음 속에서 용기가 솟아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세계관이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한다. 그럼 나는 그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이만하면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세계관에 위에 또 다른 세계관을 짓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