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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
미아우 지음 / 마카롱 / 2023년 2월
평점 :
'낭(狼)'과 '패(狽)라는 두 마리의 이리가 있었네. '낭'은 태어날 때 뒷다리 두 개가 아주 짧았어.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짧았지. 두 녀석은 혼자서는 굶어 죽기 딱 좋았어. 그래서 둘은 서로에게 의지해서 사냥을 하고 밖을 돌아다니기로 하였네. 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였지. 한 녀석이 고집을 피우면 둘 다 꼼짝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둘 다 굶어 죽을 테니. (p.222)
"낭패"라는 말은 계획한 일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기대에 어긋나 매우 딱하게 됨이라는 말이다. 책 속에서 두 마리의 이리 이야기가 나오길래 한자를 찾아봤는데, 실제로 '이리 낭'과 '이리 패'를 쓴다. 좀 의외였다. 매우 딱하게 되었다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을 보니 어느 한 녀석이 고집을 피웠을까. 그래서 둘 다 굶어 죽어 딱하게 되었던 것일까.
정조는 참 외로운 왕이었다.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신하들은 자신들이 죽인 사도세자의 아들을 왕위에 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정조는 왕이 되었다. 그리고 정조와 심환지 사이에 비밀 편지르 오고가게 되었다. 심환지는 노론 벽파의 거두로서 정조와 정치적으로 철처히 대립하던 인물이었다. 후에 이 이야기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 소설 < 낭패 >는 이 역사적 사실은 근간으로 한 팩션 소설이다. 정조와 심환지 사이에 오고가는 편지를 전달하는 팽례 재겸의 이야기이다. 재겸은 10년전 상단에서 일했다. 대행수 길평이 청나라로 갈 인삼 수송을 맡겼다. 일을 성사시키고 돌아오면 동생 서조와 함께 노비문서를 파기해주겠다는 약조도 함께였다. 하지만 도적떼를 만났고, 인삼은 가짜였고, 돌아와보니 상단 단주 부부는 죽었고, 길평은 사라졌다. 그리고 재겸이는 단주를 죽인 살해범이 되어 있었다. 누명을 벗고자 재겸과 서조는 길평을 찾아 나섰다. 재겸에게는 특출난 재주가 있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투전판에서 낮은 패를 쥐고도 돈을 딸 수 있었다. 어느날 재겸은 형조에 끌려갔다. 두전에 관한 한속은 한성부 소관일텐데, 왜 형조로 왔을까. 그의 능력을 확인 받은 후, 재겸은 임금의 비밀 편지를 전달하는 팽례를 맡게 되었다. 심환지 대감의 속내를 알아보라는 밀명과 함께...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이 이렇게 다양하게 분석되는지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표면에 드러나는가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사람도 있다. 심환지 대감이 바로 그렇다. 재겸이 그동안 만났던 사람과 달랐다. 꽤 고심한다. 그렇다고 임금께 거짓을 고할 수는 없을테니까. 게다가 길평과도 맞딱드린다. 임금을 믿을 것인가, 도망가야 할 것인가. 도망가게 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머리속에 그날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역사속 사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장점이 아닐까. 게다가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처음에는 이 소설의 제목이 "낭패"인 것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말에 도달했을 때 비로서 제목의 뜻을 알게 되었다.